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3
  • 다른백년을 준비하는 중소기업 정책제안(결론)
  •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와 아시아개발은행 간의 협력과 경쟁
  • 민중 속에서 불의를 질타한 예언자, 고영근 목사
  • 홍콩 사태와 광주항쟁의 차이 3가지
  • [3] 산업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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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백년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지난 6개월간 ‘다른 백년’에 연재한 <개벽파 선언>이 출간 펀딩을 시작했습니다. 책에는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의 소중한 이름을 새기고자 합니다. [후원방법] (클릭)   일백년전 기미독립선언은 ‘민족지도자’ 33인이 했다고 합니다. 일백년의 민주화 이후 다시 출발하는 <개벽파 선언>은, 만인과 만국과 만물이 상생하는 민주주의 2.0을 탐구합니다. 고로 리더와 팔로우를 갑과 을로 나누어 분별하지 않습니다. 모든 이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인과 연으로 함께 참여하는 공동 선언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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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탄소년단과 개벽청년단 마지막 글입니다. 마무리를 짓지는 않습니다. 마침표를 찍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느낌표가 더 어울립니다. 선언인 까닭입니다.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비로소 출발선에 섰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한 판 뜰 참입니다. “다른 백년, 다시 개벽”, 신고식을 올렸을 뿐입니다. 지난 150년 개화판을 갈아엎는 개벽의 새판 짜기를 심고(心告)했을 따름입니다. 선언은 시대의 혼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선언 이후에는 혼신을 다하여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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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대한 뿌리 절로 옷깃을 여미었습니다. 저절로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리고 싶어졌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이미 ‘개벽’의 용례가 아흔 두 번이나 나온다는 사실에 만시지탄이 새어나옵니다. 18세기 영조기에는 무려 19차례나 보인다니 연거푸 이마를 찧게 됩니다. 19세기의 유레카 ‘다시 개벽’의 거대한 뿌리를 때늦게 확인케 된 것입니다. 홀연 지난 반 천년이 투명하게 맑아져옵니다. 돌연 개벽사상의 무르익음으로 이 땅의 역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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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세 이후의 서학 감탄했습니다. 감격했습니다. 감화되었습니다. 독창이 번뜩이고 독보가 휘황한 글입니다. 선생님의 잠재력이 화산처럼 폭발하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명문입니다. 감칠맛이 나고 감질 맛이 돌아 거듭하여 되읽게 되었습니다. 특히 “내 마음을 하늘같이, 내 기운을 하늘같이”는 인류세를 맞이하는 밀레니얼의 시대정신으로 삼아도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캐치프레이즈 같습니다. 천아심(天我心)을 포스트휴먼의 구호로, 천아기(天我氣)를 트랜스휴먼의 모토로 온 누리에 전파해봄직 합니다. 무엇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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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건국론>과 나라살림 <건국론>을 음미했습니다. 원불교 2대 종사 정산의 작품입니다. 대종사 소태산의 도반이자 수제자이고 후계자였습니다. 출간 시점이 탁월합니다. 1945년 10월, 광복 직후입니다. 나름의 ‘준비시대’를 거쳤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도둑처럼 온 해방’에 임하는 ‘정치적 영성가’의 치열하고 치밀한 태비가 놀라웁습니다. 운동기 의암 손병희는 도전(道戰), 언전(言戰), 재전(財戰)을 준비했습니다. 건국기 정산 종사는 도치(道治), 덕치(德治), 법치(法治)를 앞세웠습니다. 항쟁의 단계를 지나 건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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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억의 역전 “개벽은 깨어 있는 자세”입니다. “중도는 배제를 거부하는 포함의 태도”입니다. “보듬는 태도”로써 “편도에서 중도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구구절절 열 번이고 백번이고 공감하는 말씀입니다. 실로 개벽학은 동학 외골수를 사절하는 바, 유학과 서학도 두 팔 벌려 보듬어 삼학을 회통해야 합니다. 서학의 최전선을 달리고 있는 과학 공부를 제가 유난히 강조하는 것도 서구 중심주의 비판이라는 20세기의 과제에 붙들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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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벽학과 고려학 작년에는 개벽파를 자처했습니다. 