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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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진짜 경영위기 맞나?
  2. 일시적인 위기인가, 근본적 위기인가?
  3. 위기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나?
  4. 사측의 예견되는 전략
  5.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이번 싸움은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회사’와 ‘국가’ 위기를 빌미로 한 자본과 정권의 대대적인 공세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노동자들은 웬만한 대응논리를 갖고서는 이 싸움을 이길 수가 없다. 먼저 냉정하게 이 싸움의 성격을 바라보아야, 객관 상황의 요구에 부응하고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낼 수 있다.

금번 현대차 경영위기는 객관적으로 볼 때 ‘재벌경영’과 ‘자본주의’ 모순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따라서 이 싸움 역시도 필연적으로 반재벌, 반자본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차례로 살펴보도록 하자.

 

(1) 먼저 ‘반재벌’ 성격에 관해 논의해 보자.

우리는 지금까지 현대차 경영위기의 근원이 총수경영, 후계승계 등 재벌문제와 관련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총수 1.73%, 총수일가 3.45%(2018년 5월 기준, 공정거래위)라는 적은 지분만을 가지고서 거대한 현대차그룹을 지배하고 또 그것을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끊임없이 현대차의 이윤을 관계회사로 유출시킬 수밖에 없다.

장기간의 이 같은 이윤 유출은 현대차의 체력을 쇠약하게 만들었으며, 급기야 내연기관차와 미래차 모두에 있어서 국제 자동차 메이저들에 비해 기술경쟁력이 만회하기 힘들 만큼 뒤처지게 만들었다. 따라서 이 싸움은 기본적으로 ‘반재벌’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현대차 경영위기의 원인과 관련하여, 일각에서는 ‘귀족노조’ 운운하며 현대차 노동자들의 상대적 고임금이 마치 위기의 주범인양 사태를 호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같은 비난은 현대차 재벌과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보수언론의 여론공세에 불과하다. 현재 세계 자동차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폭스바겐과 비교할 경우 그 점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폭스바겐의 독일 자체 노동자는 11만7천명으로 현대차보다 2배나 많은데, 생산대수는 122만5천대로 현대차의 73%에 불과하다.(2017년 기준) 노동시간에 있어서 볼 때도 폭스바겐 노동자들은 1년 평균 노동시간이 1300시간 이하이며, 이는 현대차 노동자들 1880시간보다 30%나 적다. 이렇게 적게 일함에도 불구하고 개별 기준 1인당 연봉은 2017년 기준으로 91,969유로(한국 돈 1억2천만 원)로 현대차 9200만 원보다도 더 많다. 이상은 현대차 위기가 결코 인건비 문제가 아니라, 기술력과 경영관리 능력에 있어서의 차이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현재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는 ‘광주형 일자리’ 역시도 방향을 완전히 잘못 잡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 자동차산업 전체가 존폐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그리고 그 본질이 ‘기술경쟁력’의 뒤처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주형 일자리’와 같은 대책은 여전히 문제의 원인을 현대차 정규직들의 고임금에서 찾는다. 그리하여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를 통해 생산체제의 양적 확대를 도모한다. 그것은 문재인 정권이 애타게 바라는 고용문제의 해결에는 얼마간 도움을 줄 수는 있을지언정, 또 다음 번 총선에서 득표율 제고에 유리할지언정, 문제의 해결책에서 어긋나기에 곧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지금도 재고 누적과 가동률 저하로 시달리는 현대차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뿐이다.

따라서 이 같은 방안은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위기의 본질(재벌문제)을 외면한 채, 잠시의 타협만을 강요하는 미봉책일 뿐이다. 앞으로 이어질 일련의 사태 전개에서 노동자들이 이 같은 정권과 현대차 재벌의 야합에 굴복하고 타협하게 되면, 이는 향후 본격적으로 전개될 투쟁에 있어 전선의 분명한 설치를 모호하게 만들고 노동자들의 예봉을 꺾는 데 기여할 뿐이다. 때문에 단호히 현대차 재벌에 반대하며, 재벌해체와 총수경영을 종식시키는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광주형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다음 호에 좀 더 상세히 다루기로 하자.)

 

(2) 다음으로 ‘반자본’적 성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비록 현대차 경영위기가 재벌경영과 관련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번 위기가 ‘재벌해체’나 ‘재벌민주화’를 요구하는 수준에서 완전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현대차 위기를 다시 살펴보자면, 그 근저에는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제4차 산업혁명이 존재한다. 즉 기존 내연기관을 대체하는 새로운 미래차 관련된 기술의 맹렬한 발전이 있으며, 이는 한국의 낡은 재벌경영과 정면으로 충돌함으로써 그 후진성을 남김없이 드러내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현대차 경영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이런 재벌경영을 해체하고, 그 대신 전문 경영체계를 구축하여 전력을 다해 이 기술발전을 따라가면 되는 것일까? 그러나 이 경우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이하 한 현대차 노조간부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전기차는 고용 측면에서는 악마의 기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기자동차 전용라인일 경우 최대 30%의 고용이 사라집니다. 부품도 3만개에서 1만 3천개로 줄어들기 때문에 기존 부품사의 줄도산과, 대형 부품사로 통폐합 되는 산업전환이 불가피합니다. 여기에 저의 고민지점이 있습니다.”

이는 지금 현대차를 비롯한 자동차업계 노동자들이 부딪치고 있는 딜레마를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미래차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그것을 상용화할수록, 노동자들에게는 곧바로 ‘고용불안’이 엄습한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선뜻 전기차든 수소차든 혹은 스마트카든지 간에 그 보급을 반길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4차 산업혁명이 앞으로 자동차산업의 고용에 몰고 올 파괴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래 글을 보면 더욱 잘 실감할 수 있다.

