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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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미술 요소의 분해와 조립

사람들은 보이는 대상 전체를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생각하는 속성통합체적 태도를 갖고 있지. 그런데 어떤 사람은 분석하고 싶어 해. 대상의 속을 쪼개서 내부의 구성 요소와 구성 원리 등 겉과 속의 관계를 알려고 노력하지. 이런 요소결합체적 태도를 가졌던 사람이 데카르트야.

데카르트는 똑바로 된 막대기가 물속에서 굴절되어 보이듯 감각은 언제나 우리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 감각으로는 존재를 제대로 알 수 없다고 판단했지. 데카르트는 사물의 존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감각 너머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주장했어. 생각을 통해 대상을 요소들로 분해하고 그 요소들의 구성 원리를 이해하는 방법론을 주장했지. 존재를 속성통합체가 아니라 요소 결합체로 본 것이야. 이를 철학에선 기계론적 사고관이라고 말해. 최근 들어 이 사고관은 유기체적 사고관을 갖은 사람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고 있어. 이 또한 일리 있는 비판이지만 인류가 기계론적 사고관 덕분에 상당한 과학기술적 진보를 이뤄냈다는 점을 잊어선 안되지.

근현대 과학은 대부분 데카르트의 분해와 조립 방법론으로 연구되고 있어. 어떤 대상이나 현상이 궁금하면 먼저 그 대상을 분해해 보지. 우리가 라디오의 작동원리를 알기 위해선 라디오 부품들을 분해하고 조립해 봐야 하듯 바이러스의 원리를 알기 위해 바이러스를 분자 단위로 분해해 작동과정을 살펴봐야 해. 지금도 물리학자들과 생명공학자들은 물질과 생명의 원리를 알기 위해 대상을 최대한 분해하고 그 요소들의 특징과 관계를 살피고 있어. 더 작게 쪼갤수록 물질과 생명의 원리와 본질을 더 깊숙이 이해할 수 있다고 기대하며. 덕분에 우리는 세포와 원자 등 감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아주 작은 요소까지 알게 되었지.

20세기 말부터 복잡계 과학이 등장해서 요소결합체적 접근에 새로운 의견을 내고 있어. 구성 요소와 원리를 파악하더라도 조립된 전체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지. 부모가 자식의 유전자 구성을 알 수 있어도 자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듯이 부분의 합과 전체는 다르다는 의미야. 일찍이 지각 심리학(게슈탈트 심리학)에도 이런 지적이 있었어. 지각 전체는 감각 부분들의 합보다 크다고 강조했지. 실제로 사람은 주어진 감각 요소보다 더 많은 것을 지각해. 우리가 오각형 무늬들을 보고 축구공을 연상하듯이 말이야. 이를 신경과학에선 ‘지각적 채워 넣기’라 말하지.

이 말은 생각에도 적용할 수 있어. 사람은 지각한 것 이상의 생각을 하거든. 우리가 축구공을 연상할 때 자연스럽게 축구공과 관련된 추억과 의미들을 떠올리잖아. 이를 ‘개념적 채워 넣기’라고 말해. 사람이 이런 채워 넣기를 하는 이유는 축적된 기억 때문이야. 생각은 감각에 기억을 더해 지각을 하고, 지각에 기억을 더해 생각하거든. 신경과학자 올리버 색스(Oliver Wolf Sacks, 1933~2015)는 『화성의 인류학자(An Anthropologist on Mars)』에서 감각과 생각의 차이가 크다고 주장해. 감각 경험이 지각을 거쳐 생각에 이르면서 기억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지.

복잡계 과학에는 ‘창발성(Emergent)’이란 용어가 중요해. 창발성은 요소들이 서로 결합되면서 뜻밖의 성질이나 현상이 새롭게 일어난다는 뜻이야. 때문에 구성 요소를 모두 이해해도 전체를 완벽하게 예측하기 어렵지. 이렇듯 분해된 요소와 결합되는 원리를 알고 있다고 해서 조립된 전체의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어. 왜냐면 그 전체는 또 다른 전체들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진화를 하게 되거든. 사람의 마음이 맥락에 따라 달라지듯이 말이야.

사람은 전체와 부분이라는 두 가지 태도가 있어. 전체를 보는 속성통합적 태도와 분석을 시도하는 요소결합적 태도를 모두 갖고 있지. 우리는 보통 미술작품이나 디자인을 볼 때 전체를 속성통합체로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어. 물론 이런 접근도 중요해. 하지만 이런 접근을 과학적 태도라 말하긴 어렵지. 언어학자는 일상에서 대화할 때는 언어를 속성통합적으로 수용하지만, 언어를 연구할 때는 언어를 요소결합체로 여겨. 나는 언어학자가 언어를 음소와 음절 등으로 쪼개고 그 구성 원리를 살피듯이, 미술학자도 미술의 속성통합적 해석을 넘으려면 미술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쪼개고 그 구성 원리를 살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말소리를 조립하듯이, 그림을 그릴 때도 다양한 이미지를 조합해. 어린아이들이 그림일기를 쓰듯이 말이야. 그래서 우리는 언어학자들이 언어를 살필 때 언어 전체를 구성하는 요소와 원리를 살피듯이, 미술작품을 살필 때도 미술 전체를 구성하는 요소와 원리가 무엇인지 분류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어.

