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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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켈리는 『통제불능』에서 기계와 생명의 이분법이 허물어져 가는 세계인 ‘비비시스템’의 도래를 선언했습니다. 『기술의 충격』에서는 생물처럼 자율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진화해가고 있는 ‘테크늄’의 논리를 증명해냈습니다. 기술에 대한 40여년 간의 탐구와 탐사를 집대성한 『인에비터블』에서는 비비시스템과 테크늄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는 ‘홀로스’를 이야기합니다.

인류가 비활성 사물들에 작은 한 조각의 지능을 집어넣어서 활기를 띄게 하고, 그것을 엮어서 기계 지능들의 클라우드를 구축하고, 이어서 수십억 개에 이르는 자신들의 마음까지 하나의 초마음에 연결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시기였다. 이 수렴은 지금까지 지구에서 일어난 가장 크고 가장 복잡하고 가장 놀라운 사건이라고 받아들여질 것이다. 유리, 구리, 전파로 이루어진 신경들을 엮어서, 우리 종은 모든 지역, 모든 과정, 모든 사람, 모든 인공물, 모든 감지기, 모든 사실과 개념을 연결하는 지금까지 상상할 수도 없던 복잡성을 지닌 거대한 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 나는 이 행성 규모의 층을 홀로스라고 부를 것이다. 홀로스는 모든 기계의 집단 행동과 결부된 모든 인간의 집단 지능에다가 자연의 지능, 이 전체로부터 출현하는 모든 행동을 포괄한다. 이 전체가 바로 홀로스다.” 431p

책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이, 홀로스의 진화는 ‘불가피’합니다. 12가지의 법칙으로 진행되는 기술의 진화는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기계들이 인공지능을 장착하기 때문에 인류는 사물들에게서 감각과 감정을 느끼고, 서로 상호작용하는 차원으로까지 나아갈 것입니다. 비트의 발명으로 우리의 관심과 생활은 원자로 이루어진 유형물로부터, 비트가 생산하는 무형물로 이동할 것입니다. 무형물의 확산은 이전에 상품을 소유하고 독점하는 생활양식을 청산해버리고, 자원과 모빌리티에 누구나 손쉽게 접근하고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를 발전시킬 것입니다. 모든 매체는 화면으로 시각화되어서 보고, 만지고,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소비자가 이용하기 쉬운 제품이 수없이 개발되면서, 예전에는 특정 지식인과 예술인들만이 접근할 수 있었던 콘텐츠 생산에 누구나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경직된 중앙집중화 체제에서 끊임없이 공유하는 ‘닷 공산주의’(존 페리 발로우)로, 위계적 계층 구조에서 평등하고 호혜적인 상호작용이 창발하는 ‘망’의 세계로 도약할 것입니다.

 

인류세의 비관, 홀로스의 낙관

위키피디아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누구나 손쉽게 내용을 편집할 수 있는 백과사전을 만들 것이라는 포부는 사이버펑크 운동가들의 흔한 공상으로 치부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위키피디아는 수많은 사람들이 편집 과정에 관여하는 세상에서 가장 큰 집단지성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케빈 켈리는 위키피디아의 성공을 보면서 “집단의 힘과 집단을 향해가는 개인들로부터 나오는 새로운 책임 의식 양쪽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400p)라고 이야기합니다. 확실히 기술과 디지털의 발달은 전에 없던 새로운 차원의 조직들을 출현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성능이 개선되고 있는 인터넷 플랫폼은, 인류의 대규모 협업과 실시간 사회적 상호작용을 가능케 합니다. 각국의 젊은이들이 주도했던 촛불 혁명, 홍콩 우산 혁명, 아랍의 봄 같은 21세기식 혁명의 밑바탕에는, 디지털 네트워킹의 발달이 있었음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출처 : noemamag

