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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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크림반도

1) 아조프해에서 벌어진 함정 나포 사건

흑해와 아조프해 / 구글지도

지난 3월 18일은 크림반도가 러시아로 병합된지 5년째 되는 날이었다.

2014년 3월 유로마이단 봉기로 들어선 우크라이나 신정부가 친서방 정책을 펴자 크림자치공화국은 독립을 선언하고 주민투표를 실시해 96.77%의 찬성으로 러시아로의 귀속을 결정했다. 크림병합 5주년을 맞은 날 푸틴 대통령은 주도인 심페로폴을 찾아 지난해 크림에 건설된 2개 화력 발전소의 확장 가동식에 참석했다. 11억 달러(1조 2천442억원)의 건설비용이 투입된 2개 발전소는 크림반도 전력 수요의 90%를 담당하게 되는데, 이로써 크림반도의 전력난은 완전히 해소됐다. 2015년 말 우크라이나가 전력 공급을 중단한 뒤 크림반도는 러시아 본토에서 해저 케이블로 공급하는 전력에 의존하면서 만성적인 전력난을 겪어왔다.

크림반도와 크리미안 다리

이에앞서 2018년 5월엔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연결하는 길이 19km의 ‘크림대교(크리미안 다리)’가 완성됐다. 크림대교는 흑해와 아조프해를 연결하는 ‘케르치 해협’에 놓여진 다리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크림반도로 사면이 둘러싸인 아조프해는 평균 수심이 채 10미터가 되지 않는 내만(內灣)으로 면적은 우리 경상도보다 약간 큰 정도다. 또 길이 41km, 너비 4~15km의 케르치 해협은, 우크라이나 해상 통로인 아조프해에서 흑해로 나가는 유일한 출입구 역할을 하고 있다. 케르치 해협은 지난 2003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아조프 협정(아조프해와 케르치 해협 이용 협력에 관한 조약)’을 통해 양국이 동등한 권리를 행사하는 공유 영해로 지정한 해역이다.

크림대교 / 구글지도

발전소나 교량 건설 모두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영유권을 더욱 공고히 하는 상징적인 조치들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크림대교가 건설된 뒤 우크라이나 선박에 대한 검문.검색이 늘어 아조프해 지역 무역량이 30%나 감소했다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병합됨으로써 흑해 연해에 있던 서부 해안과 동부 해안이 완전히 분리되고 말았다. 서부 해안에 있는 오데사 항구에서 동부 해안의 마리우폴 항구로 가려면 반드시 케르치 해협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긴장이 심화돼온 것이다. 결국 양측간 갈등이 폭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조프해와 케르치 해협 / 구글지도

2018년 11월 25일. 흑해에서 아조프해로 가기 위해 케르치 해협을 통과하려던 우크라이나 해군 함정 3척이 러시아 해안경비대에 나포돼 케르치 항구로 끌려가 억류됐다. 선원 23명도 함께 억류됐는데 이 과정에서 6명이 다쳤다.

우크라이나 함정들이 러시아 해안경비대의 호출에 전혀 응하지 않고 러시아 해안에서 12마일(20km) 떨어진 영해로 진입했기 때문에 해안경비대의 대처가 정당했다고 러시아 정부는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함정들이 진입한 영해는 크림이 러시아에 귀속되기 전에도 러시아에 속했던 해역임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우크라이나 해군은 러시아 해안 초소들과 해협 항만들에게 자국 함정들의 해협 통과 계획을 사전에 통보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러시아 법원은 우크라이나 승조원들에 대해 2개월의 구속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해상전력을 아조프해로 급파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서방국가들은 아조프해에서의 우크라이나 선박의 항행 자유 보장을 촉구했다. 또 EU이사회가 러시아인 8명에게 제재를 부과하고, 미국 해군의 대형 상륙함이 흑해로 진입하는 등 긴장이 점차 고조됐다.

이번 사건의 배경을 놓고 여러 분석들이 많은데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다.