“축구장 18개 크기(18만4000㎡)의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고작 50여 명 뿐이다. 칸막이로 나뉜 작업 공간에 배치된 로봇 2대가 차체 부품에 분주히 접착제를 바른 뒤 다음 제작 라인으로 옮기면, 사방에 설치된 4대의 로봇이 이를 조립해 차체를 완성한다. 사람은 분주히 지게차로 조립에 필요한 부품을 실어 나를 뿐이다. ……이 공장에선 160대의 로봇이 전기를 소비하며 전기차를 만들고 있지만, 에너지 비용은 일반 내연기관 모델 생산 공장의 절반밖에 들지 않는다.” (중앙일보, 2018년 10월 2일자)

이는 먼 미래에 대한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지금 현재 독일 라이프치히에 있는 BMW 전기차 차체 생산 공장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이다. 보통 3~4백 명 정도의 노동자들이 완수해야 할 자동차제조 공정이 겨우 50명 인원의 투입만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같은 생산과정의 변화를 일으키는 4차 산업혁명은 자본주의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재앙’이다. 왜냐하면 한편에선 인간노동을 대체하는 로봇에 의한 생산체계의 거대한 발전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이로 인한 실업자 대군이 양산되기 때문이다. 그 많은 제품들을 누가 다 사줄 것인가? 언론들이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듯이 4차 산업혁명은 이렇듯 대량실업을 몰고 올 가능성이 크다. 모 정부관련 연구기관의 보고에 따르면, 이론상으로 보면 2025년이 되면 인공지능에 의해 기존 일자리의 70%가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노동자들은 여기서 현대차 경영위기에 대해 ‘재벌해체’ 요구에만 그쳐서는 안 되고, 나아가 그것의 ‘공기업화’까지 요구해야 하는 이유가 생긴다. 그것은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로, 기술혁신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는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과학기술의 발전이 왜 인류에게 이렇듯 재앙으로 다가오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과학기술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기보다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 올바르게 그것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윤 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이 문제인 것이다.

같은 기술이라도 이윤생산이 아닌 사회 전체의 ‘복지증진’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 의미는 180도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4차 산업혁명의 대표적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과 그와 함께 수반되는 제반의 과학기술혁명, 예컨대 소재혁명, 에너지혁명, 로봇과 자동화 기술의 발전은 사상 유례가 없는 풍부한 재화와 그 저렴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리하여 인류에게 있어 상대적으로 궁핍했던 시절에나 유효하였던 ‘등가교환’ 법칙의 의의를 완전히 상실하게 만들 수 있다. 넘쳐나는 재화 앞에서 굳이 이득과 손해를 따지는 행위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또 인공지능의 발전은 지금의 시장의 무정부성을 극복하고 인간이 사회적 생산을 의식적으로 통제하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의 한 영역인 ‘사물인터넷’의 발전은 이 같은 전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시기에 접어들면 인간은 각종 수치화된 정보의 수집, 기록, 처리에 있어 거대한 능력을 획득하게 된다. 각 개인과 다양한 사회 주체들의 생활과 생산 및 공공의 각 영역에서 일어나는 활동은, 수치화되어 시시각각으로 체계화된 사물인터넷 망을 통해 집결되어 자동적으로 분석되며, 이에 따라 필요한 경제 및 공공적 계획이 수립되게 된다. 이제 다시 시장과 같은 ‘보이지 않는 손’의 작동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지며, 그 무정부적 성격 때문에 발생하는 경제공황을 다시 겪을 필요가 없게 된다. 이리하여 인간의 보다 직접적인 생산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게 되며, 이 때문에 시장은 자연스럽게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기술은 ‘대량실업’을 몰고 올 수 있는 폐단과 함께, 다른 한편 인류에게 새로운 미래를 펼칠 수 있는 가능성도 부여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폐단을 줄이고 후자의 가능성을 전면화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주요 기업들을 하나 둘씩 사회적 소유로 바꾸어 가고, 현대차의 경우에는 그것을 ‘공기업화’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현대차가 재벌 총수일가나 소수 대주주들의 점유물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복지를 위한 수단으로 바뀌게 만들 수 있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일자리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은 물론이다.

둘째, ‘공기업화’는 4차 산업혁명의 기술발전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서도 한국의 입장에선 꼭 필요한 방안이다. 지금 경영위기의 늪에 빠진 현대차는 당분간 영업이익률이 높아지기가 힘든 상황이다. 앞으로 세타2 엔진결함에 의한 추가 리콜비용이 발생할 경우, 이를 감당하는 데만 2017년 수준의 순이익을 2년간 몽땅 바쳐야 할 실정이다. 이 같은 제약에 의해 시간이 갈수록 현대차는 세계 경쟁사들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되어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이 같은 격차를 줄이기 위한 유일한 방안은, ‘공기업화’를 통해 사회 전체의 기금이라 할 수 있는 ‘국가재정’을 체계적으로 투여할 수 있는 길을 합법적으로 마련하는 것이다.

중국이 강점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은 기업 차원의 연구개발과 국가적 차원의 연구개발이 긴밀한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면서, 낙후된 기술력을 단시간 내에 높이는 데 성공하였다. 실례로 이동통신 분야를 살펴보자면, 필자가 중국 유학을 막 시작하던 무렵인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중국은 핀란드의 노키아가 주도하던 제2세대 이동통신기술에 있어 매우 후진국이었다.

그러나 제3세대 이동통신기술인 TD-SCDMA를 자체 개발하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이 기술의 개발을 위해 정부의 지도하에 국유기업 및 관련 기업들이 대거 참여하였으며, 공공연구기관과 대학 연구역량 등이 함께 공동협력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마침내 독자적인 표준개발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제3세대 이동통신에 이르러서는 중국은 그간의 열세를 단번에 만회하면서 미국과 한국을 바짝 추격하였다. 지금 제4세대 이동통신은 세계 선두주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내년부터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제5세대 이동통신의 경우 현재 ‘화웨이’ 열풍이 보여주듯이 앞으로 중국이 주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오늘날의 과학기술 발전은 이처럼 전 사회적 역량이 총동원되는 진정한 ‘혁신국가’ 체계의 구축을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폐쇄적 재벌구조 하에서 한국은 기업들이 각개약진하고, 역대 정권은 ‘구상’과 정책만 발표해왔지 실제 추진은 미약한 채 정권교체 때마다 새로운 계획이 발표되는 악순환을 거듭해왔다. 지금 위기에 처한 현대차를 공기업화 함으로써 그 경쟁력을 되살리고, 더불어 명실상부한 혁신국가 체계 구축을 위한 계기로 삼을 수 있다.

 

(3) 이상을 종합하면, 향후 현대차 경영위기에 맞선 투쟁은 ‘재벌해체’와 함께 ‘공기업화’를 동시에 요구하는 투쟁이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생산 사회화와 극소수 총수일가의 점유로부터 비롯된 현대차의 위기를 가장 철저하게 해결하는 방법이며, 또 제4차 산업혁명에도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금은 소위 ‘주주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단순히 현대차 재벌을 해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정몽구-정의선 총수일가의 점유를 다시 소수 대주주의 점유로 바꾸는 것에 불과하며,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가 없다.

