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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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북한의 국제적 고립 심화

2016~2017년 북한의 전략적 도발은 결국 국제무대에서 북한 스스로 외교적 고립을 자초하는 부메랑으로 작용했다. 전통적 우방인 러시아와 중국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에 동참한 것 뿐만 아니라 옛소련이 해체된 뒤 생긴 CIS(독립국가연합) 지역에서도 북한 공관이 철수하는 등 후폭풍이 거셌다.

 

1) 우즈베키스탄의 북한 공관 폐쇄

중앙아시아에 있는 우즈베키스탄은 인구 3200만 명으로 중앙아시아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하고 있고 금과 우라늄, 가스 등 천연자원, 면화 등이 풍부해 잠재력 높은 소비시장이다. 그런데 수도 타슈켄트에 있던 북한 대사관이 2016년 8월 초 폐쇄됐다. 한 나라가 해외공관을 철수할지 말지 여부는 각자 사정에 따라 결정할 일이지만, 이번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본인들의 의지가 아니라 주재국에 의해 사실상 쫓겨났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타슈켄트 북한 대사관이 있던 건물

북한 대사관은 2016년 7월말 공관원과 가족들이 모두 철수하고, 8월초에 대사관 건물과 차량 등 공관 자산 매각절차가 완료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대사관측은 8월 초 우즈베키스탄 외교단에 이임 인사를 하면서, “CIS, 독립국가연합 공관 전체 구조 조정 차원에서 우즈베키스탄의 공관을 폐쇄한다“고 설명했다. 현지 교민들은, 2016년 6월쯤에 북한 대사관이 건물과 차량 등 공관 자산을 매각한다고 공고를 냈는데, 매매가 잘 이뤄지지 않아서 매각이 제대로 됐는지 궁금했다고 전했다. 공관 자산도 제대로 처분하지 못하고 허둥지둥 철수했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얘기다.

현지 외교 소식통은, 2016년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한 직후,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북한 대사관에 철수를 요구했다면서, 북한의 거듭된 WMD(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일종의 경종을 울린다는 차원이라고 전했다. 북측은 공관 폐쇄를 면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라는 시대적 흐름 앞에서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1992년 1월 우즈베키스탄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93년 7월 대사관을 설립했다. 2005년 3월 부임했던 리동팔 제4대 대사가 2011년 2월 귀임한 뒤, 우즈베크 정부는 후임 대사에 대한 아그레망을 불허해, 2명의 대리 대사가 거쳐갔다. 우즈베크에서 북한 공관이 철수함에 따라, 중앙아시아에 더 이상 남아 있는 북한 공관은 없다.

옛소련이 붕괴된 뒤, 북한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카자흐스탄(92년)과 우즈베키스탄(93년)에 대사관을 개설했다. 1998년 카자흐스탄 주재 북한 대사관이 철수한 뒤로 북한은 우즈베키스탄 주재 대사관을 중앙아 거점 공관으로 운영해왔다. 고려인과 면화 등 값싼 원자재 수입 등이 바탕이 됐다. 현재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카자흐스탄에 10만 3천 명, 키르기스스탄에 2만여 명 등 37만여 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 그중에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고려인이 20만 명 정도로 가장 많아, 우즈베크가 중앙아 고려인 사회의 중심인 셈이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들

1937년 당시 소련 당국이 극동지역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하기로 결정했을 때, 가장 많은 한인들이 이주한 곳도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이었다.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한인들은 원래 고향이 함경도 등 북한 지역인 사람들이 많았고, 중앙아 고려인들은 한소 수교 이전만 해도 북한만 왕래하며 통일문제 등에서 북한을 편드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따라 북한의 해외 통일전선전술의 큰 부분을 차지해 왔었고 아직도 ‘고려인통일연합회’나 범민련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중앙아시아 내 유일한 북한 공관이 폐쇄됨에 따라 중앙아 국가들과 북한의 외교관계가 소원해지고, 반사적으로 한국과의 관계는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타슈켄트 전경

