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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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통령 푸틴

이름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 직업은 제7대 러시아 연방공화국 대통령. 1952년 10월 7일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생했으니 올해 나이 67살.

푸틴 대통령

1975년 상트페테르부크대학교 법학부 국제법과를 졸업한 뒤 소련 국가안보위원회(KGB) 해외정보국 요원으로 독일에 파견돼 활동하다 1980년대 말 귀국. 1991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 아나톨리 소브차크의 특별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크렘린궁 제1부실장, KGB 국장을 거쳐 1999년 8월 총리에 임명됐고, 12월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 의해 대통령 직무대행으로 지명되었으며, 2000년 3월 대통령에 당선됐다.

*2000년 5월 ~ 2004년 5월: 러시아 연방 3대 대통령

*2004년 5월 ~ 2008년 5월: 4대 대통령

대통령의 3연임을 금지한 러시아 헌법 때문에 2008년 자진해서 총리직을 맡았고 2009년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의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늘리고 연임도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2008년 5월 ~ 2012년 5월: 러시아 연방 10대 총리

*2012년 5월 ~ 2018년 5월: 6대 대통령

*2018년 5월 ~ 2024년 5월; 7대 대통령

2018년 3월 치러진 대선에서 푸틴은 76%가 넘는 득표율로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총리 시절까지 합하면 푸틴은 올해로 19년째 러시아를 통치하는 중이다. 현대 러시아의 지도자 가운데 소련 시절 이오시프 스탈린 서기장(29년)을 제외하면 최장기 재임 기간이다.

푸틴 대통령

그런데 대선 직후만 해도 81.1%에 달하던 지지율이 올해 4월 7일에는 65.3%로 15% 이상 하락했다. 4년 만에 최저치다. 그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국민들의 불만이 가장 컸던 것은 연금 개혁이었다. 지난해 6월 월드컵이 한창이던 기간 러시아 정부는 연금수령 나이를 남성은 60세-> 65세, 여성은 55세->63세로 단계적으로 높이는 내용의 개혁안을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그러자 정부의 연금 개혁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한달 넘게 이어졌다. 세계보건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남성의 평균 수명이 66세에 불과해 러시아 남성의 40%, 여성의 20%가 65세까지 살지 못하는 상황인데 죽기 직전에나 연금을 받으라는 것이냐는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다. 반발이 거세지자 푸틴 대통령은 여성의 연금수령 나이는 60세까지만 높이겠다고 한발 물러섰고 아울러 크렘린궁의 적극적인 홍보 덕분에 국민들의 분노가 상당히 누그러졌다고 한다.

지난 3월에는 ‘언론 탄압’ 논란을 불러일으킨 두 건의 법안에 푸틴 대통령이 서명했다. 하나는 가짜 뉴스를 금지하는 법안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 상징물이나 공공기관 등을 모욕하는 콘텐츠를 차단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특히 공공기관 모욕 금지 법안은 사회.국가, 국가 상징물, 당국을 노골적으로 모욕한 게시물을 인터넷에 올리면 최대 10만 루블(약 170만 원)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고, 상습범의 경우 벌금이 배로 올라가거나 15일간 구금될 수 있게 했다. 인터넷에서 푸틴 대통령이나 정부 관료를 조롱할 경우 그 행위자를 최장 15일 동안 가둘 수 있다는 말이다. 당장 야권은 전근대적이고 시대역행적인 전체주의적 발상이며 심각한 언론통제라고 비난했다. 옛소련 시절의 ‘소련체제 훼손 활동 금지법’과 ‘반소련 캠페인·선전 금지법’을 거의 그대로 재현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비판론자들은, 당국이 반정부 성향의 언론을 탄압하는데 악용할 소지가 매우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지율과는 별개로 신뢰도(Public Trust)라는 것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푸틴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가 13년 만에 최저인 33.4%로 하락한 뒤 이들 법안이 발의됐다.

