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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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bc17news■ 사회: 이오성 기자(시사IN)

■ 대담인: 샹바오 교수, 이병한 박사, 임명묵 작가

■ 장소: Zoom을 통한 인터넷 미팅

■ 통역: 김유익(중→한통역), 우자한牛紫韓(한→중통역)

■ 정리: 김명준

■ 대담 일시: 1부 2022년 4월 19일 / 2부 2022년 4월 22일

이 대담의 내용 일부는 시사IN에 기사로 발표된 적이 있음 (제 766호 “러시아의 국뽕에서 한중이 위기를 읽다”)

 

 

샹뱌오(이하 샹): 이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굉장히 감사드립니다.

이오성(이하 시): 샹바오 선생님께 우선 묻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일찍부터 알렉산더 두긴 (Alexandr Dugin)에 주목하셨는데요 왜 두긴과 같은 인물에 주목하게 되셨는지 먼저 말씀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샹: 제가 두긴에게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푸틴의 침략전쟁에서 겉으로 드러난 이유들은 지정학적, 군사적 설명이 있는데요. 저는 이 전쟁이 이것들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고 더 큰 어떤 배경이 있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쟁 배후의 의미, 철학, 그리고 정서를 파고들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두긴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두긴의 철학과 그가 느끼는 감정과 같은 것들이 이 전쟁의 배경이 됐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번째로, 두긴은 원래 서방 매체에 의해서 푸틴의 브레인으로 소개되고 있었는데요. 중국의 학자들이나 일부 청년들이 두긴의 담론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었거든요. 왜냐하면 두긴이 세계에 대해서 설명하는 방식들은 일부 중국인들이 관심을 가지거나 동의를 할 수 있을 내용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는 두긴의 철학때문입니다. 두긴이 역사와 문명을 보는 관점은 굉장히 추상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전쟁과 연결이 됐을 수도 있습니다. 증거가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우리의 일상생활의 의미들이 과연 두긴이 얘기하고 있는 것들과 어떤 관계가 있을 것인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또 두긴이 이야기하는 소위 지정학도 우리의 삶과 과연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알렉산드르 두긴

시: 지금 저희가 두긴에 주목하는 이유는 오늘날 청년세대들에게 두긴과 같은 사상가가 중국이든 한국이든 매력적으로 비칠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는 우려 때문인데요. 그 가능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샹: 저는 청년들이 두긴의 영향을 받는 것에 대해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두긴을 추앙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두긴의 화법을 보면 그의 이론이나 설명이 선동적인 것도 아닙니다. 설득력도 별로 없어요. 일부 청년들이 두긴 같은 사람의 주장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사실 허무주의에서 비롯합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일상적 경험이나 주변환경들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면 세상이나 생활의 의미에 대한 이해도 깊이가 떨어지죠. 전체나 사물 혹은 세계를 보는 더 명확한 관점, 그걸 저는 도경(圖景)[1]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이 도경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두긴의 이론 같은 것들이 그 빈 부분을 보충해 준다는 느낌을 받게됩니다. 그래서 보통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잘 파악할 수 있고 잘 이해할 수 있다면 두긴 같은 사람의 주장에 쉽게 휩쓸려 가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제가 진짜로 걱정하는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중국이 그렇고 아마 한국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바로 공허감에 빠진 관료체제입니다. 테크노크라트들은 시험을 통해 선발됩니다. 이들은 원래 나름의 공공 서비스를 해야 되는 사람들이고 이에 대한 복무 이념을 가져야 되지만 실제로는 그런 사람들이 관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 그냥 성적이 좋고 시험을 잘 봐서 그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이 사람들이 권력을 갖고 있지만 스스로 의미구성이나 의미부여를 하지 못하니까 정신적 공허감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상당히 높은 지위의 정책 결정권자가 되는데, 결국 모종의 ‘숭고한 이론’을 추구하게 됩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아실 거예요. 악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평범성과 숭고한 의의를 찾는 경향, 즉 초월성 추구가 만나면, 탈정치화된 상황에서 위험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보통 청년들은 생활의 의미를 찾을 수만 있다면 두긴류의 주장에 대해 충분히 저항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관료체제는 아직 이런 위험성을 충분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죠.

시: 중요한 말씀이군요. 시진핑에게도 숭고한 이론 같은 것을 제공해 주는 브레인, 두긴 같은 사람이 있을까요?

샹: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비슷한 사조들은 분명히 중국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외교정책에 대해 2000년대 중국에서 큰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기존에 덩샤오핑이 주장을 했던 외교기조는 도광양회였습니다. 몸을 수그리고 우리 발전에 힘을 쓰자. 리더역할을 자처하며 머리를 쳐들고 일을 도모하기보다는 조용히 우리 실속을 챙기자라는 말이었죠. 그런데 2천년대 초반이 되면서 이제 중국이 제법 커졌는데, 그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겠냐는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그때 두가지 얘기가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중국이 미국 모델을 따라가며 일종의 ‘무임승차자(free rider)’로서 발전을 해왔는데 이제는 중국만의 독자적인 모델을 만들어야 하지 않냐는 것입니다. 독립모델에 대한 첫 번째 논의는 굉장히 도덕적인 요구였어요. 우리가 너무 이기적으로 경제적 이익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 중국이 세계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면서 공헌을 해야 되는데 그러자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거였죠. 이런 생각은 어떤 숭고함을 추구하는 측면이 있는 건데요. 잘못된 말은 아니죠. 당연히 권력이 생겼으니까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되는 거고요.

