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에 사회과학원을 설립하자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국을 대표하는 진보적 사회학자. 전쟁과사회(2006), 대한민국 잔혹사(2013), 대한민국은 왜?(2015)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질곡과 모순을 끈질기게 파헤침. 이를 통해 현재 한국인의 삶을 성찰하고, 미래의 대전환을 모색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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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한겨레신문(2017. 6. 13)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촛불시위와 대선,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한국 사회는 큰 전환기에 섰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수없이 많지만,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교육정책 즉 국가의 미래를 위한 고급인력 양성과 장기 국가발전 전망 수립이다.

그런데 교육정책이라 하면 우리는 언제나 대학입시 개편을 떠올리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국가나 사회의 지력(智力), 즉 학문 생산 능력이다.

지력은 국제 대학랭킹에서 국내 대학들의 순위, 혹은 교수들의 영어 논문 편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을 얼마나 생산해 낼 수 있는가, 인류의 미래를 위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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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규모를 감안했을 때, 미국내 한국 유학생 비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이미지 출처: http://premium.chosun.com/)

2011년 봄 유네스코와 국제사회과학협의회가 공동으로 <세계 사회과학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이 보고서 집필에 한국 사회과학계를 대표하는 학자가 단 한 명도 참여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한국보다 학문적으로는 뒤처졌다고 생각했던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국 및 라틴아메리카’ 학자들이 상당수 참여했다는 사실이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미국 내 유학생 수에서 한국 학생은 전체 3위이지만, 인구 대비로 보면 압도적 1위다. 세계 모든 나라가 미국 학술시장의 영향권 아래 있는 것은 사실이나, 수십년째 교수나 박사 연구자를 미국 대학에서 공급받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서울의 상위권 대학 사회과학 분야에서 미국 박사의 비율은 80% 이상이며, 경제학 교수의 95% 이상이 미국 박사다.

타계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자 암스덴은 한국만큼 재벌 대기업 문제가 중요한 나라가 없는데, 한국에 대기업 연구자가 드문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질타한 적이 있다. 다른 중요 분야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대학원은 한국 학생들에게 그런 것을 가르쳐줄 리 없기 때문일 것이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대학의 기능은 학문과 교육인데, 지금까지 한국에서 국민들의 입신출세, 지위추구 열망에 부응하는 학부 중심의 대입 정책은 넘쳐났어도 국가의 미래를 위한 학문 정책은 없었다. 대학원, 특히 박사과정 육성은 언제나 무시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세계의 유명 대학은 거의 대학원 대학이지만 한국의 상위권 대학은 기본적으로 학부 대학이며, 특히 사회과학 분야 박사과정은 거의 텅 비어 있다.

배울 학문적 내용과 학위취득 후 취업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둘 다 부정적이다. “학부는 한국에서, 박사는 미국에서”, “이론은 중심부에서, 적용은 현지에서”. 식민지 지식순환 체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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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열등했던 한국 유학생은 미국 박사를 따고 한국에 돌아오면 엘리트 지식인으로 대접받으며 지배계급의 일부로 편입된다. 어떻게 된 일일까. 김종영 교수의 <지배받는 지배자>는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서울대나 주요 대학 학부 정원을 축소하고 박사과정을 내실화하자는 요구는 지난 20여년 동안 수없이 제기되었다. 한국연구재단의 연구소 지원 사업, 특히 국내 인문사회계 박사과정 학생 지원도 이런 취지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변화된 것은 거의 없다. 주요 대학이 학부 대학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스스로 연구 중심, 대학원 대학으로 변신을 시도하면 가장 좋을 것이지만, 지금까지 경험으로 봐서는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다.

그래서 나는 지식의 만성적인 외국 의존, 서울 주요 대학의 국내에서의 지위독점 구조를 극복하고, 한국의 정치·사회에서 제기되는 문제의식을 가진 사회과학 박사를 양성하기 위해서 국가 사회과학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단극적인 지식권력 독점구조를 다극화하고, 지방 국립대학들의 사회과학 연구의 허브 기능도 수행하기 위해서는 세종시가 최적지일 것 같다.

세종시에 입주한 정부기관, 국책연구원의 정책 의제를 수용하고 지방 국립대학과 교수·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큰 시너지 효과가 발휘될 것이다.

한 나라의 수준은 대학, 아니 대학원과 지식 생산 능력에 달려 있다. 국가가 자체 사회과학 박사를 양성할 수 없다는 말은 아직 국가의 장기 정책이 없다는 말과 같다.

인문학, 자연과학과 달리 사회과학은 현장성, 문제의식, 역사성, 그리고 정치·사회적 적용 가능성에 기초하되 보편성을 지향한다. 사회과학자들의 국제적인 교류는 더 활성화되어야 하고, 국내 박사과정생도 더 국제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회과학의 독자성과 독창성, 박사 양성의 기반 마련이다.

‘학문’에 뜻을 둔 청년들이 ‘교수’가 되기 위해 미국에 갔다 와서 한국을 이론 적용의 대상으로 삼는 일은 이제 끝나야 한다.

“세종시에 사회과학원을 설립하자”의 1개의 생각

  1. 보여주기식 학문의 나열속에 위정자들에게 기생하는 학문의 태도,
    백성을 생각하는 학문이 되지못하고, 백성을 핍박하는 학문이 되어
    군림하고 출세의 지향점으로 삼는 학문이기에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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