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7
  • 자연스러운 남자
  • 세계경제는 어디로, 그리고 한국은?
  • 마이즈루와 물의 길
  • 미국의 몽유병으로 세계가 무역전쟁에 돌입하고 있다.
  •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집단학습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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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글에서 약속한대로, 샹뱌오 선생의 대담집 “방법으로서의 자기”에 대해 번역자 나름의 생각을 보태보려 한다.

책은 현재 인쇄중이며 10월내로 시중 서점에 풀릴 예정이다.

첫번째 주제는 “동아시아 공동체”, 소위 ‘한중일’의 관계에 대한 소고이다. 여기서 과거 한중일의 동아시아 공동체 담론을 복기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샹뱌오는 “동아시아 공동체”담론을 지지하는 입장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생각이 인위적인 설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세기말 혹은 그 후로 10여년정도 많은 사람들이 학술적으로 동아시아를 얘기했지만, 이 논의는 지속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후속세대의 학자들이 호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샹뱌오는 70허우이지만, 한중일 공히 80허우 이하, 즉 MZ세대는 이 담론에 대해서 시큰둥하다. 이런 현상은 이 담론이 실재적이라기보다는 이념적일뿐이라는 방증이 된다.

물론, 세나라의 문화적, 역사적, 그리고 심지어 혈연적 친연성 자체는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일들도 모두 국지적으로, 혹은 시기적으로, 그리고 영역에 따라서 벌어졌던 일들이다. 특히, 거대한 제국이면서, 혼성적인 특성이 강한 중국대륙국가의 경우, 과연 한일과의 관계가 다른 인접국가와의 관계보다 더 중요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애매한 부분이 있다. 차라리 유교문화권이나 한자문화권이라고 하면 좀 더 구체적일 수도 있겠다. 조공-책봉국/번속국 관계의 천하체제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동아시아 혹은 동남아시아는 중국, 조선반도, 그리고 베트남 세 나라를 묶는 것이 더 맞다. 중원왕조의 통일 이후, 화하족 혹은 중화민족과 보다 직접적으로 역사와 피를 섞었던 북방 유목민족 중 만주는 이미 중국의 일부가 됐다. 일본은 한자문화권으로 범위를 확대할 때만 시야에 들어온다. 그래서 더 이상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기획은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하지만, 한국의 입장에서 보는 중국과 일본은 특별한 점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지리적으로 딱 중간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20세기 이전 500~ 1,000년간 중화권의 강한 자장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왔고, 그후 20세기 백년간은 일본과의 관계속에서 그 정체성을 발전시켜왔다.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양쪽을 두루 깊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얘기하면, 중국과 일본은 상당한 거리감을 느껴야 할 것 같지만, 문화적으로는 꼭 그렇지 않다. 심지어 샹뱌오 선생 본인의 부인은 일본출신의 인류학자이다. 두 사람은 싱가폴에서 만나서 결혼하게 됐고, 딸 하나를 두고 있다. 그의 개인적인 인연뿐 아니라 중국은 일본에 대해서 특별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 때문에 중국인들에게 일본은 한국보다 존재감이 크다. 이 인식의 기원은 150년전 청일전쟁에 패한 후 그리고 1930년대 중일전쟁에 돌입하면서 중국이 일본에 갖게 된 두려움과 경외심이다. 현대 중국의 민족주의는 사실 일본의 중국 침략이라는 사건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반도의 한국과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임진왜란이 조선의 엘리트들에게 강렬한 민족의식을 심어주었다면, 일본의 조선병탄은 조선반도의 보통 사람들에게 그것을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일본의 진보나 리버럴엘리트중에는 (극우가 아니라) 왜 우리만 맨날 사과해야 하냐고 억울해하면서 한중의 쿨하지 못한 민족주의를 우습게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할 수 없다. 너희 조상의 업보다. 이건 우리끼리 해소해야지, 너희가 비웃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도, 일본은 중국이 미국보다 먼저 수교한 국가이다. 올해는 한중수교 30주년이지만 동시에 중일수교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자본과 기술을 가까운 곳으로부터 동원하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런 연고로 중국인과 일본인들, 특히 지식인들간에는 상호 ‘리스펙Respect’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중국인들은 일본내의 100년이 넘는 근대적 한학전통을 인정하기 때문에 동아시아 역사나 중국사와 관련해서 그 논점을 반박하고 싶어하긴 해도, 무시하지는 않는다. 일본의 대중문화가 전반적으로 전성기를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중국내에서 대도시의 문화 힙스터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이런 정서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몇년간 한국이 일본을 앞질렀다는 ‘부심’을 내비치는 것과 대조적이다.

