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8
  • 생생정치: 한국 녹색정치의 재-발명
  • 기후위기의 해결책으로 원자력을 주장하는 것은 사기행위이다
  • 팬데믹 상황에서 미국과 프랑스 간의 시스템 비교
  • 디자인이 하는 일
  • GDP는 과거에 대한 기록으로 남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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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백년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향해

 

1.

“중화전통문명은 위대하다.” 이 명제는 한국인들이 보기에 참인가 거짓인가? 논리나 말뜻이 아닌 경험적 측면에서 보면 참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을 세대로 나눠 생각해 보면, MZ세대의 젊은이들은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중년 이상의  어린 시절의 교육 환경, 문화 향유 경험으로 형성한 가치관을 지금의 2030세대는 이해할 수 없다. 삼국지가 제공한 판타지나 가슴 두근거리는 외식 선택지가 됐던 중화요리는 그들의 기억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나 문화 측면에서 여전히 중진국이고, 정치사회적으로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투표도 없는 일당독재국가“인 중국이 호감의 대상이 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덩치 큰 지역의 대국이니 경제든 군사 외교 현안이든 중국의 영향력을 벗어날 길이 없는 한국이 “힘깨나 쓰지만 촌스런 동네 형”을 늘 의식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들에겐 “짜증나는” 상황일 뿐이다. 

“K-컬쳐는 쿨하다.” 중국의 MZ세대에게 이 명제의 참거짓을 물어본다면 어떻게 답할까? 인터넷상에서의 공격적이고 매너없는 행동으로 악명높은 청년 애국주의자 ‘샤오펀홍’은 논외로 하자. 국내외의 다양한 문화를 즐길 줄 아는 베이징이나 상하이와 같은 일선도시의 문화창작자와 평론가들, 즉 중국의 젊은 힙스터들에게 의견을 구하려 한다. 지금까지 그들은 답변을 주저해왔다. BTS는 중국에서 별인기가 없는데다 세계적 반중문화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더욱 밉상이 됐다. 기생충의 성공은 서구 엘리트들의 정치적 올바름이 고려된 예외적 문화현상으로 치부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의 전세계적 흥행성공이후에 더 이상은 답변을 미룰 수 없게 됐다. 동시에 그들은 중국의 대중문화와 한국의 대중문화가 놓인 전혀 다른 국제적 위상을 객관적으로 성찰할 기회를 갖게 됐다. 

 

2.

여기서 한가지 한국인들의 오해 한가지를 해소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중국은 더 이상 낙후된 개발도상국이 아니다. 객관적인 질적 지표로 봤을 때도 이미 중진국 반열에 들어섰다. 그런데, 또 단순한 중진국도 아니다. 중국은 산업화와 현대화 측면에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특별하다. 그리고 한국보다 더욱 특별하다. 30년후 선진국이 되거나 미국의 국력을 앞지를 가능성이 높을 정도로 발전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서 한국과 마찬가지이다. 소위 제3세계 국가들중 2차대전 이후 이런 성취를 이뤄낸 것은 매우 특수한 사례이며 한국과 중화권이 거의 유일하다. 이는 중국이 우리와 같은 동아시아 전통문화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며, 그 원조국가라는 사실에 상당부분 기인한다. 비록, 서구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고통스런 변화를 겪었지만, 유교를 핵심으로하는 전통문명의 아비투스를 기반으로 산업화의 핵심역량을 소화 후에는 급속히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로 발전했다. 중국이 더욱 특별하다는 의미는 물론 중국이 미국과 헤게모니를 다투는 G2 강대국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문화산업도 이렇게 빠르고 성공적인 현대화를 이루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자. 지난5년간 한한령을 통해 자국 대중문화를 보호하며 전략적으로 육성해온  중국은 더 이상 한국을 비롯한 외국 대중문화를 일방적으로 카피하는 싸구려 콘텐츠 생산국이 아니다. 검열 제도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방면에서 ‘웰메이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을 확보했다. 그 결과, 중국에서 만들어진 드라마 등이 중국 플랫폼의 인터내셔널 버젼을 통해서 동남아 등지로 수출된다. 과거 중국내의 1~2차 한류붐이 형성되는 가운데 볼 수 있던 문화수출국 한국, 수입국 중국의 관계와 비슷하다. 그래서 중국의 텐츠 생산자와 평론가들은 한한령이 풀린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한류가 중국 시장을 지배하는 일은 더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해왔다. 바깥에 내놓기 부끄러운 저급한 수준이 아니라면, 자신들의 문화와 사회적 배경이 반영돼 있는데다 자국어로 된 문화상품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특정 분야는 한국을 넘어서는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거대한 인력과 자원풀이 요구되는 애니메이션이나 중국이 세계적 리더로 도약한 IT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산업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외 정치적으로 민감한 당대의 주제를 회피하기에 유리한 특정 장르들, 판타지 역사물이나, SF 혹은 미스터리 등은 비교적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해왔다. 그래서,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K-컬쳐 부러워하면서도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우수한 전통문화 자원과 스스로 플랫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거대한 시장을 기반으로 아시아의 문화선진국 자리를 넘볼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대표적인 예가 올해 상반기에 큰 인기를 끌었던 샨허링山河令이라는 OTT드라마이다. 이 작품의 원작은 중국에서 耽美라 불리는 BL웹소설이다. 이를 드라마로 개작해서 큰 성공을 거뒀는데, 해외에서도 화교권을 넘어서는 호평을 얻었다고 한다. 이 작품의 매력으로 평가를 받았던 부분은 보수적인 중국 컨텐츠의 한계를 넘어서는 모호한 성정체성과 원래 중국이 강점을 가진 무협물의 배경이 된 중국 전통미학의 조화였다고 한다. 시나리오 작가는 해외유학파 출신의 젊은 여성이었기 때문에, 세계적 흐름과 중국의 특성을 함께 살릴 수 있었다. 과거 많은 중국 엘리트 감독들의 영화가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전력이 있는 만큼 이런 작품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중국 컨텐츠가 세계적 각광을 받는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도 망상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사진1) 인기 드라마 샨허링에서 曖昧한 관계를 연기한 남성 스타 투톱이 인기를 끌었지만 그중 한명인 張哲瀚(왼쪽)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은퇴를 강제당했다. 그는 수년전에 찍은 개인적인 사진 때문에 친일파라고 비난을 뒤집어썼고 해명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실제로는 BL물에 대한 공산당 고위 엘리트들의 보수적인 취향을 거슬린 점, 또 마윈과 친한 趙薇의 매니지먼트 회사 소속이라는 점 때문에 제거당했다는 설이 있다. 현재 중국 인터넷에서 두 사람이 함께 나오는 이 포스터의 사진은 사라졌다.

