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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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제이콥스(Michael Jacobs)와 훌리아 리카즈(Xhulia Likaj)의 기고. Michael Jacobs는 University of Sheffield의 정치경제학 교수이며, Xhulia Likaj는 베를린의 Forum New Economy의 경제학자이다

출처: 프로젝트-심디케이트, 2022년 5월18일자

 

소개의 변) 1972년 봄에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라는 출판물을 통하여 기후변화와 생태위기에 대하여 경종을 울린 지 50년이 지난 현재에도 서방을 중심으로 한 인류사회는 여전히 우크라 분쟁 등 지정학적 패권싸움에 몰입하면서, 현하 행성지구에서 인류의 공멸이 점차 눈앞의 심각한 주제로 다가오고 있다. 이번 주 다른백년은 기후변화 문제를 앞서 제기했던 서구의 진보적 견해를 밝히는 두 편의 칼럼을 연속으로 소개하면서, 이를 통하여 한국사회에서도 ‘기후위기와 지속가능’에 대하며 보다 전문적이며 폭넓은 논의가 촉발되기를 기대한다.

 

 

50년 전 올해 봄,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가 출판되었습니다. MIT의 Donella Meadows와 동료들이 로마클럽의 이름으로 발간한 “성장의 한계”는 새로운 컴퓨터 모델을 사용하여 환경자원 사용 및 오염의 일반적인 패턴이 계속될 경우, 세계 인구와 경제의 통제할 수 없는 붕괴를 진즉 예측했습니다. 기하급수적인 경제성장은 영원히 계속될 수 없으며, 향후 100년의 어느 시점에서, 그것은 유한한 지구환경의 한계에 필연적으로 부딪힐 것임을 주장했습니다.

반세기 후 기후와 환경 위기가 닥치자, “성장의 한계”로 촉발된 논쟁이 매우 증폭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1972년 당시에는, ‘이 책의 저자들은 기본 경제학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로부터 즉각적인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어느 자원이 부족해지면 가격이 오른다고 지적하면서, 그러면 다른 재료가 이를 대체하면서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주장하였습니다. 기술혁신은 새롭고 깨끗한 생산방법으로 이어질 것이고, 따라서 경제성장이 사회적 붕괴로 이어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며, 자체적으로 상황에 적응하고 수정해간다고 예시하였습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성장의 한계”가 틀렸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그들 중 한 명인 Julian Simon은 환경운동가인 Paul R. Ehrlich를 상대로 다음 10년 동안 5가지 금속의 가격에 대해 내기를 했습니다. Ehrlich는 선정된 자원이 부족해지면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것에 내기를 걸었고, Simon은 다른 재료로 대체되면서 가격이 저렴해질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결과는 Simon이 5개 모두의 내기에서 이겼습니다.

그러나 금속 또는 화석연료의 부족만이 결코 “성장의 한계”에 관한 모든 것이 아닙니다. 생태경제학자인 Nicholas Georgescu-Roegen과 Herman Daly가 지적했듯이 성장에 물리적 한계가 존재하는 이유는 지구의 생물/생태권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자라는 속도보다 더 빨리 나무를 베어내면 삼림벌채가 발생합니다. 농업을 위해 보다 많은 땅을 개간하면 다양한 자연의 종은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이산화탄소를 행성지구가 흡수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빨리 대기로 품어대면 행성의 온도가 올라 갑니다.

상기의 예에서는 성장론자인 Simon이 10년 내기에 성공했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성장의 한계”에 대한 예측은 놀라울 정도로 확고한 것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최근의 과학 연구에 따르면 기후를 포함한 다양한 생명유지의 핵심 시스템에 대해 인류가 안전하게 번영할 수 있는 “행성의 조건한계”에 빠르게 접근하거나 일부의 경우에는 이미 이를 초과했을 수 있습니다.

