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 설계한 강골 학자, 문정인 특보

이동현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사회부, 국제부, 경제부 등을 거침. 사라진 정치를 찾아 오늘도 여의도 바닥을 더듬고 있음.
문정인-중앙

문정인 대통령 통일ㆍ외교ㆍ안보 특별보좌관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국제정치 학계의 권위자이자 외교ㆍ안보 전략가다. 사회과학 논문 인용 색인에 등재된 논문이 40여편에 달한다.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 모두 참여했다.

학자이지만 거침이 없다. 민감한 현안이라도 학자적 소신에 따라 발언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북한의 핵 동결을 조건으로 한미훈련을 축소해야 한다” “한미동맹이 깨진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는 발언으로 보수 진영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 특별보좌관으로서 발언 수위가 선을 넘은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문 특보는 학자로서의 의견이라며 굽히지 않는다.

문정인-중앙
문정인 대통령 통일ㆍ외교ㆍ안보 특별보좌관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국제정치 학계의 권위자이자 외교ㆍ안보 전략가다.(사진 출처:중앙일보)

키 180㎝에 몸무게 80kg으로 고교 시절‘한 주먹’ 하기도 했던 문 특보는 국제사회의 ‘문제아’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대화’라는 생각이 확고하다. 힘(군사력)으로 제압하겠다는 건 현실적이지 못할 뿐더러 힘으로 제압할 수 있다고 한들 얻을 게 없다고 본다. 한반도가 핵 전쟁터가 돼 버린다면 전세계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

문 특보는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에서 이어진 대북포용 정책인 햇볕정책 설계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2016년 6월 연세대 교수직에서 퇴임한 문 특보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구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학자로서의 마지막 혼신을 쏟고 있다. 문 특보는 세간의 비관적 전망과 달리 연말쯤 한중 정상회담이 열리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활로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친다.

 

미군철수 여론 살피러 온 미 대표단과 인연, 정치학자 길로

문정인 특보는 1951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5형제 중 둘째였던 그는 종목을 가리지 않고 운동경기에 선수로 참여할 정도로 스포츠를 즐겼다. 180㎝ 큰 키로 체격 조건이 유독 좋았다. 오현고 시절 씨름ㆍ유도 선수로 시합에 자주 나섰고, 투포환 던지기 실력은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글쓰기 소질도 남달라 제주도내 백일장 수필부문에서 장원을 2년 연속 차지하기도 했다.

문 특보는 1969년 한국외국어대 이탈리아어학과에 입학했지만 이내그만두고 다시 시험을 봐 연세대 철학과(70학번)로 진학한다. 연대 학보 ‘연세춘추’에서 기자로 또 편집국장으로 일하면서 인생의 항로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문 특보는 애초 대학 졸업후 신문사에 취직할 작정이었다. 학보사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학보사 활동을 한 이들에겐 일반적 관례와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972년 미 국무부가 주최한 아시아ㆍ태평양 10개국 학생지도자 회의에 연세춘추 편집국장 자격으로 한국 대표로 선발되면서 생각이 달라진다. 4개월간 미국 전역을 돌아보면서다. 문 특보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우연히 하게 된 미국 여행을 통해 세계를 보는 안목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진 군 생활에서도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 만한 경험을 쌓게 된다. 첩보를 총괄하는 국군정보사령부에 배속되면서 국제관계와 관련한 각종 보고서를 접할 수 있었다. 자연스레 국제정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국가정보원 1차장 등을 지낸 대표적 통일ㆍ외교ㆍ안보 전문가 이수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 특보와 군 생활을 함께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에서 제대한 1976년 한 선배의 권유로 이슬람과 인연을 맺게 되는 색다른 경험도 한다. 한국이슬람중앙연합회 국제담당 사무차장으로 일하면서 영어로 된 이슬람 관련서적 13권을 국문으로 번역했다. 보수 정치권 일각에서 종교 문제로 문 특보에 대한 트집잡기를 하는 배경이다. 문 특보는 이와 관련해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스스로 불교신자라 여기다 2년 동안 이슬람교로 개종하기도 했다”며 “미국 유학 때는 기독교에 가까웠지만, 지금 제 종교를 묻는다면 종교가 없다가 정답”이라고 말했다.

정치학자를 향해 발을 내딛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대학 4학년 때 찾아온다. 1978년 한국을 찾은 미 공화당 전국위원회 관계자들을 수행, 통역을 맡은 것이다. 미 공화당 인사들은 당시주한미군 철수 논란이 불거지자 한국 여론을 살피기 위해 방문했다. 이 인연은 5년간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미 메릴랜드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다.