지지율과 신뢰도가 하락했다고 해서 5년 이상 임기를 남겨둔 푸틴의 권력기반에 큰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긴 하지만, 푸틴을 바라보는 미국 등 서방세계의 시각은 곱지 않다. 장기집권 독재자, 정적(政敵) 살해자, (우크라이나) 영토 침략자 등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그게 전부일까? 그렇다면 60% 이상 여전한 지지율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적어도 러시아 내에서는 푸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와관련해 최근, 필자는 러시아에서 유학 또는 거주했거나 현재 거주중인 교민들에게 “푸틴 대통령이 잘했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랬더니 재미있는 대답들이 돌아왔다. 그들의 답변에는 한국인으로서 느낀 점도 있겠지만, 러시아인들의 생각과 시각도 혼재돼 있을 것으로 해석된다. 다음은 그 답변들이다.

 

Ⓐ 자존감 회복, 국가 이미지 제고

옛 소련 붕괴 이후 옐친 정부 시대 땅에 떨어졌던 자존심을 러시아 국민들이 되찾게 되었고 가난에서 탈출하게 된 것. 소련 붕괴 이후 방황하던 러시아 국민정서에 이전의 초강대국은 아니더라도 나름 강대국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게 해준 것이 가장 큰 업적이라는 평가다. 푸틴 집권 전 러시아 국민들은 극심한 자기비하와 국가에 대한 원망 등이 엄청났고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국민성도 대단히 수준 이하였고 자존감도 바닥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푸틴 집권 후 ‘위대하고 강력한 러시아’를 화두로 국민들에게 러시아 국민임을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여러가지 타당성을 제시하면서 국민 자존감 이 상승했고, 러시아 사람들도 위대하고 강력한 러시아에 걸맞는 삶을 살자는 생각들로 바뀌면서 사람들의 성향도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또 소련 시절 이후 추락한 국가 위상을 다시 ‘빅3(미중러)’에 복귀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일방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특히 극동지역 패권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만 조율되는 상황에서 벗어나 러시아가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경제를 발전시키고 대외적으로 강대국 이미지를 심어줘 무너진 러시아 국민의 가슴에 자존심을 회복시켜줬다는 평가다.

 

Ⓑ 영토 확장

러시아 남서부의 영토분쟁, 즉 체첸 전쟁을 종식하고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병합한 것을 말한다. 강한 러시아를 보여주며, 영토적 통합성 문제에서는 추호의 양보를 보이지 않은 점이 평가를 받았다. 이 답변은 다분히 러시아 사람들의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3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뒤 푸틴의 인기는 단박에 20% 포인트 상승했는데, 지금도 러시아 사람들 사이에서는 푸틴이 제정 러시아의 예까쩨리나 여제 이후 ‘영토를 확장한 왕’이라는 농담이 돌고 있다. 또 1999년 12월 체첸 진압 작전은 독립국가였던 체첸 공화국을 러시아의 품으로 돌려 놓았다. 1999년 8월 총리 임명 당시 푸틴의 지지율은 2%에 불과했고, 9월 여론조사에서도 대통령 후보 1위는 프리마코프 전 수상, 2위는 루시코프 모스크바 시장, 3위는 주가노프 공산당 위원장이었고 푸틴은 그 뒤를 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푸틴이 주도한 체첸 전쟁에서의 승리는 불과 반년 만에 무명의 정치인을 대통령 자리에 앉히는 마술을 부린 것이다.

 

Ⓒ 치안 안정

2005년 무렵까지만 해도 이른바 ‘스킨헤드’족이 우리 교민과 유학생들을 공격하는 등 치안이 매우 불안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푸틴 대통령이 대대적으로 조직 폭력배 검거 작전을 펼치면서 폭력배들의 뿌리가 근절됐고 이제는 치안이 매우 안정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난립해 있던 카지노 업장들도 정리해 전국에 3~4개 카지노만 남겨놓은 것도 치적으로 남는다. 물론 조직 폭력배의 뿌리가 뽑힌게 아니고 돈을 많이 벌어서 기업가로 변신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부 교민들은 ‘경찰관 급여 인상’을 치적으로 꼽기도 했는데 이것 역시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다. 과거에는 부패 경찰들이 길거리에서 수시로 교민들 차량을 세워놓고 돈을 뜯었다는데, 푸틴 시대에 들어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 됐다. 아마도 부패 경찰을 정리하는 대신 당근으로 봉급을 대폭 인상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밖에

