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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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은 미국과의 결별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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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수뇌부(공산당 중앙정치국)의 집단학습은 지난 20여년 간 국가전략의 나침반, 풍향계이자 학습하는 조직을 구축하는데 있어 북극성으로써 기능했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정말로 ‘학습’에 진심을 다하는 조직일까요? 

지난 편에서는 중국 공산당과 중국의 통치시스템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번에는 미국과 중국이 펼쳐왔던 국가전략을 먼저 짚어보고, 그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이 ‘학습’에 공 들여온 과정과 그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미국을 추격하라!

1945년에 끝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과 미국이 각각 펼쳐왔던 굵직한 전략을 요악하면 아래 표와 같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국은 패권을 구축하고 확장하고자, 중국은 미국을 추격하고 초월하고자 했습니다. 

역대 미국과 중국의 전략, 자체제작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질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진영의 대립으로 흘러갔습니다.(본 글은 두 진영 어디에도 속하지 않거나 걸쳐있던 지역에 대해선 논외로 하겠습니다.) 미국은 세계연합(UN), 세계은행(WB), 국제통화기금(IMF),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  등 각종 국제기구의 설립을 주도하며 세계질서의 주인공이 되려고 했습니다. 1969년의 닉슨독트린은 소련과 중국의 관계에 균열을 확대시켰고, 결과적으로 미국은 냉전에서 승리하게 됐습니다. 그 뒤 미국은 달러화가 지닌 패권적 지위를 바탕으로 지구적인 ‘자유주의’ 물결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2001년의 9.11테러, 2007년의 금융위기 등을 겪으며 전 세계는 미국식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세계화의 한계를 절감하게 됐습니다.

산업혁명에서 뒤쳐지고 서구 열강에게 굴욕을 맛보았던 중국은 냉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미국을 견제했습니다. 마오쩌둥, 덩샤오핑 이래 중국의 지도자들은 미국을 중국의 주된 위협(적)으로 상정하고 미국의 경제, 군사, 사회적 패권을 추격하고 초월하기 위한 전략을 추진해왔습니다. 그들은 미국의 전략과 국제정세, 국내상황의 변화 등을 고려하며 평화공존으로부터 도광양회(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 유소작위(필요한 역할을 한다), 화평굴기(평화롭게 일어선다), 대국굴기(대국으로서 일어선다)에 이르기까지 시기마다 호흡을 달리하며 거국적인 깃발을 세웠습니다. 

 

잘 살아보세!

중국이 미국을 추격하려면 일단 내부경제부터 발전시켜야 했습니다. 개혁개방정책을 시작한 1978년 중국의 1인당 GDP는 156달러에 불과했습니다. 같은 시기 처음으로 1인당 GDP 1만 달러를 돌파했던 미국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수준이었습니다.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 암흑과 절망의 시기를 보내고 있던 1975년 1월, 마오쩌둥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저우언라이(周恩來 Zhōu Ēnlái, 1898~1976) 총리는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계획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그는 1980년까지 공업체계를 확립하고(1단계), 20세기 말까지 농업·공업·국방·과학기술 등 4개 부문을 현대화하여 중국경제를 세계 최고 선진국에 이르게 한다(2단계)는 전략을 구상했습니다. 

