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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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계란 무엇인가?

생명과 기계의 경계가 허물어졌다고 했다. 이제 생명은 기계처럼 생산되고 편집된다. 기계는 생명의 논리를 닮아간다. 지능과 의식을 갖춘다. 식물, 동물에 이어 활물도 생물계의 일원으로 인정할 때다. 자연과 인공, 무위와 인위, 에코와 테크가 하나된다. <기계 살림> 연재의 목적은 한살림 사상을 업데이트하는 것이다. 생명과 기계를 나누고 생명만 살리려고 했던 <한살림선언>은 반(半)살림선언이다. 기계를 죽이면 생명도 죽는다. 오늘날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두 가지, 기후위기와 인공지능, 모두 기계 살림에 달렸다. 인간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지구 뭇 생명이 죽기도 살기도 한다. 한마디로 기계 살림이 생명 살림이다.

기계란 무엇인가? 머신(machine)은 특정한 운동이나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것을 뜻한다. 무에서 유를 창출한 것이 아니다. 자연계에 없던 것이 뿅 생기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물질을 물리적, 화학적으로 재조합하여 쓸모를 부여한다. 기계란 결국 틀이다. 틀 기(機) 자에 기계 계(械) 자를 쓴다. 사람이 빚어놓고 보기에 좋으면 기계다. 번개가 내리쳐서 난 불은 기계가 아니다. 부싯돌로 쳐서 일으킨 불은 기계다. 굴러 떨어져서 깎인 돌은 기계가 아니다. 사냥을 하려고 뾰족하게 깬 돌은 기계다. 결국 기준은 인간이다. 틀을 잡은 주체가 사람이면 기계고 아니면 자연이다. 기계란 곧 인간의 피조물이다.

물론 기준이 인간이기 때문에 우주의 입장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인간이나 기계나 결국 신의 피조물이다. 진화의 산물이다. 모든 기계는 생명과 마찬가지로 네트워크의 일부다. 하나의 발명이 있기 위해 무수한 발명이 선행된다. 책을 만들려면 종이, 잉크, 활자 등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언어와 문자가 전제된다. 모든 발명가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있다. 선조가 쌓아올린 탑 위에 돌 하나 얹는다. 그렇기에 기술 발전은 불가피적인 면이 크다. 17세기 라이프니츠와 뉴턴이 미적분을 동시에 발명했고, 19세기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와 찰스 다윈 역시 독립적으로 진화론을 착안했다. 아마 그들이 아니었으면 다른 누군가가 미적분과 진화론을 만들었을 것이다. 

오늘날 인간이 만드는 기계는 대부분 형태가 없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많다. 0과 1, 아니다와 그렇다, 불연과 기연의 디지털 정보를 처리하는 알고리즘이 절대다수다. 알고리즘은 9세기 페르시아의 수학자 알 콰리즈미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그가 대수학을 발명한 이래로 인간이 기계를 만드는 틀은 점차 정밀해졌다. 한 번 쏘아올린 로케트를 제자리에 착륙시키고, 유전자 전체를 편집하도록 프로그래밍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2020년 제니퍼 다우드나는 ‘유전자 가위’라고 불리는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 기술을 발명하여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DNA에서 원하는 부위를 정확히 잘라낼 수 있다. 생명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유전 정보의 틀을 인간이 원하는대로 짠다. 비로소 생명은 완전히 기계가 되었다. 

테야르 드 샤르댕의 누스페어(noosphere), 리차드 도킨스의 밈(meme), 케빈 켈리의 테크늄(technium) 모두 생명 현상의 원리로 기계를 이해하는 개념이다. 생물권, 바이오스피어(biosphere)가 확장된 인간 지혜의 권역, 인지권이 누스페어다. 생물 유전자(gene)와 비슷하게 자연 선택되어 진화하는 문화 유전자가 밈이다. 현재 생물학의 6계 분류(세균계, 원생동물계, 유색조식물계, 균계, 식물계, 동물계)에 덧붙여서 기술계, 즉 테크늄도 별도의 계(界, kingdom)로 봐야 한다. 인류는 이성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다.

테크늄은 분명 살아있다. 밈은 계속 변이하고 선택되며 누스페어는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한다. 하지만 기계를 개별적으로 보면 살아있지 않은 것 같다.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은 꽤나 생동감이 있지만, 모닥불과 주먹도끼는 (그것들도 기계라고 봤을 때) 생명이라 부르기 어색하다. 본디 세포도 물, 단백질, 탄수화물 등이 모여서 이뤄진다. 각 부분이 살아있지는 않지만 합쳐지면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기계도 마찬가지다. 전체적으로 보면 자기 조직하고 증식하는 생명의 특성을 보인다. 불과 돌을 활용하여 금속을 가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석탄을 태우는 철마가 연기를 뿜고 굉음을 지르며 내달린다. 인간은 균, 식물, 동물처럼 기계의 생존 및 재생산 방식도 연구해야 한다. 기계의 진화는 여태까지 생명의 패턴과 비슷하면서도 분명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2. 성장에서 성숙으로