*정권이 자주 바뀌지 않으니까 ‘정책의 일관성’,

*서방의 대러 경제제재에 대응한 농수산물·공산품 일부 자급 시스템 구축,

*기업환경 개선, 투명성 강화

*소치 동계 올림픽, 월드컵 유치로 러시아 위상 제고 등이

재임 중 잘한 일로 꼽혔다. 필자는 2018년 3월 러시아 대선 당시 왜 러시아 국민들이 푸틴을 지지하는지를 취재한 바 있는데, 위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2) ‘21세기 차르’ 푸틴의 꿈

2018년 3월 18일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은 기대 이상의 압승을 거뒀다. 득표율 76.66%. 푸틴을 지지한 유권자 수는 5,620만 명을 넘었다. 푸틴이 얻은 득표율은 역대 선거에서 그가 얻은 최고의 기록이다. 푸틴은 2000년 대선에서 53%, 2004년 대선에서 71.31%, 2012년 대선에서는 63.6%를 얻었다.

2018년 대선 승리

푸틴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제정 러시아 당시 40년 가까이 통치하며 러시아를 서유럽식으로 완전히 개조한 표트르 대제라고 한다. 스탈린에 이어 러시아 현대사에서 두 번째 장기 집권자로 등극한 푸틴에게 ’21세기 차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위대한 중국을 부르짖는 중국 시진핑 주석은 ‘중국몽(中國夢)’을 꾸고 있고, 스트롱맨 상남자 푸틴은 ‘강대국 러시아’를 외치고 있다.

푸틴의 지지율은 총리로 부임한 뒤인 1999년 10월 이후 60% 아래로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이른바 ‘애국주의 마케팅’으로 ‘강한 러시아’를 그리워하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푸틴이 사로잡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게, 대내외적으로 일치된 분석이다. 서방에 포위당했다는 러시아 국민들의 전통적인 피해 의식을 자극하고, 소련 붕괴 이후 경기침체와 국제적 위상 약화로 무력감에 빠진 러시아인들에게 강대국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러시아 사람 중 30대 이상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옐친 대통령 시절의 끔찍했던 경제난을 기억한다. 자유주의 세력과 올리가르키가 결탁해 부패와 부정을 저지른 탓인데, 2000년 푸틴이 집권한 뒤 안정을 찾았다. 2018년 3월 18일 모스크바 투표장에서 만난 키슬로바(여)는 푸틴에게 투표했다면서, “푸틴의 정책 때문에 우리는 러시아 국민임을 자랑스러워 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우린 러시아 사람인 점이 부끄러운 때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푸틴은 ‘위대한 강대국 러시아의 부활’을 외치며, 중국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中國夢)’에 버금가는 러시아식 부국강병 정책을 폈다. 특히 대규모 군 개혁과 현대화를 추진 중인데 2007년부터 2016년 사이 러시아의 국방비는 2배 가량 증가해, 2016년에는 700억 달러(러시아 GDP의 5.3%)에 달했다.

또 우크라이나 동부 내전, 크림반도 병합, 시리아 내전 군사작전 등 국제 지정학적 이슈마다 적극 개입함으로써, 국제무대에서 ‘키 플페이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주요 분쟁지역에 러시아의 영향력이 미치면서, 푸틴의 존재감은 더욱 강해졌다. 여론조사 기관 네바다 쩬트르의 자료를 보면, 푸틴의 강경외교 정책이 곳곳에서 마찰음을 빚고 있지만, 러시아가 옳은 방향으로 간다고 보는 답변이 55%에 이른다.

앞으로 이어지는 5년 임기 동안에도 서방과의 관계 악화나 대러 제재에도 불구하고 푸틴은 러시아의 전략적 이해를 관철시키는 강력한 대외정책을 펼칠 것으로 관측된다. ‘강대국 러시아’는 하나의 국가이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푸틴의 사상적 배경이라고 하는 ‘유라시아 주의’는 옛소련국가들을 아울러 유럽과 아시아까지 포괄하는 유라시아의 제왕이 되기 위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강한 러시아를 만들어 세계 패권을 쥐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푸틴은 앞으로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군사력 강화나 전진 배치, 미국의 대러 공세, 서방의 대러 경제 제재 등을 러시아에 대한 ‘포위 공격’으로 주장하면서, 대내적인 단합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푸틴 대통령

2018년 대선이 끝나자 나온 얘기들은, 푸틴이 차차기 선거 즉, 2030년 대선에 출마할 것인가였다. 러시아 헌법은 3연임을 금지하고 있어, 푸틴의 다음 임기가 끝나는 2024년에는 (개헌을 통해 3연임 규정을 고치지 않는 한) 출마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다음인 2030년에 다시 대권에 도전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때마침 2018년 3월 18일 저녁 기자회견장에서 한 기자가 푸틴에게 이런 내용의 질문을 던졌다.

