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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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houghtco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한국영화’ <브로커>가 송강호 배우에게 깐느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는 보도를 보고 소박한 의문이 하나 생겼다. 일본인 거장의 ‘유사가족’이라는 주제의 연작중 하나이고 각본도 그의 것인데, 그냥 한국영화라 불러도 좋은 것일까? ‘미나리’나 ‘파친코’의 성공에 열광하는 한국인들에게 이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한 ‘해외교포’ 문화인들이 한 국내 일간지의 컬럼을 통해 같은 질문을 제기한 적이 있는데 (“‘파친코’를 K-드라마로 보는 시각에 대해”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037840.html), 한국지식인들이 이에 대해 진지하게 답변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타이완출신 하버드의 현대중국문학 연구자 왕더웨이(王德威)는 기존의 중국문학과 디아스포라서사중심의 화교문학구분을 뛰어넘는 화어(華語)권 사이노폰(Sinophone)개념을 제시한다. 구식민지의 종주국언어에 기반한 영어권 앵글로폰이나 프랑스어권 프랑코폰에서 착안한 것이다. 국민국가의 틀로 가둘 수 없는 혼종된 언어정체성과 문화를 표현해야 하고, 로컬문화속의 식민성을 해체하고 재구성하기 위한 시도가 담긴 말이다. 작년 일본의 아쿠타카와(芥川)상 수상자는 타이완출신의 젊은 작가 리친펑(李琴峰)이었는데, 심지어 일본식민지 영향의 니포노폰(Nipponohone)의 흔적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타이완의 지역방언을 대륙의 푸졘(福建)성 남부에서 유래한 민난(閩南)어라는 명칭대신 식민지시절 일본어 영향도 있는 타이위(台語)로 불러달라는 대만독립주의자들의 설명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림1 타이완출신의 젊은 작가 리친펑은 일본어작품으로 아쿠타카와 상 등을 수상했다. 타이완에는 일본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중국인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문학속의 중국성(Chineseness)은 이제 중화문화뿐 아니라 다원화된 화교사회가 가진 특성을 함께 표현하는 것이다. 대륙, 홍콩, 타이완 외에 흔히 난양(南洋)으로 불리는 말레이지아와 싱가폴지역의 마화문학은 제4의 중국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꼽히기도 한다. 중산(中山)대학의 주총커(朱崇科)는 <마화문학12가(馬華文學12家)>를 펴내 (2017) 12명의 이 지역출신 대표작가를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중국내에서의 문학연구는 고전연구는 일류, 현대문학 연구는 이류, 해외문학 연구는 삼류라는 편견이 존재해왔다고 한다. 변방의 중국어 문학은 당연히 관심대상이 아니었고, 동남아시아에 대한 차별과 편견도 존재한다. 상대적으로 경제문화 선진국에 해당하는 타이완이나 홍콩, 싱가폴에서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이다.  

그림2 마화 혹은 신마화(新馬華)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지아 지역의 화교를 의미한다. 이 지역은 오래전부터 난양(南洋)이라 불려오기도 했다.  

 19세기말 중국대륙에서 출생해서 난양으로 이주했던 치우슈윈(邱菽圓,1874-1941)과 같은 화교지식인들은 중화중심주의를 유지한 채 현지의 자연, 언어, 문화, 인종을 수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현지에서 출생한 그 후대는 점차 로컬을 중심에 놓고 중화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영국의 식민통치, 화교가 중심이 된 말라야공산당의 활약, 일제의 침략 그리고 말레이시아 독립과 같은 역사속의 큰 변곡점들이 이 변화를 추동해왔다. 특히,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리얼리즘, 타이완에서 시작된 향토문학사조도 로컬과 현실을 중시할 것을 요구했다. 우안(吳岸, 1937-2015)과 같은 현실주의 시인은 독립 말레이지아의 정치적 아이덴티티에 토지와 자연에 대한 소박한 감상을 결합시키지만, 이를 형이상학적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보르네오섬 출신인 소설가 장귀싱(張貴興, 1956-)은 타이완으로 건너와 대학을 마치고 이곳에 영어교사로 정주하게 됐는데 말레이지아와 타이완 문단 양쪽으로부터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아왔다. 그는 2020년에 20년전 발표된 대표작 장편소설 <네펜데스, 벌레잡이 통풀(猴杯)>로 타이완의 연합보(聯合報)문학대상을 수상했고 화교여성들의 일본군 위안부역사를 그린 신작 <멧돼지도강(野豬渡河)>도 연이어 홍루몽세계화문(華文)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중화권 문단의 이목을 끌었다. <네펜데스>도 같은해 대륙에서 뒤늦게 출간됐다. 

