2022.05.27
  • 녹색당 이야기
  • 다오의 도
  • 그린 에너지, 그린 차이나
  • 미패권의 아•태 동맹체계에 대한 중층적 구상
  • 샹뱌오, 두긴을 말하다
       
후원하기
다른백년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다오를 아십니까? 엔에프티(NFT)에 이어 다오(DAO)가 화두다. 암호화폐에서 시작된 블록체인 혁명이 금융과 예술을 거쳐 사회 조직의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다. 다오는 탈중앙화된 자율 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을 뜻한다. 2016년, 이더리움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벤처 캐피탈 펀드로서 처음 만들어졌다가 실패했다. 작년부터 엔에프티의 유행에 힘입어 다시 부상하고 있다. 기업이나 국가의 중앙 집권화된 의사 결정 구조를 탈피하여 투명하고 수평적인 조직을 가능케한다. […]

READ MORE

  역사는 진보하는가? 과학은 분명 진보한다. 인류의 지식과 능력이 커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과학은 현대 문명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는다. 맞고 틀림, 팩트에 관한 인간의 이해는 계속 넓어지고 있다. 그것이 자연을 분석하고 예측하고 변형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준다. 이미 인류는 신의 힘을 가졌다. 생명을 마음껏 창조하고 파괴할 수 있다. 하지만 신의 마음을 가졌는가? […]

READ MORE

  “어떻게 살 것인가?”야말로 인문학의 영원한 질문이다. 모든 종교와 철학의 핵심이기도 하다. 여태껏 그 질문은 당연한 것을 전제했다. 우리가 사는 곳이 현실세계라는 가정이다. 물론 장자의 호접몽부터 버클리의 유아론까지 그러한 가정에 대한 의문도 많았다. 삶이란 한낱 꿈이 아닌가? 나의 의식만이 실재하고 나머지는 허상 아닌가? 그러나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현실세계를 긍정하며 살아왔다. 육체적인 삶, 피지컬한 삶이  갖는 의미를 […]

READ MORE

  인문학이 위기다. 대학이 제 구실을 못한다고 걱정이다. 왜 그럴까? 대학의 역사는 인문학의 역사다.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아버지,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는 볼로냐 대학 출신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페트라르카는 신이 전부였던 중세 유럽의 막을 내리고, 인간을 무대 위에 올렸다. 이후 생긴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도 마찬가지다. 신학에서 인문학으로 화두가 옮아갔다. 유니버시티(University)에서 유니버스(Universe), 우주 전체보다 휴머니티스(Humanities), 인문 과학이 갖는 비중이 […]