과거에 이런 접근이 없었던 것은 아니야. 고전 미술 역사학자들도 미술에 표현된 요소와 그려진 기법들을 살펴 미술작품 전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어. 19세기 인상파 이전의 작품들은 보통 이런 식으로 분석되고 해석되었지. 특히 중세 시대 그림에는 그려진 요소들에 깊은 언어적 의미가 숨겨져 있어. 이를 전문용어로 ‘알레고리(allegory)’라고 말해. 가령 중세 회화에서 화살은 ‘질병’이란 의미로 해석되었지.

나는 미술의 기법이나 알레고리의 해석이 아닌 조금 다른 접근을 하려고 해. 좀 더 요소결합체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미술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물리적이고 의미적인 형태소 단위로 분해했어. 그리고 요소들의 시각적 차이가 어떤 의미적 차이로 연결되는지 생각해 보았지. 이를 위해 사람의 인지 과정인 ‘감각-지각-생각-욕망’의 신경망 흐름과, 개념 과정인 ‘개념-범주’의 개념망 흐름을 요소 분류와 분석의 바탕으로 삼았어. 특히 ‘감각-지각-생각-욕망’의 신경망 분류가 중요해. 이 분류는 미술 요소들의 특징인 ‘모방-재현-편집-구성’과 연결되어 있거든.

생각은 개념을 구성하고, 개념은 감각적 범주에 담겨. 그래서 범주에는 개념이 내포되어 있지. 개념을 담고 있는 이미지 범주들은 크게 모방 요소, 재현 요소 그리고 추상 요소로 구분할 수 있어. 각각의 요소들은 나름대로 매체로 구분되어 있지. 모방 요소는 사진에 가깝고 재현 요소는 그림에 가까워. 형태와 의미가 모호한 추상 요소는 레고 블록처럼 편집적 특성이 높은데,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문자는 추상 요소적 특징을 갖고 있어. 어떤 욕망(목적)을 위해 이미 편집된 구성 요소는 요소결합이라기보다는 속성통합체적 상태야. 이렇게 구성된 이미지도 하나의 요소로 쓰이는데,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retro) 디자인에서 자주 볼 수 있어. 과거의 글꼴이나 사물을 가져와 그 시대를 연상시킬 때 활용되지.

이 요소들 중 우리가 살펴볼 필요가 있는 요소는 모방과 재현, 추상 요소가 아닐까 싶어. 말이나 글로 치면 이 요소들이 음절이나 형태소에 해당되거든. 이 요소들에 의해 편집된 구성 요소는 이미 하나의 문장처럼 작동하고 있어. 해석이 다양한 알레고리라고 할 수 있지. 나는 이미지로 소통하는 행위를 ‘시각언어’라고 말해. 위에 구분한 시각적 요소들을 시각언어의 음절이나 형태소처럼 작동한다고 여기고 있지. 즉 시각언어의 요소 분류를 통해 미술과 디자인을 좀 더 언어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02. 시각언어의 요소들

사람의 뼈는 수많은 관절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는 이 관절들을 활용해 몸을 움직이지. 사람의 뇌는 관절의 구성 방식에 맞추어 움직임을 통제하기 때문에 관절 단위에 익숙해져 있어. 언어도 마찬가지야. 우리의 언어 체계도 뇌에서 일어나는 신경 현상이야. 다양한 과학분야를 통섭해 과학을 가르치는 과학자 박문호는 관절 단위의 뇌 작동방식이 사람의 언어 작동과 연관이 있다고 말해. 뇌가 뼈마디를 조합하듯이 언어마디를 조합한다고 할까. 즉 우리가 수많은 관절을 연결해 손을 섬세하게 움직이듯이 수많은 음절을 연결해 섬세한 언어로 말할 수 있지.

말도 관절처럼 음소와 음절, 단어(형태소), 문장, 구절 등 다양한 마디 단위로 구분되어 있어. 우리는 언어 마디인 음절과 단어, 문장을 연결함으로써 언어로 소통할 수 있지. 그래서 말과 글의 마디처럼 시각언어인 이미지도 단어나 문장처럼 어떤 마디 형식으로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어. 그래서 나는 앞서 말했듯 시각언어의 마디 요소들을 신경망 흐름에 따라 모방 요소, 재현 요소, 추상 요소로 구분 지었지.