1976년 1월 저우언라이, 9월 마오쩌둥이 잇달아 사망하면서 집권하게 된 덩샤오핑은 저우언라이의 전략적 방향성과 연계해 ‘개혁·개방을 통한 중국경제 3단계 발전전략’을 구체화시켰습니다. 1단계는 1990년까지 국민총생산(GNP)을 2배로 성장시키고 최저생계문제를 해결해 ‘따뜻한 음식을 배불리 먹는’ 원바오(온포, 溫飽) 상태에 도달한다는 전략입니다. 2단계는 2000년까지 GNP를 다시 2배로 성장시켜서 인민들의 의식주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수준, 즉 ‘편안하게 생활하는’ 샤오캉(소강, 小康) 수준을 달성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중국은 2020년 샤오캉 사회가 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 마지막 3단계는 21세기 중반까지 완전한 현대화를 달성하고 초강대국이 되어 ‘크게 발전해 모두가 잘 사는’ 따퉁(대동, 大同) 사회로 진화하겠다는 것입니다. 대동(다퉁)사회는 지난 날 공자가 <예기 禮記>에서 제시한 유교적 이상사회를 뜻하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갈등없이 지내며 누구라도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쓸 수 있도록 경제가 발전된 상태를 말하며, 공동부유를 추구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이상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렇듯 긴 호흡을 갖고 장기적으로 국가발전전략을 추진한 결과, 중국의 1인당 GDP는 2019년 1만달러를 넘어서고, 2022년 현재 구매력(GNI, PPP)기준의 국가경제규모는 미국을 이미 앞질렀으며, 국내총생산(GDP)은 앞으로 몇 년 내로 미국을 넘어설 기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중국, 일본, 한국의 PPP 및 GDP 현황 (출처 : 세계은행)

 

‘집단학습’이 중요한 이유 

여기서 <중앙정치국 집단학습>이 국가전략과 정책을 수립하는데 있어 갖고 있는 지위와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에 주목해보게 됩니다. 단편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2012년 중국 지도부는 중국을 ‘해양강국’으로 건설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기존까지 미국이 지닌 패권에 보조를 맞춰 유지해왔던 소극적이며 방어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진취적이고 주도적으로 새로운 판을 그려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힌 겁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중앙정치국은 2013년 7월 30일 <해양 전략과 해양강국 중국건설>을 주제로 집단학습을 진행했습니다. 이 세션은 해양전략을 추진해야 하는 중국해양석유공사 부사장과 국가해양국 해양발전전략연구소 고위관리가 준비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시진핑은 “바다는 우리의 소중한 영토다”라면서 해양세력의 대표주자인 미국과의 경쟁을 예고했습니다. 이 지침은 최고지도부의 학습내용과 함께 전국으로 전파됐습니다. 화평굴기를 추구하던 후진타오 시기의 집단학습에서는 세력확장과 관련된 주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던 것과 비교됩니다. 집단학습이 진행된 뒤에는 지도자들이 중국 내 주요 조선소를 찾아가 해양산업이 국가의 흥망성쇠와 직결된다고 강조하며 강력한 해양력을 구축하도록 지도했습니다. 이어서 중국 국방백서는 새로운 해양전략을 선언하고, 중국 해군은 구 소련제 항공모함을 본격적으로 도입해 운영하면서 자체적으로 항공모함을 건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해양력을 건설하는데 매진한 결과, 중국은 2022년 현재 전 세계 최고 수준의 함정건조능력을 갖추고 곳곳의 대양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중앙정치국 집단학습은 중국 공산당의 최고싱크탱크인 중앙정책연구실에서 기획, 준비, 실행합니다. 중앙정책연구실은 유라시아를 향한 일대일로 전략에 발맞춰,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금융질서의 틈을 파고드는 차원에서 2015년 설립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설계했습니다. 마침 2015년 10월 중앙정치국은 중국 외교학원의 교수를 불러 글로벌 거버넌스의 패턴과 거버넌스 시스템의 발전방향’을 주제로 하는 집단학습을 진행했습니다. 

이처럼, 중앙정치국의 집단학습은 중국이 전략을 결정하고 정책을 개발 및 추진하며 전 국가를 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데 있어 핵심적인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집단학습의 주제와 내용을 면밀히 분석하면 중국 최고지도부가 현재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추구하며 추진할 것인지 등의 방향성을 엿볼 수 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학습’에 진심을 다하는 공산당