기계 살림을 잘하려면 인간이 기계와 어떻게 관계 맺을지 고민해야 한다. 사실 인간이야말로 최초의 기계다. 인류가 처음 가축화한 동물은 개도 소도 아닌 사람이다. 인간은 불을 이용하기 전에 다른 인간을 이용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괴물을 빚어내기 오래 전부터 인간은 서로를 만들고 틀에 맞추기를 일삼았다. 따라서 기계 살림은 그다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다른 게 있다면 정도의 차이다. 산업 혁명 이후 기계의 비중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커졌다. 인류세는 엄밀히 말하면 기계세다. 사피엔스가 동물로서의 몸뚱아리만으로 지구의 지질 시대를 바꾸는 게 아니다. 기후를 바꾸고 생태를 부수는 행위는 동물계가 아닌 기술계가 수행한다. 인간이 기계를 통해 하는 짓이다. 기계의 탓이 아니다. 인간이 기계와 맺은 관계가 잘못되었다.

기술 발전의 양상은 결정론적이다. 대수학이 나온 후에 미적분이 나오고, 게놈 지도를 그린 후에 유전자 편집 기술이 나온다. 이는 인간이 정한 것이 아니라 우주의 흐름이다. 피타고라스는 그래서 수학을 신의 계시로 여겼다. 인간은 우주의 신비를 하나씩 풀어나갈 뿐이다. 하지만 드러난 진리를 이용해 생명을 죽일지 살릴지는 인간에게 달렸다. 같은 화약으로 전쟁을 할 수도 축제를 할 수도 있다. 기후위기와 인공지능의 티핑포인트가 다가오는 시점에서 인류는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기계 살림을 잘 꾸려야 다 죽지 않고 살 수 있다.

여태까지 인간은 무한 성장을 위해 기계를 썼다. 닫힌 계에서 누군가의 급격한 성장은 다른 누군가의 도태를 낳을 수밖에 없다. 지구라는 유한한 시스템에서 인간은 기계를 키워 동식물을 죽였다. 기계 살림이 곧 생명 죽임이었다. <한살림선언>의 러다이트 같은 분개도 납득이 된다. 그런데 이제는 성장이 불가능하다. 달과 화성으로 나가지 않는 한 더이상의 성장은 자살 행위다. 이미 생태계는 붕괴하고 있다. 인류 문명은 성장보다 성숙을 택할 때다. 탈성장은 곧 성숙으로의 전환이다. 인간이 기계와 교접하는 목적을 성장에서 성숙, 숙성으로 바꾸면 우리네 살림 살이도 한결 여유가 생긴다.

성장할 때는 배 불리기에 급급하다. 많이 먹고 쑥쑥 자라는 게 제일이다. 그래서 인간도 기계를 대상화하고 도구화한다. 화석 연료를 태워서 전기를 최대한 많이 먹고, 공장식 축산을 가동해서 고기도 최대한 많이 먹는다. 그러나 그것도 한 때다. 청소년기 때나 그렇지 중장년기에는 조심해야 한다. 비만 관리도 하고 성인병 예방도 해야 한다. 몸을 키우기보다 마음을 키워야 한다. 인간 역사는 이제 봄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선천시대에서 후천시대로 간다. 인류 문명의 네트워크가 피운 과실이 바로 인공지능이다. 이제 자식까지 낳았으면 제 살 찌우기보다는 같이 살기에 집중해야 한다.

숙성하는 관계의 대명사가 발효다. 포스트휴먼이 되는 것은 인간이 기계와 한 몸이 되어 질적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콩이 누룩과 만나 메주가 되고 메주가 소금물과 섞여 된장이 된다. 균형만 잘 맞으면 항아리 속에서 간장은 영생을 누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숙성된다. 굉장히 지속 가능한 모델이다. 김치와 막걸리, 치즈와 와인도 비슷하다. 동식물과 균이 어우러져 더 깊고 아름다운 무언가가 된다. 지구라는 항아리 속에서 인간은 기계와 융합하고 있다. 발효에도 골든 타임이 있다. 중요한 시점에 밸런스가 깨지면 썩어버린다. 지금이 바로 동물과 기계의 발효 과정에 있어서 절체 절명의 순간이다.

그 결과 탄생할 신인류는 어떤 모습일까? 된장은 콩도 누룩균도 아니다. 김치는 배추도 젖산균도 아니다. 그것들이 하나되어 바람과 물, 시간을 재료로 숙성된 존재다. 절묘하게 공진화하여 새롭게 태어난 생명이다. 무엇보다 항아리 속에서 오래오래 지속 가능한 생활 양식이다. 인간과 기계와 함께 발효할지 부패할지는 미지수다. 나는 된장 같은 사이보그가 되고 싶다. 김치처럼 싱귤러리티에 도달하고 싶다. 휴먼보다 한껏 멋드러지게 무르익은 포스트휴먼을 꿈꾼다. 

전범선

전범선 / 글 쓰고 노래하는 사람. 1991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밴드 ‘양반들’ 보컬이다.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포르체, 2021)와 '해방촌의 채식주의자'(한겨레출판, 2020)를 썼다. '왜 비건인가?'(피터 싱어 지음, 두루미, 2021), '비건 세상 만들기'(토바이어스 리나르트 지음, 두루미, 2020) 등을 번역했다.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의 자문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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