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4
  • 개벽세대를 기르자
  • 집체재산권제도개혁의 지분고정은 신중히 검토해야한다
  • 버니 샌더스 : 나의 출신배경과 정치목표 – 트럼프는 당신은?
  • 새로운 기축통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란핵합의 파기사태
  • 대북식량지원을 정쟁화 시킨 오류: 문대통령님, 왜 이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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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백년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도덕문명론과 도덕진화론 이제서야 <개벽파선언>을 제안하신 깊은 뜻을 알았습니다. 멀게는 1919년의 <기미독립선언>을, 가깝게는 1989년의 <한살림선언>을 잇는 세 번째 개벽파선언을 기획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나니 우리가 하는 작업의 의미도 한층 분명하게 이해되었습니다. 지난번 편지도 마치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처럼 익숙하게 다가왔고요. 먼저 “개벽파를 척사파와 개화파의 동렬로 간주하기 힘들다”는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척사파와 개화파는 문명과 야만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한쪽은 중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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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쓴 조선사상사 지난번에 보내주신 「뜻으로 본 서학사」는 실로 21세기에 걸맞은 조선사상사의 신지형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서구적 ‘실학’이나 중국적 ‘리기’(주리-주기)와 같은 20세기적 주술에서 벗어나서, 지구적 관점에서 우리 자신을 조망하는 새로운 ‘눈’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17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한국사상사의 흐름을 서학의 수용(이익)과 북학의 흡수(홍대용), 그리고 기학의 탄생(최한기)과 동학의 부활(장일순)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하는 안목은 과연 유라시아 100개국을 견문한 개벽학자가 아니고서야 감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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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공화와 일원공화 지난번에 보내주신 편지에서 천도교의 ‘삼일정신’과 원불교의 ‘삼동윤리’를 연속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양자를 분석하는 시각은 아마 처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두 종교가 ‘개벽’이라는 말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정도의 지적만 있었으니까요. 개벽종교를 하나의 ‘파’나 ‘학’으로 묶어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 자기 교단의 교리나 운동에만 관심을 기울이거나, 아니면 동학농민전쟁에만 주목을 해왔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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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이라는 딜레마 ‘개벽’보다 어려운 주제를 주셨습니다. 지금의 저에게 ‘유학’은 ‘개벽’보다 버거운 과제입니다. 요즘 같아서는 한국사회에서 개벽을 알리는 것이 유학을 살리는 것보다 훨씬 쉽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벽은 파릇파릇하고 신선하지만 유학은 진부하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어느 철학과 대학생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제가 ‘유학의 현대화’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하니까 대뜸 하는 말이 “선생님, 유학을 꼭 살려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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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고려학’인가? 남한학과 북한학이 아니라 한국학과 조선학이라고 해야 한다는 지적에 십분 공감했습니다. 다만 제가 한국학이라고 한 것은 개벽학의 발신지가 북조선도 아니고 중국도 아닌 ‘한국’이라는 의미이지, 결코 그 대상이 남한에 한정된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그 범위는 지구학이자 미래학이 되어야겠지요. 그래서 개벽학이 한국학의 영역이라는 말은, 량수밍의 동서문화론을 연구하는 분야는 중국학에 속한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한국학과 조선학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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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학에서 개벽학으로 2019년 3월 6일 수요일 아침. 서울 부암동의 산꼭대기에 위치한 여시재 대화당(大化堂)에서 개벽학당 출범식이 있었습니다. 이날 행사의 주인공은 하자센터 출신을 비롯한 여러 벽청(개벽하는 청년)들과 그들을 이끄는 이병한 선장. 사공들의 춤과 노래, 그리고 선장의 출항사를 지켜보면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제가 보고 들은 올해의 3.1운동 행사 중에서 가장 빛나는 축제였습니다. 가슴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삼일독립선언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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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uture is Gaebyeok! 싱가포르에서 접하셨다는 “The Future is Asian”이라는 책 제목이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식대로 바꾸면 “The Future is Gaebyeok!”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벽파를 자처했다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개화학이 아닌 개벽학에서 찾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학술대회를 디자인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대화마당을 만들어 간다면 지금처럼 생기 없고 늘어지는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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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성찰과 개벽의 귀환  <개벽론>과 <근대론>을 구분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본말이 전도되고 ‘달’이 아닌 ‘손가락’에 집착할 수 있으니까요. 박맹수 교수님께서도 『한국 근대의 탄생』이 나올 때 『개화에서 개벽으로』를 제목으로 잡아야 한다고 충고해 주셨습니다. ‘근대’는 진부한 주제라고 하면서요. 아마 같은 역사학자라서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막상 책이 나오고 난 뒤에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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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라는 용어에 대하여 설 연휴 잘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지난번 편지에서도 많은 문제제기를 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쓸 내용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논의의 범위가 방대해서 제 생각을 다 쓸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먼저 저는 ‘한국사상사’라는 제한된 문맥에서 ‘근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개벽’이라는 자생어를 설명하기 위해서 ‘근대’라는 번역어를 빌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 제목도 ‘세계 근대’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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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벽의 바람 이병한 선생님, 두 번째 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먼저 편지를 쓰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는 말을 듣고서 저도 덩달아 기뻤습니다. 뭔가 답답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서요. 마침 엊그제 원불교대학원대학교의 김경일 총장님도 페이스북에서 비슷한 표현을 쓰셨더군요. “서구 근대문명이 들어올 때 위정척사나 개화파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동학류의 개벽에 대한 자리매김이 늘 고민이었는데 (『한국 근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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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른 천하 이병한 선생님, 새해 벽두에 보내주신 개벽소식 잘 받아보았습니다. 마침 새해 첫 출근길이었습니다. 천지가 잠자고 있을 때 서울에서 보낸 편지를 천지가 깨어날 무렵에 열차 안에서 읽을 수 있다니, 새삼 물질개벽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첫날 일과를 마치고 대학 근처의 심야카페에 와서 답장을 쓰고 있습니다. 곧 자정이 되려 합니다. 편지를 일독하고 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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