그런데 두번째는 조금 더 공격적입니다. 도광양회라고 말은 했지만 우리는 원래 코끼리같은 존재다, 머리를 숙이고 몸을 감춘다고 드러나지 않는 게 아니다. 그러니 힘을 활용해서 새로운 질서를 제안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이 UN얘기를 많이 하죠. 미국 중심의 질서가 아니라 유엔처럼 좀 더 국제적인 조직과 원칙이 중요하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중국도 이론적으로든 실천적으로든 제3의 조직을 정말로 중시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뭔가 새로운 비전이나 질서를 제시해야 되는데 그게 제대로 안 되고 있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차원의 요구에 대해 중국이 뭘 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나 노력이 부족하다는 거죠. 그러면서 (중화)문명론과 같이 굉장히 추상적인 논의를 내세웁니다. 추상적이고 도덕적인 논의에 의해 정당한 요구가 공중납치(hijacking)되었다고 볼 수 있죠. 이런 것들이 현재 중국의 이슈이자 향후의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병한(이하 이): 대체적으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고 또 아시아나 일본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고 표현을 하는데요, 호칭에서부터 이미 각자의 관점이 많이 투영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저는 샹뱌오 박사님의 글(「샹뱌오 두긴을 말하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보통 우리는 전쟁의 동기를 자원수탈 등의 경제적 이유를 떠올리는데요. 이번 전쟁은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의미의 추구를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전쟁이) 러시아의 어떤 정체성 혹은 새로운 러시아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가 가장 핵심적인 독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탈냉전 이후의 세계사에 대한 몇 가지 전망 중 모든 것이 다 서구화 혹은 미국화 될 것이다라는 식의 관점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냉전이 끝났기 때문에(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싸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더더욱 오래된 문명의 가치가 귀환해 문명의 충돌로 이어질 것이다(헌팅턴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었죠)라는 관점이 있었죠. 샹뱌오 선생님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앞으로의 세계사가 어떻게 전개될 거라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샹: 저는 문명의 충돌로 이번 전쟁을 해석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물론 두긴 자신은 헌팅턴의 이론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편입니다. 저는 지금 두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때문에 그가 추구하는 의미를 얘기한 것이지 의미 자체가 전쟁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좀 명확하게 말씀을 드려야 될 것 같고요. 제가 왜 이 전쟁과 관련해서 의미를 말씀드렸냐면 이런 전쟁의 훨씬 더 구체적인 조건들, 특히 내부의 경제문제라든가 정치적인 조건들과 ‘의미’가 단절될 때 문제가 생길 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두긴의 사상이 러시아에서 인기를 끌게 된 배경은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이 원인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소련 역사에 대해 제대로 성찰하고 반성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문자 그대로 몰락이 가속화하면서 러시아 사회는 비참한 상태로 전락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 몰락의 배경이 된 역사적 상황, 특히 그 정치경제적 맥락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이 너무 적었고, 또 몰락 이전 소련사회가 발전하고 영향력을 확대시켰던 시절의 경제적, 사회적 성취들이 너무나도 간단히 부정됐습니다. 푸틴 자신도 레닌을 부정적으로 설명했죠. 그렇게 물리적 실체와 변화의 디테일에 대한 설명이 거부된 채, 타락한 일상의 의미를 설명할 길이 없어 아노미 상태에 빠진 러시아 사회에 제시된 숭고하고 초월적인 사상이 바로 두긴의 네오유라시아니즘입니다. 두긴은 “소련붕괴 이후의 러시아”라는 특정한 상황에서 자신만의 의의를 만들어 냈고 이런 배경과 그가 주장하는 추상적인 문명론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문명론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먼저, 냉전이후 세계경제나 정치가 발전하는 구체적인 내용들, 예컨대, 생산방식, 특히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금융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문명론은 이런 내용을 설명하지 못하고 추상적인 논의에 머물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90년대에 등장했던 동아시아 문명론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동아시아의 역사적 발전과정과 그 이후의 정치경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추상적인 논의만 진행됐지요. 그래서 나중에 생명력을 잃게 됐습니다. 두번째로 문명론이 힘을 얻게 된 이유 중 하나는 9.11 사태입니다. 그 당시에 ‘문명 대 야만’과 같은 이원론적인 사고가 등장했고 이를 테러리즘으로 연결시켜서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게 하고 관련 정책들을 지지하도록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중요한 건 이런 문명충돌론이 왜 일정부분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데 설득력을 얻게 됐는지를 우리가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겁니다.

신냉전은 코앞에 닥쳐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거 냉전시대랑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이념간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있고 반대편에 자본주의가 있고, 이념에 따라 진영이 나뉘고, 각 진영들은 자기만의 발전모델을 가지고 경쟁을 했습니다. 그리고 각 진영의 핵심국가들의 상황도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꽤 괜찮았어요. 그러니까 소련은 소련대로 나름의 자기 발전모델을 통해 근대로 들어오면서 괜찮은 사회를 만드는 거고, 서구는 서구대로 상당히 발전된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양 진영 모두 진보나 현대화의 결과를 보여주고 입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서로가 설득력을 갖는 발전모델간의 경쟁이나 논쟁이 아니라 추상적인 문명간의 대립입니다. 그리고 이 대립이 군사대립으로 이어집니다. 과거 냉전과 현재상황의 또 한 가지 차이점은 각 나라와 각 진영 안에 굉장히 많은 국내적 문제들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이 있습니다. 미국의 불평등 문제, ‘BLM(Black Lives Matter)’로 대표되는 인종차별 문제는 냉전시기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들을 보여줬죠. 하지만 지금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습니다. 미국 뿐 아니라 중국이든 러시아든 내부의 여러가지 정치경제적인 갈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단순하고 선명한 이념적 냉전이 아니라 지금은 훨씬 더 복잡한 상황 속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문명 이야기를 할 때 문명이 정말 대립의 원인이 되는 건지 실증적으로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어요. 왜냐하면 문명은 굉장히 추상적인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시: 네. 그러면 기왕 지금 신냉전 문제나 포스트체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이병한 선생님이 준비하셨던 질문을 바로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제가 2017년도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여행했었거든요. 우크라이나, 러시아만 간 게 아니라 서유럽부터 쭉 돌아다녔는데요. 그때 제가 받았던 인상은 서유럽이랑 미국이 점점 멀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독일을 선두로 한 서유럽과 동유럽, 러시아가 연결되고 있는, 즉 대서양은 멀어지고 유럽대륙은 통합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 흐름이 완전히 뒤집힌 것 같기도 합니다. 좀 두고 봐야겠으나, 일단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여러 가지 긴밀한 경제적인 관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갈등이 표출됐고, 브렉시트 이후에 유럽에서 목소리가 작아지고 존재감이 거의 없어진 나라라고 간주됐던 영국이 다시 유럽의 정세에 깊이 개입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사실 영국은 미국의 의지를 대리해 주고 있죠. 그래서 대서양 동맹이 다시 강화하고 그동안 동서유럽간 갈등에서 중립을 지키려고 했던 북유럽 국가들도 나토에 가입하겠다고 하니, 정말 명실상부한 신냉전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유럽이 어디로 나아가느냐가 세계사에 굉장히 큰 영향을 줄 것이라 보거든요. 대서양 너머의 미국과 다시 연합할 것이냐 아니면 러시아 내지는 아시아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 나갈 것이냐가 관건이죠. 샹뱌오 선생님께서는 지금 독일에서 활동을 하고 계시니, 이번 전쟁 이후 유럽에 대해서 어떻게 전망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샹: 일단 지금 질문하신 부분에 대해서 제가 전문성을 가지고 답변을 드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물론 굉장히 중요하고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저는 국제 정치를 전공한 사람은 아니니까요. 이 점은 고려하시고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말씀하신 대로 제가 유럽에 있고, 유럽의 정세를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가설을 말씀드릴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먼저, 새로운 냉전의 문제입니다. 이전 답변에서 말씀을 드렸던 새로운 냉전체제 같은 것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냐라고 했을 때 저는 그런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봅니다. 하지만 분명히 다시 강조하는 거지만, 1946년부터 1989년까지 유지됐던 제1차 냉전 시대와 아마도 새롭게 등장하게 될 냉전국면은 그 양상이 많이 다를 것 같다는 것입니다. 진보가 아니라 퇴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공공복리같은 것들이요. 재차 자세한 설명은 않겠습니다.

