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집권, 꿈도 꾸지 마라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 30년 신문기자 외길. 그의 칼럼은 정파를 가리지 않는 균형잡힌 비판과 한국 정치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 그의 칼럼을 읽기 위해 경향신문을 본다는 팬덤 보유. 팟캐스트 ‘이대근의 단언컨대’ 운영.
2016082701003_0

(이 칼럼은 경향신문(2016. 8. 23)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낯선 풍경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반대라는 기존 입장을 과감히 폐기할 때였다. 당내 분란이 일지 않았다.

작은 차이로도 갈라지고 그 때문에 집권으로부터 멀어져도 신경 쓰지 않던 더민주였다. 이제는 상호 이견을 존중하며 당의 목표 아래 결집하는 법을 터득한 것일까? 의원들이 모두 신중해졌다.

이게 총선 이후 4개월간 더민주가 보여준 변화의 전부다. 더민주는 총선에 패배한 박근혜 정권이 온갖 자충수를 두며 억지를 부리는데도 소 닭 보듯 했다.

2016082701003_0
지난 27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추미애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됐다. 추 대표는 박근혜정부의 퇴행을 막으면서 야당의 존재감을 부각시켜야 하고, 내년 대선 승리의 토대를 마련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됐다. 그럴려면 지금처럼 최대한 실책을 줄이려는 소극적인 행보로는 안 될 것이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이 무심함 혹은 신중함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혹시 열린우리당 트라우마 때문일까?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에서 대승한 뒤 조심하자며 몸을 사렸다. 이에 권력을 줬는데도 왜 개혁을 하지 않느냐는 불만이 지지층에서 비등했고, 놀란 열린우리당은 느닷없이 4대 개혁입법을 들고나왔다. 그러자 보수세력이 들고 일어섰다. 당시 보수는 총결집했고 정권은 위기에 빠졌다.

양극단을 오락가락하다 정권을 잃은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부작위의 신중함이 아니라 둘 사이의 균형을 잡는 적극적 행동이 필요하다.

대안 없는 반대의 공허함은 이명박 정권 때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그런데 대안은 야당이 개혁입법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본래 야당이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시민들도 그걸로 야당을 평가하지 않는다. 대신 야당이 어떤 의제로 집권세력과 갈등하고 타협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야당이라면 정권 비판과 견제를 소홀히 해선 안된다. 특히 박근혜 정권처럼 무슨 사고를 칠지 알 수 없는 권력을 견제하지 못해 시민을 고통에 빠뜨린다면 무능 야당으로 찍혀 다음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정권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으면 단호히 맞서야 한다. 미국의 대선후보 경선,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확인했듯이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은 세계적 경향이다. 불평등이 심화된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예방적 차원에서라도 야당은 기득권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나서야 한다.

그런데 더민주는 정권 견제를 똑똑히 하는 것도, 기득권을 깨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의제 선점으로 여론을 주도하고 있지도 않다.

사드 문제가 부상할 때 한반도 평화 구상을 내놓기는커녕 박 대통령을 추종하는 얼빠진 태도, 노동자가 삭제된 당 강령을 내놓았다가 우경화 의심을 받자 철회한 섣부른 행동, 청와대 서별관회의 청문회를 한다면서 핵심 증인을 빼주려는 허튼 선심이 그렇다.

물론 더민주가 부드러운 야당으로서 중도·보수층으로부터도 호감을 얻으려 하는 것은 평가받을 일이다. 하지만 김종인식의 돌발적 노선 전환 방식은 곤란하다. 그런 보수층 유인책은 정체성 논쟁 촉발이라는 반작용을 불러와 결국 효용성을 떨어뜨린다.

보수층 유인을 위해 기성 체제의 틀을 받아들이는 전략의 이점 역시 야당을 또 다른 기득권으로 인식하는 역효과에 의해 상쇄된다. 만일 정권교체가 하나의 기득권에서 다른 기득권으로 교체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불행한 일이다.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야당의 대선 승리는 또 하나의 사기극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노선 전환이 아닌 노선 확장을 해야 한다. 가령 종북, 안보무시, 성장소홀 등의 공세를 피할 수 있는 포용적 정책을 내놓는 것이다. 그래야 반대와 대안, 기득권 타파와 지지기반 확장전략을 적절히 조화시킨 똑똑한 배합이 가능하다.

이처럼 적극적인 조화와 균형을 이뤄가는 과정은 야당의 양보할 수 없는 가치와 목표, 현 집권세력보다 나은 정책과 리더십을 잘 드러내줄 것이다. 그 결과, 야당 선택은 대단한 결단이나 모험이 아니라, 아이스크림 고르기와 같은 부담 없는 행위로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승리를 안겨준 현재의 판을 흔들지 않는 게 좋다고 믿어서인가, 너무 소심하다. 말조심, 몸조심은 좋은 일이다. 다만 그건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상대 실책으로 잭팟을 터뜨린 총선 때의 행운이 대선 때 또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균형은 여건이 유리해질 때를 기다리는 안이함이 아니라, 정치적 기회를 만드는 주도적 행동에 의해 이루어진다.

혹시 더민주 집권 자체가 개혁인데 무슨 대단한 준비가 필요하냐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사실 두 보수정권의 퇴행을 고려하면 야당이 어떻게든 집권하기만 하면 지금보다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건 야당이 정권을 다 잡은 듯한 발상에서 나온 것 아닌가?

여기에서 우리는 문제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간다. 어떻게 해야 야당이 집권할 수 있는가? 조용한 집권? 꿈도 꾸지 마라.

