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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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려운 주제이다. 하지만, 최대한 어느 한쪽도 치우치지 않게 문제의식에 부합해보고자 한다.

우선, 북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이해함에 있어 반드시 연동시켜 이해되어야 될 개념이 민주기지론이다. 좋든 싫든 북이 결코 자유롭지 못해서 그렇다.

해서 민주기지(론)에 대해 잠깐 알아보면, 이 이론은 스탈린의 세계혁명 전략과 연원되어 있다. 어떤 특정지역을 확보한 후 그 지역을 공산주의 방식으로 정치·경제·군사적 역량으로 강화하고, 그렇게 전변된 그곳을 근거지로 삼아 다시 타 지역으로 이러한 혁명을 수출하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다음으로는, 그렇다하여 북을 스탈린의 그 이론에만 영향 받은 그런 국가로 인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일제식민시기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할 때부터 북은 맑스·레닌의 사회주의이론에 의거한 세계혁명의 연관성을 중시하면서도 조선혁명의 독자성(주체성)을 먼저 봐온 그런 국가였고, 실제로도 유격대 군대를 먼저 내오고 당을 만들었고, 해방 후에는 국가보다 먼저 당을 내오고, 그 토대위에서 건국, 건군의 원리를 만들어 낸 그런 자주적 공동체국가였다.

그래서 위 두 조합은-북의 민주기지론은 연방제 통일방안과 대남적화전략을 연계해내는 그런 창조적 적용과정이 있었다고 봐야 하며 절대 그대로 교조적으로 수입하지는 않았다는 말이 된다.

이유는 전문가(학자)들 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대체적으로 북이 남보다 1970년대 초중반까지는, 심지어 말까지는 ‘잘 살았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한다면, 바로 그 상황 하에서는 당연히 이 민주기지론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자주적 공동체국가를 지향한 북의 입장에서는 그런 전략이 충분히 근거(명분) 있는 전략적 발상이었다.

즉, 당시 남북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최대한 반영하고, 이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그런 전략은 일면 타당한 것이었고, 시대적 상황과도 분명 부합한 측면이 있다.

실제로도 김일성 주석은 정권수립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1945년 12월 17일에 북을 통일된 민주주의적 독립 국가를 위한 강력한 민주기지로 전변시킬 것을 선언한다. 또한 1955년 4월에는 “우리 혁명의 원천지인 북반부의 민주기지를 정치·경제·군사적으로 더욱 강화하여 민주기지를 비단 제국주의와 그 주구들의 침략을 반대하며 공화국 북반부를 보위할 강력한 역량으로 되게 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통일독립을 쟁취할 결정적 역량으로 전변시켜야 할 것이다”며 민주기지 건설의 정당성과 중요성을 새삼 강조했다.

북은 이렇듯 자신들에 유리한 그 국면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통일전략의 고삐를 바짝 쥐었고, 이후에도 북은 계속해서 그 민주기지론을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 전략으로 발전시켜나가 ‘3대 혁명역량 강화’ 노선의 기초가 되게 하였다. 정세상의 유리한 국면을 그들은 그렇게 활용하였고, 대남적화전략과 연방제 통일방안은 그 과정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활용했다.

하지만, 그 반대로 남쪽(보수정권)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북의 그러한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해 남측은 당시 정권의 정통성 문제, 가난한 경제력과 미흡한 국방력으로 인해 북의 그러한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대남통일전략의 일환인 민주기지(론)을 관점에서 이해하려 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당시 보수정권의 입장에서는 북의 그러한 전략에 의해 적화통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그런 위험, 그러다보니 통일문제보다는 체제유지와 ‘먹고 사는’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원조·차관경제와 수출주도형 경제정책에 관심이 가 있었을 수밖에 없었고, 그러니 반공이데올로기를 구축해 북을 악마화하는 데만 혼신의 힘을 쏟아야만 했다.