 

3.

그런데, 올해 하반기 들어서 이런 흐름에 급제동이 걸렸다. 시진핑 정부의 새로운 대중문화정책이 발표되면서, 추가적인 구속조건들이 생겨다. 보수적 관점이 강화됐고 남성 캐릭터들의 여성성을 강조하는 표현이 명시적으로 금지됐다. 가상적 역사해석도 제약을 받게 됐는데, 이는 환타지 역사물도 함부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검열 기준들은 구체적인 부분도 있지만 모호한 지점이 훨씬 많다. 어떤 식으로든 창작자들의 자기 검열 기제를 강화시킨다. 의기양양던 중국 평론가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작아졌다. 

그리고 <오징어게임>이 있었다. 오징어 게임의 넷플릭스 방영 초기 중국들의 평가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박한 편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일본의 데스게임 장르에도 빠삭하고 한국 드라마의 문법에도 매우 익숙하기 때문이다. 왠만한 한국 드라마팬 이상으로 많은 한국 드라마를 모니터링해왔고, 영미나 일본, 타이완, 홍콩의 화제작도 놓치지 않는다. 이런 내공을 갖춘 이들이니 만큼, 오징어게임이 기존의 한국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수작이라는 평가를 내리기 힘들었다. 그런데, 불과 2~3주가 지나고 천지가 개벽하는 일이 벌어졌다. 기존의 한류문화 소비시장을 뛰어넘는 전세계적 반향을 목격했다. 일본이 백년전부터 꿈꿔왔고 홍콩이 한때 넘봤던, 영미가 지배하는 글로벌 대중문화시장. 뜻밖에도 비서구권 로컬 컨텐츠를  만들어 이 목표를 달성한 것은 동아시아에서도 늘 일본과 중국에 들러리를 서 한국이었다. 중화권, 특히 대륙의 평론가들이 하릴없이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한두발짝만 따라잡으면 앞지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K-문화는 넘사벽이 됐고 그들이  기존의 족쇄는 훨씬 더 무거워졌다. 이제 “위대한 중화문명의 부흥을 바탕으로 중국특색사회주의의 성공이 담보하는 우수한 중국문화를 세계에 전파하겠다는” 중국몽은 백일몽이 돼버렸다.   

