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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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분명하다. 문화운동에도 길이 있다. 문화운동은 정치노선이 본대가 아니다. 문화운동의 목표는 정치이념을 넘는다. 새로운 문명이 목표이며,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고난(가난)의 초월이 목표이다. 내면으론 고난의 초월이며, 외적으론 고난(가난)으로부터의 초월적 역사, 즉 혁명이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문화운동이라 할만한 대중노선이 발생한 때가 있었다면 1980년 초기다. 이 운동은 대학가의 서클 문화와 대학축제문화를 민중문화로 바꾸었습니다. 이후 1987년까지 이어오는 노동자 농민의 대투쟁에서 보아왔듯이 민중문화는 민중투쟁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다녔다. 문화패들이 있어서 투쟁을 고무하고 연대감을 고취했다. 이식적 모던이즘과 식민지문화를 극복하고 민중해방구를 만들던 일대 쾌거가 저 80년대의 문화운동이다. 이 때는 민중이 만들어가는 마당문화운동이었다.

당연히 여기에는 문화운동의 주도세력이 있었다. 이들은 1980년대 민주전선에 선봉에 서기도 했었다. 5.3인천항쟁, 6월항쟁에서 현격한 활동을 했다. 이들은 문화운동의 현장파라고 불렀다. 그러나 민주전선을 배반한 양김세력의 분열과 이후 극열 해진 정치노선의 경쟁으로 문화운동도 자기 구심점과 철학을 잃고 정치조직의 하부조직이 되거나 이익단체의 장르조직 연대구조에 머물며 문화운동의 독자적 전략단위를 잃어버렸습니다. 민중문화운동협의회도 해체된 것이다. 이제는 문화운동 세력들이 정치노선을 갖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정치이념이 없는 문예활동을 미성숙한 개인주의 예술활동 정도로 치부했다.

이건 또 뭔 말이냐? 의아하실 분도 계시겠다. 전략단위 문화운동이 무너졌다는 이 말은 정치경제의 여러 당파성을 넘지도 못했고, 시장주의 이익단체도 넘지 못한 채 정치적 선전과 자본시장의 장식문화로 전락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30여년이 지난 작금의 문화현실은 알다시피 시민운동 속 문예활동은 전략적 단위가 없다. 블랙리스트 예술인들은 문예조직 없이 아직도 거리에서 투쟁한다. 문화예산에 목줄 건 예술가들은 프로젝트 사업에 목매고 살고 거대한 자본주의 시장은 창조적 문화예술을 외면한지 오래다. 문화운동은 여전히 비주류로 독자적 문화운동을 찾으려 한다. 그 결과 2016,7년 촛불혁명에선 기성 문예조직은 활동력을 잃었고 독자적인 블랙리스트 예술인들의 저항, 지역에서 모여든 문화활동가들만 개인과 소모임으로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촛불혁명의 대오에 참여했다. 이들이 있어서 그래도 촛불혁명이 신명이 났고 볼거리 놀거리 어울릴 거리가 풍요로왔다. 그리고 시민이 스스로 문화예술을 기획 창작해서 나오게 되었다. 특별한 예술가만 촛불혁명의 문화를 만들어 간 것이 아니었다.

촛불혁명과 평화운동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이 시대에 정치노선만으로는 한계가 명백해졌다. 물론 조직화가 능사는 아니지만 촛불혁명에서 보았듯이 서로 따로 준비하고 따로 마당판을 벌리다가 같이 어울리기도 하며 다채로운 대동세상을 만들 던 모습에서 새로운 문화운동의 가능성을 본다. 전략을 갖춘 새로운 문화운동의 길이 필요해졌다. 낡은 좌우이념대립, 정파적 평화통일 운동은 시민운동 독자적 전략을 방해 한다. 시민의 감성과 정서적 소통이 되고 새로운 길을 찾는 문화운동의 전략적 필요성이 절실해 진다. 문화운동의 전략이 없이 수만 수십만이 운집하는 시민의 문화적 욕구와 그들이 바라는 세계상을 반영하기 힘들다. 또한 중장기 시민평화운동의 부재를 넘는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운동의 길은 이제 분명해 보인다. 문화행사를 시민단체가 즉석에서 예술가들을 모집해서 매주 때우듯이 하던 지난 광화문 촛불집회 문화행사는 문화를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연출하려는 집단적 노력이 없었다. 수만 시민들을 주장하려는 구호만으로 모집하고 이끄는 대는 한계가 있다. 단지 집회의 내용만이 아니라 집회의 형식이 내용을 재 규정하려는 수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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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3월11일 <촛불혁명 승리의 날>, 한지에 붓그림, 120호, 김봉준 작

앞으로 향후 통일시대 정치노선은 극우에서 극좌까지 더욱 더 파생할 것이고 통일노선에서 한미동맹 지지 쪽과 조중동맹 지지 쪽으로 기울어 나뉘며 평화통일의 낮은 단계 국가연합 노선에서도 그 어느 한 쪽으로 힘이 기울 것 같다. 통일은 어느 방식으로라도 국제적 힘의 강세 쪽이 잡게 되는 게 현실적 전망입니다. 그러나 나는 좌우파 중 누가 승리하느냐 보다 창조적 평화통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시 창조적 혁명이 필요해 진다. 중요한 것은 통일의 과정과 통일 이후까지 서로 상처를 덜 받는 평화적 통일과정을 만드는 신문명의 길, 문화의 길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서로 져도 이겨도 다 통일이 대세인, 민족의 성과가 되며 민족 민중의 승리로 가는 길의 긴 문화운동의 전략이 필요하다.