모방과 재현 요소의 대표적 매체인 사진과 그림 같은 이미지는 우리가 어떤 보편적 의미를 짐작할 수 있어. 고전 미술은 대부분 우리가 의미를 짐작할 수 있는 모방과 재현 이미지 요소들로 그려져 있어. 19세기 사진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섬세한 모방 요소는 ‘사진’에 넘겨졌고, 미술가들은 재현 요소에 집중했지. 그렇게 등장한 화풍을 ‘인상파(impressionism)’라고 말해. 이후 다양한 이미지 재현 방식이 등장했고, 급기야 의미가 모호한, 아니 의미를 알 수 없는 점과 선, 동그라미, 네모 등의 추상 요소까지 등장했지. 몬드리안의 그림처럼 말이야.

Mondriaanmode uit Parijs, japonnen gemaakt door Yves St. Laurent , de modellen in Haagse Gemeente Museum.*12 januari 1966

추상 요소로 만들어진 그림은 보편적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워. 그럼에도 현대 미술과 디자인은 추상 요소를 아주 많이 활용해. 마치 분자들이 구성되어 물질을 이루듯 점, 선, 면, 입체 등 다양한 추상 요소들이 활용되어 다양한 미술작품과 우리 삶의 생활환경을 구성하지. 그래서 현대 미술과 디자인 나아가 현대 문명의 생활 양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추상 요소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추상 요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를 알아야 해. 각각의 요소들이 무엇이 같고 다른지 알아야 추상 요소를 입체적으로 이해를 할 수 있지. 그래서 우리는 추상 요소만이 아니라 모방 요소와 재현 요소 나아가 우리가 늘 사용하는 글자 요소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어. 그럼 이제부터 현대 미술과 디자인에 쓰이는 주요한 시각언어 요소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1) 감각 모방 요소

사람은 입력되는 감각을 모방하는 경향이 있어. 그러나 이 모방을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어. 기억에 의한 채워 넣기가 일어나거든. 사람의 감각은 지각과 생각, 욕망의 신경망 흐름을 거치며 재구성되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카메라처럼 감각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쉽지 않아. 엄청난 훈련이 필요하지. 전문적 역량을 가진 선생님에게 오랜 시간 배우고 익혀야 하는데, 이 훈련의 핵심은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야.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배제해야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인 표현이 가능해지니까.

오르한 파묵(Orhan Ferit Pamuk, 1952~)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My Name is Red)』에는 이슬람 세밀화가들의 길드 생활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 길드에 들어간 도제는 수많은 질타와 구타에 시달린다고 해. 괴롭힘을 통해 자기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체념하게 되지. 자신을 버려야 제대로 선생님과 선배들의 가르침을 수용할 수 있으니까. 자만심을 상실한 도제는 그 자리에 전통을 채우고, 자신의 그림이 아닌 길드의 전통을 받아들여. 이렇게 길드의 모방 전통이 이어지지. 도제는 수많은 반복과 연습을 통해 모방 기술을 향상시키게 돼. 기술이 완성되면 눈이 멀어 대상을 보지 못해도 전통을 그대로 모방할 수 있게 되지. 파묵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은 이런 경지를 ‘신이 내 안에 들어온 상태’라고 말해.

중세든 르네상스든 19세기 이전 미술가는 모두 자신의 시대에 주어진 개념의 틀로 자신이 경험하거나 상상하는 범주들을 모방했어. 중세와 이슬람의 예술가들은 전통의 길드 양식을 모방했고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미술 양식을 모방했어. 그래서 그리스 미술전문가였던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 1717~1768)의 책 제목은 『회화와 조각예술에서 고대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에 관한 생각』이야. 옛날에는 사진 개념이 없었기에 이미지 기록은 미술가들의 모방 능력에 의존했어. 코끼리나 코뿔소와 같은 신기한 동물이 있으면 그림으로 그리거나 조각해서 기록했지. 종교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장면이나 귀족들의 초상을 그리는 것도 미술가의 직업적 소명이었어. 이들은 그리고자 하는 대상과 최대한 똑같이 그리는 것이 미술가의 능력이라고 생각했지. 그림의 양식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서 그 시대의 전통을 열심히 배워야 했지. 시대가 급변하거나 새로운 기법과 기술이 등장하면 양식이 조금씩 바뀌곤 했지만, 감각을 모방하려는 태도는 변하지 않았어.

