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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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문명론과 도덕진화론

이제서야 <개벽파선언>을 제안하신 깊은 뜻을 알았습니다. 멀게는 1919년의 <기미독립선언>을, 가깝게는 1989년의 <한살림선언>을 잇는 세 번째 개벽파선언을 기획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나니 우리가 하는 작업의 의미도 한층 분명하게 이해되었습니다. 지난번 편지도 마치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처럼 익숙하게 다가왔고요.

먼저 “개벽파를 척사파와 개화파의 동렬로 간주하기 힘들다”는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척사파와 개화파는 문명과 야만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한쪽은 중국적 화이관을, 다른 한쪽은 서양적 화이관을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개벽파는 ‘세계주의’를 표방하면서 동서의 화이관을 벗어 버렸습니다. 『천도교의 정치이념』(모시는사람들)에서는 분명히 “세계를 한 집안으로 하는 세계주의”(107쪽)와 “세계공화”(111쪽)를 말하고 있고, 이는 원불교에서 주창하는 “인류는 한 가족, 세상을 한 일터”와 상통합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번에 소개해주신 홍대용의 “화이일야”(華夷一也)는 “실학 속의 개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개벽파는 서양의 강자 중심의 사회진화론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1920년에 나온 『개벽』 창간호에서는 “세계는 강약우열의 자가 서로 협동의 생활을 경영하나니 사회는 무수 무수의 관계상에 서로 신뢰하고 서로 보조하는 고로 강자도 약자도 빚질 바 있으며 우수한 자도 열등한 자에 의지할 바 있다.”(「세계를 알라」)고 하는 일종의 ‘강약협동론’을 말하고 있고, 원불교에서도 “강자는 자리이타로 약자를 진화시키며 약자는 강자를 선도자로 삼아, 강약이 서로 진화하는 길로 나아가야 상극없는 새 세상을 이룩한다”는 <강자약자 진화상 요법>(1916년)을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진화론은 이돈화의 개념을 빌리면 ‘수운주의 진화론’(『신인철학』)이라고 할 수 있고, 동아시아의 공공철학적 전통에서 보면 일종의 ‘공공진화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개념을 빌리면 ‘융평(隆平)’이나 ‘승평(昇平)’ 사상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분명 개벽파는 후쿠자와 유키치 식의 문명개화론이나 양계초식의 사회진화론과는 다른 도덕문명론(최시형)과 도덕진화론을 말한 셈입니다. 저는 바로 이 점이 척사파나 개화파보다는 사상적으로 훨씬 성숙한 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영성과 신성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문득 개벽문학가 신동엽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여기서 신동엽 시인이 말하는 하늘은 ‘개벽의 하늘’이었을 겁니다. 이 하늘이야말로 말씀하신대로 척사파와 개화파를 포함하고 회통하는 ‘더 큰 하늘’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 개벽의 하늘을 잊고 살아왔습니다. 그것을 신동엽 시인이 선각자처럼 지적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개벽문학을 개척하는 홍승진 박사

문학 얘기가 나와서 생각이 났는데, 지난 5월 31일에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 근현대 국문학을 연구하시는 홍승진(1988~) 박사님이 「이상화 시의 대종교 미학」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하셨습니다. 2017년에 「김소월과 인내천(人乃天)」이라는 논문을 쓰신 것이 인연이 되어 저희 연구원에 모시게 되었는데, 제가 생각하는 ‘개벽문학’을 개척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이상화 시에 나타난 ‘검신’ 개념과 ‘허무’ 사상이 대종교 사상과 상통한다는 내용이었는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이상화의 ‘한우님’이나 ‘한아님’을 ‘신성’으로 해석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개벽종교에 나오는 ‘하늘’ 관념을 ‘영성’의 차원에서만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성’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무릎을 쳤습니다. 유학의 영성과 동학의 신성의 차이가 또렷해졌기 때문입니다. 역시 영성이라는 말은 동학이나 대종교의 ‘하늘’ 관념을 설명하기에는 뭔가 허전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양에서도 ‘Confucian spirituality’라는 제목의 단행본이 있을 정도로 유학의 영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따라 나오게 됩니다.