*기자: “헌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2030년에 다시 대통령에 도전할 것인지 명확하게 확인하고 싶습니다.”

*푸틴: “꽤 재미있는 질문입니다. 세어 봅시다. 제가 100살까지 이곳에 앉아 있을 거로 생각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러시아 내부에서도 푸틴이 개헌을 통해 종신집권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렇다고 2024년 퇴임 이후에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한가한 노후를 보낼 것으로 보는 사람은 드물다. 후계자를 키우는 동시에 군사나 안보 관련 고위 기구를 만들어 본인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카네기 모스크바 센터의 바우노프 선임 연구원은 “아마도 일부 개헌을 통해 푸틴을 위한 자리를 만들지 않을까 전망된다. 그래서 푸틴이 계속 중요한 이슈에 대해 목소리(영향력)를 내고 어떠한 박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것 같다” 라고 예상했다. 2024년이면 푸틴의 나이 71살이다. 그때 가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번 편에서는 크림반도 병합,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시리아 군사작전 등 주요 국제무대에서 푸틴이 어떻게 ‘강한 러시아’의 이미지를 투사시켜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는지, 필자의 취재 경험을 토대로 알아보려고 한다.

 

(3) 우크라이나 대선

4월 21일 실시된 우크라이나 대선 결선투표에서 정치 신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압승했다. 개표 결과 젤렌스키가 73.2%,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이 24.5%를 득표한 것으로 나타나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코미디언 출신으로 정치 경험이 전무한 신인이 현직 대통령을 이긴 파란을 일으킨 것이다.

환호하는 젤렌스키

올해 41살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연예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인물 중 하나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엔터테이너 분야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뒀다. 20여 년간 코미디언, 배우, 프로듀서 등으로 활동해왔고 이른바 자수성가한 인물로 ‘스토리’를 가진 인물이어서 대중들에겐 믿고 따를 만한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준다.