우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이번 사건을 대선에 이용하려 과잉대응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때나 2015년 동부지역 분리주의 세력과의 충돌 때도 계엄령이 없었는데 굳이 이번에 계엄령을 발동한 것은 지지율 8%에 불과한 포로셴코 대통령이 외부의 적을 앞세운 민족주의 마케팅으로 대선을 돌파해 보겠다는 책략이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도 곧바로 푸틴이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이번 사건을 기획했다고 받아쳤다. 최근 연금 개혁 논란 등으로 푸틴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 지난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당시 푸틴의 지지율이 30%에서 80%로 급등했던 점을 들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흥미로운 분석은, 아조프해 마리우폴 항구 옆 베르단스크에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나토의 지원을 받아 해군 기지를 건설 중인데 이번 사건은 이 계획을 방해하는 효과도 가진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은 아니지만, 베르단스크 해군기지가 완공되면 유사시 나토 해군이 이곳을 거점으로 흑해에서 군사활동을 펼칠 가능성도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결국 이는 흑해 지역에서 나토를 몰아내기 위한 러시아의 장기 전략의 하나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바야흐로 흑해 연안, 크림반도 주변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서방간의 갈등은 2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하겠다.

 

2) 흑해함대에서 지중해 함대까지

크림반도는 지정학적 위치 탓인지 유난히 전쟁의 고초를 많이 겪은 지역이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1299~1922; 1923년 터키 공화국으로 발전)이 1453년 비잔틴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을 함락한 뒤 이슬람 세력인 투르크 제국이 지중해와 흑해를 장악하자 군사·경제적으로 가장 위축된 나라가 러시아였다. 18세기 들어 투르크 제국의 위세가 하락하기 시작하고, 표트르 대제(1672~1725)가 러시아 해군을 강화해 부동항을 찾아 흑해로 남하 정책을 본격화하면서 20세기까지 300년 동안 러시아와 투르크 제국은 13번에 걸쳐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다.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항구

이 가운데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쟁이 2번 있었으니 그 첫 번째는 예카테리나 여제(1762~1796) 치하였다. 예카테리나 여제는 총애하던 그리고리 포툠킨 장군을 시켜 1783년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에 최초로 흑해함대를 창설했고 1790년 케르치 해협 전투에서 오스만 투르크 해군을 격파해 크림반도와 흑해를 지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스탄불과 지중해로 나가는 보스포루스 해협 통과권은 얻지 못하자 이를 위해 1853년 크림전쟁(1853~1856)을 일으키니 이것이 두 번째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투르크 제국이 영국과 프랑스를 끌어들였고 러시아는 투르크-영국-프랑스 연합군의 공격에 밀려 3년 만에 굴복하고 만다. 크림전쟁 때 서해안의 세바스토폴이 공방전의 중심이 되었다. 이후 지중해와 흑해 지역의 국제정세는 쇠락하던 투르크가 서유럽 국가들과 손을 잡고 러시아의 팽창을 막는 형태로 전개됐다. 2차대전 말기인 1941~1942년에는 이곳에서 250일간 소련군과 독일군이 격돌하기도 했다. 1944년 스탈린은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크림에 거주하던 타타르족 20여 만 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다. 1954년에는 흐루쇼프 소련 서기장이 우크라이나에 크림반도를 양도했고 1991년 소련연방이 해체되자 우크라이나에 남아 자치 공화국이 됐다. 또 2차대전 이후에는 1952년 터키가 나토에 가입하면서 러시아의 남하를 억제하기 위한 터키와 나토의 협력시대가 열렸다. 소련 붕괴 이후 2000년대에는 지중해 연안과 걸프 지역 전체가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고 나토가 동유럽과 발칸 반도, 우크라이나로까지 확대되면서 러시아의 입지가 매우 좁아지게 됐다. 특히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 항구가 우크라이나로 넘어가면서 러시아의 흑해함대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됐다. 한마디로 냉전과 탈냉전 시기 지중해는 ‘나토의 호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푸틴 시대에 들어 상황이 급반전됐다. 2011년 아랍혁명으로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입지가 약화됐고, 중국의 부상을 억지하기 위해 미국 해군 자산의 60%가 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하자 러시아는 지중해와 흑해를 ‘러시아의 호수’로 만들기 위한 행동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고유가 시기에 국방비를 대폭 늘리고 대대적인 군 현대화를 통해 해군력을 정비한 푸틴 대통령은 2013년 ‘지중해 함대’를 창설했고, 그 이듬해 크림반도를 병합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2015년에는 지중해 함대를 앞세워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국제무대에서 러시아의 입지를 한층 키워나가고 있다.

 

3) 크림반도 초유의 정전사태

필자가 크림반도를 처음 방문한 때는 2015년 11월 24일. 이틀 전 크림반도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사태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우크라이나와 크림반도 국경 근처에서 폭발이 일어나 크림반도로 들어오는 송전선 4개가 파괴됐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크림 병합에 반대하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의 소행인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 전체 220만 명의 크림반도 인구 중에 160만 이 넘는 주민들이 전기 공급을 받지 못하는, 초유의 정전 사태를 맞았다.