이런 씁쓸한 소회를 표현하는 구체적인 방식이 흥미롭다. 중화권을 넘나들며 대륙의 문화시장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홍콩의 문화평론가 량원따오梁文道는 이제 문화 내순환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미국의 견제를 의식하면서 시진핑이 제시한 쌍순환 경제구조중 내순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가 예로 든 ‘장진호’는 인민해방군의 적극적인 협력, 중국 역대 최고의 제작비와 호화캐스팅, 첸카이거와 쉬커라는 중화권 최고의 감독들이 참여해서 만들어낸 전쟁 블록버스터 영화이다. 공산당 정부의 프로파간다 주제를 담은 소위 주선율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완성도가 높기도 하지만, 대중들의 호응에 힘입어 헐리웃에서 만든 전쟁 영화 ‘덩케르크’가 가지고 있던 박스오피스 기록을 넘어섰다. 오로지 중국영화시장에서만 거둔 성과인데 어차피 이게 끝이다. 수작이라고 해도  중국의 주선율 영화를 수입해갈 외국 영화시장이 존재할 리 없다. 자국중심의 이념을 서사화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 유일한 패권국가인 미국뿐이다. 아직 팍스 시니카의 시대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 국내 시장만으로도 손쉽게 세계1위를 만들어 내는 상황이니, 중국 컨텐츠는 내순환으로도 충분히 지속가능하다.

사진 2) 6.25전쟁당시 많은 중공군 희생자를 남긴 장진호 전투가 영화화돼 크게 성공했다. 조선항미원조전쟁을 미화하는 것은 시진핑 정부 역사관의 특징중 하나이다. 전랑2의 주연인 중국애국주의의 아이콘 우징이 주연으로 출연했다.

 

4.

대륙의 평론가들도 이에 동의하지만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우리가 듄은 못만들어도, 오징어게임 정도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검열제도만 없다면.)” 이런 허세를 들으면 해방 이후부터 불과 10여년전까지 일본이 우리의 경쟁상대라고 여겨온 한국인들의 ‘근자감’이 떠오른다. 하룻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른다는 속담도 생각난다. 두가지 의미로 그러하다. 첫째, 이는 중국인들의 오만한 중화주의 표현이다. 비록 개혁개방 이후 30년 정도는 한국의 경제적 성과를 벤치마킹하고 한류를 즐겨 소비하기도 했지만,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차이메리카라는 G2 시대를 연 2010년경부터는 대국의 자존심을 회복했다. 천년이 넘는 번속국의 입장에 놓여 중화문명의 아류로 여겨온 지금의 한국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졸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편견이 존재해왔다. 조선인의 일본어 표현인 조센징朝鮮人이 단순한 일본어 기표가 아니라 멸칭이었던 것처럼, 중국내에서 차오셴朝鮮이나 까오리高麗라는 표현도 중화문명내의 이류국가와 이류문화라는 기의를 지니고 있었다. 자연히 중국이 일단 대국의 위상을 회복하기만 하면 한국의 문화역량을 앞지르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인식이다. 그래서 늘 한류는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서구문화나 일본문화에 비해 한수 아래인 통속적인 이류문화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지난 5년간 한한령이나 팬데믹 시대 2년간의 제한적 국제교류의 영향으로 중국인들은 최근 한국의 변화한 국제적 위상, 즉, G10의 반열에 올라선 명실상부한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잘 실감하지 못한다. 같은 기간 일취월장한 중국 대중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었으니, 한국인들 중국의 문화적 역량을 실제보다 낙후된 것으로 여기 피장파장이기도 하다. 어쨌든 해외문화를 상시적으로 접하는 중국의 힙스터들이 오징어 게임의 성공을 계기로 K-문화가 세계 대중 문화의 주류로 진입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심리적으로는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오징어게임이전에도 중국 드라마가 성숙했음을 자부하며 개별 작품을 분석할 때마다 막상 그 척도로 사용된 것은 한국드라마였으니질투심의 발로일 뿐이다. 다만 한국통 중국문화 힙스터들이 일반 중국인들과 달리 한국내 혐중정서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감정섞인 반응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는 한다.  

개혁개방의 유산이 조금씩 쌓이며 동시대의 현대화된 글로벌 트렌드와 비교해서 “촌스럽지 않은” 업그레이드 버젼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지금 문화계의 핵심인력인 80허우들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위문화를 매우 활발하게 전개시키기 시작한 2010년경부터이다. 지금은 거대 상장기업인 중국의 유튜브 삐리삐리哩나 웹소설 플랫폼 진쟝晉江 등이 그때 등장했다. 그렇게 보면, 한류 30년 역사를 중국이 10년만에 따라잡겠다는 것은 지나친 기대이다. 제조업과 달리 문화산업은 사회나 제도의 성숙도와 동기화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째, 하지만 한국이 여러 측면에서 질적으로 일본을 능가하거나 대등한 위치에 올라선 것을 보면, 중국이라고 한국을 추월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검열이라는 절대적인 족쇄가 풀린다는 전제하에서. 하루강아지가 풍산견으로 자라나 범을 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근거없는 선민의식을 가진 일부 한국인들이 이를 부정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지금 중국인들에게 그렇게 허풍떨지말고 실력으로 입증해봐라 하면서 조롱하는 것은 진정한 주류답지못한 태도이다. 아직 한국인들이 충분히 자신을 얻지 못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중국의 산업기술이 급성장하면서 글로벌 상품시장에서 한국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자, 불안을 느끼면서 반중정서를 키워운 이력을 보면 그러하다. 