유학의 영성과 동학의 영성의 차이는 무엇인가? 왜 최제우는 동학을 서학과 같은 계열의 ‘천도(天道)’라고 했을까? 영성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신성을 말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주자학적 합리성에 의해 소외되고 무시되었던 신성을 회복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그것을 서학(천주교)에서 보았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동학을 유도나 불도가 아닌 서학과 같은 천도(天道)라고 했던 것이 아닐까? 등등.

어쨌든 아직 30대 초반의 신진학자가 ‘개벽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는 사실은 저로서는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다음 세대이고 개벽문학으로는 처음 세대입니다.

 

원주의 개벽파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선생의 도반이야기도 감동적으로 잘 읽었습니다. 장일순 선생의 저작은 몇 번이고 읽어 봤는데 지학순 주교의 이야기는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었습니다. 특히 하늘학회와 같은 모임을 이미 반세기 전에 시작하고 계셨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두 도반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문득 또 다른 ‘도반’이 떠올랐습니다.

1941년생 동갑내기 김지하와 윤노빈입니다. 원주중학교-서울대학교 동창인데다 둘 다 장일순 선생과도 인연이 깊습니다. 서울대 재학 시절에는 방학 때마다 원주에 돌아가서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같이 읽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지학순-장일순의 다음 세대 도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시인이자 신부이신 최자웅 선생님은 두 사람의 깊은 인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김지하의 남조선 뱃노래

김지하는 그의 『남녘땅 뱃노래』를 비롯한 그의 수많은 담론집과 철학적 글들을 통하여 일찍이 그의 벗이자 스승의 하나였던 윤노빈의 동학의 화두를 깊게 천착하여 왔다. 그것은 동시대의 벗 윤노빈과 더불어 그의 온전한 스승인 청강 장일순의 동학에의 경도와도 깊은 정신적인 인연과 뿌리를 지니고 있음은 불문가지이다. 그것은 원주라는 청강 장일순과 김지하, 윤노빈의 인연의 고리이기도 하였으며, 그들보다도 오랜 세월 전에 위대한 수운의 제자와 그 사상의 담지자였던 최보따리 해월 (최시형)의 족적이 그들의 원주에 아주 크게 남아 있었(던 것과도) …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최자웅, 「<동학의 세계사상적 의미>에 대한 단상」, 윤노빈, 『신생철학』, 학민사, 2003, 23-4쪽)

이에 의하면 장일순-윤노빈-김지하 세 사람의 인연의 공간은 원주였고 사상적 원천은 동학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원주의 개벽파’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주기도문과 동학주문

윤노빈의 『신생철학』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서문에서 주기도문과 동학주문을 비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철학과 교수가 자신의 철학 저작에서 동학주문을 언급하고 있는 것만 해도 놀라운 사건인데, 그것을 그리스도교의 주기도문과 동급으로 비교한다는 것은 더더욱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기도문의 첫 머리를 “한울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을 동학/천도교에서 말하는 ‘하늘님’으로 바꿔 쓰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다산 정약용이 유학 안에 서학을 넣었듯이, 서학 안에 동학을 넣고 있는 것입니다. 그 바탕에는 ‘개벽신학자’인 탁사 최병헌(1858~1927)이 말한 “서양의 하늘이 곧 동양의 하늘이다”(《황성신문》 1903.12.22)는 회통사상이 깔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생철학 표지