그림3 말레이지아화교 출신인 타이완의 소설가 장귀싱의 조상은 광둥성에서 말레이지로 이주해왔고 그는 아시아의 대표적 열대우림지역인 보르네오섬의 말레이지아령 사라왁주에서 나고 자랐다.

그밖에도 그의 대표작으로는 열대우림 3부작 혹은 5부작으로 일컬어지는 <군상(群象)>, <사이렌의 노래(賽蓮之歌)>, <남국(南國)공주>, <완피가족(頑皮家族)> 등이 있다. 정글에 대한 생경하고 생생한 중국어 묘사와 강렬한 몽환적 정서로 특징지어지는 그의 열대우림미학은 사이노폰 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동시에 중화문화에 갇히거나, 그 기호가 상징하는 문명과 난양을 야만시하는 이분법도 거부한다. 그래서 중화권의 주류문단이 ‘이국적’이라는 타자화된 표현으로 그의 작품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 이국이 아니라 자신의 고향에 대한 기억을 묘사한 것이라고 또박또박 되받는다. 중국인 노벨문학수상자 모옌의 향기가 느껴진다는 대륙 평단에 대해서는 자신의 문학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청소년기에 영어원전으로 읽었던 셰익스피어라고 답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세계속에는 서구와 일본식민주의자들, 중국인과 그 내부, 원주민, 그리고 자연에 대한 위계적 약탈과 폭력이 여과없이 드러난다. 중국인 노동자들은 쿠리(苦力)로 팔려오지만, 현지에서는 식민정부와 결탁해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는다. 성공한 중국인들이 중국인 노동자를 부리고, 가난한 중국인 여성들도 현지로 데려와 노동자들의 위안부, 즉 매춘부로 삼는다. 아편과 도박, 섹스를 통해 노동자들을 길들인 것이다. ‘섹스사파리’로 불리는 원주민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성착취 묘사는 가히 변태적이다. 특히 우아한 중화문명을 상징하는 중국인 교사가 이에 탐닉하는 모습이 의미하는 것은 문명의 위선이다.        

개인의 아이덴티티 문제가 역사에 대한 집단의 기억과 의식으로 발전하고, 밀림에서 억눌린 본능이 되살아나며 금수화되어가는 개인의 폭력이 집단으로 만연해가는 타락의 과정이 그려진다. 저자는 작중인물들에게 동물의 이름을 부여하고, 동물에게 인간의 호칭을 붙이는 방식으로 인간과 자연을 융합시키는 작중의 장치를 설치한다. 이것은 동물의 폭력성에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고  동물보다 못한 문명과 권력에 대한 환멸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화교와 원주민사이에도 인종적, 문화적 동화를 추구한다. 탈식민주의의 훌륭한 구현이다. 과거의 역사가 배경이 되므로 작품속에 직접적인 설명이나 묘사는 없지만, 현재 팜오일, 바이오에너지 등의 플랜테이션 목적으로 심각하게 열대우림이 파괴되고 있는 보르네오섬은 기후변화위기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곳은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아시아의 아마존이다. 작가는 생태주의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지만, 매년 방문하는 고향의 모습이 무분별한 개발로 변모해가는 것을 새로 출간된 대륙판 서문에서 걱정한다. 현재 인도네시아 정부가 행정수도를 자바섬의 자카르타에서 보르네오섬 남부 칼리만탄 지역으로 옮기는 것을 계획중인데, 앞으로 열대우림지역에서 얼마나 더 큰 규모의 개발과 파괴가 벌어질지 염려된다.      

타이완에서 활동하는 또다른 대표작가이자 평론가로는 황진슈(黃錦樹, 1967-)가 있다. 그는 다양한 소설과 에세이 집필을 통해, 말레이지아, 싱가폴 사회와 정치를 풍자적으로 비판하는데 대륙근대화시기 루쉰의 문필활동을 연상시킨다. 특히 이 지역은 종교, 종족, 정치 등의 갈등요소 때문에 여전히 수많은 금기사항이 있고, 언론과 학문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을 받는다. 그는 타이완에서 활동하는 덕에, 이 선을 자유롭게 넘는 것이 가능했다. 말레이지아화를 인위적으로 강요하는 종족융합, 종족개조에도 반대하고 정반대 입장의 맹목적 중화찬양도 비판한다. 말레이지아 사회가 심층적인 다원성속에서 공생을 추구하기를 기원한다. 