사진3 11년전 덕후B급문화의 도가니로 출발한 삐리삐리가 지금은 중국 청년들의 주류문화를 이끌고 있다.

중화주의는 우리로서 몹시 불편하지만, 근본적으로 바뀌기는 쉽지 않다. 마치 아무리 인종주의를 비판한다고 해도 백인우월주의가 없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 마음속에 백인중심의 서구사회를 숭상하고, 제3세계의 유색인종을 멸시하는 심리적 위계가 강고히 존재하는 것처럼, 전통문명국이자 대의 강대국인 중국인의 마음속에서 중화주의가 사라지는 것도 단기간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서구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것과 같이,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편견도 점차 조정될 것으로 나는 낙관하는 편이다. 중국의 지식인과 문화힙스터들이 같은 근린국인 일본을 무시하지 못하고 마음속 깊이 가진 리스펙과 두려움을 보면 그러하다.  

 

5.

하지만, 우월을 논하기에 앞서, 정치적 제약과는 무관하게 중국문화는 한국이나 일본과는 또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위대한 전통중화문명의 저주”라는 역설때문이다. 뇌피셜이라는 것을 전제로 말하자면 내가 관찰한 중국문화의 특성중 하나는 지나치게 묵직한 전통의 관성이다. 나는 무조건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거나 신토불이”를 외치는 국수주의적인 복고주의자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인들은 현대적인 삶과 문화를 표현할 때조차 전통적 요소를 결합한 크로스오버에 대한 강박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이 한국과 크게 다르다. 최근 몇년간 “조선의 XXX”라는 식으로 반농담처럼 설명되는 한국 전통문화의 현대적 표현들을 보면, 그 중요한 특징중 하나는 맥락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MZ세대는 전통문화 요소들을 해체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구조화해서 맥락없이 여기저기에 가져다 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 것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냥 쿨하게 보이고 들리니까 사용하는 것이다. 꼭 본래 의미가 통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혀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예전의 크로스오버처럼 굳이 이것이 한국풍이라거나 한국전통문화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의식되지 않는 상태에서도 “뭔지 모르겠지만 중독성있네 라는 반응을 들을 법하다. ‘조선의 랩 이날치의 백댄서로 출발한 앰비규어스 컴퍼니가 콜드플레이와 공연한 것이 가장 대표적이 예가 된다. 달리 말하면 글로벌 사회 어디에서나 통할 수 있는 현대적 보편성을 획득한 것이다. 반대로 중국의 창작자들은 창작과정에서 “이것은 중국문화”라는 자의식을 늘 가지고 있으며 이를 현대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노력한다. 누구봐도 Made in China라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 이런 콘텐츠는 중국 문화나 중국풍을 선호하는지 여부에 따라서 호불호가 명확히 갈릴 수 밖에 없다.

사진4) 최근 중국 애니메이션은 화려하고 압도적인 그래픽으로 눈길을 끈다. 사용되는 서사는 대개 중국 고전의 현대적 변용인데, 封神演義의 哪吒이야기는 중국판 반영웅캐릭터로 특히 인기가 많다. 하지만 원작의 弒父에피소드는 문화적으로 금기시되므로 애니메이션에는 등장하지 못한다.

다른 방식으로 이를 설명해 볼 수도 있다. 중국인들은 과거 한국 대중문화의 성공을 바라보면서 “가장 로컬한 것이 가장 글로벌한 것이다”라는 금언을 되새기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러다보니 한국이 원래 잘하는 장르를 벗어난 시도를 하는 것을 비판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를테면 한국판 스페이스 오페라인 <승리호>를 중국의 <유랑지구>와 비교하며, 한수 낮게 보는 것이 그 예이다. 이런 시도를 막 시작한 한국SF 영상물의 여러가지 단점과 어색한 점들을 고려하면 꼭 틀린 평가는 아니다. 이런 스케일이나 장르는 중국에 맡길 일이지 뭐하러 나대느냐는 비아냥거림으로 들리기도 한다. 실제적 우주기술을 보유한 미국이나 중국정도만이 이런 SF문화 창작물도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예단한다. 한국은 원래 강점이 있는 가족이나 연인사이의 인간관계와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드라마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을 한다.    

