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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자이너의 역할

‘모든 사람은 디자이너이다’ 1971년 빅터파파넥이 쓴 『세상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the Real World)』의 첫 문장이야. 디자인은 여럿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야. 문제가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울수록 되도록 많은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면 좋지. 다양성이 높아야 더 적절한 해결책이 나오니까. 그래서 디자인 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협업’이야. 큰 틀에서 디자인에 참여하는 사람은 모두 ‘디자이너’라고 한다면 디자인은 디자이너들의 협업 과정이라 말할 수 있지. 나는 소위 ‘전문 디자이너’라 말해지는 사람의 역할도 여기에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현재 전문 디자이너는 디자인 프로토타입(prototype)을 구현하는 사람을 의미해. 프로토타입은 ‘문제 해결을 위한 원형’으로 대량생산에 앞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가상으로 구현해 보는 과정이야. 쉽게말해 디자인시안이지. 언어학에도 프로토타입이란 용어가 있어. 인지언어학의 프로토타입은 경험에 기반한 언어의 원형 개념을 의미해. 가령 많은 사람에게 ‘사랑’의 본질적 경험은 ‘엄마의 따뜻함’이야. ‘사랑’이라는 말의 의미는 이 ‘따뜻함’이라는 원형 개념을 중심으로 다양한 범주를 갖게 되지. 전문 디자이너는 문제 해결의 원형인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사람들이 문제 해결을 위한 개념을 실제로 경험하도록 해주는 역할을 하지.

사람들은 디자인 문제가 생기면 전문 디자이너를 찾아. 전문 디자이너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용자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이야. 다양한 기능들 중 일부 기능을 강조해 사용자가 디자인에 매력을 느끼도록 유도하지. 전경에서 호기심과 매력을 느껴야 배경에 깔린 디자인의 의도에도 관심을 갖게 되니까. 전문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매개로 사람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중매 역할을 해. 소통을 하려면 매개하는 언어가 있어야 해. 음악에 음표가 있고, 수학에 숫자가 있듯이 디자인도 나름의 언어 매체를 갖고 있어. 디자인의 언어 매체는 이미지야. 수학 문제를 풀려면 수학 기호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듯이 전문 디자이너가 되려면 자신이 다루는 이미지 기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 이미지 기호는 대체로 글자, 추상적인 기호, 그림(2D), 조각(3D) 등 여러 종류가 있어. 전문 디자이너는 각종 이미지 기호들이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읽히고 쓰이는지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갖추고 있지.

시각디자인 분야에서 이미지 기호를 ‘시각언어’라고 말해. 대부분 언어 매체가 그렇긴 하지만 시각언어의 이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이야. 화살이 많아야 과녁을 맞출 확률이 높듯이 관련분야의 시각언어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을수록 제대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그래서 전문 디자이너에게 경험은 가장 중요한 자산이야.

디자인 과정은 단순해. 디자인을 의뢰받은 전문 디자이너는 먼저 관련된 자료와 사례들을 찾아봐. 이를 디자인에서 레퍼런스(reference)라고 말해. 번역하면 ‘참조’ ‘참고’인데 언어학에선 ‘구체적인 실제 사례를 지시한다’는 의미야. 디자이너는 주어진 문제와 유사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검토하면서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 원인을 찾고 동시에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검토하지. 이를 바탕으로 문제의 맥락을 새롭게 규정하고 프레임을 혁신해 새로운 해결책을 이미지로 표현해. 이 이미지가 가상의 프로토타입이자 디자인시안이야. 디자인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전문 디자이너가 표현한 이미지 시안들을 놓고 논의를 하지. 논의를 통해 부족한 점이 있으면 다시 위 과정을 반복하고.

레퍼런스를 찾아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 검토한 후 부족하면 다시 레퍼런스 찾는 반복 프로세스를 디자인에선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이라고 말해. 일종의 디자인 방법론이지. 사실 이런 방법론은 다른 분야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경영학에서 말하는 린(Lean) 프로세스, 개발자들의 프로세스인 애자일(Agile), 생물학에서 말하는 되먹임(feedback loop) 등 각기 용어는 다르지만 모두 디자인씽킹과 프로세스가 유사해. 과학으로 치면 관찰을 통해 가설을 세우고 실험으로 검증하는 과정이야. 즉 경험-가설-검증의 반복을 통해 최선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지.