두 번째로 말씀드릴 것은 유럽과 미국의 관계에 대한 전망이죠. 지금 유럽, 러시아와 미국의 상황에 대해서 저는 별로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향후 5년은 세계가 상당히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로든 좀 엉망 진창이 될 것 같아요.

일단 미국은 과거 10년간 굉장히 많은 사회와 국가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죠.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고요. 그래서 현재 미국의 강점은 두가지뿐입니다. 첫번째는 여전히 압도적인 군사력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조금씩 금이 가고 있긴 하지만 달러기반의 금융패권이죠. 결국 이 두가지 무기로 세계의 리더십 역할을 하고 있는데, 과거 10년간, 특히 트럼프 정권을 거치며 국제적으로 미국이 가지고 있던 도덕적인 리더십은 상당히 힘을 잃었습니다. 이게 현상황이고요. 그러면 앞으로 향후 5년은 어떻게 될까요? 제가 보기에는 미국의 엘리트들, 특히 방위산업 엘리트들이 굉장한 이득을 얻게 될 것 같습니다. 즉 이번에 전쟁을 호기로 삼아서 자기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노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에게 이 전쟁은 사실 굉장히 ‘해피’한 상황인 거죠. 현재 세계적인 국면과 역학이 재조정되는 상황에서 각국이 군사력을 확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 그리고 방산업체들은 유럽을 비롯한 각국에 무기를 엄청나게 팔아먹으면서 많은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겠죠. 근데 동시에 이들은 지금까지 관심을 기울이던 국내문제들, 즉 인종차별이나 경제문제들, 기후위기 같은 전지구적 문제의 우선순위를 낮추며 그 해결을 뒤로 미뤄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제재를 통해 달러 패권을 강화하려 할 것 이고요. 미국은 과거에 자랑하던 진보나 자유주의 같은 이념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통해 이익을 추구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이 늘어지는 것에 미국의 의도적 역할이 있지 않나 하는 의견은 상당히 합리적인 의심입니다. 미국 엘리트들의 이익이 우크라이나 인민 보호보다 더 우선될 가능성 말입니다. 미국의 주요 목적은 러시아를 약화시키고 자국 엘리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고통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미국이 향후 5년간 이런 방식을 통해 패권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전세계 사회주의 세력의 약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봅니다. 미국에서도 버니 샌더스가 대표하는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진영이 힘을 잃고 있고요. 유럽의 좌파들 또한 우왕좌왕하는 상황입니다. 동유럽은 원래 군사적으로는 나토에 가입하면서 미국이나 서유럽에 의지하고 싶어했지만 독일이나 프랑스가 이를 원한 건 아니었거든요.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확보하고 싶어했습니다. 문제는 이 국가들도 내부적인 갈등이 너무 심해서 정치적으로 뭔가를 하기가 힘든 상황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방금 질문하신, 과연 유럽의 핵심국가들이 계속 아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할 것이냐 아니면 영미 세력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냐의 문제에 대해서도 내부적인 어떤 컨센서스를 이루기가 힘들고, 주체적으로 결정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흐름에서는 결국 아시아와 협력하는 걸 모색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중국이 자신의 소소한 이익이 아니라 전세계의 발전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 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게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서 문제입니다.

끝으로 저는 인류학자이기 때문에 국제정치를 글로벌 엘리트들의 이익다툼으로 보게됩니다. 그래서 국가관점보다는 계급의 관점으로 이 문제를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미국 엘리트들이 패권을 회복하는 것이 미국의 약자들, 즉 소수인종이라든가 흑인들의 이익과 부합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패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런 국내 문제들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게 될 거고요. 한국과 중국같은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국내외적인 계급의 관점을 통해서 다시 국제문제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프레임을 아직은 다른 학자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했고 저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 네 고맙습니다. 인류학자가 보는 국제정치문제도 흥미롭습니다. 이제 임명묵 선생님께서 질문 주실 차례가 된 것 같습니다. 모스크바의 변화에 대한 중국의 관점이라든지.

임명묵(이하 임): 저는 샹뱌오 선생님이 과거의 냉전과 최근의 지정학적 혹은 강대국 간의 갈등의 차이를 지적해 주신 게 많이 동의가 됐습니다. 그러니까 구냉전의 어떤 이념과 지형의 대립적인 성격은 많이 줄어들었고 글로벌 자본주의의 맥락에서 체제나 이념간의 차이는 특히 정치경제적 면에서는 굉장히 옅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러시아의 도전들을 보면 여전히 이념적인 부분이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것이 정치경제체제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의 문화나 공동체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를 둘러싼 도전인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이 서구 각지에서 국내의 문화전선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페미니즘, 글로벌리즘, 자유주의, 코스모폴리터니즘 등을 비롯한 서구의 합의에 대해서 제기되는 도전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러시아나 두긴이 제기했던 문화적, 이념적 의제와 조응하면서 서구와 러시아 그리고 동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지속적인 문화적 갈등 그리고 이념적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크라이나 전쟁도 이러한 문화투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러시아나, 두긴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소비하는 청년들은 당연히 거의 없고요. 대신에 러시아가 보여주는 남성성 그리고 규율과 질서에 대한 찬양 그리고 서구 사회가 보여주는 문화적 혼란과 무질서에 대한 혐오 정서 같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인터넷, 특히 (이대남이라 불리는) 청년 남성 커뮤니티에서 자주 눈에 띄죠. 이런 것들이 한국에서도 페미니즘을 둘러싼 젠더 갈등이라는 정치적 의제로 강하게 전선이 형성되어 있기도 하고요. 모스크바가 서구에 대해서 제기하고 있는 문화적 도전, 이념적 도전, 전통에 대한 강조부터 정치적 올바름 문제에 대한 반감 등 다양한 수사와 논리를 동원하는 이런 도전에 대해서 중국에서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고 어떤 식으로 해석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듣기로 중국에서도 백좌(白左)라는 서구의 정치적 올바름을 내면화한 이들에 대한 조소를 담은 용어가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러한 점을 둘러싼 중국 내부의 논의 지형이나 상황을 듣고 싶습니다.