중국내에서 일본의 존재감이 한국보다 훨씬 강한 또 다른 이유는, 중국이 한국을 동류로 여기기 때문이다. 즉, 일본이 이웃집이라면, 중국에게 한국은 친척 동생같은 존재이다. 젊은 한국인들은 중국의 이런 인식을 못마땅해하지만, 여하튼 그런 인식이 있다는 것만은 객관적 사실이다.

이렇게 한중일은 서로 미묘한 관계인데, 한국과 중국은 서로를 ‘졸부’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근대화 이후 일본이 100년 넘게 서구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을 인정하는 반면 한중은 70년대 이후에야 본격적인 공업화가 이뤄졌고, 국제적인 산업자본의 분업화 과정에서 기술과 부를 축적해왔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인들이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애초에 한중이 본격적인 공업화에 시동을 거는 시점 차이가 불과 20~3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이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빠르게 한국을 따라잡은 것을 이제는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 졸부라는 인식은 어떻게 졸업할 수 있는가? 중요한 것은 졸부들의 다음세대가 문화자본을 축적해서 고르게 ‘젠트리’로 올라서는 시점이다. 그런데 이 문화자본을 구체적으로 평가하는 시점은 두 나라가 다를 수 있다. 전통과 현대의 요소를 어떤 비율로 정할 것인가 이견이 존재할 것이다. 당연히 중국은 전통을, 한국은 서구적 현대화를 높이 치고 싶어한다. 그래서 이 티키타카는 생각보다 오래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정말로 한국은 중국과 많은 문화적 요소와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책에서 샹뱌오가 중국을 일본과 비교하면서 그 차이점을 설명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매우 흥미롭게도 그가 설명하는 중국인들의 특성은 놀랍도록 한국인과 닮아 있다. 사실 샹뱌오는 한국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중국사회에 대한 설명은 여러가지 면에서 한국을 떠올리게 한다.

첫째, 그는 중국의 보통사람들이 일상에서 정치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것은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가족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 일본인과 너무나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공산당 일당독재체제에 변변한 투표권도 없는 중국인들이 정치에 무슨 관심이 있다는 말인가?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고,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과거의 군중동원 정치에서 중국 민중들은 굉장히 격렬한 방법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만일 중국인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면, 애초에 문화대혁명같은 비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문화대혁명은 군경이 총칼을 들고, 엘리트와 관료 게층을 핍박한 사건이 아니다. 홍위병을 비롯한 보통 사람들, 기층세력이 일부 공산당 지도자의 선동에 호응해서 행동에 나선 것이다.

유교사회의 중앙과 지방을 잇는 교육시스템, 향약에 기반한 마을의 자치구조, 그리고 과거를 통해 관료를 뽑는 제도하에서, 모든 사람에게 중앙과 지역 정치 참여의 길이 열려있었다. 특히, 중국은 거의 신분제가 철폐돼, 극히 일부 천민 계층을 제외하면, 보통 사람들, 특히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민들은 원칙적으로 모두 과거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니, 모두가 잠재적으로는 정치적 발언권을 가졌던 셈이다. 조선은 신분제를 끝내 철폐하지 못했지만,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도입함으로써 직접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현대판 과거제도인 대학입시나, 후속커리어를 위한 각종 고시를 통해서, 정치적 권력 계층인 행정/사법관료가 될 수 있다. 현대의 왕가에 비유될만한 극소수 재벌가를 제외하고, 한국인들중에 가장 강한 특권의식을 가진 집단인 검판사가 되기위한 사법고시가 그렇게 오랜기간 사람들의 선망이 된 것을 보라. 지금도 율사출신들의 정치가가 유독 많은 것도 이런 정치참여에 대한 문화적 열망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요새 불거진 내각제 논의에 대해 많은 정치평론가들이 한국인들이 대통령을 자기 손으로 선출하는 손맛때문에 결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고 냉소하는 것도 그러하다.