심페로폴 공항(위) / 암흑 속 심페로폴 도심(아래)

11월 24일. 크림의 수도 심페로폴 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항 청사에는 불이 환했다. 공항과 병원 등 국가기관 시설들은 자체 발전시설을 가동해 전기 사용에는 별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심페로폴 중심가로 접어들자 정전 사태가 실감 났다. 중심가 주택가에는 가로등도 꺼져 깊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집집마다 양초를 켜서 밤을 밝히고 있었다. 시내 대형 쇼핑센터는 건물 안에만 전기가 들어오고, 거대한 주차장 등 외부는 어둠 속에 묻혀 있어서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식당들도 띄엄띄엄 영업을 하기 때문에, 문을 열었는지 일일이 안에 들어가서 확인을 해봐야 했다. 저녁 8시가 넘어가면 대부분 상가가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그나마 대도시는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도시 외곽으로 나가면 상황은 더 나빴다. 외곽 마을은 해가 지면 그야말로 암흑 속에 빠져들어 귀신이라도 나올 판이었다.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의 전조등이 어둠을 비출 뿐이었다.

아침 출근길도 예사롭지 않은 게,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직장이냐 아니냐에 따라 시차 근무가 적용됐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11월 30일까지 휴교령이 내려졌다. 전기를 쓰는 트롤리 버스의 운행이 중단되는 바람에, 대체 수단으로 투입된 마을버스마다 초만원을 이뤘다. 낮에도 전기가 없으면 불편한 점이 많다. 음식을 조리할 수도 없고, 전화도 안 되고 이동전화도 제약이 많았다.

발전기를 싣고 온 러시아 특별기

크림반도의 대규모 정전사태에 대응해 러시아 정부는 비상용 발전기 600대를 특별기편으로 실어 날랐다. 긴급 투입된 발전기는 병원과 이동통신 기지국, 오지 마을 등에 우선 공급됐다. 당시 크림 정부는, 자체 발전 시설을 최대한 가동해도 전체 전력 수요량의 40% 정도만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연료였다. 식량과 연료는 크림반도 동쪽 끝, 러시아 남부와 마주 보고 있는 케르치 항구를 통해 반입됐다.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 본토와는 2개의 다리로 연결돼 있고 철로도 지나가지만, 러시아 본토와는 다리로 연결돼 있지 않아, 페리(ferry)가 오가고 있었다. 케르치 항구와 러시아 본토 사이 5.5km 바닷길을 6척의 대형 페리가 하루 36번 왕복했다. 페리 한 척의 하역 용량이 600톤 정도로, 대형 트럭 20대나 1,200명의 승객을 실을 수 있었다. 열차 전용 페리도 3척이나 되는데, 12량짜리 유조 열차가 전부 페리에 실리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식량과 연료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러시아로 이어지는 해저 송전선

가장 고무적인 것은 러시아 남부에서 크림반도로 이어지는 해저 송전선 공사였다. 당초 1단계 공사가 2015년 12월 22일 완료될 예정이었는데, 러시아 측은 안전 규정을 지키면서도 24시간 공사를 강행해, 드디어 12월 3일 새벽 1단계 공사를 완료했다. 1단계 송전선으로 200MW 전력이 추가로 공급됐다. 무려 20일을 앞당긴 셈이다.

그동안 크림반도는 전력 수요의 80%를 우크라이나에 의존했다. 2014년 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부 간에, 우크라이나가 1년 동안 크림에 전력을 공급해주기로 협정을 체결했었다. 우크라이나가 공급하는 전력은 4개 송전선으로 800MW 정도였다. 크림반도의 전체 전력 수요는 1,000~1,200MW 정도이다.

취재 중에 의외라고 느낀 점은, 초유의 정전 사태를 당한 크림 사람들이 놀라거나 분노하거나 흥분하지 않고 대체로 차분하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세바스토폴에서 만난 세르게이 리스냔스키는 직업군인 출신으로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크림 사람들은 이런 일로 좌절하지 않는다. 보시라. 저녁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사람들은 기타를 들고 밖으로 나가서 노래하고 춤을 춘다. 노인들은 아코디언에 맞춰 춤춘다. 이들은 서로 소통하며 즐거워한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렇게 만들어 줬다.”