샹: 일단 중국도 비슷한 상황이라는 게 맞고요. 그래서 중국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서 이거는 속 빈 강정 같은 거다, 허무주의다 이런 식으로 비판을 합니다. 일단은 미국과 서구가 이중 기준을 적용한다라는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를테면 중국에서 BLM을 들어서 미국을 많이 비판합니다. 그런데 더 극단적인 경우가 PC는 원래 백인들이 인종적으로 만들어낸 백인의 도덕이고 거짓말이다, 우리를 속이기 위한 세뇌공작이다, 그러니까 아예 이중 기준이라고 비판할 만한 가치도 없고 다 가짜다 이런 조소와 비판도 존재합니다. 이 배후의 원인들로 주목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PC는 확실히 지나치게 추상적입니다. 현실속의 권력투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서구사회가 가진 원래 행위양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청년들이 자기들의 생활과 연결시키지 못합니다. 현실에서 유리된 이야기이지요. 그리고 두번째는 높은 도덕적 원칙을 가지고 나를 무시하는 듯한 느낌 때문입니다. 담론이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맺지 못하고 도덕적 원칙만을 구호적으로 제시할 때 위에서 내려다보는 관점이 되고, 비판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더 큰 반발을 하게 됩니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이게 우리의 역사적 과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서구의 이론을 가져와 자기맥락화하는 노력도 부족하다 보니까 이런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반대편 입장에서 PC를 조롱하는 사람들을 비판해보겠습니다. 제가 지금 ‘잔혹한 도덕주의(Brutal moralism)’라는 제목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정치제도에 대한 비판이 어느 정도냐 하면, 모든 도덕원칙과, 이런 표준이 모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는 지경입니다.  이걸 왜 잔혹한 도덕주의라고 부르냐면요. 극단적인 ‘여혐’과 같은 소위 남성권력의 담론을 들여다 봐야 합니다. 두긴의 지정학도 이런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굉장히 ‘도덕화’되어 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 정확하고 이게 나의 존엄성이라는 것이죠. 여기서 존엄성을 끌어오고, 영예로움을 끌어옵니다. 그리고 만일 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수치스러운 사람인 것이죠. 그러니까 이렇게 영광과 치욕의 감정을 끌어오는 것이 고도의 도덕화라는 겁니다. 그러면 잔혹함이란 무슨 뜻일까요? 이들은 바로 상대에게 딱지를 붙입니다. 이 과정에서 토론과정 따위는 없습니다. 저는 이걸 잔혹하게 정직(Brutally honest)하다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특징은 바로 그들이 드러내는 잔혹함이 정직함 혹은 일종의 진정성(Authenticity)이라는 겁니다. 그들에게 지금의 PC는 허위이자 위선입니다. 반면의 그들의 도덕은 진짜라는 거죠. 여혐은 여혐이고 나는 솔직히 그렇게 말했다. 이게 나의 도덕성이다. 네가 말하는 페미니즘의 구호는 듣기는 좋아도 알맹이 없는 가짜다. 그래서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 그리고 서방의 PC에 대한 회의가 전통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고 있다고 하셨죠. 중국에서도 분명히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모두들 중국이 중화문명으로 돌아가야 하고,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했는지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관계가 없습니다. 이런 말은 성립되기 어렵죠.

러시아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페미니즘에 반대하고 있죠. 하지만 소련의 역사에서 여성이 해방되었고 중국도 마찬가지예요. 중국도 서구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 역사의 전통속에서 여성들을 더 존중하고 여성들의 권력을 강화해온 전통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러면 이 전통은 가짜란 말입니까? 물론 푸틴과 두긴 같은 사람들이 그걸 부정하고 있긴 하지만 이건 실존하는 역사적 경험입니다. 그러니까 고대와 중세의 예를 들어 페미니즘이 반전통이라고 얘기하는 것이 말이 안됩니다. 이런 것들을 현재 상황으로부터 이해해야지 전통이라는 추상적인 구호에 휩쓸려 들어가서는 안됩니다.

주로 기층의 민중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갈수록 불안정하죠. 하지만 기대는 여전히 높습니다. 이런 상황이 왜 동아시아에서 더 두드러질까요. 중국도 그렇고 한국도, 동아시아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동아시아 모델이라는 게 있거든요. 동아시아 모델의 서사는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면 경제가 성장하고 삶이 갈수록 나아진다는 거죠. 그런데 실제 상황 특히 2010년 이후의 청년들의 현실은 더 이상 이 서사를 뒷받침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새로운 목소리가 필요했던 겁니다. 자신의 존엄을 발설할 대상이 필요했고, 그래서 PC를 공격 대상으로 삼게 된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양성관계에 대해 좀 설명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한국의 대선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페미니즘이 너무 과도했기 때문에 이런 백래시가 온 것이라고 말하죠. 오늘날의 남성들이 많이 살기 어렵다고 합니다. 정말로 생활에 압력이 적지 않죠. 그래서 자기의 권리와 공정에 대해서 발언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60~70년대에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외치면서 여성들이 겪는 불평등에 대해서 항의했는데 우리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제 생각에 이건 다릅니다. 과거에 여성주의가 출현한 배경은 단순한 남녀문제가 아니라 정치경제적인 문제입니다. 가정내 가족 구성원간의 권리문제가 있고, 이 권력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그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페미니즘입니다. 그런데 남권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그런 구조안에서의 권력과 자원배분을 둘러싼 투쟁에 대해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냥 너는 여자고 나는 남자다라는 식으로 편을 가르고 상대를 공격합니다.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분석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기층남성들이 불만을 갖게 되는 구조에서 실제 패권을 가진 사람은 누구입니까. 실제로는 대부분의 경우에 성공한 남성일 가능성이 높죠. 근데 왜 남성들은 성공한 남성을 비판하지 못하고 여성들에게 화살을 돌릴까요. 왜냐하면 성공한 남성, 즉 시스템을 비판하는 순간 자기는 초라한 ‘루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걸 견딜 수가 없는 거죠. 이게 잔혹한 도덕주의, 그리고 포퓰리즘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이들의 비판은 거대한 권력관계, 경제관계, 정치관계에 대한 디테일한 분석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간단한, 심지어 연성의 반역입니다. 여자니까 공격할 뿐, 가정이나 경제시스템의 문제를 보지 못합니다. 서방의 PC라고 공격하는데 구체적 분석은 없고 딱지를 붙여 비판할뿐 불평등의 원인과 같은 근본적 문제는 보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냥 전통으로의 회귀라기보다는 지금의 불만스럽고 좋지 않은 상황을 단순화시켜서 보고 격렬하게 표현하는 반역에 불과합니다.

임: 그냥 덧붙여서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한국 인터넷상의 논쟁을 좀 자세히 들여다보는 편인데 한국의 안티페미니즘 혹은 남권주의가 처음에는 단순한 비난과 딱지붙이기의 형태를 취했는데 최근에는 페미니즘의 전술 혹은 이론적 경향들을 역으로 이용해 자신들만의 정치경제적 분석틀과 공격논리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꽤 흥미로우면서도 이게 어떻게 튈지 몰라 좀 불안하게 만드는 측면도 있습니다.