둘째, 고도로 일체화된 경쟁의 장에서 모든 사람들이 표준화된 계층상승 혹은 계층유지의 목표를 위해 내달리기 때문에 탈출구를 찾을 수 없는 네이좐內卷(involution)현상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렇게 경쟁에 돌입하는 과정에서 오로지 미래의 성취를 향유하는 삶을 꿈꾸며 끊임없이 현재의 행복을 보류하는 쉔푸懸浮상태로 돌입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는 완전히 번아웃돼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탕핑躺平을 선택한다. “헬조선, N포세대, 노오력”, 한국에서는 지난 십수년간 이런 상태를 표현하는 수많은 신조어가 탄생했다. “사토리세대나 소확행”처럼 타이완, 홍콩,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인들 그리고 YOLO처럼 전세계인들이 공유하는 조어들도 있다. 이 글에서는 길게 언급하지 않겠지만, 타이완, 홍콩과 같은 중화권 지역들은 중국대륙보다 한국사회와 더 진하게 이런 특성을 공유한다. 중국인들은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보기 때문에, 한국이 세계최고의 네이좐화內卷化사회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의 이민이나 대량 입국을 염려하지만, 사실 이런 현실인식 때문에, 중국인들은 일본유학이나 이민을 훨씬 선호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국가는 경제적 계급이 나뉘어져 있다. 그리고, 갈수록 계급간의 대규모 이동은 미션 임파서블이 돼간다. 이렇게 계급이 고착화되는 글로벌한 현실앞에서 샹뱌오는 중국을 자신이 오래 거주한 영국사회와 비교한다. 영국인들은 과거에 자기가 속한 계급을 잘 인식하되, 자기 계급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으로 단결하고, 요구사항을 명확히 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여전히 모두가 사다리 오르기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계급을 위한 정치경제적 요구가 의제화하지 못한다.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이다. 형식적으로 모두가 시험(특히 대학입시)에 참가할 기회를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아무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특히 일부 청년 세대의 경우에, 심지어 “차별을 반대하지 않는다”라고 당당히 선언한다. 시험만 공정하게 치뤄진다면, 차별적 결과에는 승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흙수저, 금수저같은 냉소적 풍자가 나오는 것도 여전히 공정한 기회를 열망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런 현실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언론이나 민심은 조국 가족을 그렇게까지 모질게 다그치지도 않았고, 검찰의 마녀사냥식 칼춤에 호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국과 그 가족이 얼마나 도덕적으로 위선적이냐, 그들의 행위가 불법적이냐를 판단하는 것은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겠지만, 조국을 둘러싼 격렬한 정치적 투쟁이 한국사회의 이런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유일한 차이라면, 한국은 이런 갈등과 여기서 파생하는 감정을 노골적으로 정치현장과 공론의 장에서 드러내고, 같은 이치로 대중매체와 예술을 통해서 계급간의 증오와 격렬한 투쟁을 극화해서 표현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보수적인 정치지도자들은 이런 자유로운 표현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집단간의 사회적 갈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유명한 영화평론가인 베이징대학의 다이진화戴錦華 교수는 그래서 <기생충>이 절망적인 현실을 용감하게 직시하는 영화라고 칭찬한다. 하지만, 이런 갈등은 중국사회안에서도 탈정치화된 영역의 대리 인정투쟁 양상에서 종종 격렬하게 드러난다. 대중문화속의 극성 팬덤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 국가를 아이돌로 삼아 한국을 포함한 외국 네티즌들과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들이 ‘소분홍’이라고, 인민대학의 미디어 전문가 류하이룽劉海龍 교수가 조리있게 설명한다. 중국 정부가 2021년 팬덤문화를 강력히 비판하거나 규제하기 시작한 것, 그리고 사드로 시작된 한한령이 지나칠 정도로 길어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국 대중문화연구가들이 팬덤문화가 한류와 함께 수입됐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샹뱌오는 이런 고도로 일체화된 경쟁의 장을 벗어나는 방법을 예시하면서, 독일이나 일본의 장인정신을 거론한다. 그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수준의 극치에 도달한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영역에서 관계망을 넓혀가고 의미를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을 뜻한다. 예를 들어 텐푸라天麩羅 식당의 장인은 자신이 튀겨내는 재료가 일본 연근해 바닷가의 어떤 어부의 손에 잡힌 물고기라는 사실을 늘 상기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키즈나絆라는 표현이 있다) 식당안의 작은 세계가 먼 어촌과 바다라는 큰 세계로 인식이 확장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일본사회에서 토쿄대학이나 쿄토대학과 같은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소수의 엘리트들을 제외하고, 보통 사람들이 이렇게 일상에 충실한 의미망 구축을 해 나갈 수 있는 것은, 일본인의 사회구조에 대한 의식이 한국이나 중국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셋째, 중앙과 주변/지역의 관계에서 일본과 달리 한국과 중국은 고도의 중앙지향성을 갖는다. 앞에서 거론한 국가의 정치제도 모델이 그 기반이 된다. 중국은 특히 송대에 주자학 이념을 가르치는 지역의 교육 시스템과 과거제도를 통한 중앙집권형 관료제 국가모델을 완성시켰고, 조선의 통치집단은 이를 전폭적으로 수용했다. 샹뱌오는 달빛이 천개의 강과 호수에 같은 그림자를 비춘다는 시적 비유로 이 모델을 설명한다. 아마 훈민정음의 역사를 상기해본다면, ‘월인천강지곡’이 떠오를 것이다. “문라이트”의 동아시아적 클리쉐이는 유럽의 루나틱 늑대인간같은 핏빛 광기나 죽음을 연상시키는 베토벤의 애상적 소나타와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아 하지만 일본의 구름에 가린 으스름한 달빛 오보로츠키朧月는 귀신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농담이다~