메릴랜드대에서 정치학 석ㆍ박사학위를 받은 문 특보는 1985년 ‘켄터키대 정치과 조교수를 시작으로 월리엄스대, 튜크대 교수 등으로 자리를 옮기며 한동안 미국에서 활동했다. 미국 국제정치학회 부회장을 맡는 등 미국 학계에서 명성을 날렸다. 학계를 대표하는 ‘미국통’으로 꼽히는 배경 중 하나다. 그러던 1994년 연세대 정외과 교수로 부임하며 한국으로 귀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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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특보는 국민의정부에서 참여정부로 이어진 대북 포용정책인 햇볕정책을 설계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간 두 차례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에 모두 참여했다.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 모두 참여… 햇볕정책 설계자

문 특보는 국민의정부에서 참여정부로 이어진 대북 포용정책인 햇볕정책을 설계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분단 55년만인 2000년 6월 평양에서 이뤄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의 정상회담과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ㆍ김 위원장의 정상회담 등 그간 두 차례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에 모두 참여했다.

문 특보는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정성회담 동안두 정상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특별수행원으로 1ㆍ2차 정상회담에 참여했던 인물은 문 특보를 제외하면 남북 경협문제로 참여했던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윤종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 특보는 한 인터뷰에서 “1차 정상회담 때의 6ㆍ15공동선언이 총론이라면 2차 정상회담의 10ㆍ4 공동선언은 각론에 해당된다”며 “10ㆍ4 공동선언 중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은 참으로 획기적이었는데 그 계획이 제대로 진행됐더라면 연평도 포격과 같은 안타까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참여정부에서는 ‘동북아시대위원장’을 맡아 동북아평화번영 정책 수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국정원장, 외교부 장관, 통일부 장관, 대통령 안보보좌관 등 외교ㆍ안보 라인에 빈자리가 생길 때마다 하마평에 이름이 오르내릴 정도로 신임을 받았다. 문 특보는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캠프에 참여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을 이어간다. 지난 대선 캠프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좌장 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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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특보는 “2차 정상회담의 10ㆍ4 공동선언 중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이 제대로 진행됐더라면 연평도 포격과 같은 안타까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사진 출처: 연합뉴스)

“북한 요구 못 들어줄 이유 없다”… 美태도 변화 주문

학계를 대표하는 ‘미국통’이자 ‘북한통’인 문 특보는 핵ㆍ미사일 등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대화라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한다. 북한이 원하는 건 국제사회가 북한을 주권국가로서 인정하고, 내정간섭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굳이 미국을 겨냥해 핵ㆍ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잇단 도발을 하는 것도 결국 미국으로부터 확실한 체제보장을 받아야 한다는 현실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거다.

문 특보는 특히 “북한의 요구를 못 들어줄 이유가 없다”며 미국 측의 태도 변화를 줄기차게 주문하고 있다. 북ㆍ미간에 말 폭탄을 주고받으며 긴장을 고조시켰던 9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군사 옵션까지 거론하자 문 특보는 “많은 분들이 한미동맹이 깨진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고 한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문 특보는 “북한 지도부 궤멸과 핵 자산을 없애는 정치적 목표나 군사 지휘부를 궤멸 시키는 군사적 목표 모두달성이 어려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무모하게 (군사행동을) 한다면 인류에 대한 죄악이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북미 간 군사 충돌이 일어난다면 재래식보다 오히려 핵전쟁으로 발전되는 것 아닌가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문 특보가 거듭되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북한 핵 동결을 전제로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는 ‘쌍 잠정중단’도 고려해야 한다”며 이른바 쌍 잠정중단론을 거듭 주장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 특보는 지난 6월 미 워싱턴 방문 당시 내놓은 한ㆍ미 연합군사훈련 축소 발언으로 논란이 불거진 점을 의식한 듯 최근에는 “정부의 입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학자로서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핵 동결을 전제로 대화는 가능하지만, 북한이 비핵화를 해야만 대화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어려운 얘기”라며 “현실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곧잘 거론되는 군사 옵션은 쉽게 입에 오르내리긴 하지만 현실적이지 못할 뿐더러 정치적ㆍ군사적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하루빨리 북한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거듭 호소하고 있다. 문 특보는 9월 27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10ㆍ4선언 10주년 기념식 특별강연에서 “북한이 핵탄두를 100개 가지면 지금과 협상 테이블이 또 달라진다”며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라 북한 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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