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 시대의 청년들

뉴노멀 시대의 새 청춘드라마

김선영
TV평론가. TV를 통해 한국사회를 보고, 쓰고, 말함.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등에 칼럼을 기고 중. 컬처비평 팟캐스트 '잉여싸롱'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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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의 새문예지 <릿터>가 화제다. 출간 2주 만에 초판 5000부가 매진됐다고 한다. 젊은 층이 활발하게 이용하는 SNS에서 독서 후기가 줄을 잇는 걸 보면, 혁신을 표방하며 젊은 독자에게 적극적으로 말 걸기를 시도한 전략이 성공을 거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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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는 지난해 40년 간 이어오던 계간 ‘세계의 문학’을 폐간하고, 지난 8월, 새로운 형태의 문예지 ‘릿터’를 창간했다. ‘릿터’는 문학(Literature)과 ‘-하는 사람'(-tor)의 합성어다. 릿터 창간호 표지(왼쪽)와 기획이슈.

‘뉴 노멀’을 주제로 한 커버스토리에서도 청년문제에 대한 글이 선두에 배치됐다. ‘응답하라 2016은 가능한가?-20세기 청년 고아들과 뉴 노멀 시대’라는 제목의 이 글은 “청년이 사라졌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청년문제는 “높은 실업률, 저성장의 고착, 경제적 불안정의 일상화로 대표되는 시대에, 그 모순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를 말해야 할 주체의 자리에 청년이 없는 현상이야말로 “뉴 노멀 시대의 핵심 징표”라는 것이다.

청년이 사라졌다!!

사실 이 같은 ‘징표’가 진작부터 뚜렷하게 나타난 분야는 TV였다. 단적인 예가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청춘물의 실종이다.

과거 청춘 드라마는 젊은 층 뿐만 아니라 전 세대의 사랑을 받은 장르였다. 풋풋한 청춘 스타들이 등장해서만이 아니다. 당시 청춘물에서 꿈과 희망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는 1987년 이후 경제 성장과 민주화가 동시에 진행되던 ‘젊은’ 한국사회의 성장기와 궤를 같이 했다.

청춘물의 성장서사 자체가 당시 사회를 압축해서 재현하고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캠퍼스 드라마의 시초격인 KBS <사랑이 꽃피는 나무>가 방영된 해는 1987년이었고, 청춘 시트콤, 트렌디 드라마 등으로 분화되며 청춘물이 전성기를 누린 시기는 외환 위기 직전까지였다.

이후 한국 사회의 성장이 점점 둔화되면서 청춘물도 함께 마이너 장르로 밀려났다. 2000년대 후반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로 들어서면서부터는 TV에서 청춘물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

사회 전체가 성장의 동력을 잃었고, 청년들은 ‘삼포세대’에서 ‘N포 세대’로 이동하며 갈수록 삶의 기회를 제한당했다. 성장의 테마를 핵심으로 삼는 청춘물은 더 이상 사회와 청년의 현실을 대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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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사라진 TV공간에는 복고와 중년이 들어찼다.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건축학개론’, ‘응답하라1994’, ‘꽃보다 청춘-페루’, ‘불타는 청춘’

청년들의 이야기가 사라진 자리를 채운 건 과거의 전성기를 되새기는 기성세대의 목소리였다. 캠퍼스는 영화 <건축학개론>과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 같은 복고물 안에서나 되살아났고, ‘청춘’은 tvN <꽃보다 청춘-페루>, KBS <불타는 청춘>처럼 중년층의 수식어로 거듭났다. 소비여력 없는 청년층 대신 구매력 있는 중년층에게 회춘의 서사를 파는데 집중한 것이다.