‘경험과 가설, 검증’은 다른 말로 대체할 수 있어. 몇 년전 선배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한 선배가 “정치가 뭐야?”라는 질문을 했어. 정치학을 공부한 선배가 “갈등, 대화, 타협”이라는 세 단어로 대답하더라고. 나는 이 대답을 듣고 정치와 디자인이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디자인도 갈등과 대화, 타협의 순환과정이라고 볼 수 있거든. 문제는 늘 갈등을 유발해. 디자인은 누군가 이 갈등을 인식하면서 시작되지. 이 갈등을 해소하려면 대화가 필요하고 대화는 타협으로 이어져. 이때 전문 디자이너는 대화에 필요한 언어, 디자인시안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야 해. 언어가 있어야 디자인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대화와 타협을 할 수 있으니까.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비슷한 방법을 강조하는 이유는 복잡성이 높은 문제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어쩔수 없는 흐름이 아닐까 싶어.

 

2) 산파와 교육자로서 디자이너

우리 시대는 빠르게 변화해서 미래를 예측하기 아주 어려워.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결도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기보다는 변화에 따라 새롭게 대응해야 하지. 전문 디자이너도 기존에 해오던 역할에만 안주할 수 없게 되었어. 이미지에만 집중했던 과거와 달리 사회적 맥락과 디자인 전체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자신의 역할을 재조정할 필요가 생겼지. 이미 몇몇 선구적인 디자이너들은 일찍이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사회 혁신을 위한 디자인을 시작했어. ‘유니버셜디자인’ ‘공공디자인’ ‘그린디자인’ 등 새로운 디자인 개념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지. 더불어 전문 디자이너의 역할도 변화하기 시작했어.

최근 디자이너를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라고 보는 경향이 있어. 퍼실리테이터란 ‘조력자’ 혹은 ‘조정자’로서 회의나 대화에서 사람들 사이에 소통과 협력이 활발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야. 디자인 과정에 있어 디자이너에게 이런 역할이 요구하는 것은 디자이너를 창조자가 아니라 조력자로 여기는 것이지.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디자인에 있어 협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란 생각이야.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 편집자 데이비드 휍워스는 이런 말을 했어. “디자인은 너무 중요해서 디자이너에게 맡길 수 없다”. 이 말은 디자이너의 역할 변화를 암시하고 있어. 디자인은 대량생산되기에 실패를 최대한 줄여야 해. 항상 ‘더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 이런 상황에서 디자이너가 반드시 갖춰야 할 소양은 표현의 적절성보다 생각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태도가 아닐까 싶어. 모두가 적절하다고 생각할 때 한번 더 의심해 보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다양성을 추구하는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디자인 과정은 ‘대화’야. 디자이너는 충분한 대화를 통해 디자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정의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해. 나아가 함께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낳도록 이끌어줘야지. 『디자인 철학』의 저자 글랜 파슨스는 디자이너를 ‘산파’ 혹은 ‘교육자’라고 말했어. 디자이너는 디자인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성장시키고 스스로 해결책을 낳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취지지. ‘산파’와 ‘교육자’이든 ‘퍼시실테이터’든 모두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 가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어.

물론 여전히 디자이너의 주요 역할은 전경으로서의 언어만들기 즉 ‘표현’이야. 과거 디자이너는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예술가로 여겨지곤 했어. 덕분에 문제 해결이라는 책임에서 다소 자유로울 수 있었지. 하지만 디자인이 본질적으로 문제 제기보다는 문제 해결에 전문화된 분야라는 점을 잊어선 안되. 디자이너가 산파나 교육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지금까지 회피해 왔던 디자이너의 본질적 역할을 상기시켜주는 것 같아. 예술가는 홀로 작품을 낳지만, 디자이너는 함께 노력해 프로토타입을 만들지. 또 예술가는 작품을 완성해 역할을 다하는 반면 디자이너는 함께하는 사람들과 생각을 성장시켜 나가니까.

나는 디자이너의 역할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봐. 세상은 엄청나게 빨리 변하고 문제의 복잡성은 점점 더 높아지는 상황이야. 이런 상황에서 디자이너 혼자 무언가를 해결하는 것은 위험해.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맡대야지. 디자인 과정도 과거와 달리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고 있고. 디자이너가 산파나 교육자, 퍼실리테이터로 여겨지는 현실도 디자인을 둘러싼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어. 이제 전문 디자이너들도 자신의 역할과 정체성에 대해 다시 고민해 볼 때가 왔다는 생각이야.