유명 코미디언이었던 젤렌스키를 정치 신예로 만든 것은 드라마 ‘국민의 종(Servant of the People)’이었다. 이 드라마는 평범한 역사 교사가 정부의 비리에 염증을 느끼고 정직한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과정을 그렸는데, 정부와 정치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통해 큰 인기를 끌었다. ‘국민의 종’은 2015년 첫 방송을 한 이후 무려 5년째 새로운 시리즈가 나오는 국민 드라마이기도 하다. 실제로 젤렌스키는 자신의 당을 ‘국민의 종’이라 명명하며 드라마를 현실로 만들겠다고 자신했다. 젤렌스키에 한 표를 행사했다는 우크라이나의 한 시민은 “2015년 혁명을 꿈꾸며 부패방지 시위에 나섰으나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며 “적어도 젤렌스키는 신선한 얼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이번 돌풍의 뿌리에는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이 있다고 설명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반러시아 친서방’ 정권 교체 혁명, 이른바 ‘유로마이단 혁명’이 일어나 포로셴코가 권력을 장악했지만 행정부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유로마이단을 통한 국민적 지향점은 동시대 가장 수준 높은 문명적 제도를 갖춘 이웃(EU)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법치주의(Rule of Law)를 구축해 불평등과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정의 사회를 구현하자는 명백한 방향성이 있었는데, 유로마이단의 힘으로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을 몰아낸 포로센코 세력은 ‘EU로 가자’는 구호만 남발했지 실질적으로 그 목표를 구현할 구체적 프로그램이나 이행 능력은 없었다. 무기력과 무능력으로 실제로 전혀 갈 수 없었고 오로지 ‘Anything but 러시아’, 마치 국민들이 ‘반러시아·친유럽’만을 원하는 것인양 아주 단순화시켜 극단적 편가르기만 일삼다 부정부패로 얼룩져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유로마이단은 엄청난 비용을 치른 혁명이었는데 그 후 집권한 행정부에선 국가 재정 낭비의 추문이 이어졌고 내부 갈등은 깊어졌다. 여전히 우크라이나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는 약하고, 경제는 5년 전에 비해 크게 나아지지 못했다.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포로셴코 정부의 관료들이나 올리가르키의 부정부패 사례가 워낙 많다보니 최근 실시한 갤럽 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겨우 9%에 불과해 세계 기록을 세웠다는 소식도 들린다. (세계 평균은 56%이고, 옛 소련에 대한 신뢰도도 48%였다.) 또 5년 넘게 실업과 불완전고용이 지속되다 보니 320만 명 정도가 일자리를 구하러 해외로 나갔다는데, 이는 우크라이나 성인 10명 중 1명 꼴이다. 유엔 개발계획(UNDP)의 보고서를 보면, 2016년 우크라이나 사람 60% 정도가 빈곤선(poverty line: 최저한도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수입 수준) 이하로 생활한다면서 우크라이나가 유럽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하나라고 적고 있다. 반면 올리가르키들은 날로 부유해지고 있는데, 2018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100대 부자들의 재산이 한해 동안 370억 달러로 무려 43%나 대폭 불어났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유럽비즈니스협회의 CEO들이 우크라이나 투자 환경을 평가한 조사 보고서에서 응답자들의 78%가 이 나라의 부패 수준에 불만이고, 74%가 사법부를 불신하며, 65%가 지하경제에 대해 불평한다고 기록했다.

김석환 한국외대 초빙교수는 이번 선거결과에 대해, 혁명을 성공시킨 국민들의 열망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타락한 자본주의 올리가르키가 나라 자체를 망가뜨린 것에 대한 반발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타락한 자본주의 세력이 정치 권력까지 넘본 대표적 케이스다. 그런데 막상 실험을 해보니 결국은 사기로 드러났다. 공정한 사회, 정의 세우기가 편법으로 될 수 없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광장의 열정으로 혁명을 성공시켰는데 그 열정이 배반당했고 , 그 배반당한 혁명을국민이 투표로 되찾아 온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어 ”지난번에는 총알(bullet)이었다면 이번엔 투표(ballot)였다. 정치에 유착된 타락한 세력을 이번엔 국민들이 제도로 심판한 것이다.“라고 결론지었다.

젤렌스키

이제 젤렌스키 앞에는 만만치 않은 현안들이 산적해 있는데, 우선 러시아와의 관계다. 무늬만 EU를 표방했던 포로셴코 정부는 반러시아주의로 극단적인 편가르기를 주도했기 때문에 러시아-우크라이나간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우크라이나가 대러 경제제재를 가하자 러시아도 이에맞서 우크라이나에 제재로 응수했고, 모스크바~키예프간 직항로는 진작 끊겨 벨라루스나 제3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직 기차길이 남아 있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마저도 차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330년 만에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다행히 젤렌스키는 이전 정권과는 달리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좀 더 적극적일 것으로 관측된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말을 사용하는 지역인 동부 유대계 가정 출신인 젤렌스키는 앞서 선거 운동과정에서 크림반도 반환과 친러 분리주의자가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돈바스 지역) 지역 수복 등을 위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더욱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성향적으로는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지지 등 친서방 인사로 분류되는 젤렌스키가, 러시아와 서구의 세력 대결에서 지정학적 접점에 위치한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젤렌스키의 당선으로 우크라이나는 이스라엘 밖에서 처음으로 유대계 대통령과 총리를 배출한 나라가 됐다.

다음 편에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간 가장 뜨거운 이슈인 크림반도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하준수

KBS에 입사하여 사회부. 정치부. 국제부. 외교안보팀. 탐사보도부 등을 두루 거쳤다. 15년 넘게 외교안보 분야 특히 한반도 문제를 집중 취재했고, 2015년 7월 1일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부임하여 2018년 6월 30일까지 근무했다. 귀국 후 현재는 KBS 보도본부 시사제작2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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