제가 러시아를 여행했을 때 현지청년들과의 대화에서 두 가지 정서가 엿보였습니다. 하나는 러시아에는 어떤 희망도 없고 외국으로 탈출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체념적 정서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고요. 그리고 강대국이자 제국으로서 러시아가 가지고 있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정말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서도 (그땐 전쟁 전이었는데) 특별한 조치를 취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동아시아에도 이런 정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국가와 사회에 대해서 굉장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어떤 체념적 정서가 있는 것 같고요. 그러니까 말씀하신 동아시아 모델에 대한 기대가 좌절된 데서 오는 배신감이랄까 그런 정서. 그리고 동시에 또 전투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강력한 민족주의 정서가 청년대중들 안에 활발하게 뿜어져 나오고 온라인에서 충돌이 일어납니다. 이런 것들도 현대사회에서 의미상실 그리고 일상생활에 대한 설명 부재에서 오는 서로 다른 반응인지 궁금합니다. 같은 뿌리에서 온 다른 반응일지 아니면 조금 종류가 다른 사회적 여론의 반영인지도 모르겠고요. 저는 그런 맥락에서 동아시아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K-pop팬덤 문화에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샹: 당연히 중국에도 이 문제가 존재합니다. 한국에서도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요. 소분홍(小粉紅)이라고 하죠. 연령대로 보면 90년대생이하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 2020년부터는 내권이라든가 탕평 같은 유행어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N포세대, 달관세대라 불리던 현상과 유사하죠. 그런데 두 그룹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중첩이 없지 않지만 인구구성으로는 대체로 경제사회적 조건에 따라서 나뉩니다. 지금 말씀을 드리는 그룹은 대략 25살 이상의 사람들입니다. 첫째, 탕평이나 내권을 말하는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사회경제적 조건이 좋은 사람들이에요. 도시에서 살고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근데 이 사람들이 더 높은 계급으로의 신분 상승을 추구하다가 좌절을 겪으면서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앞으로 1~2년 내에 이런 사람들이 더 급격하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팬데믹이 이 경향을 가속화시킬 겁니다. 두번째 경우는 애국주의자, 소분홍입니다. 원래는 좀 숫자가 많은 편이었는데 지금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요. 숫자는 줄어드는 대신에 주장과 자기논리가 좀 더 극단화하고 있습니다. 이 그룹은 농촌기층 출신 청년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동아시아 서사 안에서 자기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불만이 많고 존엄성이 상처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처한 현실에서 뛰쳐나오는 환상을 제공하는 게 바로 강대국에 대한 상상인 거죠. 방금 말씀드린건 25세 이상의 그룹에 대한 것이고요. 좀 더 어린 친구들, 18세에서 25세 사이의 청소년들, 아직 학생들이거나 막 학교를 졸업한 경우에는 이런 경향들이 모호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가정 형편이 좋은데도 중국이 강대국이 되길 희망하는 정서를 가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앞으로 돌아가서 얘기를 하자면, 같은 역사적 맥락에 처해 있지만 다른 사회경제적 배경을 갖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이죠. 근본적인 원인은 같습니다. 자기의 일과 생활의 구체적인 조건과 상황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탕평 같은 경우에 그럼 이 사람들이 나중에 어떻게 하겠어요.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로 선택지가 없습니다. 집에 돈이 좀 있고 조건이 되는 사람들은 이민을 가고 싶어 하죠.

그래서 제가 최근 몇년간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강조하는 게 ‘부근’이라는 개념입니다. 청년들이 자기 주변을 다시 깊이 있게 검토해 볼 수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만일 주변에 문제가 있다면 이 문제를 구체적인 방식으로 명확하게 설명하고 어떻게 이 문제를 직면할 것인지 생각하는 겁니다. 당연히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수많은 문제의 해결은 자기 능력밖이라고 느낄겁니다. 여기에 학자들이나 예술가들이 개입해야 합니다. 청년들이 개인으로서도 여러 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개인의 노력과 자기생존의 전체적 상태에 대한 결정사이에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알게 해야 합니다. 이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자기 부근과 일상생활속의 구체적인 문제와 모순을 재발견하도록 고무하고 있습니다. 구체적 문제와 모순을 통해서만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노력의 방식도 더 명확해지죠. 그렇지 않으면 뒤로 물러나 탕평을 하든지, 거대한 그림속에 길을 잃게 됩니다.

시: 이제 좀 민감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샹바오 선생님 개인적으로는 전 세계적인 반중정서를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지 궁금하고요. 중국내에서도 해외의 반중정서를 진지하게 대응하고 논의하는 분위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샹: 일단 중국청년들의 반응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요. 외국의 반중감정에 대해서 확실하게 의식을 하고 있고 기본적으로는 더 강하게 맞서야 된다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중국을 비판하는 외부논리들은 일종의 음모다. 그리고 불공정하다 혹은 중국의 굴기에 대해 질투심을 느끼는 거다.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제가 대학생 한명과 얘기를 해봤습니다. 예전에 중국사람들이 해외로 나가면 대접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들 중국인이 가난한 나라에서 왔으니 우리를 추앙해서 왔구나 생각했다는 거죠. 지금은 중국여행객들이 돈을 많이 쓰니까 역으로 질투를 하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중국을 반대하는 해외의 시각이든 아니면 이에 대한 중국내의 시각이든 서로 악순환에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앞으로 러시아 사람들을 해외에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서 좀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판을 넘어 비난하는 형식으로 접근을 하면 일반 러시아 민중들은 방어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외부에서 공격을 할수록 내부적으로는 더 단결하기도 하고 대응담론을 강화시킬 가능성도 높지요. 그래서 다툼이 아닌 교류를 하고 어떻게 차분하게 대화를 하는 방식으로 얘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시 중국 이야기로 돌아가서 반중감정에 대한 중국내 반응을 보자면요. 일단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방식 같은 게 있죠. 이를 전랑외교라고 부르는데, 이런 공격적인 대응이 외부의 반중정서를 오히려 강화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방식도 앞서 설명한 잔혹한 도덕주의의 틀로 분석을 하려 합니다. 우리 솔직히 까놓고 얘기해보자. 나는 성과를 내고 있으니 진정성이 있고, 도덕적이야. 반대로 말만 앞서는 너는 위선적이야라는 식의 반응이죠. 저는 중국이 대국으로서 자기의 실제 능력과 위치, 그리고 역할에 대해 좀 더 설득력 있는 이론과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자기 상황과 미래의 방향에 대해서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손쉽게 대립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게 외부에서는 공격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고, 중국의 확장욕망으로 해석돼 공포의 대상이 되는 거죠.

이: <방법으로서의 자기>라는 책 제목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학창시절에 좋아했던 중국 지식인들, 그러니까 동아시아에 천착한 쑨거, 왕후이 선생님이나 천하를 이야기한 자오팅양과 확실히 결이 다른, 신세대 지식인이 등장했다고 느꼈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방법으로 한다라는 발상도 신선했습니다. 한동안 중국학계를 눈여겨보지 못했는데 그 사이에 이런 흐름이 생겼구나 싶어 반가왔습니다.

한국사회에서 90년대에 대학에 진학한 저와 같은 X세대가 등장했을 때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페미니즘 맥락에서 개인과 일상의 문제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대화를 강조했고요. 이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K-컬쳐의 주역이 되기도 했죠. 그런데 이 때 태어난 Z세대가 지금은 2030세대로 자라나 샹교수님이 말씀하신 많은 문제들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또 이들이 발하는 상호 적대와 혐오감의 정서가 그 어느때보다 심합니다. 이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샹박사님이 제기하는 방법론은 그럼 포스트-포스트모던으로 봐야합니까?

