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6
  • 북한에 대한 제재중지가 생명을 구하고 평화를 가져다 준다
  • 석유가격 전쟁으로 트럼프가 푸틴에게 도움을 청하다
  • 국내기고문[1] 위기상황을 통해 본 한국사회의 공공성
  • [1] 코로나-19 충격이후 세계는 어떻게 변할가?
  • [13] 코리아 양국체제의 자유와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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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분단 70년의 시간을 세계사적 차원에서 되돌아볼 때가 되었다. 자력이 아닌 미·소 연합의 힘으로 일본을 몰아낸 이상 코리아가 미국과 소련의 영향권을 벗어날 길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나마 분단을 벗어날 수 있었던 아마도 유일한 방도는 전후 신탁통치를 받아들인 오스트리아형 통합방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내전이 격화되면서 코리아와 동아시아는 미소 냉전이 본격화하는 격발지가 되었고, 결국 코리아 남북은 국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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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중은 김대중 정부 시기인 1998년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되었다. 그 이후 그의 생각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분단체제를 벗어나는 길을 그에게 물을 수 있을까. 분단체제를 누구보다 아파했고 분단체제로 인해 누구보다 큰 형극의 길을 걸어야 했기에 답을 구할 수만 있다면 누구보다 자격이 있을 것이다. 특히 궁금한 것은 1993년의 충격적인 ‘간첩사건’ 이후의 김낙중의 생각이다. 과연 그는 이 일을 겪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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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김낙중은 만기 출소했다. 전두환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와 광주에서 벌인 시민 학살의 광기가 전국을 휘감고 있을 때였다. 출소 이후 김낙중은 상한 건강을 추스르며 홀로 조용히 저술에 전념했다. 그러나 그의 초심인 평화통일에의 열망은 그 시기에도 한시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86년 초부터 김낙중은 조심스럽게 독립운동 원로들이 만든 ‘민족통일촉진회’라는 온건한 통일운동단체의 회지(會誌)를 만드는 일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8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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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임진강을 건넜던 그 한 번의 선택은 김낙중에게 평생의 천형(天刑)이 되었다. 물론 그는 자신의 자유의지로 결정한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온몸으로 질 각오가 서 있었다. 그러나 그 짐은 너무나 무겁고 가혹했다. 1957년의 재판에서 그의 간첩죄 혐의는 무죄가 되었으나, 그가 자진 월북하여 1년간이나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은 한국의 분단권력이 필요할 때마다 두고두고 소환하여 이용해먹는 소재가 되었다. 아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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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이명준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즈음, 김낙중은 그의 ‘평화통일’의 편력을 시작한다. 1954년 4월. 놀라운 일치다. 바로 그 시간, 삭발을 하고 흰 한복을 걸친 24세의 수척한 한 청년이 대낮에 ‘탐루(探淚)’ 즉 ‘눈물을 찾는다’라고 쓴 등불을 들고 부산 광복동 거리를 홀로 배회하였다. “피묻은 잿더미가 아직도 성에 차지 않아 (여전히) 무력북진을 부르짖는 권력자에게 항거”하고자 했던 청년 김낙중의 일인시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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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준은 해방 이후 전쟁까지의 남과 북을 편력한다. 그 출발지는 서울이다. 20대 철학과 3학년생인 그는 홀로다. 어머니는 죽고 아버지는 월북하고 없다. 대신 아버지의 친구인 은행 지점장의 집에 기식해 산다. 명준의 또래인 아버지 친구의 아들과 딸도 부르주아적 생활을 즐기는 데카당하고 향락적인 대학생들이다. 이명준이 냉소적으로 묘사한 당시 한국 사회의 모습은 이러했다. 정치? 오늘날 한국의 정치란 미군 부대 식당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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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 2016~2017년의 촛불 이후 70여 년 전 코리아 남북의 분단 이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이에 따라 통일을 향한 새로운 길도 함께 열리고 있다. 이 새로움의 의미가 무엇인지 통일에 관한 자유와 책임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숙고해보고자 한다. 무엇에 대하여 ‘새로운 시대’인가를 먼저 밝혀두어야 하겠다. 신시대와 차별되는 구시대란 무엇인가? 지난 70여 년의 코리아 남북의 분단과 적대의 시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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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양국체제 시도의 실패는 양국체제의 첫 문을 냉전대결 세력의 한 분파가 열었다는 역사적 아이러니, 태생적 한계에서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분석 수준을 한 단계 심화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그 한계를 짚어보는 데 그치지 않고, 이 ‘한계’를 뒤집어 이렇듯 진행된 실패 과정 이면(裏面)의 가능성까지를 분석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뒤집어 읽기, 심화된 분석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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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9월에서 연말까지 4개월간, 남북 유엔 동시가입,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숨 가쁘게 이루어졌다. 이렇듯 양국체제를 향해 열리는 듯했던 문은 이듬해인 1992년부터 급속히 닫히고 만다. 그리고 1993~1994년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에 빠진다. 특히 1994년 5~6월은 한반도가 6·25 전쟁 이후 전쟁 발발에 가장 가까이 갔다는 순간이었다. 전쟁 시뮬레이션은 엄청난 인명피해와 전쟁비용을 예고했고 북미는 충돌 직전에 가까스로 돌진을 멈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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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냉전시대 오랜 기간 남북에 존속했던 ‘반쪽국가의식’은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양국의식’ 쪽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이 이뤄진 1991년을 양국체제로의 전환이 최초로 시작된 때라고 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아직 불충분하고 불완전했다.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모두 그러했다. 우선 남북 유엔 동시가입을 전후하여 한국은 소련, 중국과 수교할 수 있었지만 미국은 북과 수교하지 않았다. 미국의 강한 영향 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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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양국체제적 발상을 가로막아왔던 심리적 억압 기제는 크게 외부에서 비롯된 것과 내부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 두 개의 억압기제는 일단 겉보기에 서로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외적 억압은 상대를(즉 남은 북을, 북은 남을) 부정하는 쪽으로 작용한 반면, 내적 억압은 반대로 상대를 부정할 수 없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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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코리아 양국체제 코리아 양국체제란 대한민국(ROK)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 두 나라가 주권국가로서 서로 인정하여 공식 수교하고 평화롭게 공존, 교류, 협력하는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 공존체제이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지난 70여 년 남북 간에 쌓이고 쌓인 적대와 불신을 완화하고 해소함으로써 평화적 통일로 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경로다. 지난 70여 년 남북은 수없이 많은 ‘통일방안’을 경쟁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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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코리아 남쪽의 대한민국(ROK)의 눈에는 코리아 북쪽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라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눈에는 남쪽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없다. ‘코리안 블라인드(Korean blind)’다. 한쪽 눈만 뜬 채 상대를 맹점 지대에 넣어놓고 서로가 상대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헌법에는 ‘한반도’에 오직 대한민국만이 존재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헌법에는 ‘조선반도’에 오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만이 존재한다. 헌법만이 아니라 두 나라의 어느 공식적인 법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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