그림1) 세종이 직접 저술한 찬불가 <월인천강지곡> (문화재청)

그런데 샹뱌오는 원래 이 모델은 지역이 중앙을 일방적으로 추수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과 지방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균형을 깨뜨린 것이 바로 근대화, 공업화, 도시화라는 것도 부연한다. 농업생산경제가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생산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토지는 결국 지역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중앙의 관료는 관직을 내려 놓으면 낙향해서 자신의 근거지로 돌아갔다. 인간관계를 포함한 중요한 자원이 모두 지역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인재가 모두 베이징, 상하이와 같은 대도시에 정착하고, 더 이상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 관계는 단순히 중앙과 지방이라는 지리적 대립뿐 아니라 엘리트와 보통사람들, 도시와 농촌이라는 다중적 차원의 이원화구조로 나타난다.

조선도 지역에 위치한 사림이 왕권과 균형을 이루는 신권의 기반인 사대부 계층의 중심세력이었음을 상기하게 된다. 물론, 조선 후기에 경화사족이 형성되면서, 문화자본이 중앙으로 쏠리는 현상은 근대화 이전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생산력 기반이 여전히 지역에 위치한다는 전제하에서 현재와 같은 극단적 쏠림은 일어날 수 없다.

이제 여기서 중국의 도시화율 문제를 짚어보면서 한국과 중국의 정치체제 차이의 기원을 유추해 볼 수도 있다. 현재 중국의 도시화율은 60%가 넘고 있는데, 한국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편이다. 농촌대 도시구도를 조금 변형시켜 수도권과 비수도권 인구의 차이를 살펴보자. 한국은 전체 인구의 절반 가량이 수도권에 살고 있다. 중국에서 이 수도권에 해당하는 것은 단지 베이징뿐 아니라 베이징, 상하이, 선전, 광저우를 포함한 소위 1선, 신1선의 10여개 도시 그리고 2선 도시라는(각 성의 수도이다) 대도시군이다. 이 인구가 대략 4억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10억인구가 농촌을 포함한 중소도시에 살고 있다. 국가의 국토발전전략관점으로 보자면, 수도권에 자원을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농촌을 포함한 각 지역을 균형적으로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지향과 계획이 된다. 그리고 이에 따른 이해충돌이 발생한다.

중국 공산당내에서는 개혁개방이후 이 상이한 발전노선간에 투쟁이 존재해왔다. 덩샤오핑의 남순강화이후 대도시와 연안중심의 발전전략이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었으며, 그 노선의 대표주자로서 상하이 지역 정치가들과 상하이의 중산층들은 자유주의적 개방노선을 선호해왔다. 그런데 시진핑 집권 이후에는 그 반대쪽 스펙트럼에 있는 농민과 농촌을 중심으로 10억인구의 정치경제적 이익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공동부유’라는 표현이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10억인구의 정치적 성향일 것이다. 극히 단순화시켜서 한국의 상황에 빗대어 보자면 보수와 중도성향 유권자의 상당수를 의미한다. 큰 사고가 없다면, 이들은 집권보수여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즉, 이들은 다당제보다 공산당의 일당독재가 가져오는 안정성을 선호할 것이라는 뜻이다.