해서 불행하지만 이를 위해 학교교육은 반공교육에 여념 할 수밖에 없었고, 국가적으로는 반공국가의 길로 나아갔다. 동시에 이는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방어해야 된다는 그런 생각밖에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봐야한다.(결과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이것이 결국 우리 민족사는 아픔이다.)

하여 (소)결론을 내리면 다음과 같다.

모든 면에서 유리한 조건과 상황에 있었던 북의 입장에서는 자국을 혁명의 전진기지로 전변시켜 이를 토대로 전국적 범위에서 공산주의 통일을 완성 한다는 그런 전략은 충분히 채택할 수 있는 그런 시기였고, 반대로 남은(보수정권의 측면에서는) 여러 가지 요인들 모두가 불리한 상황과 조건임으로 인해 북의 그러한 연방제 통일방안 전략과 제안에 대해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반공·반북이념의 광풍으로 넘어서려했다. 때문에 북의 그 어떤 전략과 제안도 대남적화통일전략의 한 일환으로 인식되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런 시기였다.

 

1. 연방제 통일방안 변천사

그렇게 세월은 흘렸다. 결과는-지금의 상황과 조건은 그때와는 정반대로 남쪽이 유리하고 북쪽이 불리해졌다고 봐야한다.(물론 이 정의도 단정하기 보다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고찰이 필요하다. 단지, 그때와 지금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비교하면 ‘그렇다’는 정도와 논의진척을 위해 가져온 단순셈법정도임을 미리 밝혀두고자 한다.) 그런데도 그때 각인된 그러한 인식-대남적화통일전략으로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바라보는 그러한 인식은 절대 변경되지 않아 여전히 북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대남적화통일전략의 일환으로 보려는 오류가 남아있다.

그러다보니 지금의 북은, 더 구체적으로는 ‘느슨한 연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제안한 이후부터는 사실상 그러할 의사가 전혀 없는데도(여기서 말하고 있는 ‘사실상 그러할 의사가 전혀 없는데’는 그들-보수수구세력이 내세우는 논리중의 하나가 북은 여전히 당 규약에 혁명기지론을 포기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느슨한’이든 ‘낮은 단계’이든 모든 것은 다 위장전술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를 반박하기 위한 한 논거이고, 그들의 그러한 논리대로라면 남쪽도 헌법정신과 국가보안법은 북을 사실상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반국가 단체’로 규정해놓으면서도 그런 반국가 단체와 정상회담을 하고, 남북기본합서(91년)를 채택하고, 교류협력정책을 추진해나가고 있는데, 그 많은 모순들을 다 어떻게 설명해 내려고 하는가? 그렇게 반문한다. 해서 이는 현실정치와 외교를 관문적으로만 해석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자 하는 한 장치이다.), 그리하여 지금의 상황을 그 당시의 북의 상황으로 역지사지하여보면 우리가 대북적화통일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고, 비례해서 북은 우리-남쪽사회가 1960-80년대 느꼈을법한 그런 흡수통합의 공포를 느낄 수 있을 것인데 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은 참으로 지독한 내로남불 인식이다.

누가 봐도 한번쯤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그 성찰의 어느 한 지점에서 북의 연방제 통일방안이 시대적 상황과 조건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한번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결과를 북의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해 무조건적인 편향대신 ‘있는 그대로’ 진정성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자그만 계기가 되게 해야 한다.

 

(1)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이하, 창립방안) 이전

앞서도 얘기하였듯이 1945년 처음 등장할 때의 민주기지(론)은 ‘하나의 조선’ 논리에 의거한 무력·적화 통일노선이었음은 분명하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랬다는 말이다. 그랬던 그 노선이 남에서 4.19혁명이 일어나자 그 시대적 상황-4.19혁명 상황을 반영하여 남조선혁명론으로 보다 구체화되고, 그 과도적 한 이행조치로 남북연방제를 제안하기에 이른다.