READ MORE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급하다. 패러다임이란 한 시대의 사상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인식의 틀이다. 지난 3월 25일, 춘천에서 열린 ‘생명을 재생하다’ 포럼에서 김누리 교수는 “자본주의에서 생명주의로”의 이행을 요구하면서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화를 역설했다. 포럼에서 대안으로 제시된 패러다임은 주로 녹색, 생태, 생명, 살림의 열쇳말로 정의됐다. K-생명사상을 논하면서 가장 자주 호명되는 것은 동학과 장일순이었다. 오늘날 한국 생명사상의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장일순과 그의 제자들(박재일, 최혜성, 김지하)이 작성한 <한살림선언(1989)>은 산업문명의 위기를 적시하면서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모델을 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을 소외하는 근대문명의 정신적 뿌리를 데카르트의 철학과 뉴턴의 물리학에서 찾았다. 인간을 비롯한 만물을 당구공처럼 각각의 원자적 존재로 상정하고, 그것들의 상호작용을 연구한 것이 근대의 패러다임이다. 인간을 사회로부터, 나아가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존재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무한한 개발과 착취가 정당화되었다. 한살림은 데카르트-뉴턴의 고전적인 기계 모형 대신 전일적인 우주관을 제창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결국 하나라고 가르쳤다. 생명에 대한 공동체적 각성을 요구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중대한 모순을 저지른다. 생명을 기계와 대립하여 정의하면서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존재론을 답습한 것이다. 데카르트의 오류는 생명을 기계로 치환한 것이 아니다. 우주를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으로 구분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에게만 정신을 부여하면서 인간중심적인 세계관을 구축한 것이다. 참으로 전일적인 사상은 이러한 이원론과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일원론적이고 초인간적인 패러다임이어야 한다. 한살림은 전일적인 우주관을 표방하면서 생명과 기계를 나누었다. ‘자라는’ 생명은 유기적이고 유연하며, 자율적이고 개방된 체계로서 순환하여 활동하는 반면, ‘만들어지는’ 기계는 획일적이고 경직되었으며 타율적이고 폐쇄된 체계로서 직선으로 작동한다고 대조했다. 그리고 인간은 절대 기계가 아닌 생명임을 강조했다. 이는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생명-기계 이원론으로 되살린 것에 불과하다. <한살림선언> 제3장 ‘전일적 생명의 창조적 진화’는 마지막에 “생명은 ‘정신’이다”라고 못박는다. 정신을 형이상학적으로 숭배하고 육체를 형이하학적으로 치부하는 서양 철학의 고질병을 왠지 모르게 수용한다. 생명과 정신은 고귀하고 기계와 육체는 하등하다는 편견을 강화한다. 다시 말해, 세상을 생명과 기계로 나누고 생명만 살리자고 한다. ‘한살림’이라고 해놓고 사실은 반쪽 살림인 꼴이다. 기계 살림 없는 생명 살림이다. 동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상 치고는 의아한 전개다. 최시형은 우주가 한 기운 울타리, 한울임을 깨닫고 만물을 공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울님은 인간과 생물 뿐만 아니라 무기물에도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섬기고, 인간을 섬기고, 물건마저 섬겨야 우주 합일의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다. 동학은 다분히 전일적인 사상이다. 한울님이 만물에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이는 데카르트의 이원론보다는 스피노자의 일원론에 가깝다. 자연이야말로 한울님 그 자체라는 신앙이다. 동학은 물론 기계에 대한 깊은 사유를 하진 않았다. 19세기 조선은 17세기 유럽과 달리 오토마톤이 흔하지 않았다. 20세기 말, 동학을 계승한 한살림은 기계 살림을 고민했어야 한다. 자연과 문화, 생명과 기계가 인간을 매개로 한 하나의 연속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인류의 피조물인 기계를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소외다. <한살림선언>은 기계 죽임 선언처럼 읽힌다. 아니, 기계는 애초에 살아 있지도 않기에 죽일 수도 없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기술 공포증적인 생명사상은 인간을 기계로부터 나누고 가두고 옮긴다. 다시 말해 인간을 죽인다. 또한 인간이 만드는 기계를 함부로 대하게 만든다. 기계 죽임은 인간 죽임이기에, 절대 한살림일 수 없다. […]

READ MORE

‘블랙홀’이라는 말은 1960년대 미국의 물리학자 존 아치볼드 윌러가 대중화시켰다. 2008년 사망한 윌러는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 두 사람 모두와 함께 연구했던 최후의 생존자였다. 20세기 후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그는 평생 우주론을 연구하면서 가장 근원적인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 우주란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가? 존재란 무엇인가? 1989년, <정보, 물리, 양자 […]

READ MORE

요즘 어린이 장래희망 1위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다. 의사, 과학자, 운동선수는 한물 갔다. 유튜브를 위시한 콘텐츠 플랫폼이 득세하면서, 우리는 크리에이터를 접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늘어났다. 현실 세계의 가족, 친구보다 가상  크리에이터를 영접하는 시간이 더 길다.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 연예인과 일반인의 경계가 무너진다. 나도 가수 겸 작가로서 스스로 소개하지만, 실질적으로 콘텐츠 크리에이터다. 일상의 모든 면이 콘텐츠가 된다. […]