 

녹색성장론

여전히 성장을 주장하는 주류 경제학자들도 물론 이것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경제성장이 국민소득 및 산출(GDP)로 측정되며 이러한 지표와 환경악화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고 폐기물을 재활용하고 소비를 상품에서 서비스로 전환하면 경제성장이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훨씬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더 높은 생활 수준과 더 건강한 환경이 병존하는 “녹색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연스레 지난 10년 동안 녹색성장은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포함한 모든 주요 다자적 경제기구들의 공식목표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부유한 국가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경제가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 동안 감소했습니다. 그러나 GDP 성장과 환경피해의 명백한 분리 대부분은 현재 대부분의 공산품을 생산하는 중국 및 기타 신흥경제국들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이전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삼림벌채, 어족자원, 토양고갈을 포함한 다른 영역에서는 (성장과 환경피해의) 절대적인 분리가 거의 또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탈성장론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패널(IPCC)과 유엔환경계획이 점점 긴급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처럼, 세계는 여전히 미래에 닥칠 환경재앙으로 행하여 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적극적이며 저명한 환경운동가 그룹들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선진국 경제는 성장을 멈추고 탈성장을 시작해야 합니다. 제이슨 히켈(Jason Hickel)과 지오르고스 칼리스(Giorgos Kallis)와 같은 작가들은 “역逆성장”만이 세계가 행성의 환경적 조건 내에서 살아 남을 수 있으며, 최빈국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여유의 자원을 남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더욱이 탈성장론자들은 경제성장이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장 자체가 우리를 더욱 잘 살게 하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부유한 국가의 GDP 성장이 이제 만연한 불평등에서 정신질환의 증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관찰합니다.

녹색성장 옹호론자들과 탈성장 지지자들 사이의 경제적 논쟁은 친자본주의 이념과 반자본주의 이데올로기 간의 정치적 논쟁이기도 합니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세 번째 논쟁인 “성장 이후”라는 주제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등장했습니다.

 

포스트-성장론

포스트-성장 경제학의 지지자들은 GDP에 초점을 맞춘 녹색성장 옹호자들과 탈성장 논자들을 모두 비판합니다. GDP는 환경악화나 사회복지를 측정하지 않기 때문에 GDP의 성장이나 탈성장이 주요 경제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OECD가 발간한 최근 보고서에서 주요 경제학자 패널은 경제정책 대신 사회정책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아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오늘날 부유한 국가군에서는 환경지속 가능성, 웰빙 개선, 불평등 감소 및 회복력의 강화 등이 중심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목표 중 어느 것도 더 이상 경제성장으로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정책 입안자들은 직접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 “성장을 넘어”서야 합니다. Donut Economics의 저자 Kate Raworth가 말했듯이 우리는 “성장-불가지론(무관론)”자가 되어야 합니다.

Post-Growth의 아이디어가 주목을 받는 주요 원인은 최근 몇 년 들어서 선진국 경제권이 성장하는데 매우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정상적으로 간주되었던 연간 2~3%의 GDP 성장률에 거의 도달할 수 없으며, 초저금리와 중앙은행자금의 막대한 투입을 통하여서도 겨우 완만한 성장 정도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그러한 이유에 대해 의아해하지만, 최근의 경제침체는 환경정책의 성과 여부로 인하여 실제로 낮은 성장률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지구기후와 환경에 대한 경제의 파괴적인 영향을 억제하는 것이 인류사회의 압도적인 우선순위임을 인식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환경운동가일 필요는 없습니다. 반세기 전 “성장의 한계”는 출간 당시에는 일방적으로 무시되었습니다. 만약 50년 전에 출간물의 내용에 주목하여 선제적 조치를 적절하게 취했다면, 오늘 이 시점에 우리가 다시 이런 주제로 토론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 이사장, 국민주권연구원 상임이사. 철든 이후 시대와 사건 속에서 정신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으며, ‘너와 내가 우주이고 역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서로 만나야 연대가 있고, 진보의 방향으로 다른백년이 시작된다는 믿음으로 활동 중이다. [제3섹타 경제론], [격동세계] 등의 기고를 통하여 인간의 자유와 해방의 논리를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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