이후 이 남북연방제 통일방안은 1973년의 고려연방제를 거쳐 1980년에는 창립방안으로 구체화되는 그런 흐름을 가지게 되는데, 하지만, 이마저도 1990년대 들어서면서 한편으로는 현실사회주의권 몰락과,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제2의 고난의 행군시기로 명명될 만큼 크게 다가왔던 그런 엄중한 시련 앞에서는 대남통일전략에 대한 소극적 접근과 함께(북은 인정하지 않을 수 있으나, 정치·경제학적으로는 분명 북의 수세적 국면임이 틀림없다.), 통일방안 그 자체도 ‘사실상의’ 체제방어 논리로 활용되는 그런 수순이 전개된다.

그 중심에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에 기초한 연방제논리가 있다. 이른바 ‘느슨한’연방제를 일컫는 것이고, 느슨한 연방제는 그렇게 탄생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 제안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을 통해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방안으로 보다 구체화되는데, 그 과정까지를 도표화하면 아래와 같고, 또 도표에서 확인받아야 할 것은 창립방안을 기점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로 확연히 나눠진다는 사실이다.

※ “북한의 시대별 통일방안”,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서 재인용.

 

(2) 창립방안 이후

창립방안 이후 주목할 만한 하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7년 8월에 내놓은 하나의 논문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조국통일 유훈을 철저히 관리하자”라는 논문이 그것인데, 거기서 그는 ‘조국통일 3대원칙’,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을 그 내용으로 하는 <조국통일 3대헌장(이하, 3대헌장)>을 발표한다.

이른바 통일방안에 대한 대강을 완성시킨 것이다. 이후 모든 통일전략은 이 3대헌장을 통해 구체화되고, 비례된다.

그리고 그 특징 중 하나(의 방향)는 연방제 통일방안 그 자체가 ‘완성형’통일방안으로 제시되기에 이른다는 점이다. 이른바 ‘과도기’, ‘대남적화통일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측면은 보다 약화시키고, 대신 ‘느슨한 연방제’, ‘낮은 단계의 연방제’제안에서 확인받듯이 두 체제 공존형 통일방안으로 정식화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공세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1994년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군을 마감하고, 새로운 수령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들어서면서부터는 핵 강국, 전략국가, 사회주의 강성국가로의 진입에 대한 자신감을 그 바탕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기의 그 수세적, 방어적 접근전략에서 벗어나 보다 공세적이고 주동적 조치로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선점해 들어가고 있는 특징의 반영이다.(올해만 하더라도 김일성 주석 이후 처음으로 신년사에서 통일방안 언급이 있었고, 또 1월 23일에는 신년사 관철을 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정당, 단체 연합회의’를 개최하였는데, 여기서 4개항의 <전체 조선민족에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 그 중 4항이 “전민족적 합의에 기초한 평화적인 통일방안을 마련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나가자!”였다.)

그래놓고 우선, 창립방안에 대해 좀 알아보면 다들 아시다시피 창립방안은 1980년 10월 제6차 당 대회에서 채택된 그런 방안이다.

핵심내용은 ①남과 북이 사상과 제도는 그대로 두고(인정하고), 그 기초 위에서 같은 권한과 의무를 지닌 각각의 지역자치제를 실시하는 연방공화국을 창립하는 것이고, 이는 다시 ②남과 북이 동수의 대표로 연방국가의 최고민족연방회의를 구성하여 정치, 외교, 군사권을 보유케 하고, 각 지역정부는 연방상설위원회(상임기구)를 조직해 남과 북의 지역 정부를 지도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1990년대에 들어와 선보인 ‘느슨한 연방제’와 2000년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통일방안이다.

이 발표와 관련해서는 그 이유를 다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당시를 정치경제적으로 분석해보면 현실사회주의권-소련의 해체와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그 영향을 미쳤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다름아닌, 외교적 고립과 3난으로 표현되어지는 그런 경제난이 체제유지와 남북공존 차원에서의 그런 전술적 변화를 가미시켰다고 봐야 한다.