여기서 조금 더 일반화로 나아가자면, 필자의 생각으로는 지금 시기 ‘구조조정’에 맞설 수 있는 한국 사회의 유일한 방안은 앞으로도 ‘공기업화’ 일수밖에 없다고 본다. 공유제적 소유는 물질 생산이 전체 사회성원을 위한 복지향상에 복무하도록 할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은 또한 ‘시장과 결합’하고 또 그것을 극복해갈 수 있게 하는 가장 ‘유연한’ 소유형식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인공지능시대의 본격적 개막의 문턱에 서있다. 그 때문에 지금 전개되는 치열한 국제경쟁에 대비하는 것 역시도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중대 과제이다.

증기력을 핵심으로 하는 제1차 산업혁명이 18세기 중후반에 영국에서 시작된 후, 전 세계적으로 파급되는 데는 거의 10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전기력으로 상징되는 제2차 산업혁명은 19세기 후반부터 시작해서 근 50년의 세월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전자와 통신기술의 제3차 산업혁명도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근 30년의 세월동안 지속되고 있다. 이 같은 역사적 전례에 비추어 볼 때, 인공지능으로 상징되는 제4차 산업혁명은 비록 그 진행속도에 있어 앞서의 것들 보다는 더 빠를 것이지만, 그러나 그 본격화에는 앞으로도 일정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은 앞으로 사물인식, 행동, 계획 등의 순으로 그 발전단계를 높여갈 것이며, 이에 수반하는 3D인쇄와 같은 제조기술 역시도 다종 재료사용, 생명복사와 같이 단계적인 발전을 이룰 것이다.

이 때문에 제4차 산업혁명 관련한 기술이 경제와 사회생활의 각 영역을 점령해 가는 과정은 치열한 지구적 경쟁 속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며, 이는 교육제도 등 고급인력의 배양을 위한 인적 자원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몰고 올 대량의 실업사태에 대처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의 완비 두 가지가 방향이 될 것이다. 앞으로 이 두 방면에서 방안을 갖지 못한 국가들은 과거보다도 훨씬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현재 후자와 관련해 ‘기본생활수당’ 제도의 도입이 일부에서 거론되고 있다. 연구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그 소요예산은 최소한 연간 480조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렇듯 무엇보다도 문제는 재원 마련인바, 현재 미국과 유럽 및 일본 등 선진국들이 겪는 재정적자 문제를 볼 때 어떠한 자본주의 국가도 앞으로 더욱 소요될 복지재정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할 수 없다. 그것은 공기업을 바탕으로 한 국가만이 해결할 수 있다.

이 경우 재벌기업의 공기업화의 기초 위에서 수립되게 될 ‘공유제 기업이 주도하는 시장경제’는 이 같은 상품경제가 지양(止揚)되는 과도기적 과정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는 제도가 될 것이다. 과학기술과 생산력이 급속한 발전을 이루는 시대에는 한 사회가 얼마만큼 유연성을 갖는지가 최대의 관건이 된다. 그런데 이 같은 유연성은 다름 아닌 ‘이윤 동기’와 ‘복지 동기’를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는 ‘사회개혁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회개혁’은 소유관계 및 사회의 상부구조를 생산력발전의 객관적 요구에 맞춰 적시에 변화시키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이러할 때 주요 기업에 대한 전 사회적인 공유제를 기초로 할 경우, 사적기업 중심의 사회와 비교할 때 비교할 수 없는 유연성을 지닌다. 이 같은 사회적 소유의 유연성은 협소한 이윤추구만이 목적이 아니라, 사회 성원의 물질과 정신적 만족을 자신의 생산목적으로 삼는 사회의 기본 성격과도 관련된다. 이 목적을 위해 사회생산의 ‘이윤 동기’와 ‘복지 동기’를 적절히 조합해 낼 수 있으며, 또 공유제와 사적 소유 내지는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비율 등을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도 있다. 이점은 지구화와 과학기술혁명으로 상징되는 오늘날에 있어서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지구화와 과학기술혁명으로 인해 생산력발전 속도가 유례없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그 같은 생산력발전과 현존하는 생산관계 및 사회제도와의 충돌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공기업화를 위한 구체적 과정에 관해 논해보자. 현대차의 공기업화 계기는 필자가 앞서 예상하는 위기의 전개과정에 따르면 자연스럽고 필연적으로 찾아오게 된다. 현대차의 파산 위기에 대해 국가는 수수방관만 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공적자금’의 투여를 통한 회생방안을 마련할 것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나마 인지하면서 이미 자동차산업 지원책을 하나둘씩 내놓고 있다. 이러한 지원은 현대차 경영위기가 구체화 될수록 점차로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재벌구조를 타파하지 않고서는 문제의 원인을 전혀 도려낼 수 없으며, ‘밑 빠진 둑에 물 붓기’ 식으로 민중의 혈세를 낭비하기 십상이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현대차 경영진은 2018년 영업실적이 예년에 비해 대폭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서도 주가부양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11월30일 보통주 213만6681주와 우선주 63만2707주 등 총 276만9388주를 12월3일부터 내년 2월 말까지 장내매수 방법으로 매입하겠다고 공시했다. 이러한 자사주 취득액 규모만 2500억 원에 달하는데, 금년 들어 현대차가 자사주 취득에 쓴 돈만 해도 1조5400억 원에 이른다. 이는 1-3분기 연결 기준 누적 순이익(1조8483억 원)의 80%를 넘어서는 수준이고, 3분기 연결 기준 현금성자산(9조3364억원)의 약 16%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디지털타임스, 2018년 12월 2일자) 아까운 실탄이 엉뚱한 방향으로 소모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가 독자생존이 불가능함이 판명되어 정부지원이 본격화 될 때가 노동자들로서는 ‘위기이자 기회’이다. 우리는 IMF 위기를 당한 후 그 극복과정에서 경험한 쓰라린 기억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통분담을 호소해 놓고 나중에는 그 성과물들을 모두 재벌들이 챙겨가지 않았나? 이후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사회의 양극화와 빈곤화가 진행되었으며 가계부채는 늘어나는 반면, 재벌의 사내유보금은 마치 그에 정비례하듯 크게 증가하였다. 왜 아무런 책임이 없는 노동자들이 이런 경영위기에 대해 가장 많은 고통과 책임을 짊어져야만 하는가? 따라서 이번에는 반드시 ‘공기업화’를 요구하여야 하며, 현대차의 경영위기에 대해 사회가 책임을 떠맡는 대신 그 성과 역시도 전체 사회로 귀속시키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은 ‘노동자-시민-정부 대표회의’ 구성을 요구해야 한다. 만약 현 관료와 정치기구 하에서 공기업화만을 요구할 경우, 지금 포스코나 KT처럼 자칫 주인 없는 무주공산이 되어 갖가지 비리의 온상이 되기 쉽다. 예컨대, 박근혜와 이명박 정부 때의 낙하산 인사가 그것인데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그러하다!), 이 경우 기껏 애써 경영 정상화를 이룬 후 나중에 가서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을 이유로 다시 ‘사기업화’를 추진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것들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선, ‘노동자-시민-정부 대표회의’를 설치하여 이들로 하여금 전문 경영인 선임을 비롯한 관리감독을 맡도록 하여야 하며, 이후 현대차를 포함한 다른 ‘구조조정’의 선례로 삼도록 하여야 한다.