앞으로 문화운동은 한반도 좌우대립적 정치노선을 넘어서는 길을 선도해야 한다. 지금 이대로 가다간 해방직후 좌우이념 갈등시기를 또 반복한다. 좌우파 모두가 어느 정도 인정하는 한반도 평화의 길, 대세를 잡는데 문화운동의 독자적 전략이 필요하다. 정치노선이 얼마나 많으냐. 북의 김일성의 주사파, 이승만 박정희 파, PD NL혁명파, 국회로 진출한 각 정파들, 시민운동의 각 정파주의들, 주민자치민주주의자들, 이념 없는 시민 평화운동, 이념 있는 평화운동들 모두 무지게 빛처럼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갖고 활동할 것이다. 각종 좌우파의 이념적 갈등이 극심해 질 수 있다. 이런 혼란의 시대를 넘어서는 문화운동의 큰 역할이 필요하다. 대중은 이념으로 생각하기보다 지관과 삼성으로 느낀다. 시민대중이 정치이념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평화문화의 길이 요구된다.

긴 혁명(Long revolution)의 문화운동 길은 촛불민주주의처럼 평화혁명을 성취하며 가는 기나긴 문화운동의 길이다. 따라서 평화운동은 모두 문화운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폭력혁명이 아닌 평화혁명은 그 자체가 문화운동이며 평화의 촛불혁명을 계승한다면 그것도 문화운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촛불혁명이야말로 좌우대립과 입법 사법 행정 언론 권력내부까지 설득하고 동참하게 한 문화운동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저 20세기 한반도의  모진 ‘고난의 혁명들’을 승화하고 초월적으로 계승한다면,

남북통일 과정에서 공과 과를 서로 이해하고 초월한다면, 그것은 대승적 평화의 문화운동 길밖에 없습니다. 문화운동이 부박한 정치를 견인하고 촛불혁명의 대중노선을 이어갈 때입니다. 그 대중노선이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모두 창조적인 새 길일 것이다. 2017년 3월11일 촛불혁명 승리의 날에 시민은 승리의 축제를 벌렸다. 그 광경을 역사풍속화로 그린 그림과 그 소회를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련다. 내 상상력은 여기까지다.

칼럼_181213(1)
나의 그림 <촛불혁명 승리의 날> 부분도 자수화- 시민의 수공예품 2018년작

“촛불시민혁명-대통령 파면의 날. 역사풍속화.

3월10일 헌재가 대통령탄핵을 인용하고 3월 11일 20차 촛불집회가 열린 광화문은 초봄이었다. 날씨도 시민을 반기듯 따듯해졌고 우리 시민은 저마다 기쁨을 나타냈다.

내 눈에 띤 것을 중심으로 풍속화를 그렸다. 그러나 그냥 인상기록이 아니다. 역사는 어떤 선택과 해석을 갖는가에 따라 달라지듯 역사풍속화도 마찬가지다. 구도와 형식과 내용이 이미 세계관을 담는다.

내가 두드러지게 주목한 것은 반전반핵 생명평화 퍼레이드다. 그렇다. 젊은 세대는 다음 세상을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짝퉁과 날림이 판치는 한국형 근대국가를 극복하고 인권 생명평화의 새로운 나라를 꿈꾼다.

벌써 청년들의 마음에는 박근혜 정권은 역진불가로 지나갔다. 우리의 나라를 광화문 광장을 캔파스로 하고 축제로 새로운 세상을 그리고 있었다. 대안세계로 녹색평화, 생물종 다양성 시대, 주민자치민주주주의, 안전한 나라로 말이다.

나는25년전에 두메 산골로 들어갔다. 9년전에는 산골화실 자리에 신화미술관을 세우고 관람자에게 21세기는 재신화 시대가 도래한다고 역설해 왔다. 모든 생물에는 영혼이 있음을 서로 인정하는 영성 평화의 시대 말이다. 인류가 이룩한 토템문화, 대지의 신화, 자연의 신성한 은유가 광화문 촛불집회 마지막 날 드디어 나타났으니 얼마나 반가우냐.

아, 고맙다. 젊음이. 청소년들 사이에선 생태 공동체 평화의 꿈이 서린 재신화의 평화민주주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김봉준

신화미술관장. 사)오랜미래문화연구회 이사장. 40년 미술 업의 삶. 그러나 미술을 위한 미술이 아니라 삶을 위한 삶에의한 살림의 예술을 추구함. 원래 서울태생이고 홍익대학 미술대 조소과를 졸업하였으나 서울을 떠나 39세에 강원도 산골로 들어와 지금것 23년 화실에서 살며 회화 조각 판화를 하며 신화미술관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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