실제 김일성 주석은 1991년 신년사를 통해 최고민족연방회의의 권한은 좀 약화시키고, 대신 지역정부의 역할을 하는 연방상설위원회의 권한은 강화되는 그런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에 기초한 연방제를 제안하기에 이른다. 제 아무리 북의 입장에서 내재화하더라도 이는 1980년에 발표된 창립방안보다는 지역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그런 방향으로 좀 더 연방제에 대한 유연성을 발휘한 것인데, “잠정적으로는 지역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되 점차로는 중앙 정부의 기능을 더욱더 높여나가는 방향에서 연방제 통일안을 점차적으로 완성할 것”이라는 내용의 포함에서도 확인된다. 이른바 외교권, 군사권, 내치권을 갖는 ‘지역자치정부 권한 강화론’을 보다 분명히 해 창립방안보다는 그 연방성을 많이 약화시켰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함의는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2항에서 보다 구체화된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로의 합의가 그것이다. 그러면서 이 설명을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의 원칙에 기초하되 남북의 현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을 비롯한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보유한 채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구성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해 낮은 단계의 연방제 그 자체는 ‘사실상’ 남의 국가연합단계를 수용하는 그런 파격을 선보이고, 더해 그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정상회담에서 합의됨으로 인해 그 통일방안이 완성형 통일방안으로 대내외에 천명된 것과 하등 다를게 없게 된다.

물론 북은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공식적인 통일방안은 창립방안이고, 이를 3대헌장으로 규정해 놓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2002년 5월 30일자 <로동신문> 논평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북과 남이 통일방안에 대해 완전히 합의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의 통일방안의 공통점을 인식한 데 기초해 그것을 적극 살려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했다는 의미”라고 규정해 남에서 주장하는 남북연합단계와 거의 유사하다는 비판에 대해 북은 그들 나름의 방어논리를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윗글에서 이미 많이 확인하였듯이 북의 연방제 통일방안 그 자체는 시대의 흐름과 조건의 변화에 따라 그 탄력성을 많이 가져왔음이 분명하고, 그 방향도 ‘통일까지의 과도적 조치’에서 ‘완성된 통일국가 형태’로서의 연방제를 의미하게 된다는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듯하다. 빼도 박도 못한다는 사실이고, 또 그렇게 수용해야 하는 것이 맞고 정석이다.

 

2. 북의 연방제에 대한 비판내용: 보수주의자들

사실이 이러함에도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남쪽의 보수수구세력들은 그 시각을 여전히 1970년대에 포박시켜 놓고 있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과도기’ 연방제 통일방안과 ‘대남적화통일방안’으로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여전히 고정한다는 말이다.

거기다가 그들은 자본주의체제로의 흡수통합을 유일한 통일방안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북의 그 방안-연방제방식의 통일방안은 가능하지도 않는 그런 통일방안일 수밖에 없다.

해서 그들은 창립방안은 물론이고, 1991년 1월1일(신년사) 발표된 ‘느슨한 연방제’든, 6.15 남북정상회담(2000년) 때 제안된 ‘낮은 단계의 연방제’든 그 어떤 연방제도 그 변화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그 인식은 1990년 서독에 의한 독일통일이 흡수통합 방식으로 이뤄졌듯이 남과 북도 그렇게 이뤄져야 된다는 사실을 결코 숨기지 않는다.

또한 북의 그러한 변화-‘느슨한’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1990년대에 들어와 일어나기 시작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전환 가속화와 북 경제난이 심화되는 등 대내외적 상황이 어려워지자 북이 그러한 수세적 입장을 모면해보고자 하는 그런 위장전술이자 체제방어 논리라는 인식이 절대 변하지 않고, 실제 변함이 없다.

①그들의 주장1: 이 지구상에 상이한 사상과 제도를 가진 연방 국가는 없다.

다시 말해 연방제가 지향하고 있는 통일형태의 국가모습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연방제 방안의 구성 원칙을 보면 ‘남북이 서로 상대방에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위에서’ 완성된 통일국가형태의 연방제를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인식이다.