심페로폴에서 만난 영어 교사 타티아나 스코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크림 사람들은 파리 테러와 다른 도시들에서 벌어진 테러를 지켜봤죠. 적어도 이 땅엔 전쟁이 없다는 사실에 다들 감사하죠. 바로 그거에요. 정전 사태 같은 거, 우리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어요.”

정전 사태 정도로는 지난 세기 수많은 전쟁의 시련을 잘 극복해낸 크림 사람들의 정신력을 꺾을 수 없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4) 크림대교의 정치경제학

크림 대교

2018년 5월 15일 마침내 케르치 해협을 가로지르는 크림대교가 완성됐다.

푸틴 대통령은 다리 개통식에 참석한 뒤 청바지에 검정 점퍼를 입고 오렌지색 러시아제 대형트럭 ‘카마스’를 직접 몰고 다리를 건넜다. 운전대를 잡은 채 옆자리에 탄 건설노동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푸틴의 모습이 트럭 안에 설치된 카메라로 러시아 전역에 생중계됐다.

크림대교 C.G.

2016년 7월 필자가 두 번째로 크림반도를 방문했을 때는 바로 이 크림대교 건설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크림대교는, 크림반도의 동쪽끝 케르치에서 시작해 케르치 해협에 있는 작은 섬 ‘뚜줄라’를 거쳐 러시아 땅끝 마을 ‘타만’에 이르기까지 총 길이 19km의 교량이다.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 대교’(17.3km)를 제치고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가 됐다. 사실 케르치에서 ‘타만’ 위쪽에 있는 ‘추슈카’ 반도로 곧장 다리를 놓으면 불과 5.5km 밖에 안되는데 굳이 돌아가는 것이다. 거기에는 3가지 이유가 있었다.

ⓐ ‘추슈카’ 지역 해저에는 움직이는 ‘이화산(泥火山:mud volcano)’이 많아서 지질학적으로 볼 때, 공사를 진행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었다.

ⓑ 당시 케르치~추슈카 사이 5.5km 바닷길을 6척의 대형 페리가 하루 36번 왕복하면서 승객은 물론, 대형 트럭과 유조 열차 등 식량과 연료, 생필품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교량 공사를 하려면 당연히 페리 운항을 중지해야 하는데, 생필품 운송 문제 때문에 운항 중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 케르치쪽과 타만 지역에 있는 기존의 도로.철도와 연결시키는 것도 케르치~추슈카 노선은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상의 이유들 때문에 결국 케르치~타만 노선이 선택됐지만, 여기도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어 공사에 지장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케르치~뚜줄라 사이 구간에는 페리가 다닐 수 있도록, 높이 45미터, 길이 227미터의 아치형 다리를 놓았다.

파일 박는 작업

공사 현장에 들어가보니 여기저기서 파일을 박는 소리가 요란했다. 높이 82미터의 크레인이 24미터 짜리 강철 파일을 바다밑에 박는 것이다. 케르치 해협의 해저에 있는 진흙뻘은 곳에 따라 깊이가 다른데, 가장 깊은 곳은 94미터에 달한다. 교각을 단단히 고정시키기 위해서, 5500개가 넘는 강철 파일을 바다 밑에 박는 것이었다.

크림대교는 왕복 4차선의 자동차 전용다리와 2차선의 열차 전용다리 등 2개의 다리가 놓이는데, 자동차 다리는 2018년 12월, 열차 다리는 2019년을 완공 목표로 잡았었다. 다리가 완공되면 평균 시속 120km로 하루 평균 4만대의 자동차와 47량의 열차가 운행할 것으로 예측했다. 총 공사비용은 35억 달러, 우리돈 4조원 가량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서방의 경제제재와 유가 하락 등으로 러시아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어서, 과연 완공 목표 시한인 2018년 12월까지 공사가 끝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들이 많았었다. 그런데 오히려 당초 목표보다 7개월을 앞당겨 공사를 끝낸 것이다.

건설중인 크림대교

당초 ‘크림대교’를 짓겠다는 구상은 2014년 2월에 나왔고, 2015년 2월에 최종 계약이 체결됐다고 한다. 그런데,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다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케르치 해협 위로 다리를 놓겠다는 구상이 최초로 제기된 것은, 영국이 해협을 거쳐 인도까지 전화선을 깔던 1870년이었다. 당시에는 공사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싸게 나왔다. 이후, 니콜라스 2세 황제 때 다시 다리 건설 구상을 검토 했지만, 이번에는 세계 1차대전이 발발하면서 무산됐다.