1991년 옛소련에서 독립한 우즈베키스탄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 25년간 장기 집권했던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이 2015년 4선에 성공한 이후 선택한 첫 공식 해외 방문국은 한국이었다. 그는 당시 “한국은 구조개혁과 현대화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창조경제 정책을 성공적으로 실현하고 있다”며 한국 경제를 모범사례로 제시한 바 있다. 현재 260여 개 한국기업들이 우즈베키스탄에 6억 달러 넘게 투자하고 있고, 국제무대에서도 한국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원하는 등 우즈베키스탄에게 한국은 ‘핵심 협력대상국’이다. 고위급 교류와 협정, 교역이 거의 없는 북한보다는 한국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의 북한 대사관 폐쇄 조치는 이런 경제적 배경 속에서 최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2) 카자흐스탄에 공관 재개설도 무산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 (최근 누르술탄으로 개명)

우즈베키스탄의 이웃나라 카자흐스탄에서도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북한은 1992년 카자흐스탄과 수교하고 대사관을 개설했으나, 카자흐스탄이 친한 성향을 유지하고 한국-카자흐스탄간 실질 협력 관계가 확대되는 반면, 북한-카자흐스탄간에는 별다른 관계 진전이 없자, 1998년 주카자흐스탄 대사관을 폐쇄했다. 그러다 2012년 말부터 대사관을 재개설하기 위해 대표단을 파견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하지만, 2015년말 급기야 카자흐스탄 외교부로부터 공관 재개설 허가를 받았고, 2016년 3월에는 공관 재개설 직전까지 갔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북한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가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서, 북한 공관 재개설은 적절치 않다는 우리 정부의 강력한 설득이 먹혀들어 결국 공관 재개설은 무산됐다고, 현지 외교 소식통은 전했다. 당시 카자흐 외교부가 추진하던 북한 공관 재개설 사실을 모르고 있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뒤늦게 이같은 일을 보고받고 노발대발하며 즉각 취소를 명령했다는 후문이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잇달아 일어난 2개의 사건은 대단히 상징적인 것으로, 북한이 3대 외교축 중 하나인 중앙아시아에서 사실상 축출당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국제사회에서 갈수록 외교적 입지가 좁아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CIS, 독립국가연합 지역에서 북한 공관이 존재하는 곳은 러시아 밖에 없다. 북한은 중앙아시아를 비롯해 CIS 국가들 전반을, 주러 대사관에서 담당하도록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3) 우크라이나의 비자면제 취소

러시아와 이웃한 우크라이나에서는 이런 일도 벌어졌다. 옛소련 시절인 1986년 북한과 체결한 ‘민간분야 방문과 교류 활성화에 관한 내용‘, 즉 ’비자면제 협정’을 우크라이나가 파기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016년 8월 12일 이같은 결정을 외교 경로를 통해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관에 공식 통보했다. 이에따라 2016년 10월 10일부터 우크라이나에 입국하는 북한사람들은 비자를 받아야 하며, 우크라이나에 체류중인 북한인도 일단 국외로 모두 나가야 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북한이 우크라이나 영토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비우호적인 북한인들의 침투를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 우크라이나가 협정을 파기한 이유였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할 때 북한이 러시아 편을 든 점(2014년 3월 27일 유엔 총회에서 ‘러시아의 크림합병은 불법’이라는 결의안이 채택될 때 북한, 쿠바, 시리아, 벨라루스 등이 반대표 던짐), 2015년 북한 사람들이 자국 내에서 불법 의료행위를 하다 적발된 것 등이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1992년 우크라이나와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같은해 10월 수도 키예프에 대사관을 설치했으나 1998년에 공관을 철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 당시 북한의 대외무역 규모면에서 우크라이나는 중국, 러시아, 인도, 태국에 이어 5번째 교역 상대였다. 특히 2015년에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많은 밀가루를 수입한 나라가 북한이었다. 북한의 안정적인 식량 수입국이었던 우크라이나가 비자면제 협정을 파기함으로써 북한의 식량 수입에도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됐었다.