왜? 연방제 방안이 국가연합(Confederation)을 만드는 토대 위에 연방국가(Federation)가 만들어지는 모순(矛盾)이 발생하고, 또 연방국가가 개별국가의 주권이 포기되고 하나의 연방으로서 새로운 주권이 탄생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국가연합은 개별국가의 주권이 보전된 상태에서 주권을 공동으로 행사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또한 혼재되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어서 그렇다. 이른바 ‘하나의 국가’는 그 국가체제를 규정하는 헌법이 있어야 하고, 이를 미국이나 독일의 사례가 증명해주듯이 ‘공동의 헌법’을 매개로 연방을 구성해야 한다는 논거가 그것이다.

그러니 북의 그 어떤 연방제도 성립할 수 없는 것이고, 성립할 수 없으니 그 인식은 ‘해방’과 ‘혁명’의 논리로 무장해 대한민국의 사회질서와 체제를 북의 것으로 전변시키려는 목적에서 나온 위장술수라는 인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②그들의 주장2: 소위 ‘자주적 평화 통일을 위한 선결조건’에 그 의심이 있다는 것이다.

다름 아닌,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을 보면 북은 남의 국가보안법 폐지, 모든 정당·단체 합법화 및 정치활동 보장, 주한미군 철수 등을 그 선결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보수수구세력들은 철저히 문제 삼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인식에는 이 주장들이 결국에는 남쪽사회의 적화에 장애가 되는 그런 모두를 다 제거하고, 대한민국을 무장 해제시켜 북 체제에 복속된 그런 사회로 만들겠다는 것이 북의 생각이라는 이유에서이다.

그 결정적 근거로 북이 고려연방제 통일방안 이후 곧바로 로동당 규약을 개정했는데 거기서 “조선로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몰아내고 온갖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며 일본군국주의의 재침책동을 짓부시며 사회의민주화와 생존의 권리를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하며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을 통일하고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를 해석해보면 ‘남북통일은 곧 남한을 공산화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남한에서 미군은 반드시 내쫓아야’하는 그런 인식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 어떤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해서도 남(南) 사회를 공산화시키기 위한 무장해제와 친북적 사회로의 변화를 위한 위장전술일 뿐이라는 인식이고, 또한 그들은 북이 연방제를 제안하면서 동시에 평화적인 통일을 언급하는 것 역시 논리적인 모순이라는 주장을 펼치는데, 그 근거로는 서로 다른 체제의 통일이 분단구조를 만든 당사자들의 합의가 아니라면 전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인식이 그들의 인식이어서 그렇다.(어쨌든 이렇게 평화적 통일방안을 잘 상상하려 들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이승만의 북진통일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님도 알 수 있다.)

③그들의 주장3: 북의 연방제에는 통일에 이르는 과정 제시가 없다.

주장은 이렇다. 북이 주장하는 연방제에는 통일국가가 이뤄진 후에도 최고민족연방회의, 연방상설위원회 등을 내세우고 있을 뿐, 그 다음 정부형태에 대한 상이 없다라는 시각이 그것이다.

이른바 남의 통일방안에는 화해협력단계, 남북연합단계 등 과도적 형태를 제시하고, 이런 과도체제가 필요한 그 이유로 통일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어떤 사회로 가야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안들을 예측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논거가 그들이 주장하는 핵심논거이다.

좀 의역하면 결국 통일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혼란이나 불안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과정이 필요한 것이고, 그것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라는 것이다.(물론 그 과도기도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흡수통합하기 위한 시간에 불과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를 은폐함과 동시에 그러한 과도기 설정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반면, 북의 연방제 통일방안에는 이런 중간단계에 대한 언급이 없어 사실상 연방회의나 위원회를 통해 남쪽사회에 대한 내정간섭을 강화하겠다는 그런 의도이거나, 또는 평화통일 방안으로 위장된 적화통일의 수단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3. 보수주의자들의 인식에 대한 재비판: 북의 연방제는 과연 대남적화통일전략인가?