예술의 탁월성은 예술가의 팔에서 비롯돼. 영어에서 팔(arm)과 예술(art)의 글자가 닮은 것도 우연히 아니야. 팔을 잘 훈련시켜야 멋진 모방 예술을 할 수 있으니까. 실제로 길드와 아카데미에서 잘 훈련된 미술가들이 그린 그림의 요소들은 최대한 실제와 닮았어. 모두 종교와 신화 등 오래된 의미를 내포하는 이미지였지. 어떤 이미지는 보이는 그대로의 의미였고, 어떤 이미지는 상징적인 기호였어. 어쨌든 그려지는 요소들은 모두 분명한 의도와 의미가 담겨 있었기에 실제와 닮도록 정교하게 그렸지. 미술가들은 모방된 이미지 요소들을 조합하고 편집해 자신이 의도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했어. 그래서 관람자들이 고전회화를 감상할 때는 이미지 요소들의 종교적 혹은 신화적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해. 그래야 그 요소들의 조합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해할 수 있지.

 

2) 지각 재현 요소

고전을 모방하려 했던 15세기 르네상스 미술가들이 발명한 회화 기술들은 모두 사실적인 표현을 위한 도전이었어. 유화 기법과 투시도법, 명암법, 스푸마토 기법은 보이는 대상을 최대한 모방하기 위한 노력이었지. 그러나 19세기 니엡스(Joseph Nicéphore Niépce, 1765~1833)의 사진기 발명 이후 미술가들의 모방 능력은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어. 초상화를 그리던 고객들이 초상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미술가들의 수입은 급격히 줄어들었지. 산업혁명이 그랬듯 장인의 손기술이 기계에 밀리기 시작한 거야. 먹고살 길이 막막한 미술가들은 자신들이 나아갈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만 했어. 미술의 소재도 바꿔보고 중세 고딕 등 과거의 미술 양식들을 탐구하며 역사적 전통 속에서 자신들이 역할을 찾았지. 안타깝게도 더 이상 전통은 통하지 않았어.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CH, 1917~2012)이 이 시대를 ‘혁명의 시대’라고 규정했듯이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었거든. 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 등 정치와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혁명이 일어났어.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고 있었지.

영국의 경제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는 이 시기를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이라고 규정했어. 폴라니에게 거대한 전환이란 사회와 경제가 전복된 것이야. 사회 속에 있던 경제가 거꾸로 바뀌어 경제 속에 사회가 있게 되었지. 마찬가지로 나는 미술에서 거대한 전환은 감각과 지각의 전복이라고 생각해. 감각에 가려져 있던 지각이 새롭게 대두된 것이지. 모방에 집착한 아카데미의 미술가들과 달리 17세기 과학혁명 이후 유럽의 사상가들은 이미 ‘지각’이라는 개념을 인지하고 있었어. 데카르트가 우려했듯 사람의 감각은 지각에 의해 굴절된다고 생각했지.

사진의 발명으로 아카데미 미술의 패권이 위협받자 새로운 접근을 하는 미술가들이 등장했어. 언론은 그들은 ‘인상파’라고 불렀지. 전통적 기법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인상을 멋대로 그렸다고 조롱한 것이야. 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인상파의 그림에 주목하기 시작했어.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와 고갱(Paul Gauguin, 1848~1903) 같은 인상파 화가들은 전문적인 미술교육과 훈련을 받지 않았어. 그래서 전통적으로 미술가들이 공유하는 모방 강박이 없었지. 그들은 전통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본 느낌을 표현했어. 감각에 자신의 기억을 더한 지각적 이미지라고 할까. ‘감각된 것’을 그리기보다 ‘지각된 것’을 그렸지. 사람들은 이런 그림이야 말로 구석기시대나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본능적이고 본질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했어. 이때부터 미술에 있어 감각과 지각의 경쟁이 시작되었지.

19세기 이전 탁월한 미술 작품들은 대부분 모방이었어. 모든 상상을 객관적 이미지로 표현했지. 사진 기술이 등장하고 종교와 정치, 경제, 사회에서 거대한 변혁이 일어나면서 집단적 전통보다는 영웅적 개인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싹트기 시작했어. 전통의 상실을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론 개인의 도전과 모험을 장려하는 분위기였지. 어쨌든 새로운 시도를 응원하고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기에 인상파는 주목받았어. 인상파 이후 지각-재현 중심의 다양한 양식들이 등장했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공존했던 유럽의 미술 사조들 대부분이 지각적으로 재현된 방식으로 그려졌어. 입체파와 미래파, 빈분리파 등 각종 분리파(Secession)들은 모두 과거의 미술 양식과 단절하려고 노력했지.

감각적으로 모방된 이미지는 섬세하고 정교했지만 지각적으로 재현된 이미지들은 대체로 단순하고 투박했어. 뭔가 의미가 불명확한 그림도 많았지. 반면 정밀 묘사를 생략하고 색으로만 이루어진 면을 중심으로 이미지를 단순하게 표현하다 보니 그림을 그리는 생산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어. 당시 미술가들의 지각 재현적 접근은 대량생산을 추구하는 산업시대에 걸맞은 효율적 미술 생산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지.