최초로 실제 다리 건설을 시도했던 것은 1940년대 독일 나찌(Nazi)였다. 독일군이 크림을 점령한 뒤 히틀러는 심복인 건축가 알버트 스피어를 시켜 다리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련군이 반격을 해오자 독일군은 건설중이던 다리를 파괴하고 퇴각했는데, 소련군은 남아있던 부분으로 공사를 계속해 마침내 1944년 다리를 완성했다. 당시는 기차가 다니는 다리였는데, 2차대전 종전 후 세계질서를 논의했던 1945년 2월 얄타 3상회담에 참석했던 스탈린이 이 다리를 통해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 다리의 지지대가 나무로 만들어졌던 까닭에 스탈린이 떠나고 불과 일주일 뒤에 겨울 폭풍을 타고 흘러온 유빙(流氷)이 다리를 훑고 지나가면서 심각하게 훼손됐고, 당시 소련 당국은 다리를 보수하기 보다는 해체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얄타 3상회의

크림반도의 남쪽, 특히 얄타 주변지역은 뒤로는 1500미터가 넘는 산이 있고 앞에는 흑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힐링(Healing)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힐링과 관광.레저가 크림반도의 주력산업이다. 물론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크림 당국은 다리가 완공되면 일년에 천만 명의 관광객들이 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할말 제대로 하는 Moscow Times 특집기사를 읽어보니 재미있는 구절이 나왔다. 수송.도로건설 전문가인 미하일 블링킨이 말하기를 “크림에는 그런 큰 다리가 필요하지 않다. 만약 크림에 어떤 채굴 산업이 있어서, 예를들어 석탄을 운송해야 한다면 이런 다리가 필수적일 것이다. 그런데, 크림은 관광지역이다. 고로 이 프로젝트는 순전히 정치적인 것이다. – 바로 영토 확정짓기가 목표인 것이다.(It aims to mark the territory)”

글쎄 이게 답이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국제문제 전문 저널리스트인 팀 마셜이 지은 ‘지리의 힘’이란 책을 보니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욕망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따뜻한 물이 흐르는 해상 교통로를 여는 숙원은 2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러시아가 완전히 이루지 못한, 그래서 여전히 버릴 수 없는 열망이다.”

 

5) 흑해함대가 힘을 받는 이유

세바스토폴 지도

2016년 7월 크림대교 건설현장에 이어 필자는 흑해함대를 방문했다. 크림반도의 서쪽 끝에 위치한 부동항 세바스토폴은 흑해함대의 모항이다. 남중국해, 한반도 사드 문제로 미-중 간에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면, 유럽에서는 나토(NATO)와 러시아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세바스토폴 항구에서 작은 함정을 타고 시원한 바닷길을 조금 달리니 정박중인 군함들이 보이고, 그 중 가장 크고 최신형 군함에 올라탔다. 한달 전 흑해함대에 배치된 최신예 호위함 ‘아드미랄 그리고로비치’였다.

호위함 ‘아드미랄 그리고로비치‘

‘그리고로비치’함은 흑해함대 전력증강 사업으로 추진해 온 ‘11356 계획’에 따라 건조하기로 한 6척 가운데 첫 번째 호위함이다. 2016년 3월 해군에 인도된 뒤 시험운항을 마치고 흑해함대에 배치됐다. 앞으로 5척이 더 흑해함대에 배치될 예정이다.

이 호위함은 길이 124.8m, 배수량 4,035톤, 항속거리 4,850 해상 마일(8,700km)에 7만 마력의 엔진으로 시간당 60km를 항해할 수 있다. 흑해함대 처음으로 원양작전 능력을 갖춘 수상함이라고 한다. 또 대함, 대잠, 대지, 대공 작전 능력을 갖춘 다목적 함정이다. 호위함의 무장 능력은 아래와 같다.

이 가운데 가장 위력적인 무기는, ‘Club-N 함대지·함대함 순항 미사일’이 아닌가 싶다. Club-N 미사일은 시리아 내전에서 이름을 날린 ‘SS-N-30 A(칼리브르)’ 장거리 순항미사일의 수출용 버전(Export variants)으로 알려졌다. ‘칼리브르 장거리 순항미사일’은 2015년 10월 러시아 해군이 카스피해에서 1,448km 정도 떨어진 시리아 내 IS 목표물을 타격하는 데 처음 사용하면서 관심을 끌었다. 호위함의 벨리치코 함장은 “무엇보다 Club-N은 주변 건물이나 민간인의 피해 없이 정교하게 목표물만 타격하는 정확도가 자랑이다.”라고 설명했다.