 

3) 디자이너의 책임

글랜 파슨스는 디자이너의 행위는 ‘어둠속에서 쏘는 화살’과 같다고 말했어. 여기서 ‘어둠’은 미래고 ‘화살’은 예측이야. 디자인의 미래는 예측 불가능 하기 때문에 디자이너의 행위를 ‘어둠속에서 쏘는 화살’에 비유한 것이지. 말 그대로 디자이너는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이야. 그것도 개인의 사적인 미래가 아닌 공공의 미래를 예측하지. 이런 점에서 디자이너는 자신의 역할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해.

디자인은 한번 계획되면 대량생산되기 때문에 한 번의 실패가 대량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정치도 마찬가지야. 정치인을 잘못 선택하면 많은 사람이 동시에 몰락할 수도 있지. 히틀러의 경우처럼. 독일의 경제사회학자 막스 베버(Maximilian Weber, 1864~1920)는 『직업으로서의 정치(Politik als Beruf)』에서 정치인은 두 가지 윤리가 있다고 말했어. 하나는 ‘신념윤리’고 다른 하나는 ‘책임윤리’야. 정치인은 미래 비전과 더불어 신념을 갖고 있어야 해.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려면 권력을 가져야 하지. 베버는 권력자의 신념에는 항상 책임이 뒤따른다는 점을 강조해. 권력자의 잘못된 신념이 거대한 사회 폭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

나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직업으로서의 디자인’이라 생각하며 읽었어. 디자이너의 신념에도 책임이 뒤따른다고 생각하며. 정치인도 일종의 문제해결자야.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대리자를 뽑는 것이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권력을 가진 정치인은 공동체가 처한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하고 이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해. 베버는 정치를 ‘두꺼운 판자에 서서히 구멍을 뚫는 일’에 비유했어. 신념이 너무 앞서면 판자가 쪼개질 것이고, 책임만 의식하면 일 진행이 더디지. 디자이너의 일도 마찬가지야. 클라이언트가 디자이너에게 어떤 역할을 줄 때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권력을 디자이너에게 양도한 것이니까. 디자이너도 정치인처럼 책임감을 갖고 두꺼운 판자에 구멍을 뚫듯이 점진적으로 역할을 수행해야 해.

좋은 디자인은 대체로 점진적으로 발전해. 애플의 아이폰 시리즈처럼. 그래서 디자인은 과정이 아주 중요해. 디자인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변화에 대응하는 프로세스를 잘 설계했기 때문이야. 키스 도스트도 적절한 ‘해결책’보다 적절한 ‘해결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예측이 어렵고 통제불가능한 시장 속에서 디자인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해결 과정에 참여시킴으로서 복잡하게 변화되는 문제들에 잘 대처해왔어. 그래서 디자인 개념과 방법은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화해 왔지. 더불어 디자이너의 역할과 책임도 변하고 있고.

“디자인(혹은 디자이너)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기술하시오” 나를 그린디자인 공부로 이끌어주신 윤호섭 선생님이 늘 묻던 질문이였어. 처음 이 질문을 받고 당황했었어.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 이 질문을 계속 곱씹으면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고. ‘나는 디자이너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과연 나는 디자이너로서 책임감을 갖고 있는가?’ 그래서 나도 종종 학생들에게 이 질문을 하곤 해. 사실 이 질문은 정답이 없어. 개념과 역할에 따라 답이 달라지니까. 학생들이 쓴 글을 읽다보면 같은 개념을 갖고 있어도 사람에 따라 역할과 책임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 그 자체야.

역할에는 항상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야. 디자이너는 디자인 대상의 기능적 탁월성을 높여주는 역할로 그 책임을 다하지. 디자인 대상이 문제일 때는 탁월한 해결책을 제안하는 것이고. 디자인는 주로 사물이나 이미지를 다루지만,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이 서로 소통한다는 점에서 ‘사람 문제’라고도 볼 수 있어. 그래서 디자이너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 묻는 것은 디자인을 사람의 문제로서 인식하도록 이끄는 효과가 있어. 디자이너 자신과 사용자 등 ‘사람의 탁월성’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지.