(왼)김일성 김정일 초상화, (오)북한 남성

위 사진을 보면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가정집에서 한 동양 남성이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위 사진은 2015년 10월 우크라이나 이민청이 한 북한 가정집을 압수수색해 심문하는 과정을 녹화한 장면이다. 사진에 등장하는 남자는 북한이 외화벌이의 일환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운영한 의료시설, 이른바 ‘해외의료단’의 관계자이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에서 허가도 없이 한의사 행세를 하며 가짜 약을 팔아오다 적발됐다. 우크라이나 당국에 따르면, 북한인 4~5 가족이 면허도 없이 한의사 행세를 하며 가짜 한약을 팔아 돈을 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는 키예프 현지 교민은, 침도 몇 번 맞았고 마사지 치료도 받았지만 별 효과가 없어서 결국 현지 병원에 가서 재치료를 받았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015년 10월 불법영업 혐의로 북한인 20여 명을 강제추방하고 가짜 약재 등을 압수했다. 이번 사건이 우크라이나 정부가 북한과의 비자면제 협정을 파기한 하나의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왼)외화벌이 계획, (오)해외의료단 행동 지침

그런데, 가짜 한의원 압수수색 과정에서 흥미로운 문건이 발견됐다. 우크라이나 이민청이 압수한 북한 의료단의 서류 중에 ‘해외의료단 외화벌이 계획’이라는 것이 있는데, 외화벌이 일군들이 납부해야할 상납금과 행동 지침 등이 소상히 적혀 있었다. 이에 따르면, 첫 3년 동안은 1인당 월 400달러, 그 이후에는 월 500달러씩 납부하라고 적혀 있다. 또 파견된지 3달 이후부터 납부가 시작되며 시설 운영에 쓰이는 유지비도 단원들이 내야한다.

이를 기초로 계산해보면, 의료인 9명 기준의 우크라이나 주재 북한 의료단에서 연간 47,000달러, 우리돈 5,300만 원 정도를 상납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의료단의 행동지침도 매우 구체적이다. 단장의 승인 없이는 외출할 수 없고 왕진을 갈때도 2명 이상이 함께 움직이도록 했다. 시장에 갈 때도 정해진 날에만 3명 이상 조를 짜서 지정된 시간 안에 돌아와야 하고, 통신 수단은 허락없이 이용할 수 없으며 대표부와의 연락은 암호를 사용하도록 했다.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이 철저한 감시와 통제 속에 생활하고 있고 최근에는 실적 압박까지 거세져 불법적인 외화벌이에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사실 우크라이나에서 적발된 북한인들의 불법행위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2011년 7월 벨라루스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직원 류성철과 리태길이 우크라이나 중부 도시 드네프로페트롭스크에서 현지 로켓 발사체 개발 전문설계회사인 ‘유즈노예’ 직원들을 포섭해 로켓 관련 기술을 빼내려다 체포됐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과학자들의 첨단 로켓 연료 공급 시스템, 액체 연료 엔진 등에 관한 논문들을 카메라로 촬영하다 현장에서 체포됐다. 이들은 간첩 혐의로 기소돼 각각 8년형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같은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북한의 WMD 개발과 관련해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대북 제재가 시행되자 이에 동참하자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6) 한반도에 부는 훈풍

2017년 11월 29일 북한이 ICBM급 화성-15형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 한반도의 위기 지수가 최고조에 올랐지만, 다행히 2018년 들면서 정세가 급반전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자칭‘핵무력 완성’이라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듯 남북.북미 관계 개선 등 국면 전환에 나섰는데, 그 중요한 계기는 평창 동계올림픽이었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은 선수단과 응원단, 예술단을 남측에 파견하고 아울러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대남 특사로 파견하는 파격도 선보였다. 아이스하키 종목은 남북 단일팀이 구성되기도 했다. 필자는 바야흐로 한반도에 불기 시작하는 훈풍을, 모스크바의 북한 식당에서 제대로 쐬었던 것이다.