잠수함

흑해함대에는 최근 개량형 킬로급(636형) 디젤 잠수함 4척이 배치됐다. 이 잠수함은 수중 배수량이 4천 톤으로 최고 400m 해저에서 20노트(37km)의 속도로 45일 동안 작전할 수 있다. 스텔스 기능이 뛰어나 탐지가 어려워서 ‘대양의 블랙홀’ 이란 별명이 붙었다. 6개의 어뢰발사관을 통해 초진공 어뢰인 ‘VA-111 쉬크발’이나 항모킬러인 ‘SS-N-27 시즐러’ 대함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흑해함대에는 같은 잠수함 2척이 더 배치될 예정이다.

1000톤급 소형 미사일함

호위함 ‘그리고로비치’ 주위로 군함 10여 척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그중에 눈에 띄는 함정이 ‘젤룐느이 돌’이다. 1,000t급 소형 미사일함으로 장거리 순항 미사일 ‘칼리브르’를 탑재한 함정이다. 이것과 같은 타입의 카스피해 전단 함정들이 2015년 10월 카스피해에서 시리아 내 IS 목표물을 향해 ‘칼리브르’를 발사했다.

1783년 5월 제정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가 창설한 흑해함대는 태평양 함대, 발트 함대, 북해 함대와 함께 러시아 해군의 4대 함대 중 하나다.

러시아 남부 국경선의 중요한 방어망이자, 러시아가 흑해와 지중해로 힘을 투사하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전략적 요충지를 지키는 역할을 해왔다. 또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 외해로 나가는 러시아 유조선단의 기항지이자 러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가스공급로인 “사우스 스트림(South Stream)’ 보호 임무도 수행하고 있다.

흑해함대에는 미사일 순양함, 미사일 구축함, 호위함, 대형 상륙함, 유도탄함, 잠수함 등 50여 척 이상의 함정들이 배치돼 있다. 대부분 함정의 선령이 30년 가량 됐는데 최근 들어 최신예 함정들로 교체되고 있다. 2020년까지 전력증강 사업에 따라 15척 이상의 최신 함정들이 흑해함대에 배속될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상 끊임없이 부동항을 찾아 나선 러시아로서는 흑해에서 지중해를 거쳐 대양으로 진출하는데 사활적 이익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는 2013년 5월부터 “지중해에 러시아의 국익이 있다”는 기치 아래 ‘지중해 상주 기동전대’를 운용하고 있다. 이는 지중해 상에 항상 러시아 함정이 떠 있으면서 러시아의 국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하고 시리아 내전이 격화되면서 이 작전개념은 미래를 너무나 잘 꿰뚫어 본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북해, 발틱, 블라디보스토크 함대에서 차출된 함정들이 7~8척 지중해에 돌아가며 상주하고 있는데, 앞으로 상주 기동전단을 20척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러시아 해군은 가장 가까운 흑해함대에 최신 함정·잠수함을 우선 배치하려는 계획을 잡고 있다.

주변국 움직임도 주목된다. 크림반도를 병합한 러시아에 대항해 흑해에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분함대를 구축하려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나토판 흑해 함대’ 창설 구상은 2016년 1월 흑해 연안 국가인 루마니아가 제안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후에 위협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이 구상에 터키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나토의 흑해 분함대에는 이들 국가 외에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이 참여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러시아 흑해함대