그런 점에서 『신생철학』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개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와 철학의 경계를 허물고, 철학이라는 선입관을 깨트리고 있으며, ‘술’이 아닌 ‘작’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작’의 대표적인 예가 존재론 철학에 대한 생존론 철학입니다. 서양의 존재론은 만물을 ‘있는’(being) 존재로 보는데, 윤노빈은 동학의 “만물은 하늘님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 주문에 입각해서, 만물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고’, 그것도 하늘님처럼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 계신다’고 해야 맞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살아 계심’을 한자로 ‘생존’이라고 표현합니다. 해방 이후에 동학을 생명철학의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해석한 최초의 사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날 동학에 대한 학계의 이해는 유학이나 서학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동학을 전통 성리학의 연장이나 서구적 근대의 맹아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반세기 전의 윤노빈은 ‘틀’ 자체를 달리 보고 있는 것입니다. 서양철학을 상대화해서 그것과는 다른 동학철학의 틀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 점이 그를 개벽파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윤노빈의 『신생철학』(1974)은 실로 2세기 개벽학의 선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나이 불과 34세 때의 저작이었습니다.

 

3세계의 개벽운동

윤노빈의 철학적 유산은 정확히 10년 뒤에 김지하로 이어졌습니다. 1984년에 나온 「인간의 사회적 성화」, 「은적암 기행」, 「구릿골에서 – 강증산 사상의 창조적 재해석」, 그리고 「생명사상의 전개」(1985)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김지하는 ‘개벽’이라는 화두를 들고 나왔습니다. 윤노빈이 생존철학자를 자임했다면 김지하는 개벽사상가를 자처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동학을 동세개벽(動世開闢), 증산을 정세개벽(靖世開闢)으로 구분하고 있는 점이 그렇습니다. 철학자 윤노빈이 동학주문에 대한 편견이 없었듯이, 김지하에게는 강증산에 대한 선입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개벽파의 일원으로 다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지하의 개벽론에서 제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른바 제3세계의 민중운동을 동학과 같은 개벽운동으로 해석하고 있는 점이었습니다.

(‘생명의 세계관’에 기초한 협동적 생존의 확장 운동이) 전 세계적 차원에서 비교적 자각된 형태의 민중운동으로 나타나게 된 것은 서양 제국주의에 의한 전 지구적, 전 중생적인 보편적인 죽임, 즉 죽임의 보편화에 저항해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민중, 제3세계의 민중이 벌인 여러 가지 해방운동에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같은 운동은 오늘, 보편적 죽임, 죽임의 보편화가 절정에, 최악의 상태에 도달한 오늘 제3세계 민중운동을 통해서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 (죽임이 지배하는 역사) 밑에서도 민중이 근원적인 자기의 생명 주체에로 역동적, 창조적으로 돌아가려는 잠재적인 후천개벽의 운동의 물줄기가 … 일체 역사적 격동의 실질적인 배력(背力)으로 작용하면서도 완전히 드러나지 않고 잠복해 왔었습니다. (「인간의 사회적 성화」, 1984, 136-8쪽)

여기에서 김지하는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일어난 제3세계의 민중운동을 생명회복운동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후천개벽운동이라고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마치 1965년에 장일순이 출소하자마자 김지하를 만나서 “지금 베트남에서는 불교와 호치민 세력이 연대하고 있네. 남미에서도 가톨릭이 혁명세력과 함께 전선에 선 데도 있어. 카밀로 토레스 신부가 그 예야. 이것은 아마도 새시대의 새로운 조류라고 생각해.”라고 말한 것을 연상시킵니다. 둘 다 모두 제3세계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다만 장일순이 종교적 영성운동에 주목하고 있다면, 김지하는 계급적 해방운동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김지하도 그것을 동학과 같은 생명운동으로 보고 있는 이상은 ‘정치적 영성’ 같은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개벽을 한국 안에서 끄집어내어 세계사적인 문맥에 자리매김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윤노빈이 시도한 「동학의 세계사적인 의미」는 실로 김지하에게서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엇이 한살림인가?

김지하는 장일순과 더불어 「한살림선언문」(1989)을 기초한 장본인 중의 한사람입니다. 만약에 윤노빈이 북한으로 가지 않았다면 그도 이 그룹에 동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장일순도 세상을 떠나고 윤노빈도 이 땅에 없습니다. 김지하는 은퇴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한살림 설립자인 인농 박재일도 10여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살림 1세대가 가고 다음 세대가 바톤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2세대 한살림이 흔들리고 있다고 합니다. 70만 회원이나 되는데 자신이 없어 보입니다. 왜일까요?