표현이 단순해지면 정교한 지시는 불가능해. 하지만 나름의 장점도 있지. 정교한 코끼리 사진은 특정 코끼리를 지시하지만 코끼리 그림은 코끼리 종의 일반적 형태를 의미해. 마치 ‘코끼리’라는 말처럼 말이야. 우리가 ‘코끼리’라는 말을 할 때는 어떤 특정 코끼리를 가르키는 게 아니라 코끼리 종 일반을 가리키지. 개별보다는 보편에 가깝다고 할까. 감각 모방적 표현이 개별적 대상을 표현한다면, 지각 재현적 표현은 보편적 대상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이 당시 등장한 그림 양식 중 하나가 ‘아이소타입(Isotype)’이야. 우리가 현재 흔히 쓰는 아이콘, 픽토그램, 이모티콘의 초기 형태지. 아이소타입은 그림문자라고 생각하면 돼. 그림문자는 감각이 지각으로 재현된 단순한 이미지로 인상파의 후예들이야. 지금 읽고 있는 글이 소리문자로 쓰였다면, SNS의 이모티콘이나 화장실 문에 그려진 아이콘은 그림문자로 쓰였다고 할 수 있지. 우리가 늘 사용하는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의 아이콘들도 모두 그림문자라고 할 수 있어.

캐릭터 그림도 지각적으로 재현된 그림이야. 사진은 그 사진이 찍힌 대상을 모두 지시하지만, 캐릭터 그림은 대상의 중요한 특징만을 담고 있지. 이렇듯 그림이 단순해지면 자연스럽게 보편적 개념만 남게 되는 경향이 있어. 우리가 이모티콘 얼굴을 ‘기쁨’이나 ‘슬픔’ 등 감정 표정을 대변해 사용하듯이 말이야. 만화 연구자 스콧 맥클라우드는 『만화의 이해』에서 이런 기법을 ‘아이콘화(iconography)’라고 말해. 신경망에서 아이콘화란 감각을 지각적으로 표현한 것을 의미하고, 개념망에선 개념을 언어적 범주로 표현한 것을 의미해. 이 경우 대부분 ‘환유’ 기법이 활용되지. 죽음을 ‘무덤’이나 ‘십자가’로 표현하듯이 말이야. 그래서 환유는 감각이 재현된 지각을 다시 감각으로 되돌리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

 

3) 모방 요소와 재현 요소의 편집

지각적으로 재현하는 환유적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는 방식이야. 사람을 단순하게 표현한 ‘졸라맨’처럼. 보통 사람들이 그리는 단순한 그림들은 모두 지각적 재현 요소들이지. 글자를 모르는 어린아이는 그림으로 자신의 개념을 표현해. 그래서 아이들의 그림은 지각인 동시에 생각이라고 볼 수 있어. 보통의 사람들은 그림을 정교하게 그리지 않아. 단순한 선 몇 개로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지. 가령 놀이터를 표현하려면 선 몇 개로 미끄럼틀 그려놓으면 돼. 때론 이 미끄럼틀이 놀이터 전체를 대변하기도 하지.

아이들의 그림일기는 지각 재현 요소들을 가지고 생각을 편집한 시각언어야. 아이는 상징적 그림을 하나씩 추가하면서 그날의 기억을 기록하지. 그림문자를 가지고 글을 쓴다고 할까. 어른들이 이모티콘을 활용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듯이 말이야. 그래서 우리는 그림일기에서 아이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어. 단순하게 그려진 미끄럼틀 옆에 사람이 세명 그려지면 ‘친구 세명이 놀이터에서 즐겁게 놀았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지.

지각 요소들을 조합하면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 요소를 만들 수도 있어. 우리는 날아가는 코끼리를 경험한 적이 없어. 하지만 코끼리의 큰 귀를 새의 날개로 은유하면 큰 귀를 펄럭이면서 날아가는 코끼리 모습을 상상할 수 있지. 앞서 언급한 고대 아시리아의 수호신 라마수, 유니콘, 뽀로로 등 과거와 현재의 많은 캐릭터들은 이미지들을 은유하고 편집해서 만들어낸 새로운 감각 이미지들이야. 이 동물들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아서 우리가 경험할 수 없어. 하지만 사람은 상상의 동물을 조각하거나 그려놓고 이야기를 만들어 공유하지. 마치 자신이 경험했던 것처럼 말이야.