듣기에 따라서는 현명한 충고일 수도 있다. 어차피 자원은 한정돼 있으니, 대국은 대국의 국가전략을, 중형국가는 중형국가의 전략을 가져갈 수 밖에  없다. 문화산업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누리호의 발사를 보면서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이라는 격언도 되새기게 된다. 대국을 무조건 따라할 수는 없지만, 한국이 가질 수 있는 꿈조차 포기해야할 이유는 없다. 일단 시도를 해 본 후에,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섬세하게 만들 수 있는지도  수 있다. 반대로 자기가 만든 프레임에 갖혀서 포기한다면 실재 잠재력을 갖춘 것도 이뤄내지 못하게 된다. 중화문명의 전승에 집착하는 자의식이 그런 울타리이자 중국인들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천형인 것 같다. 

전통과 로컬의 특성은 역으로 일부러 벗어나려고 한다고 벗어날 수 있는 것 아니다. 한국이 기존의 관성을 넘어서 온갖 장르의 창작물을 시도해도 자연스럽게 한국문화와 한국의 사회적 특성이 묻어난다. 다만 그런 요소들이 다른 국가들과 동시대적으로 기화 돼있으므로 외국인들도 공감을 할 뿐이다.  

 

6.

중국이 지금의 태도를 유지한 채 보편성을 얻는 방법은 자신의 전통자체가 현대화면서 새로운 보편이 되게 하는 것이다. “중국특색사회주의의 발전을 통한 중화민족과 중화문명의 부흥”이라는 말이 이를 의도하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말이다. 

맞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한국이 어쨌든 서구문명이 중심이 되는 당대의 보편 문화에 편승했다면, 중국은 다양한 문명이 공존하는 가운데, 새로운 복수의 보편이 병립하게 될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표준을 외부세계에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면서 다만 미국이 대표하는 서구의 보편 그들에게 강요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다. 음흉한 중국인들의 말은 믿을 수 없다고? 그들이 설사 대국굴기를 통해 미국의 패권을 대체하고 싶다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지구자원의 제한을 절감하고 있는 지금은 그런 일이 벌어지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중국인이 아무리 많아도 세계인구의 1/4도 되지 않는다. 

이런 전제 선입견없이 미래를 한번 상상해보자. 중국이 전통적인 자의식을 간직한 채, 정말로 현대화되고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들어서 세계인을 매료시킨다면, 그리고 중국의 발전모델이 삼십년후 혹은 그 이전이라도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설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면 어찌 될까? 우리는 또 하나의 오래된 그리고 새로운 보편을 인정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틀리다는 의미는 또 무엇인가? 중국이 또다른 보편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전제가 되는 것은 “보편의 보편”에 대한 수용이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이를 普世價이라고 표현한다. 이를테면 민주주의가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민주주의는 꼭 지금 서구와 한국사회가 운용하는 모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의 당국가가 현재 취하는 민본民本주의적 태도를 민권民權에 기반한 민주주의라고 억지를 쓰는 것은 양두구육에 지나지 않는다. 민권은 중화권이 국부로 받드는 쑨원이 주창한 삼민주의의 하나이다. 현재 중국의 당국가 체제가 전통중국의 유교엘리트 관료 시스템을 이념의 외피만 공산주의로 대 채 자본주의 시장경제 정책과 함께 현대적으로 변용시킨 것이라는 혐의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 제왕적인 국가 지도자와 이를 뒷받침하는 소수의 권력자 집단의 존재나 그들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하는 체제내의 미디어와 정치교육 시스템만이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구조가 이를 입증한다. 

사진 5) 중국의 국부 쑨원은 민족, 민생, 민권이라는 삼민주의를 내세웠으나 대륙에서 민권의 가치는 여전히 존중받지 못한다.

나는 어쨌든 긍정적인 시나리오에 배팅하고 싶다. 중국이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보편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다면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다. 상당부분의 문화유전자를 공유하는 우리에게는 좋은 참조점이 될 수도 있다. N개의 보편이 꽃피울 다양성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계속 지켜보련다.

 

 

김유익

和&同 青春草堂대표. 부지런히 쏘다니며 주로 다른 언어, 문화,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을 짝지어주는 중매쟁이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 아저씨. 중국 광저우의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오래된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함께 공부, 노동, 놀이를 통해서 어울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한다. 여생의 모토는 “시시한일을 즐겁게 오래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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