현대차에 대한 공기업화를 요구하는 시기 역시 중요하다. 이 같은 ‘공기업화’ 요구는 위기가 전면화 된 뒤가 아니라 가능한 빠를수록 좋다. 지금부터라도 당장 요구하고 나서야 한다. 왜냐하면 하루가 다르게 진행되는 제4차 산업혁명과 세계 자동차업계의 기술발전 추세에 비추어 볼 때, 조금이라도 늦을수록 이후 만회가 그 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도 ‘연기금’을 동원하고, 몇 가지 조처를 보완한다면 공기업화를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다.(필자 레디앙 연재 글, [비정규직 투쟁의 방향 정립⑧-1] “재벌의 본질적 성격과 개혁 방안” 참조)

끝으로, 현대차 경영위기에 맞선 투쟁에서 노동자들이 ‘공기업화’를 요구하는 것은 너무 과도하지 않을까하는 우려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때문에 자칫 자본과 정권, 그리고 사회여론의 뭇매를 자초할 것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데,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이 같은 당당한 요구로 맞설 때만이 앞으로의 싸움에서 수세적 입장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공세를 취할 수 있다.

첫째, 노동자계급은 단순한 반대세력이 아니라, 자신을 반드시 ‘대안세력’으로 부각시켜야만 한다. 그를 위해 이번 위기를 계기로 그동안 한국 사회의 낡은 병폐인 ‘재벌경영’과, 더 나아가 자본주의 한계를 뛰어 넘는 ‘총체적’ 대안을 전 사회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만 한다. 우리가 공기업화를 비켜 가고 나면 어떻게 이런 큰 그림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이렇듯 가능성 있는 더 밝은 미래에 대한 제시는 투쟁에 나서는 노동자들에게 싸움의 목표와 의의를 보다 분명하게 인식케 하며, 새로운 동기 부여를 하게 한다. 그간 보아왔듯이 자본의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에 있어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싸움이 성공한 사례를 찾기가 힘들다.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 ‘구조조정 반대’ 만 외치는 것은, 비록 일부 사회적 동정은 불러일으킬 수는 있지만, 그것은 또한 자본의 ‘천부적 권리’에 도전하는 것이기에 대단히 무력할 수밖에 없다. ‘공기업화’와 같이 자본주의를 뛰어 넘는 대안을 제시할 때만 투쟁주체 스스로가 당당해 질 수 있으며, 나아가 전체 노동자계급을 단결시키고 한국사회에 널리 흩어진 광범위한 ‘반재벌’ ‘반자본’ 세력을 결집시켜 낼 수 있다.

둘째, ‘공기업화’ 요구를 통해서 진정으로 재벌과 정권에 위협을 가하고,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양보와 타협을 모색하게끔 만들 수 있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명확한 대안과 탄탄한 논리로 무장할수록, 내부의 대오는 더욱 굳건해지며 상대가 만만히 볼 수 없게 만든다. 자칫 잘못 건드리면 노동자들의 요구를 공론화하고 확산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는 적들에게는 더욱 치명적이다. 이러한 이유에서도 전체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은 현대차 경영위기와 공기업화 요구를 빨리 공론화하여 입장을 통일시키는 것이 유리하다.

셋째, 노동자들은 이 싸움에서 일시적인 패배를 감내해야 할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싸움은 결코 단기간의 일회적 싸움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노동자들이 이번 싸움에서 ‘공기업화’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는 것은 큰 의의를 갖는다. 이는 향후 다른 구조조정투쟁의 기본 방향을 제기하는 것이며, 현대차 노조의 재기를 위한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그것은 더 나아가 지금 시기 절실한 노동계급의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움직임을 촉발시키게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창당이 1997년과 1998년 노동법개악 저지와 구조조정 반대투쟁의 일시적 좌절 속에 가능했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향후의 구조조정 투쟁과정에서 강제해고, 무급휴가를 당한 노동자들의 전원 복직과 ‘공기업화’ 요구를 내걸고 끈질긴 싸움을 계속한다면, 또 그것을 새로운 정치세력화 과제와 결합시켜 낼 수 있다면. 우리는 과거 민주노동당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 새로운 노동자계급정당을 만들어 갈 수 있으며, 앞으로 한국의 정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낼 수 있다.

이렇게 싸우는 것이 무기력하게 구조조정 반대만을 외치다가 끝나고 마는 싸움보다는 훨씬 값지고, 결국 승리를 쟁취하는 방식이 아니겠는가?

 

앞으로 현대차 경영위기의 진전 상황에 따라 노동자들의 투쟁 역시 변화될 수밖에 없다. 현대차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그 성격으로 볼 때 존폐 위기에 몰릴 수 있을 만큼 심각한 것이다. 따라서 ‘독자생존’을 기준으로 향후 그 진행과정을 다음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현 재벌경영체제 하에서 독자생존을 모색하는 단계. 현재의 총수경영을 그대로 둔 채 ‘경영쇄신’ 등의 자구책을 통한 위기탈피 노력을 지속하는 시기이다. 정부는 이 때 현대차와 한국 자동차산업 전반의 위기 조짐을 감지하고 부분적인 지원에 착수한다. 현장은 경영위기와 관련한 자본 측의 한층 강화된 선전에 의해 심리적으로 얼마간 긴장되고 위축된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와 함께 자본은 현장규율의 강화, 노동강도 강화를 점차 노골화할 것이며, 현장의 주도권 탈취를 위한 노조와의 경쟁이 격화된다. 그러나 아직 대규모 구조조정은 소문만 떠돌 뿐 정식 거론되지는 않는 상태이다. 이 단계에선 노동자들도 경영위기의 진단, 즉 위기냐 아니냐, 얼마만큼 심각한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등을 놓고 내부 논쟁과 함께 사측과의 여론전을 전개한다. 노동진영 전체에서도 점차 현대차 경영위기가 쟁점으로 부각되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써 현대차노조보다 먼저 ‘공기업화’ 요구가 제출되어 토론되지만, 아직은 선전적 차원에 머무른다.