신화와 종교, 소설, 영화 등 수많은 가상세계가 재현 요소의 편집으로 만들어졌어. 이 가상세계는 책이나 예술 작품 등으로 기록되면서 실재세계의 일부가 되었지. 20세기 중반 디지털 기술이 발명되면서 사람의 시청각을 그대로 재현한 새로운 시공간이 출현했어. 여기에 인터넷 발명이 거듭되면서 디지털 가상 세계는 온 인류가 공유하는 또 하나의 실재세계가 되었지. 책이나 미술작품 등 특정 매체에서만 존재하던 가상세계가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참여 가능한 시공간 세계로 실현된 것이야. 디지털 가상세계가 확대되면서 아날로그(Analog)란 말도 등장했어. 디지털 세계가 불연속적 시공간이라면, 아날로그 세계는 실재하는 자연처럼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세계를 말해. 디지털 세계는 사람이 통제 가능하지만 아날로그 세상은 통제 불가능하지. 우리가 죽음을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앞으로 실재세계와 가상세계의 경계는 계속 희미해질 거야. 나도 지금 디지털 공간에 연재할 글을 쓰고 있지만, 연재가 끝나면 이 글들을 모아 아날로그 책으로 출판할지도 몰라. 이렇듯 우리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 미디어 아티스트인 정연두는 아이들의 그림을 실재 현실로 바꾸는 작업을 한 적이 있어. 아이들의 가상적 개념 세계를 실재 세계로 구현해주는 아주 흥미로운 작품이지.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어쩌면 미래 세상에서는 아이들이 이런 식으로 그림일기를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4) 추상 요소

위에 나열한 모방 요소와 재현 요소는 의미를 알 수 있는 구상(具象)적 상태야. 형태(象)가 갖춰져(具) 있지. 반면 추상(抽象) 요소는 형태(象)를 해체(抽)한 상태라 의미를 짐작하기 어려워. 어쩌면 추상 요소는 의미가 형성되기 이전, 가장 근본에 있는 형태라고 할 수 있지. 소리 언어에서 재현 요소가 ‘음절이나 형태소’라면 추상 요소는 ‘음소나 자소’에 해당된다고 할까. 문자에 다양한 자소가 있듯이 추상적 이미지도 무척 다양해. 점이나 선처럼 극단적으로 단순한 형태에서부터 만다라 그림처럼 아주 복잡한 패턴까지 이미지 스펙트럼이 아주 넓지.

과거 추상 요소는 주로 종교를 상징하는데 주로 쓰였어. 기독교의 십자가나 불교와 이슬람의 수많은 문향처럼 경험으로 알 수 없는 신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추상 요소를 활용해 왔지. 기독교가 십자가처럼 선과 선이 만나는 추상적 형태를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은 이유는 신은 곧 우주의 모든 아울러야 하기 때문이야. 모든 만남이 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석할 수 있지. 추상 요소는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어. 동그란 원 이미지를 해와 달, 얼굴, 그릇, 풍선, 지구, 솜사탕 등등 다양한 의미로 여길 수 있듯이 추상적 형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 20세기 초부터 예술가들은 지각 재현 요소를 단순화시키는 과정에서 추상 요소를 재발견했어. 그 이후 현대 미술과 디자인에 추상 요소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지. 성스런 종교가 아닌 개인적인 지각, 대중적인 소통에 추상 요소가 활용되기 시작한 셈이야.

 

감각이 지각적으로 재현되면 이미지는 단순해져. 단순해지는 정도는 정보의 양에 달려있지. 사진처럼 감각적으로 모방된 이미지는 개별적 의미를 지시하겠지만, 아이콘처럼 지각적으로 재현된 이미지는 보편적 의미를 갖게 되지. 추상적 이미지는 보편적 의미를 한층 더 보편적으로 만들어. 코끼리와 말, 사슴, 호랑이 그림 각각을 떠올려봐. 그리고 이 그림들을 하나로 합쳐보는 상상을 해 봐. 그럼 아주 이상한 그림이 될 거야. 이 그림에 다시 사람과 새, 곤충 그림을 추가한다면 더욱 이상해지겠지. 이런 식으로 계속 의미가 추가하다 보면 어느새 의미를 알 수 없는 복잡한 이미지가 되어 버려. 말로는 ‘동물’이라 ‘생명’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그림으로는 그리기가 어렵지. 이게 추상 요소의 특징이야. 복잡한 의미가 담겨 있으면서 어떤 의미라고 규정할 수 없는, 그렇기에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열려 있는 매력적인 시각요소라고 할 수 있지.

추상 요소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이미지야. 그래서 추상 요소로 그려진 현대 미술은 늘 어렵게 느껴져. 많은 사람들이 현대 미술 앞에서 좌절하는 이유는 그림이 의미하는 바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지. 어쩌면 이런 이유가 현대 미술에서 추상 요소가 많이 쓰이는 이유인지도 몰라. 추상 요소의 단점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고, 장점은 무엇이든 의미할 수 있다는 점이거든. 그래서 추상 요소는 미술가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지. 우리가 레고 블록으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듯이 미술가도 추상 요소를 조합해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어. 아무 의미가 없는 작품부터 모든 의미를 담는 작품까지 모두 만들 수 있지. 현대 디지털 이미지도 크게 확대하면 추상적인 점에서 비롯돼. 인상파 화가였던 쇠라(Georges Seurat, 1859 ~1891)의 점묘법이 엄청나게 정교화된 상태랄까. 이렇듯 추상 요소를 활용하면 가장 단순한 점의 형태부터 몇백만 화소의 정교한 사진까지 모든 표현이 가능하지.

