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만 촛불시민’의 유엔인권상 수상을 염원한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교수
2016년 12월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

지난 4월 3일, ‘1700만 촛불시민’이 2018년 유엔인권상 후보에 추천되었다. ‘1700만 촛불시민’이라는 불특정 다수의 시민이 후보로 추천된 것은 유엔인권상의 역사에서 아주 이례적이 일이다. 올 해 12월 10일에 개인 혹은 단체에게 주어지는 6개의 유엔인권상은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념식에서 수여된다.

세계인권선언

1948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이 공표되었고, 이 선언을 기념해서 이 날이 세계인권의 날이 되었다. 20년이 지난 1968년에 세계 인권에 기여한 개인과 단체에게 유엔인권상이 처음으로 수상되었다. 그리고 매 5년 마다 수여되는 이 인권상은 올해로 제10회를 맞는다. 그 동안 수상자들은 1998년 ‘전 세계 모든 인권운동가’에게 수여된 사례를 제외하면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주어졌다. 이런 점에서 ‘1700만 촛불시민’을 후보로 추천하는 것은 오히려 수상에서 불리할 수 있다. 어쩌면 ‘퇴진행동’이라는 단체나 당시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개인을 추천하는 것이 수상가능성을 더 높일 수도 있다. 그러나 촛불민주주의의 정신에 부합하는, 인권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은 역시 ‘1700만 촛불시민’이라는 조직화되지 않은, 자발적으로 참여한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다.

지금까지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마르틴 루터 킹, 넬슨 만델라, 지미 카터 등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 많다. 아시아인도 있다. 2003년에 수상한 중국의 덩푸팡이다. 그는 덩샤오핑의 아들로 문화혁명 당시 추락하여 장애인이 되었지만, 장애인인권 신장을 위한 헌신적인 활동을 인정받아 유엔인권상을 수상했다. 단체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국제사면위원회, 국제적십자사 등이 있다. 1978년에 튀니지 여성동맹, 1998년에 수단여성연합 등은 아프리카 여성들의 인권신장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1993년에 유고 내전이 치열할 당시 종교나 인종에 관계없이 생명 보호에 헌신적이었던 사라예보 중앙병원 의료진도 수상자가 되었다. 2013년에 멕시코 대법원이 라틴 아메리카 인권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인권상을 수상하는 역설적인 일도 일어났다. 부패한 멕시코 행정부와 달리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킨 것이 인정된 결과였다. 유엔인권상의 많은 수상자들은 정치적 부패와 탄압의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인권 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인권상을 수상하였다.

총 아홉차례에 걸쳐 개인 혹은 단체에 59개의 인권상을 수여할 때 그 근거는 명확히 1948년 세계인권선언과 1998년 세계인권규약에 두었다. 그렇다면 ‘1700만 촛불시민’은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아 인권상을 수상할만한 어떤 기여를 하였는가? 1700만 촛불시민이 활동한 분야는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 인권과 민주주의 분야이다. 촛불시민을 인권상 후보로 추천한 글에는 “평화로운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의 실천을 통해, 한국의 1700만 촛불시민들이 인권 분야에 두드러지고 집합적인 기여를 만들어 냈다. 평화, 자유, 정의의 가치를 신장하면서 2016년과 2017년에 23 차례에 걸쳐 모인 이들은 선출된 정부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침해하는 것에 맞서 이 두 가지 가치의 회복을 요구했다. 그들의 저항은 자발성과 비폭력이라는 뚜렷한 특징을 보이며, 이는 아시아와 그 밖의 지역에서 인권 운동의 모델이 되었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2016년 12월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뉴스1]

 

이러한 취지의 추천서를 국내에서는 4월 3일에 경희대 임채원 교수가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개인의 자격으로, 4월 5일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단체의 자격으로 각각 제출하였다. 한국에서 추천활동은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인권단체에서도 큰 관심과 호응을 불러왔다. 그 동안 공동의 협력을 통해 4월 5일에 아시아 인권단체로는 아시아 민주주의 네트워크(Asia Democracy Network)가, 아프리카 인권단체로는 ‘씨비쿠스(CIVICUS)’가 같은 취지로 추천서를 제출했다.