(2) 정부의 개입 하에 독자생존을 모색하는 단계. 대규모 리콜사태 발생과 그에 따른 거액의 비용 손실, 또 세계 자동차시장 위축의 지속과 현대차의 판매대수, 매출액, 영업이익률 감소가 지속되어 마침내 적자 전환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간 현대차 수뇌부의 ‘경영쇄신’ 노력이 실효성을 거둘 수 없음이 판명됨에 따라, 현대차 ‘독자생존’ 여부가 대내외 적으로 공식 쟁점화 된다. 이 경우 자본 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제연구소, 증권계, 보수언론 등의 ‘과감한 구조조정’에 대한 여론 압박이 노골화된다. 다른 한편 구제금융 등을 통해 정부가 본격적 지원에 착수한다. 부분적으로 총수경영 책임을 물어 이들의 ‘사재일부’ 반납, 심지어는 경영권 포기와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까지 거론될 수 있다. 물론 이때 가장 큰 희생에 대한 요구는 노동자들에게 돌려질 것이다. 예컨대 그동안 고임금과 고비용, 강성 귀족노조 때문에 위기가 발생했다는 식으로 몰아갈 것이다. 여기서 강제적인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이 발표되고, 이에 맞선 노동자들의 결사항전으로 인해 양 진영의 충돌이 본격화한다.

이에 따라 다음 두 가지 가능성이 다시 제기될 수 있다.

첫 번째는 노동자들이 ‘재벌해체’와 ‘공기업화’ 그리고 ‘노동자-시민-정부 대표회의’ 소집 요구를 내걸고 정면으로 맞서서 완강하게 투쟁하며, 사회적으로도 우호적인 사회여론이 형성됨으로써 정부가 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경우이다. 이때는 현대차의 독자생존이 가능하고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에는 새로운 장이 펼쳐질 수 있다. 지난 호에서 언급했듯이, ‘공기업화’를 통해 국가자금을 체계적으로 R&D에 투여할 수 있는 합법적 방안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중국처럼 기업 차원의 연구개발과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이 긴밀한 유기적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뒤처진 기술력을 차츰 만회해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사회적으로는 대량해고와 비정규직의 양산을 방지함으로써 국내 실업문제의 더 이상의 악화와 시장 축소를 방지할 수 있고, 정부는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늘려 차츰 경제성장의 기반을 바꾸어 갈 수 있다. 이렇게 하여 노동자와 시민 그리고 정부가 하나가 되어 공동의 목표를 위한 노력을 경주할 수 있게 되며, 경제와 사회 전반의 체력을 튼튼히 함으로써 국제 선두그룹을 추적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하게 된다.

다른 한 가지 가능성은, 노동자들의 ‘공기업화’ 요구에 대해 자본과 정부가 힘으로 짓밟고 강제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경우이다. 사실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관례를 보면 이 같은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그러나 이 경우도 노동자들이 당당하게 자신들의 ‘공기업화’ 요구를 내걸고 정면으로 맞선다면, 과거처럼 그 대오가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전히 마지막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차를 포함한 전체 36만 명에 달하는 한국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의 밥줄이 달린 만큼, 그 저항의 규모도 엄청날 것이다. 때문에 자본과 정권으로써는 노동자들이 완강하게 저항할 경우 일회적인 공격만으로는 자신들의 구조조정 요구를 다 관철시킬 수가 없다. 노동자들의 저항이 거셀수록 자본의 구조조정 역시 최소화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며, 싸움은 장기화 하게 된다. 이후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강제해고와 무급휴가에 대한 철회와 노동자들의 전원 복직을 요구하고 끈질긴 싸움을 계속해 나간다면, 이 싸움은 차츰 새로운 질로 변화해 가게 된다. 즉 정치세력화를 위한 운동과 결합되면서 한국 노동운동사에 있어 완전히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것이다.