흑해지역은 지금 러시아와 나토간에 군비 경쟁이 치열한 곳으로 변해버렸다. 4월 3일 나토 창설 70주년을 맞아 나토 29개 회원국은 흑해 지역에 군비를 강화하면서 러시아의 남진을 견제하고 있다. 나토는 지난 4월 5일부터 13일까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등과 함께 흑해에서 합동 군사훈련인 ‘해상방패(Sea Shield)- 2019’를 실시했다. 여기에는 미국 등 나토 회원국 군함과 전투기,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해군이 참여했는데, 나토측은 이번 훈련이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지원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특히 우크라이나 함정들이 케르치 해협을 안전하게 통항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가하면 러시아는, 흑해함대에 신형 호위함과 S-400 지대공 미사일을 배치하는 한편 루마니아에 배치된 미국의 MD(미사일 방어망)를 빌미로 투폴레프 Tu-22M3 전략 폭격기를 배치했다. 또 인근 지역에 신형 미사일 SSC-8(러시아명 9M279 노바토르 순항 미사일)을 개발, 배치했는데 나토는 이 미사일의 사거리가 2천~5천km로 중거리핵무기폐기 협약(INF: 1987년 체결, 사거리 500~5500㎞의 탄도미사일 배치 금지)을 위반한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앞으로 관건은 흑해에서 지중해로 나가는 출구를 관리하는 터키의 태도이다. 터키는 그동안 서방과 함께 러시아의 남진을 막는데 일조했었지만 최근엔 시리아 내전 관리에 러시아와 보조를 맞추는 등 대러 관계를 돈독히 하는가 하면, 러시아제 S-400 방공미사일을 구입을 추진하면서 오랜 맹방인 미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5) 제2의 크림반도 ‘돈바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은 지금도 내전중이다. 2014년 5월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지역(두 지역을 합해 ‘돈바스’라고 한다.)이 독립을 선언한 뒤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다. 2015년 2월 ‘민스크 합의’라는 평화협정을 맺어 휴전에 들어갔지만 아직도 분쟁이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돈바스에는 우크라이나 석탄 광산의 70%가 몰려 있다. 뿐만 아니라, 철강·중화학 공업 단지가 조성돼 있어서 ‘우크라이나의 심장’이라고 불린다. 돈바스의 면적은 우크라이나 전체의 5%지만, 우크라이나 국내 총생산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로선 핵심 이익이 걸려 있고, 그만큼 교전이 치열했던 것이다. 당장 우크라이나 화력발전소들이 석탄 수급에 애로를 겪고 있고, 이 때문에 전력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도네츠크인민공화국 국기

필자는 2015년 11월 자동차로 러시아~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 동부 내전 현장을 취재했다. 국경을 넘어 도네츠크인민공화국으로 들어서자 도로 상태부터 좋지 않았다. 곳곳이 움푹 패어 있고 울퉁불퉁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내전의 후유증이었다. 도로 주변엔 포격을 당해 폐허가 된 집들이 곳곳에 있었다. 건물 외벽이나 담벼락, 대문 등에 기관총탄 자국들이 흉측하게 남아 있었고, 희생자가 생긴 곳에는 조화가 걸려 있었다.

석탄 광산으로 유명한 도네츠크답게 도시 입구에 광부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도시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평온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겉보기에 그랬다. 곳곳에 내전의 상처들이 남아 있었다. 포격을 당해 처참하게 무너진 박물관. 대학교 실험실 지붕 위에도 포탄이 떨어져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도네츠크 국립기술대학교는 포탄의 잔해를 박물관에 전시해 놓고, 그날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도시 곳곳에 총탄 자국과 포탄 맞은 건물들이 즐비했다.

아직 복구는 엄두도 못 내는 형편이었다. 제일 심각한 곳은 도네츠크 공항으로 가는 길목인 키예프스크 지역이었다. 이곳에는 2015년 8월까지 민가에 포탄이 떨어졌다고 했다. 두려움에 떨던 주민들이 피난을 떠나서 마을 전체가 유령 마을로 변했다. 도네츠크 중심가에서 우크라이나 국경까지는 불과 15~20km 거리이다.(이 대목에서, 수도 서울이 DMZ로부터 40km 거리여서 북한의 장사정포 사거리에 들어가 있는 한국의 현실이 새삼 떠올라서 가슴이 찡했다.) 공항으로 가는 푸틸로프스키 다리 앞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고,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다. 푸틸로프스키 다리는 포격으로 주저앉아 복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는 대낮에도 총성이 들렸다.

도네츠크 공항

도네츠크 공항을 가기 위해서는 민병대의 특별한 허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민병대원이 가이드로 따라 나섰다. 우회도로를 통해 찾아간 공항은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포격을 맞은 공항 터미널은 초토화돼 건물 잔해만 남아 있었다. 옆에 있는 호텔 건물은 포격으로 무너져 내렸고, 무수히 많은 총탄 자국이 보는 이의 가슴을 애잔하게 만들었다. 길바닥엔 박격포탄이 그대로 박혀 있고, 기관총탄 탄피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여기서 맞은편 우크라이나 정부군 진지까지는 불과 1km 남짓..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수시로 총을 쏘고 심지어는 탱크 포탄을 발사하기도 한다고 했다.