 

1) 모스크바의 북한 식당

모스크바에는 성업중인 북한 식당이 2곳 있다. 하나는 아르좌니끼제 거리(ул. Орджоникидзе, д.11, стр. 9)에 있는 ‘평양고려 식당’이고, 다른 하나는 로마노솝스키 거리(Ломоносовский проспект 29. Корп.1)에 있는 ‘능라도’이다.

‘평양 고려 식당’

‘평양고려 식당’은 소련의 첫 우주인을 기념한 ‘가가린’ 동상, 한국 식당이 몰려있는 ‘코르스톤 호텔’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식당 홈페이지에는 개업한지 8년째라고 소개돼 있지만, 현지 교민들 말에 따르면 장소를 옮겨 15년 이상 영업중이라고 한다. 모스크바에선 가장 오래된 북한 식당인 셈이며,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선린우호 다짐 차원에서 창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식당의 명목상 주인은 조선인 2명이지만 식당의 수익금은 러시아 주재 북한 대사관의 운영자금으로 쓰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능라도’ 식당

‘능라도’는 모스크바국립대학교(엠게우: МГУ) 근처에 있다. 2015년 7월 중순에 개장했는데 북한 대사관과 가까워 대사관 손님들이 많다. 명목상 주인은 러시아 여성으로 돼 있어 북한이 관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고 한다. 북한 식당의 주요 식재료는 본국에서 직접 가져온다고 한다. 모스크바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이 6~7개 되는데, 북한 식당의 메뉴가 한식당보다 2~3배는 많고 맛도 좋고 값도 60~70% 정도로 저렴한 편이어서 북한 식당을 찾는 한국 사람도 은근히 많은 편이다. 특히 능라도는 필자의 집에서도 가까워 더운 여름날 평양 냉면을 즐기려 자주 찾곤 했다.

그런데 2016~2017년 북한의 전략적 도발 기간에 발효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들어가는 자금줄을 차단하는 게 핵심이었고, 그중에 해외에서 성업 중인 북한 식당들이 외화벌이 전초병으로 찍혀 보이콧 움직임이 일었다. 실제로 중국과 동남아 일대 북한 식당들이 타격을 입고 상당수 문을 닫았으며, 모스크바 주재 한국 대사관도 교민들을 상대로 ‘북한 식당 출입 자제’를 권고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근 2년 동안 북한 식당을 찾는 한국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모스크바 한인 사회와 북한 식당간의 이같은 냉기를 일거에 걷어버린 것이 바로 평창 동계올림픽이었다.

 

2) 북한 식당에서 공동 응원

2018년 2월 14일. 처음엔 긴가민가했다. 남북 단일팀과 일본과의 아이스하키 경기 하루 전날,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남북한 동포들과 고려인 동포들이 북한 식당에 모여 공동으로 응원하는 행사가 열린다는 말을 들었을 땐 진짜 이런 행사가 열릴까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평양고려 식당서 남북한 공동응원

남북 단일팀과 일본 간 아이스하키 경기가 펼쳐진 2월 14일 아침 10시 반. 모스크바 시내에 있는 북한 식당 ‘평양 고려’에 동포들이 하나둘 모였다. 두 살배기 아이를 안고 온 교민과 학생들을 포함해 우리 교민이 17명, 고려인 동포 8명, 러시아 학생 6명 등 31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북한 식당 여종업원들

당초 북측에서도 5~6명의 학생들이 참석하기로 했었는데, 사정이 생겼는지 결국엔 오지 못했다. 대신 북한 식당 종업원들(주로 평양에서 온 여성들)이 열띤 응원전을 도왔다. 참석자들은 직접 만든 한반도기를 흔들고, 북을 치면서 응원 열기를 더했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공식 구호를 외치고, 간간이 “까레야(한국)” “우라~~~(만세)”라는 러시아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남북한 동포 공동응원전

이들의 응원 열기가 통했는지 단일팀이 이번 대회 첫 골을 성공시켰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만세를 외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4-1로 경기에서 패하긴 했지만, 참석자들은 “잘했다”를 외치며 끝까지 우리 선수들을 응원했다. 20년 가까이 모스크바에 거주해온 우리 교민은 북한 식당에서 공동응원전을 펼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감격스러워 했다.