한살림 선언문 표지

제가 생각하기에는 한살림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살림은 결코 성장이 아닌데 성장에 연연하고 있습니다.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고 있습니다. 개벽파가 개화파 흉내를 내려 합니다. 게다가 “가장 큰 살림”이라는 ‘한살림’을 표방하면서 정작 농업과 밥상 살림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명실이 상부하지 않는 느낌입니다. 교육살림, 청년살림, 지역살림, 철학살림, 과학살림 등등, 이 땅에서 살려할 것들이 너무도 많은데 30년 전의 살림만 고집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꼭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1세대의 창작을 이어받아 ‘다시 창작’을 하지 않고 조술(祖述)만 반복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적하신대로 ‘다시 읽기’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것은 저 같은 연구자들이 논문쓰기 위해서 하는 작업으로 족합니다. 적어도 2세기 한살림운동이 되려면 「한살림선언문」 ‘다시 쓰기’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살림의 초기 멤버는 동학의 다시 읽기로 「한살림선언문」을 창작했습니다. 이제는 개벽의 다시 읽기로 「한살림선언문」 2.0을 창작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음살림 또한 굳이 한살림이 아니더라도 가능합니다. 명상센터나 템플스테이 같은 곳에 가서도 할 수 있습니다. 한살림은 한살림다운 방법과 철학과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30년 전의 한살림이 한국사회의 개벽이었다면, 이제는 한살림 자신이 다시 개벽되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학문의 빈곤

저는 이 모든 현상이 학문을 경시한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하면 실천만 강조하고 이론을 소홀히 한 탓입니다. 사회운동을 한다는 분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개벽학의 창시자들은 당대 최고의 유학자들이었습니다. 수운 최제우, 증산 강일순, 홍암 나철, 정산 송규 등등 하나같이 주자학의 틀을 완전히 마스터한 대 학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개벽이 하나의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에 의하면, 일본의 신종교와의 차이라고 합니다.

한살림 초기 멤버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윤노빈을 이은 김지하는 개벽사상에, 김지하가 스승으로 삼은 장일순은 해월사상에, 「한살림선언문」을 대표 집필한 최혜성은 신과학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있는 학자들을 원주로 모셔다가 주제별로 하루 종일 세미나를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무섭게 공부를 한 적공(積功)이 있었기에 「한살림선언문」이 나올 수 있었고, 단기간에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다음 세대로 이어지면서 이런 학문적 응집력, 이론적 집요함이 약화되고 분산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개벽세대를 기르자

이런 모습은 비단 한살림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는 한국학 전반이 정체되어 있습니다. 원불교학만 해도 당장 류병덕을 이을만한 다음 세대 학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세대가 내려갈수록 장일순, 윤노빈, 류병덕 등이 보여준 도전정신, 모험정신, 작가정신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이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음 세대를 기르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바로 이 점이 제가 개벽학당에 기대를 거는 이유입니다.

훌라를 추는 개벽학당 벽청들

우리는 철저하게 개화세대로 자랐습니다. 영어 수학, 플라톤 칸트를 모르면 행세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이제는 개벽세대를 길러야 할 때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관점으로 한국과 세계를 볼 수 있는 그런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세대를 길러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청년세대를 기르는 일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습니다. 《개벽신문》에 〈청년철학〉 코너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모시는사람들의 박길수 대표님께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은 《개벽세대》 같은 저널을 만들자고 제안 했습니다. 청년들이 편집위원이 되고 기획자가 되어서 자기들의 고민과 비전을 서로 공유하고 사회에 발신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라난 개벽세대들이 30여년 뒤에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된다면 대한민국의 모습도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마치 30여년 전에 대한민국이 크게 뒤흔들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조성환

『한국 근대의 탄생』을 썼고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번역하였다. 지금은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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