(3) 독자생존의 포기와 해외매각으로 나아가는 단계. 만약 위의 두 번째 단계에서 노동자들이 애초부터 자본과 정권의 여론을 앞세운 대대적인 공세에 위축되어 소극적인 ‘구조조정 반대’만을 외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사회의 동정적 여론만 기대한 채 적당히 저항하다가 결국 지난 1998년 때처럼 굴복하고 만다. 이 경우 현대차와 한국 자동차산업의 독자생존은 최종적으로 물 건너갔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쇠락을 거듭하다가 해외매각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선 현대차 경영위기를 몰고 온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재벌경영체제가 이 경우 철저히 해소되기 힘들며, 또한 제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고용위기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전혀 대책을 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술혁명을 추진할 국내 인재의 양성과 시장기반의 확충도 모두 포기될 수밖에 없으며, 대신 대량 해고와 비정규직화로 인해 사회의 양극화는 한층 심해지고 계급계층 간의 대립은 더욱 첨예해진다. 이 같은 상황에서 비록 정부가 일정기간 거액의 돈을 쏟아 부으면서 회생을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한들, 그것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 될 수밖에 없다. 곧 바닥이 드러나게 될 것이며, 이미 현저하게 벌어진 세계 선두주자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되어 독자생존을 포기하고 해외매각을 추진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지금 ‘광주형 일자리’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현실 진행을 고려하면, ‘광주형 일자리’는 위에서 설정한 제1단계 내에서 양 진영이 맞붙는 ‘서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후 현대차 경영위기의 진척에 따라 그것은 점차 성격을 달리 해 갈 것이다. 이에 관해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현재 ‘광주형 일자리’를 추진하는 동력은 현대차보다는 문재인 정부로부터 나오는 것 같다. 현대차 경영진은 지금 자신의 위기가 ‘고임금’ 문제나 값싼 자동차의 양산과 같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자동차시장 성장세의 둔화, 트렌드 전략의 실패, 새로운 미래차 기술 개발에 있어서의 전략상 오류 등에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기에 아직까지 정부의 이 같은 계획에는 소극적이다. 또한 지금 괜히 노조를 자극하여 파업을 일으킴으로써 생산 차질을 야기하는 등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시기는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이에 비해 인기 유지를 위해 ‘일자리 창출’이 급한 문재인 정부로서는 현대차보다 더 조급하다. 지금처럼 북핵문제나 남북교류 하나만 가지고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다. 조금씩 그 약발이 다해가고 있는 상태이고, 한국정부가 북미관계의 종속변수이기에 그 진전 역시 순조롭지 않다. 날로 경제가 악화되고 그에 비례하여 지지도도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일자리 창출’이 제일의 정책과제가 되고 있다. 이는 내후년 총선을 승리로 장식하고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기 위해서도 지금부터 꼭 이루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가 문정부의 추진에 마지못해(?) 응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a) 무엇보다 ‘후계승계’라는 아킬레스건이 있다. 그것을 빨리 마무리 짓는 것이 급선무인데, 이를 위해선 정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지주회사제로의 전환을 위해서든, 공정거래위가 ‘순환출자’ 고리 끊기의 마감 시한을 설정한 것과 관계되든, 어떻든 지금으로서는 서슬 퍼런 적폐청산의 칼을 아직 휘두르고 있는 현 정부와 척을 두어선 이로울 것이 없다. (b) 정부가 나서서 총대를 메고 노사관계를 풀어준다고 하니, 한번 ‘기대해 볼’ 만하다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잘만 하면 강성 현대차노조와 정규직들을 약화시킬 수 있고, 자동차생산 사업장에 있어 비정규직을 더욱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광주형 일자리’는 형식상으로는 정부가 대주주인 독립법인을 설립하여 추진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중간 자회사’를 두는 것을 통해 비정규직을 양성하는 것과 본질상 다를 바가 없다. 당연히 그것이 활성화 되면 정규직의 상대적 ‘고임금’을 하향평준화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더군다나 소요될 자본의 상당부분과, 공장설립 부지, 노동자복지 등을 모두 광주시(사실상 중앙정부의 지원)가 책임져 주겠다고 하니 현대차로서는 별반 부담될 것이 없다. 이에 더해 정부는 현재 경영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차와 자동차산업에 대해 ‘구제기금’ 성격의 자금지원을 ‘당근’으로 제시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광주형 일자리’ 추진에 있어 이 같은 초기의 능동과 피동의 관계는 앞으로 서로 뒤바뀌어 질 수 있다. 그 계기는 다름 아닌 현대차 경영위기의 단계적 진척이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원래 일정한 ‘선의’를 가지고 이 같은 정책을 추진했었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재벌체제’라는 한국적 현실을 무시한 정책은 애초부터 자신의 본뜻과는 달리 변질되면서 노동자들에게 있어 큰 재앙이 될 가능성을 다분히 지니고 있다. 그 같은 실례는 많이 있는데, 예컨대 IMF 외환위기 직후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대중과, 이후 서민의 대통령이라는 노무현 등이 한 일이 그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자유주의 철학에 입각하여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그 보완책으로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한다고 하였지만, 현실에서는 전자만 이루어진 채 후자는 불철저하게 수행되었다. 결국 이 때문에 한국사회에는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재앙이 발생하였으며, 재벌들에게 이용당하고 그들만 좋은 일 시켜주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이는 이들이 본질상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이해를 대변하는 세력으로서의 정치이념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광주형 일자리’ 역시 그렇게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이 같은 사업이 실현됨으로써 기존의 노조체계와 정규직을 무력화시키는 선례가 남겨지고 또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게 된다면, 이후 이 정권 하에서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재벌들은 이 같은 ‘제도혁신’을 충분히 활용할 것이다.

실제 ‘광주형 일자리’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복잡한 색체들이 담겨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 이 사업이 제안될 때는 ‘4차 산업혁명’ 관련한 거시적 대응과 사회적 합의를 통한 더 많은 ‘일자리 창출’이란 취지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후 ‘4차 산업혁명’ 관련한 대응전략은 연구개발 투자를 통한 미래차의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기보다는, 엔진과 변속기 등이 불필요해지는 향후 미래차의 기술혁명에 조응하는 ‘유연하고 탄력적인 생산시스템과 고용시스템의 창출’로 그 중점이 바뀌어 졌다. 비록 그럴듯한 표현으로 포장을 하였지만, 그러나 이러한 애매한 규정이 한국적 상황에서 실행될 경우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다. 자유롭게 해고가 가능한 수많은 기간제와 임시직 등의 비정규직의 양산을 의미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앞으로 현대차 경영위기의 전개는 ‘광주형 일자리’의 변질을 위한 충분한 계기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점차 자신의 위기가 현실화할수록 현대차는, 그간의 암묵적인 ‘노사협약’을 깨고 자연퇴직 감소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정규직 감소비율의 속도를 높이려 할 것이며, 이를 위해 ‘광주형 일자리’를 이용하려 할 것이다. 물론 그 때가 되면 이미 군산형, 대구형, 구미형 등 수많은 아류들이 탄생되어 있을 수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현대차를 비롯한 한국 자동차산업 전체가, 이 같은 수많은 사실상의 비정규직들로 이루어진 ‘하청생산’ 체제로 변모되게 된다. 이미 미래차 경쟁에서 상당히 뒤쳐진 현대차로서는, 그 같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는 방식을 통해 ‘일정 기간’ 이나마 독자생존의 숨결을 연장할 수도 있다. 결국 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광주형 일자리의 귀결점은 한국 완성차 부문의 ‘독자생존’의 포기이다. 대다수 한국 자동차산업의 노동자를 비정규직화 한 토대 위에서 초국적 자본(국제 자동차메이저)의 하청기업화 내지는, 기껏해야 종속 파트너로의 전락이 그 종착역이라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이에 맞서는 길은 오직 ‘투쟁’ 밖에는 없다. 지금 ‘광주형 일자리’를 저지하는 투쟁을 통해 분명한 전선을 만들어 놓지 않고, 어물쩍 하니 ‘사회적 합의’니 뭐니 하며 끌려 다니다 보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 만큼 현대차를 비롯한 한국의 자동차산업 전반은 지금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에 있어 아직 얼마간 진보적인 역할이 남아 있긴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노동자가 자신의 절실한 ‘계급이익’을 양보하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또한 이 같은 진보적 역할 역시 문재인 정부가 지금처럼 여전히 ‘한미동맹’의 신화 속에 갇혀 있는 한 그 한계는 명확하다. 현재의 북핵문제를 진척시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한미동맹’의 신화를 깨면 된다. 미군 철수를 약속한다면 북한은 반드시 핵을 포기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그렇게 해서 미국을 압박해가야만 한다. 이렇게 되면 미국 역시 북핵 협상에 성실히 임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북핵 문제를 걸고넘어지는 이유는 ‘미군을 주둔시키기 위한 명분’을 얻기 위한 것이며, 또 그래야만 한미일 삼각동맹을 통해 전략적 경쟁상대인 중국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 같은 ‘목적’을 지닌 미군 주둔에 대해 직접 위협을 가한다면, 그 ‘핑계거리’에 불과한 북핵에 대해서도 지금보다는 진지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지금 이렇게 나아가지 못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노동자들이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다.