모스크바에 사는 남북한 교민들과 고려인 동포들이 한자리에 모여 단일팀을 응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애초 아이디어는 우리 교민이 제안했고, 모스크바 주 고려인 문화연대 대표인 에르네스트 김이 북측을 설득해 이번 행사를 성사시켰다고 한다.

고려인 에르네스트 김 인터뷰 장면

관심을 끄는 것은 북한 식당이 장소를 제공한 점이다. 이 또한 처음 있는 일이다. 식당 측은 어렵게 남북 단일팀이 구성됐고 북측 응원단이 대거 평창을 방문하는 등 역사적인 화해 협력 무드가 조성된 만큼 이에 동참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상당 기간 우리 교민들과 북한 식당 간에 지속됐던 껄끄러운 관계가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믿기지 않을 만큼 상황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이번 ‘식당 응원전’을 계기로 ‘북한 식당 금족령’(?)은 자연스럽게 해제돼 교민들이 예전처럼 무시로 찾아가 북한 음식을 즐기게 됐다. 사실 북한 식당에는 중국인,일본인 외에도 러시아 사람과 현지 사람들도 많이 찾곤 했는데, 특히 4.27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 평양 냉면이 엄청 팔렸다는 후문이다. 필자가 식당 종업원에게 평양 냉면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냐고 물었더니, 자리가 없어 못팔 지경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 같은 변화는 민간 분야 뿐만 아니라 외교 현장에서도 나타났다.

 

3) 외교무대에서 손잡은 남북한 대사들

2018년 2월 13일 밤. 설을 앞두고 러시아 외무부 영빈관에서 마르굴로프 외무차관 주재로 만찬이 열렸다. 러시아 외무부가 해마다 남북한과 중국, 몽골, 베트남, 싱가포르 등 설을 쇠는 아시아 6개 나라 대사들을 초청해 대접하는 자리였다. 앞에서 대강의 분위기를 언급했듯이 2017년까지만 해도 남북 간에는 무척 썰렁하고 불편한 자리였다고 한다. 서로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자기들끼리만 모였다가 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2018년에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왼쪽 우윤근 주러 대사 / 오른쪽이 김형준 주러 북한 대사

우윤근 주러 대사와 북한 김형준 대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덕담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남북 단일팀과 응원단, 김여정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방한 등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남북 간 화해 분위기를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고 한다.

우윤근 대사가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북한이 단일팀도 구성하고 평화올림픽을 치르는 한민족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된 데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하자 김형준 대사도 “우리는 한민족 아니냐. 단합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또 우 대사가 “우리 정부는 최선을 다해서 남북대화를 이어가려고 하고 있고 문재인 대통령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하자 김형준 대사가 “문재인 대통령이 잘하고 계신다”고 화답했다고,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전했다. 북한 고위 외교관의 입에서 우리 대통령을 추켜세우는 발언이 나온 것이다. 지금까지 분위기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남북한 대사들 환담

이와 관련해, 현지 외교 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이뤄진 남북 화해 분위기에 걸맞게 해외에서 남측 외교관이나 주재원, 언론을 만날 경우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올림픽을 계기로 한민족을 하나로 묶은 훈풍이 평창을 넘어 바야흐로 러시아 모스크바에까지 불어온 것이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이같은 분위기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한국의 상황을 잘 아는 한 러시아 교수는 다음과 같은 러시아 속담을 들려줬다.

“Плохой мир – лучше хорошей ссоры”

(나쁜 평화가 좋은 전쟁보다 낫다.)