결론적으로 색안경도 이런 색안경이 없고, 교조도 이런 교조가 없다. 오직 관문해석과 ‘불가능한’ 흡수통합을 결코 포기하려 들지 않는 그들이어서 그렇다. 괜한 억측도 아니다.

실제 우리민족은 남북 두 정상이 6.15공동선언 2항으로 남북 통일방안을 합의해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쪽의 보수주의자들은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흡수통합을 그 절대가치로, 1민족 1국가라는 자기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2체제 2정부를 인정하여 공존하자는 그런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해서 여전히 북의 대남적화통일전략으로만 이해하려는 그들의 시각이 참으로 놀라 와서 그런 주장을 해본다.

다시 말해 흡수통합이야말로 다른 말로는 자본주의체제로의 적화통일이고, 겨울영상효과로 본 대북적화통일전략이건만, 그러한 자신들의 침략성과 무력성은 보지 않고, 오히려 지금의 상황은 이미 핵보유 국가이면서 전략국가이고, 수령 중심의 사회주의체제이자 사회주의 강성국가를 그 국가목표로 정하고 있는 그런 국가(북)가 절대 사회주의체제를 포기할리 만무하며, 비록 기형적이나(재벌 중심적인 자본주의체제) 세계 10위 내외의 경제대국이 된 그런 국가(남)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포기하기란 상상 그 자체가 불가능 할 텐데, 그렇다면 남는 것은 오직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안에서 두 체제와 두 정부가 서로 공존, 공영, 공리하는 그런 연방제 방식의 통일방안만이 가장 공명정대하고 현실성도 있건만, 그런 통일방안에 대해서는 한 치의생각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공산주의(사회주의)체제로의 적화통일이라는 그런 이상한 셈법과 인식논리를 만들어 연방 통일방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전파시키려는 그런 그들의 사고가 과연 정상적이라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런 사고를 비판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사고들을 비판해야 한단 말인가?

이뿐만이 아니다. 남북정상회담의 정례화는 이미 국가보안법을 무력화하거나 사문화했고, 주한미군 철수 등을 그 선결요건으로 하는 그 조항도 북에 대한 관문적 해석과 편견적 과민함의 반영일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보는 이유도 다 있다.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은 1960-70년대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OECD가입국이고, 세계 10위 내외의 경제대국이다. 또한 설령 주한미군이 철수 된다하더라도 여전히 미국의 핵우산, 전략자산 투입 등을 통해 북의 적화통일전략을 무력화 할 수 있으며, 또 필요할 때마다 그들이 인용하는 김일성 주석의 발언과, 김용순 당시 아태평화위원회 위원장의 발언 “주한미군의 지위와 성격의 변화”문제, 즉 평화유지군으로서의 역할이 남아 있을 수도 있고, 또 백번 양보하여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한미동맹이 해체되어 미국의 핵우산과 전략자산 운용이 힘들더라도 새롭게 구축될 동북아지역에서의 집단안보체제와 대한민국의 경제력 및 외교적 수단, 엄청난 국방비 지출 등은 북의 적화통일의지를 꺾기에 충분하다. 이런 대한민국을 믿지 못한다면 그 어떤 대한민국을 믿어야만 된단 말인가?

주장하고 있는 또 다른 한 예인 ‘이 지구상에 상이한 사상과 제도를 가진 연방 국가는 없다’는 그들의 인식도 참으로 교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근거는 이 지구상에서 그런 사례가 없다하여 그 사례가 반드시 사실적 정의이지도 않으며, 또 넘지 못할 그런 현실적 장벽도 아니어서 그렇다. 뿐만 아니라 그런 사례적 경험이 없다는 것, 그것이 상이한 사상과 제도를 가진 연방국가가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그런 이론지표와도 절대 비례하지 않는다.