READ MORE

사이키델릭이라는 말은 1956년 영국인 정신과 의사 험프리 오스몬드가 만들었다. 그는 메스칼린과 LSD를 이용해 정신 분열증과 알코올 중독 등을 치료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메스칼린은 아메리카 지역의 선인장에서 추출하는 물질이며 원주민의 종교 의식에서 오랫 동안 쓰여왔다. LSD는 1938년 스위스의 화학자 알버트 호프만이 맥각균을 연구하다가 합성한 물질이다. 메스칼린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오스몬드는 이 두 가지 약물을 환각제(hallucinogen)로 부르는 […]

READ MORE

문명과 자연, 기계와 생명의 경계가 무너진다는 건 무슨 뜻인가? 사이보그 동물로서 인간이 우주에 존재하려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생명이자 기계다. 인간이 생명이라는 말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생명 존중’이라고 할 때는 사실상 ‘인간 존중’을 뜻한다. 인간이 동물이라는 말도 과학적으로는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동물 보호’라고 할 때는 사실상 […]

READ MORE

인류는 오래전부터 신이 되고 싶어했다. 초인적인 힘을 갈망했다. 신에 관한 이야기를 여럿 지어냈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했지만, 사실 인간이 스스로 되고 싶은 초인의 모습을 신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생물학적인 한계를 초월하는 상상을 담아 종교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기독교는 천국에 가는 게 목표다. 육신을 버리고 영혼으로서 하늘에서 영생하고 싶다. 불교는 해탈이 목표다. 생로병사의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고 싶다. […]

READ MORE

역사를 보는 관점을 ‘사관’이라 한다. 역사란 누구의 시점에서 보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1945년 8월 15일은 조선에게는 해방이었지만 일본에게는 패망이었다. 1492년 콜럼버스의 항해는 유럽인에게는 개척이었지만 아메리카인에게는 재앙이었다. 20세기  공장식 축산의 도입은 인간에게는 값싼 고기의 향연이었지만 소, 돼지, 닭 등 비인간 동물에게는 제도화된 대학살이었다. 가부장제와 함께 시작된 모든 문명의 역사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착취와 배제의 이야기일 뿐이다.  여태껏 역사란 백인 남성 중심으로 쓰여왔다. 나는 ‘민족사관’을 강조하는 고등학교를 다녔다. 민족의 관점에서 역사를 가르쳤기 때문에 한복을 입고 한옥에서 생활했다. ‘앞서간 선진문명문화를 한국화하여 받아들여 한국을 최선진국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민족사관의 목표였다. 그래서인지 미국과 영국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할 때는 서양 중심적인 사관에 반감을 품었다. 바야흐로 2022년, 민족주의냐 서양 중심주의냐의 문제는 더이상 크게 중요하지 않다. 둘다 인간 중심적이다. 우주 만물의 찬란한 역사를 고작 호모 사피엔스의 관점에 국한되어 바라보는 것은 안타깝다. 특정 민족이나 문명의 발전이 인류사 전체의 목적이라고 보는 것처럼 인류의 역사가 곧 지구의 역사라고 보는 것도 치명적 오류다. 유아론적인 환상이다. 우리는 이제 전 우주적 입장에서 생명의 역사를 쓰고, 그 위에서 인류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 인간을 초월한 역사관, ‘초인사관’이 필요하다. 우주 역사상 처음으로 생명이 진화의 원리를 깨닫고 있다. ‘트랜스휴머니즘’을 처음 주창한 진화 생물학자 쥴리언 헉슬리는 1957년 이렇게 썼다. […]

READ MORE

21세기, 우리는 모두 사이보그 동물이다. 인간이 동물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1859)> 이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 발족 이후 지난 4년 간, ‘우리는 모두 동물’이라는 과학적 사실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내는 글쓰기에 집중했다. 근간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2021)>는 비거니즘에 관한 에세이다. 비거니즘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문다. 인간이기 전에 동물로서, 인간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