 

4) 남북러 3각 사업의 미래

한반도에 훈풍이 불면서 지난해 참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그중에 남북 철도.도로 공동조사가 가장 눈에 띈다. 남북 철도를 대륙철도와 연결하는 일은 많은 사람들의 꿈이다. 남북한과 러시아간 3각 경제협력 사업의 대표적인 사례인 ‘나진~하산 복합물류 프로젝트’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나진~하산 철도 개보수 완료 기념식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북러 국경에 접해있는 러시아 하산과 북한 나진을 잇는 54km 철도를 현대화하고, 나진항 3호 부두를 개발해 운영하는 물류사업이다. 시베리아 석탄을 철도로 나진항까지 싣고온 뒤 배로 제3국에 수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러시아와 북한은 2008년 10월 ‘라손 콘트란스’라는 합작회사를 설립했는데, 러시아가 70%, 북한이 3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2013년 나진~하산간 철도를 개보수하고 2014년에는 나진항 3호 부두 개발을 완료했다.

2013년 11월 한러 양국은 한국 컨소시엄과 러시아 철도공사간에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사업성 검토를 위한 MOU를 체결했다. 포스코와 코레일,현대상선 등 한국기업 3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라손 콘트란스 지분 중 일부 즉, 러시아가 보유한 지분 70%의 49%를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어 2014년 2차례, 2015년 한차례 등 모두 3차례에 걸쳐 러시아산 석탄을 나진항을 경유해 국내로 반입하는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나진항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강력한 유엔 대북 제재가 발효됐을 당시 러시아 정부가 나진~하산 프로젝트만은 예외로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독자 제재를 발동해, 북한 항구에 기항한 제3국 선박이 1년 이내에 한국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이에따라 이 프로젝트에 대한 한러 양측 기업간 협상은 중단된 상태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유엔 제재의 예외로 인정받았지만, 현재 미국과 한국 정부의 독자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대한 독자 제재를 풀고, 한러 기업간 협상이 재개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이 참여해 순조롭게 사업이 진행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지난해 12월말 필자는 이같은 질문을 갖고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러 합작기업 ‘라손 콘트란스’ 대표인 이반 톤키흐 사장을 만났다. 아래는 주요 질문에 대한 톤키흐 사장의 답변이다.

이반 톤키흐 ‘라손 콘트란스’ 대표

Q. 한국이 빠진 뒤에도 라진~하산 프로젝트는 진행됐고 2016년에는 시베리아산 유연탄 200만톤 정도가 나진항으로 반출됐었다. 현재까지의 활동 상황을 좀 설명해달라.

A. 이제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운영한지 5년이 됐다. 5년 동안 5백만 톤 이상의 석탄이 운반됐는데, 그 중 15만 톤이 한국으로 보내졌고 나머지 석탄은 중국으로 갔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의 주요 파트너는 중국이 됐다. 당초엔 한국이 이 프로젝트에 합류하기를 희망했었지만 말이다. 중국 기업들이 러시아 석탄을 사서 나진항을 통해서 수입했다. 러시아 나호트카에서 운반하는 것보다 저렴하다.

 

Q. 한국 기업 컨소시엄이 <라손 콘트라스>의 러시아측 지분 49%를 인수할려고 했었다. 그런데,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자 한국 정부는 독자 제재를 가하면서 나진~하산 프로젝트에서 발을 뺐고 그후 상황이 많이 변했다. 당시 그 조건은 아직도 유효한가?

A. 경제적인 측면에서 한국의 참여를 원하는지 질문한다면, 답은 ‘네’이다. 나는 다른 항구들보다 더 훌륭하게 한국 기업들을 대접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지고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할 수 있다. 한국측에게 나진을 통해서 석탄을 수입하는 것이 나호트카에서 들여오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이익이 될 것이다. 석탄가 차이는 1톤당 3~5 달러이다. 한번 계산해보면, 포스코는 러시아에서 연 100만톤 이상의 석탄을 수입한다. 나진항을 통해서 석탄을 운반했다면 포스코는 비용을 5백만 달러 이상 절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5백만 달러는 한국 국민들의 세금이다. 그 돈은 포스코 계열사들을 발전시키고, 직원들 급여, 인센티브 등에 쓰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 우선적으로 이득이 됐겠지만 한국은 정치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바라봤고, 안타깝게도 경제를 뒤로했다 . 그래서 남북간 정치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한국은 이 프로젝트에서 바로 나갔다. 한국 기업들이 얻을 수 있는 경제적인 효과를 저버린 채 말이다. 한국에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기회를 의도적으로 저버렸고 한국 기업들은 돈을 더 내고 있는 것이다.