조공체계를 기반으로 동양세계를 지배하던 청나라는 아편전쟁을 기점으로 서구 열강들의 이권 침탈지로 전락했습니다. 100년 넘도록 과거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굶주림에 시달리던 중국을 원바오, 샤오캉, 다퉁사회로 만드려면 일단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게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내전, 항일전쟁, 공산주의 혁명 등을 겪은 공산당 지도부 1세대에게는 과학기술에 정통하고, 사회주의 체계를 유지하면서 국제적인 영향력을 확대해 서구국가와 바람직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인재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특히 덩샤오핑은 문화대혁명 기간(1966~1976)에 지식인 및 교육자 등 약 40만 명이 강력하게 탄압받고, 모든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의 교육이 6년 이상 전면 중단되어 인재의 씨가 말라가는 현실을 타개하려고 인재양성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그는 1980년 1월, 간부 4화(혁명화, 연소화, 지식화, 전문화)를 목표로 내세우고, 당 간부들이 전문대 졸업 이상의 최저학력을 갖추도록 지시했습니다. 당 지도부는 1998년 6월 <1998~2003 전국 당정 지도간부 건설계획 요강>, 2002년 7월 <당정 지도간부 선발/임용공작 조례> 등을 통해 고위 지도간부(성급, 부급, 지급)는 대학교 본과졸업 이상의 학력을 갖춰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요컨데, 중국 공산당은 간부교육과 학습이 당과 국가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는 판단 아래, 체계적이고 일사분란한 인재양성 및 관리 체계를 구축해왔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촘촘하게 짜인 공산당의 교육제도와 기관을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공산당은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인재를 관리하는 일종의 ‘인사(HR)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공산당원인 선생님들이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평가하면서 미리 싹을 발굴해 선별해내고, 이렇게 누적관리 된 인재들은 대학생이 되어서 당에 가입하게 됩니다. 약 2년의 수습기간을 거쳐 정식당원으로 선발되고 난 뒤에는 부국장, 부총장, 부원장, 부주임 등의 직책을 맡으며 각 분야의 일선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전방위적인 평가를 받으며 승진하게 되면 상급기관으로 진출합니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들은 시기/지역별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하며 국가와 지방의 현안을 분석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역량을 갖추게 됩니다. 2021년 현재 공산당의 지방 간부는 약 700만명인데, 그들 중에서 지도자급 엘리트인재로 성장할 확률은 1/14,000이며 그 기간은 평균적으로 약 23년이 걸립니다. 끝까지 살아남아 각 지역의 지도자가 되고 그 중에서 다시 선발된 인재들이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를 구성합니다. 이렇듯 공산당은 엄청난 경쟁과 평가, 오랜 학습과 단련을 거친 인재들의 집합체로, 마치 K-POP 아이돌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체계와도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곳을 하나 꼽자면 중앙당교를 들 수 있습니다. 중앙당교는 중간 지도자급 이상의 간부를 양성하는 최고 교육기관입니다. 마오쩌둥(1942~1947), 후진타오(1993~2002), 시진핑(2007~2012)이 교장을 맡았을 만큼 무게감이 있는 곳입니다. 중앙당교는 전국에 설치된 지역별 당교 약 3,000개를 지도 및 감독합니다. 중앙당교에서 진행하는 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최고지도부로 승진할 기회도 적어집니다. 또한 중고급 지도간부, 기업의 고급관리자, 전문기술자, 외교관, 군 간부 등을 가르치는 푸동 간부학원(상하이에 위치)과  옌안 간부학교(마오쩌둥이 대장정 중이던 1935~1948년에 머무른 산시성 옌안에 위치), 당의 역사, 사상, 혁명전통 등을 가르치는 징강산 간부학교(중국 공산당 혁명의 요람이자 홍군의 창설지역인 징강산에 위치), 각종 국영기업의 경영인을 양성하는 다롄 고급경리학원 등이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부족해 전국 14개 주요대학(베이징대, 칭화대, 인민대, 베이징사범대, 난카이대, 푸단대, 저장대, 난징대, 우한대, 중산대, 쓰촨대, 시안교통대, 하얼빈 공대, 시베이농림과기대)과 각 지방의 고등교육기관 140여개 등을 활용하는 일종의 민간 위탁교육제도도 활발하게 운영합니다. 2021년을 기준으로 현급 이상 간부를 담당하는 교육기관은 약 4,500개, 각종 교육훈련 프로그램은 약 9,000개 이상을 운영하고 있으며, 당 중앙부터 말단조직까지의 학습을 인사(HR)와 연계해 관리합니다. 공산당원들은 이러한 학습체계 아래에서 지역, 직급, 직무특성에 따라 차별화된 교육을 받고, 매년 일정시간 이상을 이수해야 합니다.(현/처급 지도간부 기준 연 110시간) 한편 중국 공산당은 중국이 WTO에 가입했던 2001년을 전후로 서방 선진국 교육기관에 수많은 유학생을 보내 공부시키고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하버드 케네디 스쿨을 한 때 ‘중국 공산당 제2중앙당교’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교육/학습제도는 간부의 역량을 강화하고 인사검증을 원활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적 네트워킹의 플랫폼, 전방위적인 사상 검증, 당과 국가를 하나로 뭉치게끔 하는 통제수단 등으로서도 기능합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게 바로 ‘중앙정치국 집단학습’입니다. 요컨데 중국 공산당은 ‘학습에 진심인 조직’ 혹은 ‘학습에 미친 조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1편 초반에서 살펴봤던 것처럼, 지속적이며 누적적인 당원 교육체계, 지도부의 학습의지 등은 찾기 어려운 한국의 각종 정당들과 대비됩니다. 