일당독재의 전통을 만든 것은 공산당이 아니라 패배하고 나중에 타이완으로 도망간 국민당이다. 이들은 소련의 볼셰비키 정당의 사례를 참고했다. 국공합작당시 공산당원들은 국민당에 참여해서 하나의 파벌을 이뤘다. 근대 이후 중국의 정치체제는 그래서 좌우이념에 따라 설계된 것이 아니다. 또, 중국 공산당은 한국의 보수정당과 달리, 역사적으로 혁명의 성공에 의한 집권정당성을 가지고 있고, 개혁개방이후에 중국을 글로벌 G2로 등극시키는 데 성공한 유능한 정치집단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특히 중도성향 중국인들의 공산당 지지는 한국의 보수정당 지지에 비해서도 훨씬 강고한 수준일 것이다.

그들은 미국이나 한국의 최근 사례를 통해서도 민주적 투표제도가 가진 상당한 불안정성을 목격했고, 유학경험이 있는 젊은 세대들조차 상당수가 자기 체제의 우월성을 자랑하는 공산당의 애국주의 프로파간다를 지지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왜 중국의 정치체제가 쉽게 바뀔 수 없는가를 “심층에서는” 중국인들과 문화적 성향을 공유하는 한국 유권자의 정치성향과 그 선택을 관찰하거나 예측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첫번째로 “수구꼴통”, 특히 “바이든”을 굳이 “날리면”으로 들어야 하겠다는 26%의 유권자들이 과연 중국이라면 어느 정도 높은 수준일까?

두번째로, “합리적 보수와 중도성향”의 유권자. 특히 중도의 경우 민주당 지지자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리버럴하지 않다. 이것은 정치경제적 요인과 함께 여전히 전통적인 가치관이 정치의식에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권력의 횡포에 이들이 덜 분노하는 것도, 시험으로 선발된 ‘관’의 권위를 더 잘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번째로, “리버럴한” 민주당 지지자들. 이들 자신이 가진 민족주의나 특정 정치지도자에 대한 팬덤성향도 중국민들의 애국주의와 어느정도는 겹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우리 민족국가에 적이 존재할 때, 이런 성향은 더욱 강화한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군국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중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경계심에 대입해보자. 그리고 소위 ‘문빠’를 자처하다가 심지어 대선에서 윤석열을 지지한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즉, 평소에 겉으로는 리버럴한 성향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심층의 민족주의나 극단적 팬덤성향이 외부 자극에 의해 감정을 지배하게 되는 순간, 얼마든지 보수적 선택으로 기울 수 있다. 그리고 앞에서 밝혔듯 중국 공산당은 한국의 보수와 달리 항일전쟁을 벌여 승리한 역사적, 민족적 집권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시장과 개인의 권리를 압도해야 한다는 권위주의적 사회주의 경제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스펙트럼은 좌파진보진영으로도 확장된다. 이 숫자를 모두 합친다면 중국인들 중 공산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과반수를 가볍게 넘지 않겠나? 여기에 다시 비수도권 10억 데모그라픽스를 겹쳐보라.