샹: 굉장히 좋은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이 질문의 의미는 저희 책을 단순히 현재의 한중관계 프레임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진화의 프레임안에 놓고 이해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말씀하신 역사는 역사의 변증법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말씀하신 90년대의 개인과 대화는 개인의식의 각성을 강조하고 페미니즘과 연계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반성적 사고와 경험을 통해 권력구조를 비판합니다. 이 상황과 담론은 아마 90년대 이래 한국의 정치경제구조 자체의 변화와 관련이 있을 겁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이 해체되면서 IMF의 조정을 통해 금융화가 일어납니다. 원래 진보의, 개인을 강조하는 담론이 아마 일종의 개인주의 담론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 개인주의는 자신의 반성적 사고를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외재적으로 주어진 개인주의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개인이고, 자기 주변과 세계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개인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비판적 개인주의가 태생적인 절대화된 개인주의가 된 겁니다. 이런 개인주의 속에 자라난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세상과 사회는 단순한 개인들의 합이 아니거든요. 반드시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이 이런 담론속에 놓이게 되고 매우 잔혹한 혹은 단순화된 도덕적 요구안에 놓이게 됩니다. 이런 역사적 발전의 맥락이 있습니다.

두번째로 철학적 의미에 대한 질문, 포스트-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말씀이 참 재미있는데요. 우선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 90년대에 태어난 젊은이들이라면요, 이 시대는 자기들이 선택하거나 투쟁해서 얻어낸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 환경속에 태어난 것이죠. 이 시기에는 이미 큰 노동조합이나 사회운동이 없었죠. 개인화되고, 자산화된 세상입니다. 그래서 안정적인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이걸 반대하면서 문명론, 전통, 사람의 본성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젠더에 대해서도 남성은 이렇고, 여성은 이렇다라는 본질주의적인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 본질주의는 50년대 이전의 전통적 본질주의와도 다릅니다. 여기서 다시 두긴으로 돌아가는데요. 두긴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남성이다. 그리고 너는 여성이라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마찬가지로 나의 문명은 내 언어를 통해서만 설명이 가능하고 이해받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충돌하게 되면 오로지 폭력을 통해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여기서 포스트모더니즘의 깊은 영향을 볼 수 있습니다. 제 책은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절대화된 자아를 내려놓고, 마음을 열고 경험과 반성적 사고를 통해서 실증적(empirical)으로 자아를 재구성할 것을 권합니다. 실천을 통해서 실현하는 자아입니다. 그래서 제 책의 주장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니라 모더니즘입니다. 안정적인 실증을 강조하고 이성으로 세상을 이해할 것을 권합니다. 좋은 질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임: 저는 중국식으로 90허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94년에 태어났고 저 같은 경우는 정말 의식이 있을 때부터 인터넷을 하는 것이 제 정체성 형성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것 같습니다. 항상 인터넷과 연결이 돼 있었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스마트폰을 쓰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자아가 거의 일치된 상태로 살았던 것 같은데요. 제 주변의 또래들도 다 이렇게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말씀해 주신 부근에 대한 감각 그리고 자신의 삶의 구체적 경험과 거기서 의미를 찾는 데 있어서 온라인 세상이 굉장히 부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상 오프라인의 현실이 온라인 세계에 포획된 느낌이고, 진짜 삶은 SNS안에 존재하는 것 같아요. 현실에 대한 조소와 냉소같은 태도가 청년층 안에서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고 이 상황을 반전시킬만한 움직임은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 주변의 삶과 경험을 상실한 이들이 엔터테인먼트라든가 민족주의에 빠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온라인기술이나 온라인미디어 환경에 대한 관점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온라인 생태계를 갖고 있는 나라로서 중국청년들과 온라인문화 그리고 그들의 일상성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샹: 저도 이 문제를 굉장히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중국 혹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야말로 이 인터넷문화가 굉장히 압도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상황이죠. 그 변화도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전에 생각하던 단순한 문화현상이나 교류의 도구역할을 이미 뛰어넘어 새로운 경제를 만들어가는 담지체가 됐습니다. 자본이 가장 많은 이윤을 얻는 새로운 소스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본이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게 플랫폼경제이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플랫폼이 필연적으로 청년들을 포함한 우리의 사회관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고요. 사람들이 보는 콘텐츠, 뉴스가 빅데이터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당신의 취미가 뭐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정동이 무엇인지에 따라 예측을 하기 때문이죠. 이게 엄청나게 큰 문제가 됩니다. 결과적으로 정보와 자본, 감정이 결합해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회 즉 사람과 주변의 관계를 압도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인터넷상의 토론이나 논쟁이 상당히 극단적이 되죠. 사람들이 감정에 휩쓸리게 되면서 이성을 압도하고, 받아들이는 정보자체도 감정에 의해 필터가 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객관적인 정보라는 게 의미가 없어집니다. 또, 문제의 배후에 자본이 있어서 상황을 악화시키죠. 인터넷이 여러 심볼과 부호들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이 거기에 휩쓸리면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데요. 저는 여전히 사람들이 자기 부근을 돌아보고 실증적으로 생활의 의미를 발견하는 방법으로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저항할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 대담

시: 오늘은 일반 대중이 궁금해하는 것들 위주로 여쭤보겠습니다.

샹바오 선생님께서는 청년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과거세대와 달리 경제적 풍요를 누리며 성장했다는 점에서 현재 중국이나 한국의 청년들은 비슷한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의 청년문제를 경제적문제와 도덕적문제로 나눠서 설명해주실 수 있는지요.

샹: 두 가지 문제 모두 존재합니다. 서로 연결돼 있다고 볼 수도 있고요. 겉으로 보기에는 도덕문제지만 실은 경제문제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매크로한 환경을 볼 때, 지금까지의 중국성장모델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즉 수출과 제조업, 가공업 위주이고, 국가가 인프라에 많은 투자를 해서 GDP가 급속히 성장하는 상황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습니다. 중국속담에 “물이 불어 오르면 배도 떠오른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개인이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이익을 얻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고, 또 지금 국제 관계가 굉장히 복잡합니다. 중국을 둘러싼 복잡한 상황속에서 경제적 문제들도 있습니다. 지금의 경제적 문제는 절대적 빈곤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의 문제입니다. 앞으로 내가 5년 후에 어떻게 될까 경제적 안정을 계속 누릴 수 있을까에 대해 청년들은 불안감을 갖습니다. 그리고 이런 불안감때문에 인터넷 같은 곳에서 여러가지 사회적 논쟁들이 벌어집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뭐가 맞고 틀리고 식의 도덕적인 논쟁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잔혹한 도덕주의”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젊은이들이 도덕적인 혹은 의식의 미망에 빠져있다고 할 때, 이건 도덕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논쟁들이 실은 고도로 ‘도덕화’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경제상황이 악화되는데 희망을 갖기 힘들다는 것이죠. 그래서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가장 큰 문제는 도덕의 결핍이 아니라, 도덕적 요구와 실제 상황이 유리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에 대한 반응이 극단화합니다.