추상 요소는 무척 다양해. 점과 선, 면, 입체 등 형태만이 아니라 ‘아’ ‘어’ ‘가’ 등 말소리, ‘생명’ ‘우주’ ‘사랑’이란 단어, ‘0123’ ‘+’와 같은 수학 기호 등 문자로 사용되는 기호들은 모두 추상 요소라고 할 수 있어. 추상 요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어떤 의도와 의미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이야. 또 어떤 해석도 가능하지. 작가와 독자가 모두 자유롭다고 할까. 그래서 추상 요소로 표현된 그림에서 작가와 독자는 모두 자기 존재를 확인할 수 있어. 종교나 신화에서 느끼듯 뭔가 숭고한 소속감과 자존감을 가질 수 있지.

현대 미술에 평론가가 이렇게 많아진 것은 미술에 추상 요소가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부터야. 미술 평론가는 음악의 연주자라고 할 수 있어. 피아노 연주자가 쇼팽의 악보를 자유롭게 해석하듯이, 미술 평론가는 작가의 작품을 자유롭게 해석하지. 음표가 추상적 기호이듯, 현대 미술의 시각요소가 추상적 기호이기에 일어난 현상이지. 나아가 추상 요소는 현대 문명과 닮아 있어. 현대인은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지. 누구나 무한한 욕망을 누릴 가능성을 갖고 있어. 주위를 한번 둘러봐. 옷과 도구, 건물, 도시 등 우리 시대 생활양식은 대부분 추상 요소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무척 다양해. 어쩌면 현대에 추상 요소가 이토록 많이 활용되는 것은 추상 요소가 우리 시대의 정신적 태도와 닮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어. 그래서 나는 추상 요소가 현대를 대표하는 시각언어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어.

 

5)글자 요소

추상 요소로 만들어진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가 바로 글자야. 사실 글자는 여러 스팩트럼이 있어. 한쪽 끝에는 표의문자로 대표되는 한자가 있고 중간에 알파벳, 다른 쪽 끝에 한글이 있지. 한자는 그림문자야. 가장 단순한 선으로 표현된 그림이랄까. 알파벳도 본래 그림이었어. 그림문자가 소리문자로 진화된 독특한 케이스지. 본래 수메르의 쐐기문자와 이집트 신성문자도 그림문자였어. 여러 지역을 돌며 상업을 하던 페니키아 인들은 그림문자가 불편했나 봐. 그림문자를 배우려면 천자 이상을 외워야만 했으니까. 그래서 조선시대 선비들은 매일매일 한자공부를 했지. 글자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대중적인 소통도 어려웠을 거야. 그래서 페니키아 인들은 그림문자를 활용해 소리문자를 만들었어.

그림문자를 소리문자로 만든 방법은 간단해. 먼저 말소리를 약 30여 개의 음절 혹은 음소로 구분하고, 그림문자가 뜻하는 대상의 첫소리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소리문자를 만들었지. 예를 들어 ‘A’는 본래 황소의 머리를 단순한 선으로 그린 그림문자였어. A의 위쪽 삼각형은 머리이고 아래에 삐져나온 돌기는 뿔이지. 당시 소를 뜻하는 말은 ‘알프’였는데 여기서 ‘아’ 발음만을 가져와 A 이미지와 연결했어. 본래 황소를 뜻하던 A 그림문자가 소리문자로 쓰이면서 그림의 의미는 상실되었지. 이런 식으로 만든 페니키아의 문자는 약 35개였는데 그리스와 로마 시대를 거치며 약 26개로 줄어들었어. 알파벳 26자만 알면 모든 소리를 읽고 쓸 수 있게 된 것이지! 일본의 가나(がな)도 알파벳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소리문자야. 신라의 이두(吏讀)도 그림문자인 한자를 단순하게 만들어 소리만을 표기할 수 있도록 만든 소리문자지.

한글은 알파벳처럼 그림에서 진화하지 않았어. 점과 선의 추상적 요소에 직접 소리를 연결해 조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문자야. 약 500년 전 세종대왕은 중국의 한자, 서양의 알파벳, 몽골의 파스파 문자 등 다양한 문자들을 연구해 한국말에 가장 적합한 문자인 한글을 발명했어.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지. 한글의 독특하고 위대한 점은 형태의 단순함과 사용의 효율성에 있어. 무엇보다 현존하는 문자 중 가장 단순한 형태를 갖고 있지.