 

공산당 ‘학습 DNA’의 뿌리

‘학습’은 사상을 통일하고 체제를 안정화하는데 오래도록 활용되고 있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공산당이 학습에 사활을 거는 배경으로는 레닌주의 정당의 특성, 통치 정통성 및 기반 확보, 민족주의적인 동기부여, 시대적인 변화상, 중국의 유교주의적 전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첫째, 레닌주의 정당은 사상(이데올로기)에 그 기반을 둡니다. 끊임없는 ‘학습’이 조직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태생적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노동자(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사상적으로 교육하고, 그들이 부르주아(자본가)와 기존의 체제에 대한 투쟁의식을 갖도록 고취시켜서 공산주의 혁명을 수행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즉, 정당이 생존하려면 지속적인 공부가 필수적입니다. 실제로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에 성공했던 볼셰비키도 소수의 학습 동아리에서 시작해 대중 정당으로 성장했습니다. 레닌은 『공산주의 청년학생론 Задачи союзов молодёжи』에서 공산주의 국가건설에 이바지하려면 이론을 ‘학습’해야 한다고도 강조했습니다. 또한 레닌주의 정당은 당관간부(黨管幹部) 원칙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오직 당이 당, 국가기관, 공기업, 사회조직의 간부를  임명, 교육, 훈련, 인사평가, 감독(기율, 감찰 등) 할 수 있다’는 원칙입니다. 이처럼 간부들의 끊임없는 ‘학습’은 정당이 태어날 때부터 성장해 존속하기까지의 전 과정에 녹아있습니다. 

둘째, 중국 공산당은 통치의 정통성과 그 기반을 다지기 위해 ‘학습’해야 했습니다. 정통 공산주의가 노동자 계급을 핵심으로 여기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중국에서는 농민계급이 주된 세력이었습니다. 본래의 공산주의 사상과 이론을 중국의 상황에 맞게 현지화하고 농민들을 포섭하는 과정에서 ‘학습’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1940년대 초반 마오쩌둥은 통치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당 내부의 사상적 기풍을 정리/숙청하고 일관된 규율을 세우는 정풍운동(风运动)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이 때 <우리의 학습을 개조하자> 등을 발표하며 당과 간부들이 끊임없는 ‘학습’을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1990년대 장쩌민은 공산주의에서는 용납할 수 없었던 ‘자본가(부르주아)’ 계급을 당에 포함시켰습니다. 장쩌민 시대의 통치이론인 ‘삼개대표론 三個代表論’입니다. 장쩌민은 개혁개방정책 이후 기존의 이론으로는 도저히 포섭할 수 없던 각종 모순적인 현상들을 원만하게 포함하면서 공산당의 외연을 넓히고 통치의 기반을 다지려고 했습니다. 이때부터 화이트 칼라 계층이 당에 대거 유입되면서 당원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졌고, 공산당의 교육 프로그램도 기존보다 더욱 진화하며 당의 통치기반을 강화했습니다. ‘중앙정치국 집단학습’이 제도화되는 계기도 이 때 마련됐습니다. 