즉, 어려울 수는 있겠지만, 그것과 경험 그 자체가 곧 ‘절대 불변해야 하는 정답이어야 한다’는 것과는 하등 인연이 성립되지 않고, 그래서 인연이 없으면 만들면 되는 것이고, 새로 길을 내면 되는 것이다. 마치 이는 모든 길이 처음부터는 길이지 않았듯이, 누군가(남북)가 첫발을 내딛어 그 길을 내면 똑같은 이치이다.

그리고 그래놓고 본다면 북이 주장하고 있는 그 연방제 통일방안도 그런 연방제가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만 그렇게 앵무새처럼 돼뇌일 것이 아니라 미국의 연방제도, 유럽연합식의 그 연방제도, 처음에는 다 ‘새로운 길’이었듯이 북의 그러한 연방제도 새로운 길일 수는 있으나, 전혀 불가능하지 도 않는 길임을 각인해야 한다.

예하면 이렇다. 본디 국가연합이든 연방제든 둘 다 미국 독립 과정에서 발현되어 나온 그런 국가 구성방안이다. 영국에서 독립한 아메리카의 13개주는 애초 처음엔 중앙정부가 외교권만 지니고 군사력과 징세권을 주정부가 지니는 그런 국가연합(confederation) 방식을 구상하였다. 하지만, 당시 ‘외교’라는 것이 영국과 프랑스 등과의 관계에 지나지 않아 중앙정부의 실권이 거의 없게 되자, 군사력과 징세권까지 중앙정부가 장악하도록 함으로써 단일 국가체제인 연방제(federation) 공화국인 미합중국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렇게 (그 길이)만들어졌듯이 북의 연방제도 그 길을 내는 과정에서 미국독립 초기에 구상하였던 그런 연방제를 구상하거나, 혹은 지금의 연방제와 더 가까운 그런 방안으로 상상할 수도 있고, 반대로 비록 단일연방국가체제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미합중국보다는 더 중앙정부의 권력이 약화된 그런 연방제마저도 상상할 수가 있다(그 반대일 수도 있고). 연방제는 이렇듯 시대적 상황과 또 그 민족국가가 처해진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가변적일 수가 있고, 넓은 의미에서의 confederation을 조합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해서 요약해보자면, 연방제는 이제 북의 의도-설령 북이 대남적화통일전략이라는 그런 것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그와는 상관없이, 또는 북이 그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남북이 이제는 서로의 사상과 제도, 체제가 다르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하여 남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유지하고, 북은 인민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잘 지키며, 그렇게 공존·공영·공리하는 그런 한 지붕 두 집 살림이 가능하다.

그래서 그렇게 가능케 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데도, 이를 무조건적으로 부정만 하는 그런 부정직하는 태도는 보이지 말자. 다시 말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민족통일공동체 방안에 집착하는 대신, 이제부터는 오직 연방연합 방식만이 최대공약수이고, 그 외에 그 어떤 것도 최대공약수이지 않다는 생각으로 사고의 전환을 가져와 보자. 어떻게? 지금의 남북관계가 ‘창조적’해법이 필요하듯, 우리민족의 통일방안도 그 ‘창조적’해법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통일뉴스, 2019년 4월 2일에 게재된 글입니다 (필자와 협의하여 일부 수정 후 본지에 실린 것임).

김광수

정치학 박사(북한정치 전공) · 『수령국가』 저자 ·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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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 김광수(필자) Posted on 2019.04.18 at

    이해하는데 조금부족한 부분이 있어 해설답니다(양해바랍니다).
    북의 입장에서 북의 민주기지론은 남조선혁명역량강화노선입니다. 반면, 연방연합통일문제는 조국통일전선에서 구축되는 그런 전략노선입니다. 연동되어있지만(주한미군 철수 등 문제등이 그 예다), 창의적 노선임을 강조하려다 이 부분 놓친것 같아 보충합니다. 분명 다른 전략노선이니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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