많은 한국민들은 3연임을 획책하는 시진핑 개인의 부정적 독재자 이미지에 덧씌워 덩달아 중국공산당에 대한 반감과 혐오감을 드러낸다. 최근 삼프로TV의 어떤 중국관련 방송에서 한 진행자가 “역사를 보면 독재정부는 항상 무너질 수 밖에 없죠. 그러니 중국도”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놀랐다. 이 사람은 실재 역사나 현실과 자신의 도덕적, 이념적 판단을 헷갈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진보가 결합된 어설픈 교조주의적 착시이다. 지금 내가 열거한 정치적,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성향을 고려해서 내재적으로 접근한다면, 좋든 싫든 중국 공산당의 일당독재 체제가 쉽사리 바뀌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샹바오는 한국과 중국의 정치체제를 비교해서 설명한 적은 없지만, 그의 중국 현대사에 대한 해설과, 특히 홍콩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을 읽어보면서 (우리 책의 부록글에서 공동역자인 중국인 우자한씨가 이 점을 다시 풀어 설명하고 있다) 나는 한국정치 현실에 비춰 이런 해석을 하게 된다

그림2) 하지만 공산당의 굳건한 위치와 별개로, 독재자 시진핑은 자신과 주위 집권세력의 3연임을 위해서 무리한 제로코비드 정책을 유지하고, 14억 중국인을 매우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존재로 비치게 한 후과를 치르게 될까? 아니면 이에 대한 반감을 무마하기 위해 타이완을 무력통일하려 들까? 공산당은 백신접종률이 낮다는 농촌의 노인들을 구실(인질?)로 삼아 이제는 득보다 실이 커진 제로코비드 정책을 유지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구체적인 설명은 이전 글을 참고해 보라 http://thetomorrow.kr/archives/16529 ) 이런 설명 자체가 완전히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위드코로나’를 전혀 준비하지도 이를 위해 노력하지도 않는 중국 정부의 지난 일년간의 조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설명이 가능한 일정한 전제조건을 바탕으로 천천히 개방을 추진해야 했고, 불가피하게 빚어지는 혼란과 피해는 시진핑이 정치적 책임으로 안고 가는 것이 후대를 위한 올바른 지도자의 선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무수히 많은 우수한 공산당 엘리트중에 왜 그만이 10년 넘게 절대권력을 유지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중국은 어떤 시점에 정치적 개혁이 가능할 것인가? 샹뱌오는 이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하고 있지 않지만, 100년전 량슈밍과 페이샤오퉁이 왜 당시 중국인들은 서구식 정당정치와 민주주의 제도를 받아들일 수 없는지 분석했다고 말한다. 페이샤오퉁이 <향토중국>에서 서술한 ‘차서격국’과 ‘단체격국’이라는 중국인의 인간관계에 대한 비유적 설명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는 것이다. 차서격국은 전통적인 향촌의 마을공동체에서 사람들이 오랜기간 익숙한 이들과 함께 살아 온 방식이고, 단체격국은 서구인들이 근대화한 도시에서 새롭게 정의한 인간관계이다. 물론 중세가 끝난 후 신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기독교 중심의 이념도 일정한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유동하는 낯선 타인들이 계약관계로 모여서 일을 도모하는 현대적이고 도시화한 인간관계가 더욱 중요하다. 이념과 강령을 공유하는 동질한 집단내의 사람들이 서로 동일한 거리를 유지하며 공평무사하게 선거를 치를 수 있는 문화적 기초가 필요한 것이다.