영국에 거주하며 영문으로 작품을 쓰는 오우다쉬(歐大旭, Tash AW, 1971-)같은 작가도 있다. 그의 대표작 The Harmony Silk Factory는 우리에게도 한강의 <채식주의자>로 익숙해진 맨부커상 후보로 선정된 바 있다. 역시 반식민, 탈식민성향인 그의 작품 특징 중 하나는 지역을 확대하여 인도네시아의 관점을 추가한 것이다. 인종이나 언어적으로 동일한 오스트로네시안 계열에 속하고 20세기에 네덜란드 식민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언어 바하사를 공유하는 말레이지아와 인도네시아가 별개의 국민국가로 나뉜 것도 서구식민지 역사 때문이라는 이야기이다. 그의 소설속 주인공 화교청년은 화교, 서구인, 일본인, 말레이지아와 인도네시아인을 포함한 수많은 행위자들과 교호한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서로 다른 복잡한 정치적 입장에 둘러싸여, 때로는 민족영웅으로 때로는 매국노로 끊임없이 변신을 당하며, 이들이 역사의 주체로 살아오기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이들 마화작가 대부분은 국외로 나와 고등교육을 받고 타이완, 홍콩, 서구사회에서 작품활동을 이어간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중국어가 소수언어로 취급되고, 정치적으로는 이등시민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약자인 화교들이 때로는 경제적 강자로서 착종된 신분과 중화주의를 극복하고 만들어나가는 ‘트랜스내셔널’은 세계속의 K-컬쳐와 한국어문화작품이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추구해야할 다원성에도 좋은 참조점이 된다.       

그림4 황밍지의 뮤직비디오 “유리멘탈”. 중국의 젊은 애국주의자들인 샤오펀홍을 풍자하는 작품이다. 

 

*나가며 : 83년생 말레이지아 화교로 황밍지(黃明志, Namewee)라는 싱어송라이터이자 래퍼, 영화감독을 겸하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있다. 그는 역시 타이완에서 대학을 나오고, 타이완과 난양지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말레이지아의 인종차별정책에 항의하고 이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전하다가 정부에 의해 수없이 많은 송사를 겪었고, 단기투옥이 된 적도 있다. 

그는 말레이지아 출신답게 영어는 물론이고 이 나라를 구성하는 말레이, 화교, 인도의 언어와 민족 문화가 뒤섞인 코미디 영화를 만들기도 하고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문화적 소통을 추구하는 “크로스오버아시아(亞洲通車)”라는 뮤직비디오 프로젝트도 오랜기간 진행하고 있다.  화교문화의 경우에도, 그의 조상이 유래한 하이난, 광둥어, 그외의 여러 지역방언을 구사하며 자신의 작품속에 녹인다. 

그는 2021년에 중국의 애국주의자 샤오펀홍을 비꼬는 “유리멘탈(Fragile 玻璃心)”이라는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서 유튜브 5천만 뷰를 기록하기도 했다. 대륙에서도 인기있는 타이완의 인기스타 왕리홍(王力宏)과 함께 공연하며 5년전에 발표한 히트곡 “북쪽을 표류하다( Stranger in the North 漂向北方)”는 지금까지 1억9천만뷰를 기록하고 있지만, 홍콩정부를 거침없이 비판하는 그가 당분간 다시 대륙에서 활동하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의 작품들은 정치적 편향성도 있고, 풍자성이 강해서, 비판 대상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이를테면 5~6년전 과거 통속적이라고 평가받던 한류를 비꼬는 노래와 영상을 몇편 발표해서, 한국인들중에는 그를 혐한이라고 지목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그의 작품세계를 돌아보면, 반한이나 혐한이라기보다는 동남아시아를 무시하는 한국인들의 차별적 관점과 한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순수한 풍자에 가깝다고 판단된다. 그는 외설적 표현이나 종교적, 민족적 상징과 금기에도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문학가는 아니지만 신세대 황진슈나 장귀싱으로 볼 수도 있다. 한편으로 말레이지아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등, 문화적 다원성이나 표현의 다매체성은 그들보다 훨씬 확장성이 있다. 이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신세대 마화아티스트가 생산하는 한차원 더 로컬하고 동시에 트랜스내셔널한 중화 혹은 중국성 콘텐츠를 기대해본다.   

김유익

和&同 青春草堂대표. 부지런히 쏘다니며 주로 다른 언어, 문화,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을 짝지어주는 중매쟁이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 아저씨. 중국 광저우의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오래된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함께 공부, 노동, 놀이를 통해서 어울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한다. 여생의 모토는 “시시한일을 즐겁게 오래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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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 阳明精舍 Posted on 2022.10.19 at

    본문에 시진핑은 언급도 되지 않는데 제목은 “시진핑이 외면한”으로 시작된단 게 어이없네요. 김유익님의 글은 “시진핑이 외면한”이라거나 “시진핑만 모르는” 따위로 제목이 쓸데없이 자극적일 때가 있습니다. 중국의 장점이 시진핑 1인의 공 때문이 아니듯 중국의 단점이 시진핑 1인의 과 때문도 아닙니다. 이런 한심한 제목 붙이기가 한국 인터넷에 만연해 있는 저열한 시진핑 혐오, 중국 혐오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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