뉴 노멀 시대의 청춘 드라마

이러한 가운데 올해 동시에 등장한 두 편의 청춘 드라마는 특별한 주목을 요한다. 상반기 작품인 tvN <치즈 인 더 트랩>과 얼마 전 종영한 JTBC <청춘시대>이다. 두 작품은 젊은이들을 둘러싼 현실의 변화된 지형도를 예리하게 포착하며 기존의 청춘물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한 마디로 뉴 노멀 시대의 새로운 청춘 드라마라 할 만하다. 두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과거의 청춘물에서 인물들의 성장을 견인하는 꿈과 연대적 관계가 사라진 세계를 그린다는 점이다.

과거의 청년 주인공들이 꿈을 향한 의지와 우정 혹은 사랑이라는 다양한 이름의 연대를 통해 성장해 나갔다면, 이제 더 이상 그런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두 드라마가 그리는 풍경은 이 성장의 가능성이 철저히 차단당하고 모든 관계가 파편화된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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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청춘드라마에는 과거처럼 함께 꿈꾸면서, 아파하고 성장하는 청춘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철저히 고립됐으며, 꿈을 잃었고, 관계는 파탄됐다. 이런 비정상적인 청춘의 모습이 뉴 노멀 시대의 정상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치즈 인 더 트랩>은 시작부터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기존의 캠퍼스 드라마에서 단골로 등장하던 개강파티는 훈훈한 선후배의 단합을 도모하는 자리가 아니라 회비 횡령과 누군가 이를 학교 익명게시판에 폭로하는 사건으로 얼룩진다.

여기에 수강 신청 아이디 도둑 사건, 팀플레이 점수를 둘러싼 갈등 등이 계속해서 이어지며 스릴러 못지않은 긴장감을 자아낸다.

연대는커녕 서로를 이용하고 배신하며 의심하고 혐오하는 관계의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가 <치즈 인 더 트랩>이 묘파한 뉴 노멀 시대의 캠퍼스다. 학자금 대출금과 취업을 위한 학점 경쟁 못지않게, 뒤틀리고 왜곡된 인간관계로 고통을 겪는 주인공 홍설(김고은)의 모습은 청년층의 비극이 단순히 경제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은 총체적 비극임을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비극은 <청춘시대>에서 한층 뚜렷하게 드러난다. 홍설보다 빈곤한 청춘인 주인공 진명(한예리)은 모든 관계가 무너진 세계의 한가운데 서 있다. 그녀의 가족은 동생을 식물인간상태에 빠뜨린 사고를 계기로 밑바닥 삶으로 떨어져 동생이 죽기만을 바라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진명처럼 가난한 청춘들이 모인 직장에서는 조금 더 편한 카운터 자리 하나를 놓고 집단 따돌림을 행하고, 상사는 진명의 절박한 상황을 이용해 성희롱을 비롯한 온갖 ‘갑질’을 서슴지 않는다. 친절과 호의로 다가오는 관계조차 진명에게는 부담이다.

“나 좋아하지 마요. 누가 나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약해져요. 여기서 약해지면 진짜 끝장이에요”라고 고백하는 진명의 모습은 이미 ‘삶의 한계선’에 고립된 청년들이 생존하기 위해 인간적인 관계마저 스스로 차단하는 비극의 악순환을 보여준다.

요컨대 <치즈 인 더 트랩>과 <청춘시대>가 묘사하는 우리시대 청춘의 비극은 각자도생의 가치관이 일상화된 ‘뉴 노멀’ 시대의 살풍경을 전면화한다.

두 드라마는 마지막회에 이르러 로맨스, 우정 등으로 상처의 치유를 도모하지만 어디까지나 픽션이기에 가능한 결말이다. 현실에서는 이제야 막 이 시대의 비극을 냉철하게 인지하기 시작한 단계다. 지금 각계각층에서 뜨겁게 토론 중인 ‘뉴 노멀’론도 그 인지의 한 방식일 뿐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해법은 문제를 파악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치즈 인 더 트랩>과 <청춘시대>의 의의도 거기에 있다. 오랫동안 사라졌던 청춘들이 다시 자기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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