도네츠크인민공화국 민병대는 이에 일체 대응을 못 하도록 명령을 받았다고 했다. 휴전 협정을 맺었는데 왜 아직도 총격을 가하는 걸까? 이에 대해 인터넷 매체인 ‘돈 아이(Don i)’의 미카엘 포포프 기자는 “우크라이나는 우리를 자극해서 대응사격을 유도하려는 거다. 그래서 도네츠크가 민스크 합의를 위반했다고 비난하려는 의도이다.”라고 말했다.

2014년 2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는 유럽으로의 통합을 지지하는 이른바 ‘유로 마이단’ 봉기가 일어나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그러자, 친서방 움직임에 반감을 갖고 있던 크림반도가 3월 주민투표로 러시아로 귀속을 결정했고, 러시아는 이를 즉시 받아들였다. 이어 5월에는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등 이른바 ‘돈바스’ 지역이 독립을 선포했고,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분리주의 반군 사이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2015년 2월 12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독일, 프랑스 4개 나라 정상들이 17시간에 걸친 밤샘 협상을 통해 ‘민스크 합의’를 이끌어 냄에 따라 양측이 전면 휴전에 들어갔는데도, 총격과 포격이 계속되는 것이었다.

돈바스 지역은 무엇 때문에 독립을 결정했던 것일까? 데니스 푸쉴린 도네츠크인민공화국 인민 의회 의장은 크게 3가지를 이야기했다.

첫째는, 돈바스 지역 주민들의 75%가 러시아어를 쓰는데도 우크라이나 정부가 우크라이나어를 쓰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2차대전 당시 나치에 협력해 주민들을 핍박하던 부역자들이 지금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고위직에 올라 ‘영웅’ 노릇을 하고 있다는 점.

셋째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급격하게 서구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 등이다. 푸쉴린 의장은 “우리 기업들은 대부분 유럽이 아니라 러시아나 유라시아 연합(벨라루스,카자흐스탄 등) 쪽과 협력하고 있다. 유럽 기준을 따라가면 경쟁력이 없다.”고 말했다.

도네츠크 시내는 저녁이 되면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길가에 사람도 별로 없고 자동차도 뜸해졌다. 음산한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 인구 백만 명 가운데 50만 명이 피난을 떠났는데, 겨우 20만 명만 돌아왔고 30만 명이 아직 객지를 떠돌고 있다고 했다. 시내 음식점도 밤 8시 정도면 문을 닫는다고 했다. 모두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가니 시내가 텅 비는 것이었다.

돈바스는 2014년 5월 독립을 선언했다. 그리고 크림반도처럼, 러시아가 자신들을 러시아 영토로 귀속시켜 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아직 가타부타 반응이 없다. 러시아로서도 복잡한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압박해 돈바스에 폭넓은 자치를 허용하도록 하면서, 이를 지렛대로 삼아 우크라이나가 서구화되는 것을 막을 셈법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돈바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도네츠크의 정치평론가인 미카엘 샤갈라얀은 이렇게 말했다. “도네츠크의 미래는 독립국가이다. 확실히 독립국가이에요. 우리는 자체 은행 시스템이 있고, 자체 입법체계가 있고, 내부 시장도 발전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우리가 독립국가라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통시장에서 만난 민초들의 애기를 들어보니 가슴이 찡했다. 잡화점을 한다는 아주머니 나데즈다는 이렇게 말했다.

“내 친척의 절반은 우크라이나 사람이고 절반은 러시아 사람이다. 우리가 누구죠? 우리는 모두 슬라브 민족이다. 어떻게 우리가 갈라질 수 있죠?”

돈바스의 전쟁과 평화는 온전히 그들 몫이다. 다만, 그들의 운명이 정치가들의 손에서 결정되지 않고, 민초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지난 4월 21일 실시된 우크라이나 대선 결선투표에서 당선된 젤렌스키는 돈바스 지역의 수복을 위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더욱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는데, 과연 얼마나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하준수

KBS에 입사하여 사회부. 정치부. 국제부. 외교안보팀. 탐사보도부 등을 두루 거쳤다. 15년 넘게 외교안보 분야 특히 한반도 문제를 집중 취재했고, 2015년 7월 1일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부임하여 2018년 6월 30일까지 근무했다. 귀국 후 현재는 KBS 보도본부 시사제작2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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