결국 노동자들이 반재벌 투쟁을 견결히 수행하고 미군 철수 요구를 들고 나올 경우, 지금 시들어가는 문정부의 ‘개혁성향’을 강화시켜줄 수 있다. 재벌과 친미 보수세력의 공세에 둘러 싸여 점점 동요하면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문정부내 개혁파들은, 이로부터 새로운 강력한 지원세력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가오는 현대차투쟁에 대해 한국의 다른 노동자들도 관심을 갖고 함께 동참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국 노동계급 전체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모두의 투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은 반도체와 함께 한국경제를 떠받치는 양대 지주이며 그 파급효과가 대단하다. 또 여기서 한 번 결정된 관행은 전 산업에 전파되는 관례가 있다. 1998년 현대차 구조조정 투쟁이 그러하였는데, 그 투쟁은 전체 노사관계에 있어 하나의 분수령이 되었다. 그 이후 사내하청과 기간제를 통한 비정규직이 급속히 양산되었으며 전 산업과 업종으로 확대되었다.

가장 강력한 한국 노동계급의 마지막 정예부대가 존재한다는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현대차와 기아차 공장에는 각각 5만과 3만의 잘 조직된 조합원 대중과, 현장정파및 의식 있는 수많은 활동가들이 민주노조를 옹호하고 있다. 이들 한국 노동계급의 최정예부대가 무너지게 되면 우리 운동의 미래는 지금 보다 훨씬 암울해질 것이다. 비정규직들의 소규모 게릴라식 투쟁만이 존재하게 되는데, 그 같은 투쟁의 어려움은 지금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5년차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4년차 구미 아사히글라스투쟁, 추위와 더위 속에 건강을 해칠 수밖에 없는 고공투쟁을 수행중인 전주택시와 파인텍 노동자들의 투쟁이 그것이다. 이러한 불리한 상황에 내몰리기 전에 자동차 정규직부대의 최후의 일전을 한국 전체 노동자들이 함께 ‘사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대차 경영위기와 관련한 싸움에 있어 승패의 관건은 다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현대차-기아차 자체 8만여 명의 내부 역량을 어떻게 충분하게 동원할 수 있는가이다. 지난 2009년 쌍용차 900여명 용사들의 ‘옥쇄파업’ 투쟁의 위력을 우리가 실감하였듯이, 결사항전으로 맞서는 대공장 노동자들의 투쟁은 대단한 위력을 지닌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그 규모에 있어 당시 쌍용차투쟁과는 비교가 되지 안 된다.

다른 하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대의 실현 여부라 할 수 있다. 이점에서 볼 때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 역시도 비정규직 투쟁을 중시하고 지금부터라도 의식 전환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아직도 일부 정규직 활동가는 비정규직의 개별 분산적인 소규모 투쟁의 겉모습만 보면서, ‘전체로서의 비정규직 투쟁’이 갖는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대공장 정규직들은 자신들이 한번 일어나면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거라는 생각이 강하다. 그러기에 굳이 이처럼 영향력이 미미한 소규모 투쟁에 대해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비정규직은 개별적으로는 소규모이지만 전체로서는 거대한 집단이다. 더군다나 자동차업종 내 수많은 부품회사 노동자들 상당수가 이 같은 비정규직 계열에 속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들은 재벌체제의 모순의 심화와 4차 산업혁명의 전개에 따라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집단이다. 정규직 자신과 그 자식들 역시도 이후 대부분이 이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비정규직들이 함께 투쟁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현대차 싸움의 규모와 역량은 훨씬 왜소해 질 수밖에 없다.

숫자적으로 그러할 뿐만 아니라, 사회여론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이들 비정규직들이 대공장 정규직투쟁에 ‘귀족노조’ 운운하면서 냉소를 보내는 한, 그 같은 분위기에서는 아무리 위력 있는 ‘대공장 총파업’도 제대로 조직될 리가 만무하다. 지금도 인터넷 사이트를 들여다보면 대기업노조와 관련된 기사 하단에는 반드시 수많은 냉소를 담는 댓글들이 눈에 뜨인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되돌려놓지 못하고서는 제대로 된 싸움을 할 수가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대가 이루어진다면 이 같은 ‘귀족노조’ 운운하는 여론공세는 저절로 분쇄된다.

정규직은 지금부터라도 말뿐만이 아닌 실제 ‘행동’으로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솔선수범하여야 한다. 비근한 예로, 울산과학대 농성장의 천막 지키는 문제가 있다. 학교 측의 야반 기습철거를 막기 위해 밤이 되면 최소한 2인 이상이 안에서 잠을 자야만 한다. 지금 평균연령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돌아가며 지키고 있는데, 인원이 부족하여 김덕상 위원장은 4년 채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있다. 그래도 부족해서 지역의 연대동지들이 개별적으로 동참하며 함께 지키고는 있지만 조직적 지원이 절실한 실정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현장실천대’를 조직하여 몇 사람의 지원자를 순번을 정해서 보내준다면 이 같은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지금처럼 일상 시기에 기울이는 이러한 작은 노력은 이후 큰 싸움이 벌어졌을 때 그 몇 십 배의 보답으로 돌아올 것이다. 울산과학대(그 배후에는 현대중공업재벌이 있다!)는 정규직과의 이 같은 조직적 연대 움직임만 보더라도 지금 보다는 훨씬 성의 있는 모습으로 협상테이블에 나올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울산의 시장과 동구청장이 모두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에 의해 장악되었지만, 정작 농성장 청소노동자들은 세상이 바뀐 것을 전혀 실감할 수 없을 만큼 사태 진전은 지지부진하다. 그것은 저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약점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여전히 ‘시간 끌기’로 이쪽이 지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대공장 정규직들의 ‘조직적 동참’은 이 같은 상황을 빨리 종식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다. 그것은 저들의 기대가 허황된 것이며, 시간을 끌수록 전체 노동진영과 정규직 대군을 각성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뿐임을 깨달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기왕에 말이 나온 김에 ‘현장실천대’에 대해 조금 더 언급하도록 하자. 그것은 단위사업장과 지역 두 차원에서 결성될 수 있다. 현 시기 노동운동의 최대 과제는 누가 뭐래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상호분리와 고립상태를 극복하고 통일적인 노동자계급 대오를 형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그 구체적인 실현 형태 또는 실천 형식으로서의 ‘현장실천대’ 사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전략적 중요성을 들자면 이러하다.

