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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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맛과 서비스가 소비자의 기대에 미흡하여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영업자들을 돕기 위하여 제작되는 프로그램인 골목식당을 시청하면서 가슴 한구석에 헛헛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갈 곳을 찾다가 결국은 막바지에 별다른 준비 없이 특별한 기술도 필요하지 않고 소자본으로도 개업이 가능한 자영업으로 몰리는 이유에 대해 구조적 원인과 대책을 파헤쳐 드러내지 못한 채 단지 못사는 이유를 자영업자의 개인적인 노력부족과 불성실한 태도 때문이라면서 자영업자의 사적 책임으로 귀결시키는 방송의 지적질을 보면서 어쩔 수없이 먹고살기 위해 제작진의 요구를 묵묵히 인내하고 수용하는 침묵의 자영업출연자들을 보면서 참으로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공중파라는 막강한 영향력 과시와 또한 방송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자극적으로 자영업자들의 태도와 능력을 지나칠 정도로 매몰차게 추궁할 때마다 그들의 개인적 자세보다는 근본적으로 공급이 과잉되고 수요가 부족한 자영업의 한계를 애써 부정하거나 무시한 채 그들에게 셰프와 같은 전문적 역량을 갖추면 마치 당장 성공할 것이라고 라스베가스의 환상을 심어주고 강요하는 현실이 참으로 가슴 아팠습니다.

허나 그들이 막다른 골목에 처하기까지 누가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해줄 수 있었으며 또한 그들이 하소연을 할 곳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명목으로 최저임금을 조급하게 인상하였으나 그 결과는 사회적 약자인 을에서 을로의 소득 이전만 이루어줬을 뿐이며 도리어 비정규직의 일자리만 줄게 하는 등 별다른 소득향상 효과는 없었기에 자영업자는 더욱 힘들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입장을 하소연할 곳이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약탈적 자본주의의 앞에서는 근원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사회적 약자들의 양보만을 요구하는 대증요법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정부이던 아니면 정치권이던 시민이던 근원적으로 자본앞에서는 너무 무력한 존재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결국 그들은 거대 자본의 희생양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들의 개인 책임인양 몰아세우고 그에 동조하는 우리는 자본의 약탈 행위의 공범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거대 자본이 되어 골목상권 자영업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한 셰프가 마치 이제는 자신이 골목상권 자영업자들의 수호신인양 떠들어대는 것을 보면 결국 우리사회를 정치권력 및 관료권력 외에 자본권력이 더욱 강고하게 지배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푸코가 지적했듯이 자본의 지식권력과 생체권력의 담론이 지배하는 현대의 실상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여 우리는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아마존 정글의 슬픈 열대 못지않게 현대라는 슬픈 정글속에서 주변부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결국은 한국경제의 근본적인 모순은 자본주의 자체에 있지만 이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볼수 없는 약탈적 재벌 자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 개혁정권조차 그들에 대한 개혁은 너무도 멀고먼 헛된 구호에 불과할 뿐이며 결국에 가서는 그들에게 한국경제를 구원해달라고 매달려 간청했던 과거 정권의 행태를 되풀이해야하는 암울한 상황마저도 도래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한국경제는 재벌과 대기업이 자원과 생산, 유통, 판매 및 금융등 물론 거의 모든 경제영역을 독점해버리는 싹쓸이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도 시장경제에서 자유 경쟁을 통해 적정한 이윤이나 수익을 창출할 수없는 한계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결국 한국경제는 모든 자원이 재벌과 대기업에 집중되어있어 시장의 자원배분 기능이 원천적으로 완전히 왜곡되어 있어 시장의 공정성, 투명성이 극도로 결여되어 있다할 것입니다.

최근의 부동산 급등문제도 근원적으로는 재벌자본주의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으로 재벌의 하청구조에 편입되어 잉여이윤 또는 특허권 등을 착취, 유린당하면서도 어쩔 수없이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에게 기생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경제현실에서는 제조업과 같은 기초 산업에는 지속적인 투자유치를 기대하기 어렵다보니 증시도 침체일로에 머물게 되며 또한 마땅한 대체 투자수단이 없다보니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은 하시라도 급속하게 부동산으로 몰릴 수밖에 없으니 결국 언젠가는 부동산 거품이 커지게 되는 것은 너무도 명약관화하다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약탈적 하청구조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거래의 공정한 질서를 유지하여야하며 따라서 징벌적 배상제도와 집단소송을 빨리 도입하는 것은 물론 공정거래 위원회를 감사원 수준으로 독립하여 업무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고 직위를 개방하여 관료적 타성을 혁파하여 할 것이며 나아가 21세기의 초집적, 초연결의 4차 미래산업은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기에 이를 정부가 주축이 되어 추진하고 이에 중소기업들을 참여시켜 여기서 개발된 첨단기술을 공공재산으로 공유하여 혁신산업으로 유도하는 제2의 뉴딜정책을 펼쳐야할 것이며 이를 위해 장기적 플랜으로 스타트업 같은 창조적 기업과 혁신적 기술과 신상품의 생산을 독려하는 중장기의 혁신산업 성장전략, 즉 제조업 이후의 혁신산업으로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국가적 차원에서 산업정책을 수립하여 선택과 집중을 하여야할 것입니다.