올해부터는 개벽학자를 자임합니다. 하노라면 나는 한국학자인가, 자문해 보았습니다. 냉큼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개벽학이 곧 한국학이라고 등치시키는 것에는 못내 주저케 됩니다. 본디 개화좌파였습니다. 20대 구미의 사회이론을 줄줄 외다시피 다녔습니다. 꼴에 반골과 몽니 기질은 다분해서 미국보다는 유럽을 선호했습니다. 독일어와 프랑스어 회화 테이프를 귀에 꽂고 캠퍼스를 누볐습니다. 농반진반으로 ‘모던 보이’시절이었다고 회고합니다. 하얗게 탈색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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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Studies의 삼전론 슬쩍 심통이 날 뻔 했습니다. “북미회담의 결과에 크게 실망할 것 없이, 우리는 우리의 길을 묵묵히 가면 된다.”라는 말이 짐짓 태연하다 못해 한가해 보입니다. 느닷없는 협상 결렬 소식에 낙심이 심해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한 숨도 자지 못하느라 감기까지 도진 저로서는 억울한 마음마저 일어납니다. 하노이에서 인천까지 뜬 눈으로 하늘 길을 건너왔습니다. 그 아래 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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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스트-웨스트(Post-West) 복병이 있었습니다. 하노이에 들르기 전 싱가포르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곳입니다. ‘미래도시’에 가장 근접한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다운타운을 걷노라면 수많은 언어가 동시에 들려옵니다. 영어와 중국어, 힌디어와 아랍어, 독일어와 일본어, 말레이어에 한국어도 곧잘 들립니다. 그만큼 다인종, 다민족, 다종교, 다문명 도시입니다. 지구촌을 축약시킨 듯한 이 글로벌 시티를 산책하노라면 뇌가 말랑말랑 활성화되어 풀가동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참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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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류세와 개벽세 옳거니! 무릎을 쳤습니다. 가히 “개벽에 담긴 사상적 획기성으로 말하면 ‘근대’라는 말로도 부족”합니다. 턱없이 모자랄 뿐만 아니라 공연한 오해를 사고 시비에 휩싸이기 쉽습니다. 동네북으로 전락한 ‘근대’에 견주자면 ‘개벽’은 싱싱하고 생생하며 팔팔하고 푸르른 개념입니다. 번뜩번뜩한 영감을 제기하고 팔딱팔딱한 활력을 제공합니다. 고로 한국사상사가 “개벽 전과 개벽 후로 양분된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부디 그렇게 정공법으로 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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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엇이 근대이고 어째서 개벽인가 꼬장꼬장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꼬치꼬치 따져야 할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지난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근대론과 개벽론이 서걱서걱 착종되어 있습니다. 근대는 무엇이고 왜 개벽인가 흐릿하고 희뿌옇습니다. ‘New’와 ‘Modern’은 다릅니다. 새로운, 이라는 형용사와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근대는 엄격하게 분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새 시대가 곧 근대는 아닙니다. 앙시앙 레짐에서 탈피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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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생과 자각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연신 끄덕거리다 말미에 갸우뚱 물음표가 돋았습니다. 저 또한 메이지유신 150주년(2018)을 기해 일본에서 나온 서적들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문명개화’, 그간의 개화사 150년과는 다른 결의 서사가 가능할지, 그 가능성을 탐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동북지방의 안도 쇼에키까지 거슬러 올라 개벽의 단서를 찾는 것은 쉬이 수긍하기 힘듭니다. ‘당시의 사무라이 지배층을 “성인의 이름을 빌려 무위도식하는 도둑놈들”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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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시 천하? 새해 첫날입니다. 동트기 전, 고요한 새벽입니다. 2019년을 선생님과의 서신으로 출발합니다. 두근두근, 한 해를 여는 신고식입니다. 심호흡을 깊이 하고 반듯하게 자리에 앉았습니다. 처음처럼, 새 마음을 새깁니다. 지금 이 순간의 초심을 6개월 내내 지속하고 싶습니다. 지난 연말을 돌아봅니다. 학술행사 참여 차 베이징에 다녀왔습니다. 마침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춤한 때였습니다. 천안문 광장의 국가박물관에서는 ‘위대한 변혁’을 주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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