중국은 량슈밍이 통찰했듯이 도시를 품은 거대한 향촌의 나라였다. 사회주의 체제로 재편된 후에도 농촌뿐아니라 도시에서도 일터와 생활터전이 묶인 “단위와 대원”이 향촌마을 공동체의 구조를 모사하고 있었다. 이 구조가 본격적으로 해체된 것은 대원내의 아파트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게된 21세기에 들어서이다. 불과 20년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중국은 같은 시점부터 삼농정책을 중시하면서 신농촌건설 그리고 후속의 향촌진흥 정책을 국가주요 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 정책은 식량주권유지, 생태자원보호, 기후변화 대처, 농민의 권익을 신장시키기 위한 도농의 균형발전과 같은 다양한 정책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 짐작으로는 감춰진 어젠다가 하나 있다면 도시화율 제고를 늦춤으로써 정치적 의식의 변화를 억제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도시화율 제고를 찬성한다는 뜻은 아니다. 전술한 다른 정책 목표들은 거짓이 아니고 실제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한중과 다른 일본의 지역중심주의와 그 응용에 대해서 언급해야 하겠다. 비록 도시화, 산업화가 수도권 집중현상을 심화시키고 있지만, 그럼에도 일본의 지역문화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견고하다. 그래서 샹뱌오가 후쿠오카의 예를 들어 중국의 광시廣西성에 대한 가벼운 제안을 하고 있다. 후쿠오카는 토쿄를 거치지 않고, 한국이나 중국의 도시들과 직접 관계하는 동아시아의 게이트웨이 역할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남쪽 변방인 광시성의 주민들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베트남과의 관계를 상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이 자신의 구체적 생활속에서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만드는 의미를 구성할 수 있다면, 이것은 더 이상 지루하고 별볼일 없는 변방의 일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광시성은 베이징이나 상하이에 종속되지 않고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되는 소통의 관문이 된다.

매일 국영 CCTV의 전파를 타고 베이징에서 선포되는 일대일로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는 동떨어진 프로파간다이다. 여기서 일화로 소개되는 개인은 자신이 삶의 필요로부터 만들어 내는 ‘의미의 생성자’가 아니라 대개 정부의 거대 인프라 정책에 귀속되는 부속품이자 선전재료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런 국가담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상의 관계와 그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들의 삶의 필요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 한국인에게 쌀국수는 베트남의 포를 연상시키지만, 중국에서는 광시성이 미펀米粉이라 불리는 쌀국수의 본고장이다. 거의 모든 지역에 고장의 특색을 가진 쌀국수가 있다. 광시성뿐 아니라 광둥, 윈난, 구이저우 등지의 남방 중국인들은 기본적으로 밀가루 면보다 쌀국수를 선호한다. 여기서 쌀국수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대신, 중월국경지대에서 벌어졌던 청불전쟁직후(1885)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중국과 월남의 국경무역은 송나라의 역사서에도 기록이 남아있을 만큼 활성화돼 있었다고 한다. 전쟁으로 중단된 무역을 복원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켜 국경지대를 안정시키고 싶었는데, 당시 청의 장수였던 쑤유엔춘(蘇元春)이 아이디어를 내서 성공했다. 양국인민들이 국경지역 마을로 돌아와 다시 집을 짓고 상업에 종사하도록 유인하기 위해서 일정기간 무료로 죽과 쌀국수를 나눠준 것이다. 한그릇의 쌀국수가 중앙정치와는 무관하게 변경지대의 트랜스내셔널한 매개로 작용한 사례이다.

그림3) 광시성의 대표음식 꾸이린미펀桂林米粉

진짜 끝으로 부연한가지. 이 글에서 한중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역시 동아시아권역에 속하는 베트남의 미래사회상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예측이 가능할 것이다.

김유익

和&同 青春草堂대표. 부지런히 쏘다니며 주로 다른 언어, 문화,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을 짝지어주는 중매쟁이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 아저씨. 중국 광저우의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오래된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함께 공부, 노동, 놀이를 통해서 어울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한다. 여생의 모토는 “시시한일을 즐겁게 오래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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