지금 단사노조 중심의 한국 노동운동의 구조 속에서, 현장실천대는 현 민주노총 체계의 한계로 인한 비정규직과 정규직, 중소사업장과 대규모사업장 연대의 공백을 보완할 수 있는 유력한 형식이라고 본다. 그것은 1990년대 초 ‘전노협-지노협’ 체계에서 일찍이 간직했던 지역연대의 전통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과거 단위노조와 활동가 단체들은 함께 전노협-지노협 체계로의 결합을 통해, 대공장과 중소공장, 투쟁력이 강한 사업장과 약한 사업장, 선진적 의식의 활동가와 일반 노조원의 상호침투를 이룰 수 있었으며, 당시 산별조직이 없는 조건에서 그 약점을 상당 정도 보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이 보존되어 발전하기보다, 지금의 민주노총 체계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일정 상실되고 약화된 감이 있다. 이후 개별 노조들은 사실상 단위사업장 차원으로 다시 갇히게 되었고, 그 위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라는 또 하나의 분열적 요소가 덧붙이게 되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현재의 민주노총과 지역본부는 형식상으로는 산별과 업종 연합체인 상급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하부 사업장에 대해 특히 대공장 사업장에 대해 지도력이 취약하며, 동원력을 포함한 집행력이 크게 떨어지는 한계를 갖고 있다. 단사와 지역 차원에서 건설되는 현장실천대는, 이 경우 계급의식과 집행력 면에서 현 노조체계의 약점을 일정 보완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예컨대, 단위사업장 일반 노조원의 수준이나 그때그때의 정서에 제약받지 않고, 전체 계급이익과 노동운동의 요구에 따라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지원을 즉각 수행할 수 있다. 반대로 정규직 입장에서 본다면, 대공장 사업장 투쟁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의 하나인 ‘우호적인 사회여론’의 조성을 위한 비정규직의 지지선언을 끌어 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현장실천대는 정규직 활동가와 비정규직 활동가로 함께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장실천대의 기동성 있고 선도적인 활동은 공식체계인 민주노총 조직이 움직일 수 있는 추진력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비유하자면 단위사업장 차원에서 전체 조합원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대의원과 상집 간부 등이 농성, 집회, 부분파업 등을 수행함으로써 차츰 전체 사업장의 동력을 이끌어 내는 것과 같다.

이 같은 현장실천대의 존재는 향후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대의 실현, 한국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장실천대는 단사와 지역 차원에서 건설되는데, 이들은 제 정파의 공동사업으로, 혹은 지역 공동사업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각 사업장 정파들과 선진 활동가들의 움직임은 지금 시기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들은 이 같은 모든 대중의 행동을 낳게 하는 최선두에 서 있으며, 현장실천대를 제일 먼저 앞장서 구체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한국 노동운동의 일대 사활을 결정짓게 될 운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이들이 기존의 느슨한 관행에서 벗어나 사태의 절박함을 하루 빨리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울산에서는 노동운동의 전반적 위기 상황과 지역 및 사업장 내의 문제점을 극복코자 ‘현장기획토론회’가 조직되었다. 그리하여 지난해 10월초부터 11월 하순까지 5차례에 걸친 토론이 진행되었는데, 주제는 비정규직 문제, 재벌 문제, 중국 문제, 그리고 평화와 통일 등 현 시기 노동운동과 관련된 핵심 쟁점 4가지가 선정되었다. 필자가 다른 동지들과 함께 참여하면서 느낀 점은, 지금 현장활동가들의 상태는 우리 운동의 ‘과도기적’ 모습을 정확히 보여준다는 점이다. 우선 그들의 동기가 다양하였는데, 무슨 얘기하는지 한 번 들어보자는 사람에서부터, 다른 사업장 동지들과 친교를 맺기 위해 온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본다면 현재 민주노조운동이 부딪치고 있는 한계를 돌파할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즉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이 많이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실제 참여자들의 행동이 그 같은 문제의식과 완전히 일치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새로운 혁신에 대한 기대를 가졌던 반면에, 다른 한편에선 지금까지 해오던 관성에 눌려 이 같은 전망을 찾기 위한 시간과 노력에 있어 과감한 투자를 하지 못하는 한계도 보였다. 일반적으로는 참석자들이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하였는데, 필자가 보기엔 그것은 그동안 이 같은 토론과 학습 문화가 비교적 소홀히 취급되어 온 결과라고 보인다. 그러나 처음의 의욕을 간직하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술적인 문제들을 극복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학습토론의 성과를 기초로 점차 ‘실천소조’로의 발전적인 전환을 꾀하여야 한다. 일회적인 학습과 토론만으로 끝나고 마는 것은 의미가 그리 크지 않으며, 이제부터는 기존의 토론회가 가졌던 한계가 극복되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노동운동과 사회상황에 대한 새로운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탄생하는 이 같은 실천소조는, 향후 ‘비정규직철폐, 재벌개혁,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새로운 노동운동을 선도할 씨앗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현재 자주성, 민주성, 연대성, 변혁성과 같은 상실되어 가고 있는 건강한 민주노조 정신을 되살림으로써 현 노조체계를 더욱 강력히 호위할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이끌 선봉부대로서 현장 내 기반 구축이라는 사명을 짊어져야 한다. 이들 새로운 세력을 기초로 할 때만이 앞서 언급한 ‘현장실천대’ 사업도, 그리고 과거 민주노동당을 뛰어 넘는 진정한 정치세력화도 가능하다.

이제 우리 앞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해고와 비정규직과 산업재해가 남무 하는 자본의 천국을 향한 길이요, 다른 하나는 이러한 자본의 천국을 거부하는 노동해방의 새 세상을 만드는 길이다.

 

Redian, 1월 4,11일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는 공동게재에 동의함).

김정호

2001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 사회를 연구할 목적으로 16년간 중국 유학생활을 보냈다. 중국인민대학과 상해재경대학에서 각각 금융(학사)과 재정(석사)을 전공했고 최종적으로 북경대에서 레닌의 정치신문사상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7년 8월 귀국하여 울산에 정착해 현재 울산 평등사회노동교육원에서 교육강사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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