결국 해결책은 경제적인 측면일 것입니다. 지속가능성에 중점을 둔 대안적인 경제발전모델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사회에서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중국사회도 다른 나라와 다르지 않습니다. 지속가능한 경제로의 변화는 어떤 것일까요? 개인적으로 보자면 모든 사람이 다 큰 집, 고급아파트를 원하고 자기 차를 갖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특히 중국처럼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는 이런 요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거죠. 모두가 표준적인 중산층의 삶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중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대안으로, 구체적으로는 귀농하는 사람들도 있고 향촌진흥이라는 정부정책도 있습니다. 또 도시에 살면서도 이미 5~10년전부터 중국 전역에서 진행되어 온 마을만들기 같은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경제 모델들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시: 말씀하셨던 도덕적 논쟁들의 몇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주실 수 있는지요.

샹: 두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짐작하시겠지만 소분홍과 같은 애국주의와 민족주의 이야기이죠. 새로운 경제적 환경이 사람들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면서 생활의 의미를 상실하고, 그 대체재로 국가와 민족에 대한 대서사들을 찾게 됩니다. 여기서 문제는 이 담론이 굉장히 공격적이라는 겁니다. 나는 애국자다라고 주장을 하는데요. 내가 나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거는 사실 개인의 문제일 뿐이죠. 그런데 다른 사회성원들에게도 같은 요구를 하기 시작합니다. 상대방이 애국자가 아니고 민족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라는 식으로 공격을 합니다. 두번째 사례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들입니다. 한국도 그러하지만, 중국도 인구감소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도입된 새 정책에 따라서 세 자녀까지 낳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에게 아이를 더 낳을 것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같은 이유 때문에 이혼율을 낮추기 위한 이혼숙려기간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이혼을 요구했을 때 바로 수리해 주는 게 아니라 한달 유예기간을 뒀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에 가정폭력문제가 발생하면서 여성들이 위험에 처하는 사례들이 나타납니다. 여성이 아이를 더 낳아야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있는 가운데 여성들이 육아에 부담을 느끼고 일을 하는 여성이라면 부담이 더 커집니다. 이런 부담 때문에 여성들이 불평을 하는데, 이건 아직은 육아환경이나 가사부담의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 여론까지는 아닌 개인적인 수준입니다. 그런데도 너는 출산과 육아부담을 회피하는 이기적인 인간이다. 이런 식의 도덕적 비난을 합니다. 지금 나라의 인구가 줄어들어서 경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데 개인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거죠. 이 여성은 일종의 이기적 괴물로 취급받기도 하고, 서구 백인여성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비난이 가중됩니다.

시: 말하자면 보통 여성에게 왜 인민과 국가를 위해 복무하지 않느냐는 도덕적 압력이 가해지는 것이군요.

샹: 정확하게 표현을 하고 싶은데요. 이건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화’의 문제입니다. 아이를 낳고 안 낳고는 굉장히 개인적인 선택이고 개인의 문제인데 사회가 이를 도덕화합니다. 실제 도덕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개인의 선택의 문제일뿐인데 사회전체가 이를 추상화하고 도덕화하는 것이죠.

시: <방법으로서의 자기>에서 본 ‘모(Morality)선생’ [2]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도덕과 도덕화를 구분하는것은 한국에서는 좀 낯선 개념이네요.

아무튼 이왕 여성문제가 나왔으니까 바로 여쭤볼게요 <샹뱌오 두긴을 말하다> 팟캐스트는 공개한지 일주일만에 10만명 가까운 사람이 들었더군요. 여기서 가장 ‘좋아요’를 많이 받은 댓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정복, 확장, 야성론과 같은 언어와 사상은 느낌상 전세계적으로 남성들이 정치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이 깊다. 그래서 더 많은 영토를 얻고 싶어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중국의 페미니즘 현황이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샹: 저는 중국내의 여성주의 토론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페미니즘 논쟁이 여성이 남성을 공격하기 위한 게 아니라 가부장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고 어떻게 해체하거나 재조직할 것이냐에 대한 질문이었으니까요. 사람들이 그런 측면을 정확히 이해하고 사회의 진보를 위해 함께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건 추상적 논의가 아니라 매일매일 부딪히는 구체적인 생활의 문제거든요.

댓글에 대해서는 조금 비판적으로 커멘트하겠습니다. 정치를 장악한 것이 생물학적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따라서 그 폭력성이 결정된다는 것은 실증적으로 말하기 쉽지 않은 명제입니다. 역사적으로 여성이 정치를 장악한 사례가 너무 적기 때문이죠. 또 사회적 발언권 측면에서도 여성의 비중이 적기 때문에 공론장에서도 여성의 목소리가 작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반례도 충분히 많습니다. 마가렛 대처가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되겠죠. 인디라 간디, 힐러리 클린턴, 콘돌리자 라이스는 어떻습니까? 모두 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념적 입장이든 정치경제적 디테일을 생략하고 문제를 단순화시키면서, 부호화된 적을 찾는 순간 오류의 가능성이 발생합니다.

샹바오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좋아하던 시절이 있지만, 인종문제가 더욱 악화돼 Black Live Matters 운동이 다시 벌어졌습니다. 인종뿐 아니라, 금융기술엘리트와 농민, 공장노동자들간의 빈부격차, 문화자본 차이가 확대되는 정치경제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흑인이 백악관에 들어갔으니 상징적으로 인종 문제가 많이 해결될 것 같다라는 도덕적 선언을 한 건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오히려 트럼프가 등장했죠. 복잡하고 구체적인 경제와 인종문제를 직시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지정학은 지정학의 논리가 있는데 이것을 바로 젠더 문제로 치환하는 비유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안티페미니스트들의 도덕화, 추상화를 통한 논리적 비약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죠.

시: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런 도덕화 문제는 중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군요.

샹: 보편적인 문제라고 확대 해석하실 필요는 없고요. 다만 미국과 유럽에는 분명히 이런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경우에는 원래 정부의 프로파간다에 도덕적이고 추상적인 얘기들이 많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변화한 지점이 지금은 오히려 민간이 자발적으로 이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거예요. 여성주의든 애국주의든 물론 정부가 일부 부추기는 경향이 없지 않지만 실제 벌어지는 양상은 민간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역별 시대별로 상황이 좀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시: 소분홍 문제를 보면 아무튼 중국에도 애국주의 세력이 적지않고, 그래서 한중청년 세대들의 인터넷 충돌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중국 청년들이 시진핑 체제, 현 중국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떻습니까?

샹: 일관된 건 아니고 상황에 따라서 계속 변화를 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과거에 상당히 많은 지지자가 있었던 건 사실이고요. 그중에는 청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작년부터 청년들중에서도 여러가지 관점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터넷 플랫폼기업과 게임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통제가 있었고요 신동방같이 교육사업하는 대기업들의 업무를 모두 제한했죠. 그때부터 지지입장을 철회하는 청년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상하이 록다운 문제때문에 불만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 정확한 지지율을 알 방법은 없습니다.