나진항 내 ‘라손 콘트란스’ 본사 건물

Q. 북한측 관계자들은 현재 상황에서 무엇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나?

A. 북한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남한 사람들과 같다. 평양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평양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기차 타고 다니고 싶어한다. 기차를 타고 편안하게 2~3시간 안에 다른 나라로 가고 싶어한다. 국경이 없고 친인척들을 편하게 만나고, 휴가와 설날 등 명절을 함께 보내고 싶어한다. 그들은 평화라기보다 풍족한 삶을 원한다. 남한에서 바라는 것과 같다. 이러한 부분에서 양국의 의견이 일치하기 때문에 나는 철도 공사 및 연결 작업이 잘 진행될 거라 믿는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빨리빨리’를 원하고, 남한에서는 ‘천천히’ 움직인다.

 

Q.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유엔 제재의 예외로 인정받았지만 미국이 독자 제재하고 있고 한국정부도 독자 제재하면서 참여하지 않은거다. 결국 미국의 대북 제재가 해제돼야 이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는 말인데. 러시아가 생각하는 대안이 있나?

A. 이 문제는 다른 나라와 논의할 필요가 없고 한국이 답을 찾아야 한다. 나진과 일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큰 이익인데, 이것에 대해서 왜 미국의 허가를 받으려고 하는가? 나는 그 점을 알고 싶다. 우리에겐 해결 방안이 있다. 국제사회가 그 해답을 줬는데 UN 평화조약에도 조항이 있다. 거기엔 이렇게 써 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중요한 프로젝트로 대북 제재로부터 예외된다”. 한국은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국제사회와 한 편에 서야 한다. 세계와 UN이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미래에 대해 언급했으면 한국은 이러한 결정을 따라야 한다. 이게 첫째고.

둘째로 한국은 이전에 두만강 개발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나진은 두만강 개발 프로젝트의 일부분이고 두만강 개발 프로젝트의 주체는 UNDP(유엔 개발계획)이다. 그래서 UNDP에서 회담하면 되고 한국이 나진항에 참여할 수 있도록 UNDP가 도와달라고 요청하면 된다. 내 말은 국제적 수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나 미국 측에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 국제적인 조약에 이미 언급되어 있으며 필요시 인도적 지원을 해줄 수 있는 국제기구도 있는데, 그게 바로 UNDP이다. 이게 해결책이다. 한민족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봐야 하고 UN에 안건으로 상정하시라.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Q. 최근에 남북이 공동으로 북한의 철도.도로 상황을 조사했다. 남북간 화해협력 무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남북 철도 연결은 한반도 통일에 필수적인 사항이자 우선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 시베리아횡단 철도(TSR)와 연결하는 것이다. 한국은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에 가입했기 때문에 다른 회원국들과 철도 연결을 해야 한다. 한국은 철도 없이 유라시아에 속하지 못한다. 한국 철도가 북한 철도,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되면 반도가 아니라 거대한 유라시아의 일부가 될 것이다. 나는 이러한 기획을 환영한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시작한 주요 원인은 한국 철도를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반도 철도를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하는 프로젝트는 러시아 대통령의 계획이었으며, 이 계획은 한국과 북한 측에 제안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합의함으로 양국 철도 운행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시베리아횡단열차와 국제철도협력기국 회원국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한 계획을 우리는 환영한다.

하준수

KBS에 입사하여 사회부. 정치부. 국제부. 외교안보팀. 탐사보도부 등을 두루 거쳤다. 15년 넘게 외교안보 분야 특히 한반도 문제를 집중 취재했고, 2015년 7월 1일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부임하여 2018년 6월 30일까지 근무했다. 귀국 후 현재는 KBS 보도본부 시사제작2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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