추천서에 제시된 1700만 촛불시민이 인권 분야에서 이룬 주요한 성취는 세계인권선언 제20조 1항 평화로운 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 실천과 제20조 제1항 직접 정부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적 참정권의 실천이었다. 이번 유엔인권상 추천서에는 “2016년 10월 29일부터 2017년 4월 29일까지 1700만 촛불시민은 대한민국 전역에서 위험에 처한 민주주의와 인권의 복원을 요구하며 자유롭고 평화적인 집회를 지속했다. 183일 동안 거의 매주 토요일 시민들은 서울 등 전국의 광장에 모여, 평화적인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였다. 이는 세계인권선언 제20조 제1항에 명시된 평화적인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의 실천에 해당한다. 그리고 촛불시민들은 이 나라의 정부에 직접적인 참여할 권리를 실행했다. 이는 세계인권선언 제21조 제1항에 명시된 정치적 참여 권리의 실천에 해당한다. 법적 절차에 따라 대한민국 대통령은 2017년 3월 10일에 탄핵되었고 이는 헌법재판소의 전원일치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촛불시민들의 성취는 그들 나라에서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요구와 법의 지배에 만족하는 데 머물러 있지 않았다. 모든 계층과 세대의 1700만 참여자들이 함께 이룬 집회는 보통의 시민들이 인권의 보호와 신장에 기여하는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비폭력적인 집합적 행동을 통해 저항은 촛불을 들고 개인적이고 평화적인 행동의 형태로 일어났다. 이처럼 촛불집회의 빛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곳에서 비추면서 아시아 등 세계의 풀뿌리 인권 행동주의에 모범사례가 되었다”고 그 의의를 제시하고 있다.

인권상 후보 추천에는 추가적인 서류로 지지 편지(a letter of support)를 제출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임채원 교수가 각각 지지 편지를 작성했다. 정세균 의장은 대통령 탄핵과정에서 광장에서 시민들에 의한 직접 민주주의와 국회에서 탄핵결정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민주주의 역사적 사례를 만들었다고 그 의의를 제시했다. 임채원의 지지 편지에는 촛불시민들이 이룬 신생민주주의의 성장과 성숙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아시아, 아프라카, 라틴 아메리카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세계인권선언이 공포된 1948년 같은 해에 한국은 일제 식민지배를 청산하고 미 군정을 넘어서 정부를 수립했다. 이 지지 편지는 1948년 세계인권선언은 신생민주주의의 인권 신장이라는 소망을 담아 제시된 20세기의 민주주의의 이정표였고, 촛불민주주의는 신생민주주의 중에서 서구 대의제 민주주의를 넘어선 21세기의 대안적 민주주의로 진화한 점을 역설했다.

2018년 유엔인권상 후보들의 추천이 마감된 직후 이제 유엔인권이사회를 중심으로 심사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진다. 이제까지 전례에 따르면 유엔총회의장이 위원장이 되어, 인권이사회의장, 경제사회이사회의장, 여성지위위원회의장 그리고 인권이사회 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5명의 특별위원회가 구성된다. 이 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9월에 인권상 수상자가 선정된다. 이 수상자들은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념식에서 인권상을 수여받는다. 올해도 예전과 같이 6개 정도의 인권상이 분야별로 개인과 단체에 수여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18년에 1700만 촛불시민이 유엔인권상을 받는다면 세계 인권과 민주주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중대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신생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뤄진 지난 70여년 동안 수많은 시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진전은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유엔인권상이 지난 50년 동안 수상자를 선정하고, 그 대부분의 수상자들이 열악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하거나 이를 도와온 활동가라는 점은 그 동안 인권 신장이 지지부진했다는 반증이다. 그런 점에서 1700만 촛불시민은 세계 인권과 민주주의 역사에서 지대한 기여를 했고 앞으로 신생민주주의의 인권과 평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최근 서구 국가에서도 미국 트럼프, 러시아 푸틴 그리고 유럽에서 극우정당의 활동 등은 세계 인권과 민주주의에 심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1700만 촛불시민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활동은 앞으로 신생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서구식 대의제 민주주의에도 대안적 인권과 민주주의 모델이 될 수 있다. 매년 1월에 스위스 다보스에서 경제아젠다를 중심으로 세계경제포럼이 열리고 있다. 세계 인권과 민주주의 단체들이 신생민주주의에서 비경제적 아젠다인 인권,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를 주제로 광화문 광장에서 대안적인 다보스 포럼을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만일 2018년 말 1700만 촛불시민이 유엔인권상을 수상한다면 세계 인권과 신생민주주의를 위한 공론장이 활성화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