시: 민감한 질문에 답변주셔서 고맙습니다. 한국도 불평등 문제가 심각합니다만 최근에 한국에 ‘보이지 않는 중국’이라는 책이 번역 출간됐습니다. 도농격차를 포함해서 중국의 불평등 문제도 심각하다고 알고있는데요, 이 문제가 앞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요.

샹: 불평등 문제의 사회적 영향은 동아시아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는 불평등한데 배제성을 갖지 못합니다. 전형적인 서구사회는 불평등이 명확한 계급분화를 가져오고 이 때 계급간에 배제성을 갖게 됩니다. 이를테면 영국처럼 계급이 명확하게 나뉘어져 있는 사회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름의 계급의식에 기반한 문화와 정치적 요구를 갖게 됩니다. 불평등 문제가 서로를 배제하는 계급을 만들고 계급끼리 갈등을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요구가 형성되는 거죠. 저는 독일로 이주하기 전에 영국에 있었는데요, 아시는 바와 같이 영국 노동계급의 문화와 중산층, 그리고 귀족문화가 모두 다릅니다. 폴로, 럭비, 축구, 이런 식으로요. 즐기는 음악도 다릅니다. 노동계급은 자기만의 문화를 만들고 그 안에서 계급의식을 갖고 계급정당안에서 정치적 요구로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발전이 있었던 것이 서구의 역사입니다. 한중일 같은 경우에는 이게 모두 한통안에 있다는 거죠. 계급의식도 생기지 않고 최상층부터 최하층까지 통하는 소위 “국민XXX문화”가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경제적, 사회적 권력의 계급분화가 이뤄졌는데도 말이죠. 중국은 그렇습니다. 이건 한국이나 일본하고는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최하층의 기층민중조차 노력하면 신분상승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이런 믿음이 생기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대중문화가 영향을 끼치는 라이프스타일 때문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나 해외의 명문대학으로 유학을 간 사람이나 시골의 매우 가난한 지역 농민들이나 모두 틱톡을 사용합니다. 물론 이건 인터넷의 특수한 오락문화의 영향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같은 문화 안에 있다는 얘기는 같은 이상을 추구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계급정치, 계급문화가 형성이 되지 않고, 모두 상향 이동하려 하고 다들 중산층이 되고 싶어 하는 거죠. 그러자면 노력을 해야 되고 자신의 현재상태에 영원히 만족하지 못합니다. 만인 대 만인의 경쟁이 지속되는 이런 상황을 내권 involution이라고 묘사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심리적 압력에 노출되어 있는 이런 상황은 중화권과 동아시아국가 특히, 한중 모두 비슷한 상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 이 말씀은 우리 한국과 너무나도 일치되는 이야기네요. 이른바 메리토크라시가 한국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킵니다. 얼마전 샹뱌오 선생님도 마이클 센델교수와 미국과 중국의 능력주의에 대해 온라인 토론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한 두 가지 정도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불편하시면 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한국은 정권 교체기인데 새정부가 반중지향을 뚜렷이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샹: 제가 자세히 알지 못하는 내용이라 답하지 못하겠습니다.

시: 예 좋습니다. 이번 대담의 주요한 취지는 중국 지식인 사회와의 대화인데요. 아무튼 중국 지식인사회가 과거에 비해 활기가 떨어진 게 아니냐는 말이 한국에 있습니다. 동아시아에서의 지식인 교류도 많이 줄었고요. 현재 중국내 지식인 사회의 분위기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지금 중국 지식인사회의 논의를 전혀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샹: 일단 중국의 지식인사회가 활력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건 당연합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부정적이죠. 출판도 검열문제 때문에 제약을 많이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 90년대에 왕후이, 쑨거 선생님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담론이 있었는데요. 다음세대 학자들 중에 여기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고 있어요. 저는 두가지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중국정부가 국가비교연구에 자금을 많이 투입해서 중국내에서 해외지역학연구는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 각각의 지역에 대한 것입니다. 이건 일종의 진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지역학을 계승하는 거죠. 그런데 이건 특별하긴 합니다. 탑다운 방식을 통해서 정부가 발주하는 것이니까요. 두번째는 중국과 바깥세계 사이의 갈등입니다. 이게 영향을 끼쳐서 중국학자들이 동아시아나 다른 국가들과 교류의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흥미있게 관찰하는 것은 학자들이 사적인 공간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사회문제에 대해서 토론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공론장이 물밑으로 잠수했다고나 할까요. 어느 순간 이렇게 묵혀둔 생각들이 부화가 되면, 환경이 나아졌을 때 사상적으로 좋은 것들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지적하자면, 제 관찰로는 일본사상계도 상당히 침체돼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중국과 다른 문제 때문일 텐데 일본사회에도 많은 갈등과 모순이 잠재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지식인들도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요. 이렇게 전반적으로 폐색상황에 놓여 있을 때가 오히려 사상의 재도약이 일어나기 전의 단계가 아닌가, 이런 느낌적 느낌도 있습니다.

시: 마지막으로 간단한 질문 하나만 드리겠습니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중국에 가서 연구하거나 활동할 생각이 있으신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연구와 활동을 생각하시는지요.

샹: 펜데믹 때문에 저도 2, 3년째 귀국을 못하고 있는데요, 구체적으로 뭘 연구해 보고 싶다라는 것보다, 굉장히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것을 인터넷으로 밖에 보지 못하니까 답답한 점이 있습니다. 직접 보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시: 오히려 밖에 계시니까 상황을 더 객관적으로 보실 수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샹: 맞습니다. 갈등이 많고 감정적이 되니까요. 거리를 두고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1] 1부 베이징 방담, “어린시절의 기억과 도경” 참고 

[2] 1부 베이징 방담 “베이징 대학 학생이 느끼는 초조함” 참고

김유익

和&同 青春草堂대표. 부지런히 쏘다니며 주로 다른 언어, 문화,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을 짝지어주는 중매쟁이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 아저씨. 중국 광저우의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오래된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함께 공부, 노동, 놀이를 통해서 어울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한다. 여생의 모토는 “시시한일을 즐겁게 오래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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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 유라시아 Posted on 2022.08.12 at

    샹바오 교수는 서방에서 활동 중인 학자라 그런지 두긴에 대한 입장이 서방 학계와 다를 게 없단 생각이 듭니다. 두긴에 대한 샹바오 교수의 이해는 예전에 이병한 이사장과 두긴의 인터뷰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들보다 훨씬 편협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두긴의 책들이 꼭 번역되면 좋겠습니다. 물론 한국에서야 두긴에 관심이 없거나 알지도 못하면서 적대적인 사람들이 많겠으나 동의를 하건 비판을 하건 일단 그의 책을 제대로 읽는 게 순서이지 않겠습니까? 다른백년에서 두긴의 책을 번역 출간하는 작업에 착수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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