셋째, 민족주의적인 동기부여 차원에서도 학습이 강조됐습니다. 2050년 중국몽을 이루기 위해서는 55개 민족 14억명이 흩어져 살고 있는 광활한 지방자치구역들이 똘똘 뭉쳐야 합니다. 원래 ‘계급투쟁’을 뿌리에 둔 공산주의는 민족주의와는 그 결을 달리 합니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은 ‘중국 특색’이라며 중화민족의 대부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민족’이라는 일종의 선민의식적 요소가 담긴 정체성을 모든 인민이 자각하고, 국가 전체가 일정한 방향성을 유지하도록 하려면 지속적인 교육과 세뇌가 필요합니다. 민족주의적인 응집을 끊임없이 강조하면서 중국 특색의 ‘학습 DNA’가 당, 국가 그리고 인민에게 내재되고 있습니다.

넷째,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 ‘학습’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그 목표도 높아졌습니다. 후진타오는 중국 공산당을 “학습하는 정당”으로 만들고자 미국 MIT슬론 경영대학원 교수이자, 시스템 과학자인 피터 센게(Peter M Senge, 1947~)의 <학습하는 조직 The Fifth Discipline> 이론을 도입했습니다. 후진타오의 시도는 냉전 이후 WTO체제가 출범하고 지구적으로 한창 세계화의 물결이 일렁이는 상황에 맞춰 공산당의 학습시스템을 현대화하고 정권의 정당성을 강화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센게의 이론을 바탕으로 ‘중앙정치국 집단학습’이 탄생하고, 앞서 살펴봤던 당의 주요 교육과정과 그 내용이 전파되는 경로가 정비됐습니다. 이때 구축된 <학습하는 조직> 체계는 2022년 현재도 공산당이 각종 정책을 원활하게 구현하고 14억 인민을 하나의 테두리로 둘러싸는 데에도 큰 뒷받침이 되고 있습니다. 거칠게 요약하면, 미국인이 중국 공산당에 현대적이며 조직적인 학습체계를 이식했습니다. 

끝으로, 유교사회의 오랜 학습전통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학습이 곧 출세이자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한 확실한 방법이었습니다. 고위직 관리의 핏줄을 타고 태어나지 않는 한, 공부해서 과거시험을 통과해야 문무관리로 등용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과거제도가 시행됐던 약 1,300년 동안 일관된 성공 방정식이었습니다. 관리로 선발된 뒤에도 끊임없는 학습과 경연, 토론으로 논쟁에서 이겨야 출세할 수 있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로부터 이어지는 치열한 학습 DNA는 현재 중국 공산당에도 담겨 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과 공산당 최고지도부의 집단학습이 갖는 의미를 간략하게 살펴봤습니다. 또한 중국 공산당이 ‘학습’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어떻게 다뤄왔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중앙정치국 집단학습’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고 만나뵙겠습니다.

김세진

태재연구재단 선임연구원. 작가. 유튜버 KoreaSeJin 코리아세진. 경제사회연구원 미래분과 위원. 비르투스 대표.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 홍보분과위원장. 어린 시절부터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했다. 군인이신 아버지를 따라 전국 곳곳에서 자연과 함께 성장하고 2011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최전방 야전부대에서 5년 간 복무한 뒤 사회발전에 더욱 기여하고자 2016년 육군 대위로 정든 군문을 떠났다. 건명원을 졸업한 뒤 뱅크샐러드에서 고객감동팀과 조직문화팀을, 클라썸에서 고객성공팀을 만들고 이끌었다. 2022년에는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국제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저서로는 육사 생도생활 4년의 수련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나를 외치다!』, 이토 히로부미와 아베신조의 스승으로서 한반도 정벌이론을 집대성하고 메이지 유신의 아버지, 교육의 신, 산업혁명의 선구자 등으로 여겨지는 요시다 쇼인을 다룬 『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 한반도 근현대사를 조명하며 한국군의 기원을 밝혀낸 『한국군의 뿌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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