한글 표기 규칙은 자음과 모음을 번갈아 가면서 조합하는 거야. 그래서 모음이 자음만큼이나 다양하지. 한글 모음의 시작은 ‘점’에서 시작돼. 가장 약한 ‘아’ 소리를 점으로 표기하지. 다음은 ‘직선’이야. 수평선 ‘ㅡ’는 ‘으’ 소리를, 수직선 ‘ㅣ’는 ‘이’ 소리를 담고 있지. 이 둘은 조합이 가능해서 점과 선이 합쳐져 ‘ㅏ’나 ‘ㅜ’를 표기할 수 있어. 가장 단순한 형태인 점과 직선을 조합해 다양한 모음 소리를 표현할 수 있지. 자음도 선에서 비롯돼. 직선을 한번 꺾으면 ‘ㄱ’가 되고, ‘ㄱ’를 180도 돌리면 ‘ㄴ’, 45도 돌리면 ‘ㅅ’이 되지. 이렇듯 한글은 가장 단순한 점과 선, 세모, 네모, 원 다섯 가지 추상적 형태를 활용해 대부분의 소리를 표기할 수 있게 되었지.

한글은 너무나 단순한 형태, 즉 가장 단순한 추상 요소로 구성된 덕분에 다양한 소리를 담을 수 있어. 세종이 한글을 이렇게 단순하게 만들었던 이유는 두 가지가 아닐까 싶어. 첫째는 비교적 뒤늦게 만들었기에 다양한 소리문자(표음문자)와 그림문자의 장단점을 메타적으로 검토할 수 있었겠지. 둘째는 삼국시대 이후 한국말 표기는 그림문자인 한자를 활용했어. 한국말을 표기할 마땅한 소리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말소리와 글 표기가 별개로 발달했지. 덕분에 다양한 말소리가 많이 개발되었어. 한국사람은 살살, 설설, 술술, 솔솔 등 작은 소리 차이를 느낌적 의미로 구분해. 그만큼 말소리가 섬세하고 정교하지. 이처럼 다양한 한국말 소리를 모두 담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종이 찾은 방법은 가장 단순한 형태와 효율적인 조합이 아니었을까 싶어. 앞서 모방 요소, 재현 요소, 추상 요소에서 살펴보았듯이 형태가 단순해질수록 더욱 많은 의미를 내포할 수 있고, 더욱 다양한 구성이 가능해지니까. 추상 요소의 특징을 제대로 활용한 셈이지.

문자는 인류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추상 요소이자 가장 대중적인 소통 매체야. 대중성을 지향하는 디자인은 현대 미술과 달리 ‘문자’를 하나의 요소로 여기고 있어. 심지어 문자를 형태적으로 다루는 분야가 따로 있을 정도지. 디자인에서 이런 분야를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라고 말해.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는 문자를 그림처럼 활용해. 의미 매체인 문자를 느낌을 소통하는 이미지로 여기지.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는 보편적인 문자 소통 관습을 이미지 규칙으로 활용해. 읽기 편하게 하려면 규칙을 지키고, 불편하게 하려면 규칙을 깨지. 뉴스의 인포그래픽처럼 빠른 정보 전달을 위해서는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고, 미술관의 홍보물처럼 호기심을 끌 때는 규칙을 파괴하지. 사람들은 불편한 이미지에 호기심을 갖는 경향이 있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야 할 때는 규칙을 깨는 것이 유용하거든. 그래서 나는 디자인의 기초가 타이포그래피에 있다고 생각해. 디자인을 배우려면 ‘타이포그래피’부터 입문하라고 조언하지.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디자인의 원리와 방법을 이해할 수 있거든.

나는 타이포그래피 분야도 일종의 언어학이란 생각이야. 최근 신경과학과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가 언어학과 융합 연구를 진행하고 있듯이, 타이포그래피 분야도 언어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지. 타이포그래피가 말과 글 중심의 언어학과 이미지 중심의 시각언어 사이의 교량이 되어줄 수 있거든. 언어학자들이 타이포그래피를 알고,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들이 언어학을 알게 되면 미술과 디자인의 이미지 상징들, 즉 시각언어를 연구할 수 있는 장이 열리지 않을까? 지금 난 이런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어. 지금까지 연재한 이 글들이 작은 웅덩이로 증발되지 않고, 거대한 언어학의 바다로 흘러들어 갈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며.

윤여경

그래픽디자이너이자 디자인 교육자이다. 그린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디자인이 사람과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현재 경향신문과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디자인 공부 공동체인 ‘디학(designerschool.net)’에 참여한다. 쓴 책으로는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X축》(스테파노 반델리, 2012) 《런던에서 온 윌리엄모리스-그는 왜 디자인의 아버지인가》(지콜론북, 2014) 《역사는 디자인된다》(민음사, 2017) 《아빠 디자인이 뭐예요》(이숲, 2020)이 있으며, 공저로 《디자인 확성기》《디자이너의 서체 이야기》(지콜론북)가 있다. 이 외 〈다른 백년〉, 〈디자인 평론〉, 〈경향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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