 

4) 디자인 역할과 책임의 확대

고대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Ἀριστοτέλης, BC384~322)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말했어. 보통 개인은 집단 속에서 살아가지. 집단이 함께 살아가려면 규칙이 있어야 해. 좋은 규칙은 개인과 집단을 성장시키고, 나쁜 규칙은 개인과 집단을 몰락시키지. 그렇기에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좋은 규칙을 만드는 것이야. 디자이너의 프레임 혁신, 탁월한 해결책도 달리 말하면 새로운 규칙이라고 말할 수 있어. 새로운 규칙을 제안하려면 먼저 기존에 어떤 규칙이 있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지. 디자인 문제는 규칙을 지키지 않았거나, 기존 규칙 자체가 문제일때 일어나거든. 규칙을 지키지 않은 경우는 규칙에 맞게 조정해주면 되고, 기존 규칙에 문제가 있으면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하지.

규칙은 익숙해진 감각이 일으키는 생각 패턴이야. 감각이 오랜 시간 이어지면 추상적 개념으로 전환되고 그 개념은 규칙이 되어 권위를 획득하게 되지. 오래된 고전 작품이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이유도 익숙해진 감각이 권위있는 규칙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야. 디자이너는 거꾸로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인 감각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해. 개념을 감각으로 옮기려면 규칙을 적용해야 하지. 그런데 가끔은 기존 규칙이 맞지 않을 때가 있어. 시간이 지나 개념이 바뀌면서 감각도 변화했기 때문이야. 그러면 디자이너는 기존 규칙을 버리고 새로운 규칙을 찾아야 하지. 디자인 역사는 개념과 규칙의 변천사라 해도 과언이 아냐. 디자이너는 개념과 규칙의 변화과정을 이해하고 있어야 해. 디자이너의 역할과 책임이 규칙을 변화시키는데 있으니까. 그래서 디자이너에게 역사 공부는 아주 중요해. 디자인 개념의 변화를 알아야 오래된 규칙과 새로운 규칙 사이의 차이점을 이해할 수 있거든.

집단마다 분야마다 각기 나름의 규칙이 있어. 과거 ‘디자인’에 대한 논의는 주로 산업과 경영 등 특정 분야에서만 전문적으로 다루어져 왔어. 디자이너들은 시장의 규칙만을 내재해화 디자인을 경쟁력을 높히는 마케팅 수단으로 여기었지. 최근 들어 디자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크게 확장되고 있어. ‘누구나 디자이너’라는 인식이 생겼지. 덕분에 디자인을 산업이 아니라 문화로 여기는 경향도 생겼지. 이 분야는 시장의 규칙이 통하지 않아. 즉 디자인은 상품경쟁력을 높이는 수단만이 아니라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 ‘내 생각을 표현하고 소통하기 위한 시각언어’라고 여기기 시작했어. 디자인을 둘러싼 맥락이 바뀌면 디자이너들에게도 새로운 규칙이 요구될 거야.

독일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정신의 삶』에서 정신활동을 지성과 이성 두 가지로 구분했어. 지성은 답이 있는 생각이고, 이성은 답이 없는 생각이지. 현재 인공지능은 최선의 답을 찾는 시스템으로 사람의 지성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어. 남은 것은 이성이지. 나는 여기에 인간의 존엄이 있다는 생각이야. 앞으로 교육은 답이 없는 이성, 창의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생각 과정을 강조하게 될거야. 나는 대학만이 아니라 초중고 공교육에서도 디자인을 가르치면 좋겠다는 생각이야. 학생들이 디자인을 배우면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거듭했으면 좋겠어. 내 생각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소통하는 연습도 하고. 디자인 교육이 보편화된다면 빅터파파넥의 꿈,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는 세상, 복잡한 문제를 잘 해결하고 아름다워지는 세상이 진짜 실현될지도 몰라.

윤여경

그래픽디자이너이자 디자인 교육자이다. 그린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디자인이 사람과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현재 경향신문과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디자인 공부 공동체인 ‘디학(designerschool.net)’에 참여한다. 쓴 책으로는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X축》(스테파노 반델리, 2012) 《런던에서 온 윌리엄모리스-그는 왜 디자인의 아버지인가》(지콜론북, 2014) 《역사는 디자인된다》(민음사, 2017) 《아빠 디자인이 뭐예요》(이숲, 2020)이 있으며, 공저로 《디자인 확성기》《디자이너의 서체 이야기》(지콜론북)가 있다. 이 외 〈다른 백년〉, 〈디자인 평론〉, 〈경향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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