나아가 관료들의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에의 예속으로 인한 규제 재량권의 오용과 남용 나아가 그 자체 이익집단이 되면서 공공성을 지켜내지 못하고 갈수록 무능력과 비효율의 집단이 되어 버렸기에 기존의 정치권력, 경제권력 및 언론을 포함한 사회권력과도 철저히 분리, 차단시키는 방향으로 관료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할 것입니다.

결국 한국사회는 재벌 및 대기업이라는 경제권력과 공공성을 포기하고 이익집단이 되어버린 정치권력과 관료집단 및 이들 기득권 세력들을 지식 담론으로 옹호하는 언론권력과 더불어 이들 세력에게 법의 이름으로 교묘하게 면죄부를 제공하는 거대 로펌세력이 모든 부와 자원 및 정보를 장악하고 있기에 변혁은 참으로 험난하고 요원하다할 것입니다.

하여 지금이라도 재벌의 소유권이나 지배권 집중을 해체하여야하나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재벌, 대기업 과 중소기업, 자영업과의 약탈적 수직적 하청구조를 해체하고 시장의 수평적 공정거래를 강제할 수 있는 실효적인 제도적, 법률적 개혁을 하여야할 것입니다.

또한 시민의 생명과 안전 및 환경보전을 위한 규제는 강화해야하지만 시장의 공정한 경쟁과 기업의 활성화를 저해하는 규제를 완화함과 동시에 관료들의 권한과 재량권을 대폭 박탈하고 모든 정책의 집행에는 정책과정의 투명한 공개제와 공무원 실명제를 실시하여야할 것입니다.

결론은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시장경제를 공정한 경쟁시스템으로 정상화하여야하며 시장에 참여하는 세력들 (정치, 경제, 관료권력 등)의 권력을 철저히 분산시켜야할 것이며 시장의 원활한 소통을 막는 세력과 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하고 실효적인 경제적 제재가 필요할 것이며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 생산 주체를 기존의 사적인 자본과 개인 노동의 도식에서 벗어나서 공유할 수 있는 방식, 즉 기존의 주식회사형태가 아닌 새로운 모델을 개발해야할 것인데 결국 정부와 자본과 노동이 중첩되는 제3의 생산양식의 발굴과 확산을 위한 경제의 공화적 민주화가 정답이라 할 것입니다.

즉 자본의 공공성과 노동의 집단성의 중첩 나아가 자본과 노동의 사회화를 이루는 경제민주화 수준까지 나아가야할 것입니다.

한편으로 약탈적 천민 자본주의가 한국 사회에서 더욱 위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우리의 문화의 근간이 유교적 기복주의이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해 한국 자본주의는 유교적 계서주의를 빙자하여 자본이 노동을 탄압하고 유린하는 행태를 죄책감 없이 일삼고 있으며 이런 행태들이 사회전반에 갑질문화로 자리잡는데 크게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유교적 전통 탓에 이러한 인권침해를 예방하거나 처벌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대단히 미흡한 현실입니다.

따라서 약탈적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사회적 마지막 보루인 인권기본법을 제정하여 모든 인권 침해행위에 대해서는 기존의 배상기준보다 천배, 만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강제해야만 자본이 낳은 모순의 일부나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물리학이 밝힌 우주는 일견 분리되어있지만 실상은 한 몸이라는 화엄적 존재론이 진리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를 경제에 대입시켜보면 자본가와 노동자와 소비자가 비록 서로 다른 양태이지만 실상은 중첩된 한 몸이기에 각자 상생을 거부하고 독존한다는 것은 우주의 섭리에 반하는 것으로 종국에는 각자 죽음으로 치닫게 되기에 결국 경제의 모든 요소는 공존의 중도법을 따라야할 것입니다.

이런 화엄적 존재론(이를 생성론, 사건론 또는 과정론 이라고도 부릅니다!)만이 자본과 자본주의라는 실체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서구의 실체론의 폐해를 근원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촛불혁명이 내건 공화적 민주주의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화엄적 존재론에 터잡아 상생과 공존의 경제적 민주화를 실현시키기 위해 인적, 제도적 및 구조적 변혁은 물론 제3의 생산양식과 생산관계까지 모색하여야할 것입니다.

ㅡ상생을 향하여!

박헌권

수십 년간 시민운동의 경험을 통하여 얻은 성찰을 토대로 동서양을 아우르는 철학과 종교 그리고 과학의 융합을 통하여 21세기의 새로운 존재론과 우주론을 추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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