“조용한 집권, 꿈도 꾸지 마라”의 8개의 생각

  1. ’문재인대통령‘ 가능성 제로(0)는 이제 과학

    예상했던 대로 이변은 없었다. 새로움을 주장하면서 실제는 과거에 묶여 계파정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친박 그 모습 그대로이다. 도로 친박당된 새누리의 그 모습이 아름다운 단합으로 보여 일사불란 도로 친문당을 만들었단 말인가?

    문재인 대세론’이 더민주 내부의 경선에 관한 것이지, 대선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른다. 아니, 정확히는 집단적 환각에 빠져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경선에서 이기는 게 목표는 아니지 않은가?

    추론에 불과한 여론조사지표에 취해 쉽게 쉽게 가자는 이들에 의해 진보진영의 집권을 기대하는 많은 이들의 ‘치열한 경선을 거쳐 선출된 후보’라는 기대는 무산되고 친문 지지를 등에 업은 추 대표를 비롯해 친문 인사들로 지도부가 채워진 만큼 이제 더민주 대선후보는 ‘이래문‘만의 추대 절차만 남았다 해도 넘치는 말이 아니다.

  2. (1) 새로 선출된 더민주 지도부 첫 일정이 이승만 박정희묘 참배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더민주와 새누리가 정책이나 이념의 차별성마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확실해진 지금, 추미애 대표-문재인 후보로 이제 더민주는 영남 비주류당이 되었다.

    (2) 선거에서 지역변수는 지금까지보다 더 크게 작용할 것이며 영남을 과점하지 못해 호남의 지지를 필요로 하는 문재인전대표에게 더 크게 작용하는 상수가 될 것이다.

    (3) 제18대 대통령선거
    박근혜 15,773,128표 51.55% / 문재인 14,692,632표 48.02% / 약 100만표 3%차

    (4) 20대 국회 정당투표현황
    새누리 7,960,272표 33.50% / 더불어 6,069,744표 25.54% / 국민의당 6,355,572표 26.74%

    문재인 전대표가 위를 극복할 근거가 어디에도 없다.

  3. 이러함에도 경선 과정에서 공공연히 ‘1등 후보를 지켜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문 전 대표를 노골적으로 비호하던 추미애 의원이 더민주 대표가 됨은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소탐대실이다.

    비토지역(-1)과 열성지지자(1) 사이를 곱하면 곱할수록 작아져 ’문재인대통령‘의 가능성은 제로(0)를 넘어 마이너스를 수렴한다는 것은 이제 과학이 된 것이다. (-1*1 = -1)

    진보진영의 집권을 바란다면 저 명약관화의 틀을 깨어야 한다.

  4. 정치란 무엇이고 선거란 무엇일까?

    정치란 특정 다수인이 특정한 주의 주장을 내걸고 그 목적 달성을 위하여 1차적 구성원인 지지자들의 계층과 계급의 이익에 복무하는 계속된 행위라 할 수 있고 선거란 집권을 위해서 지지자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지지자들을 기반으로 중간지대에 속해 있는 계층과 계급의 지지를 득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계속된 행위로 중간지대를 많이 점하는 정당이 집권을 하는 것이다,

  5. 그럼 중간지대에 속한 계층이나 계급을 무엇으로 판단을 할까?
    당연 자기의 이익, 자기 가족의 이익이 판단의 기초가 되나 우리 정치의 특성인 지역이 기본 베이스라는 점도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정의당. 민중당. 녹색당이 진보성향의 정당이나 인사들이 삼성을 추종하고 지지한다면 그 모양새가 어떠할까? 모양새 따지기 전에 파토고 파산이다. 돌무덤에 들어가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더민주 또한 국민정당을 표방하고 있지만 구성원들의 성향 또한 앞의 정당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6. 성향은 이미 철학화 가치화 이념화 되어 삼성상무 출신 양향자 여성최고나 국회의원 최고재산등록자인 김병관 청년최고등으로 지도부를 구성한다고 하여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또한 당대표가 된 추미애의원은 원죄인 노통탄핵과 노동법날치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그를 덥기 위한 행동이 따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표로 지지해준 최고존엄을 위해 무엇인가의 성과물을 내놓아야 채무가 있다. 친문일색인 지도부에 둘러싸인 당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가장 돈 안 들고 힘들이지 않아도 되는 새누리당과의 차별성부각으로 투쟁성과 선명성이라는 전투적 모습이 즉빵이다.

    하지만 이익에 흔들리는 중간지대이다. 외연확대로 설명되는 중간지대의 땅따먹기는 시원한 투쟁에 날아가고 민생이란 한마디에 선명성은 날아가며 북한미사일 한 방에 바로 생존본능의 안보론에 흡수된다.

  7. 그래서 하는 말이다.
    눈을 지그시 감고 노인성 난청을 가장하여 지지자들의 야성 복귀를 못 본체 못들은 체하며 중간지대 점유를 슬슴슬금 늘려가던 김종인체제가 신의 한 수였건만 최고의 대우로 명예로운 퇴진을 하여도 아쉬운 선수를 그 무엇이 바빠서 약속어음 부도내고 모욕적 용도폐기란 말인가?

    그 노인 주변에 문국현기획자가 어슬렁거리고 있음에 스멜스멜 스멀스멀 느끼지 못한단 말인가?

    강철로 만든 바늘이라도 귀 속에 있는 실 한 올조차 누르지 못함을 알지 못함의 대가는 안경 속에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닥을 때 느끼게 되는 것이다.

  8. (위 글은 창작물이 아닌 집보집권을 소망하는 분들의 글을 모아 모자이크 한 것임)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