기술의 불가피성과 미래에 대한 무한한 낙관. 이 두 단어가 케빈 켈리의 세 저작을 관통합니다. 하지만 인류세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에게, 그의 자신만만한 태도는 일말의 불편함을 남깁니다. 기술의 진화로 인해, 오늘날의 위기가 점차 돌이킬 수 없어지고 있는 것은 명백한 진실입니다. 하지만 기술의 두 가지 명령이 그의 낙관에 반박할 수 없게 만듭니다. 우선 낡은 기술이 초래한 문제들은 더 나은 기술이 해결해왔다는 점입니다. 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난감하게 만들었던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왔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듭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류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동식물의 존재와 진화 과정에 이미 개입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본인들의 신체 내부로까지 거침없이 진군해 들어가고 있습니다. 스튜어트 브랜드는 “우리는 신 행세를 하고 있으니, 이왕이면 그 일을 잘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라고 했습니다. 쉽게 동의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단호하게 부정하기도 어렵습니다. ‘어머니 자연’이 인간에 의해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진 현 상황에서는, 개입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비용도 아울러 고민해야 합니다.

스가쓰케 마사노부는 『동물과 기계에서 벗어나』의 결론에서, 경제학자 미즈노 가즈오의 주장을 빌려 세계 국가에 버금가는 범세계적 연합체를 만들 것을 제안합니다. 초국적 기업의 인세 인하 경쟁에 제동을 걸고, 국제적 금융 거래에 과세를 매기는 토빈세 개념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범세계적 연합체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징수된 세금을 식량 위기나 환경 위기에 시달리는 지역으로 환원하게 된다면, 글로벌 자본주의의 폭주를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눈여겨볼 독창적인 점은, 그 과정에서 국가의 구속을 받지 않는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배양하고 관리하는 도구로 AI를 이용하자는 의견을 피력한다는 것입니다. 스가쓰케 마사노부의 주장을 일축하여 ‘기술의 선용’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멸종저항

케빈 켈리에 대해서 쓴 3주 동안 한가지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P4G 행사가 열리던 날 DDP 앞에서 있었던 ‘멸종저항운동’의 액션입니다. 지인의 부탁으로 우연히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머리가 아팠습니다. 멸종저항운동이 벌이는 일들의 정당성과 명분은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합니다. 급진적 일성은 기후위기의 원인과 해결법을 정확히 담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운동이 상상력을 제한하고, 기후위기와 대중 사이를 연결 짓는 것에 실패하고 있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생을 내놓고 투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대중이 쉽게 움직이는 것 같지 않습니다. 과문한 탓에 틀린 진술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역사를 봤을 때 정부와 대중은 항상 바꾸기 어려운 존재였습니다. 혹자는 ‘에코 파시즘’을 가치로 삼는 세력이 대두해, 개별 국가와 대중을 상대로 무력을 동반한 폭력적인 통치를 실현해야만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홀로스를 인류세에 적합하도록 최적화시키는 것뿐입니다. 기술의 진화가 불가피하더라도, 기술 진화의 고삐를 단단히 붙잡아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케빈 켈리도 기술의 진화에서 인간의 의식과 관여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방향이 정확하고 의미가 고결한 것이더라도, 현실적이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다시 고민해야 합니다. 미흡하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이라도,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성과를 약속한다면 기꺼이 뛰어들어야 합니다. 옳고 그름과 잘잘못을 따지는 노선 투쟁을 하기에는 시간이 없어 보입니다. 지구의 온도가 1.5도 상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10년 밖에 안 남았기 때문입니다.

유채운

역술가에 의하면 “시베리아에서는 냉장고를, 사막에서는 난로를 팔아가며 먹고 살 팔자”를 가졌다고 한다. 재주가 많다는 칭찬인지, 남의 등쳐먹고 살 사기꾼의 자질을 가졌다는 의미인지 종종 헷갈린다. 어렸을 때는 축구, 스노우보드, 수영, 배드민턴 등 밥 먹고 운동만 해서 책상에 10분 이상 앉아있어 본 적이 없다. 어찌 된 일인지 고등학교 진학 이후 학습에 대한 의지가 불타올라 10대 내내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던 책과 가까이 지내기 시작한다. 서울의 모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는 학부생 신분이지만, 제도권 교육과 체질적으로 맞지 않음을 다시금 깨달아 얼마 못 다니고 휴학했다. 2년 가까이 휴학생으로 지내며 이런저런 일에 기웃거려보는 중이며, 현재는 지구세대를 위한 학교 '지구대학'과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사무장이다. 놀고 먹기만 하면서 태평하게 살고 싶은데, 시대가 하도 수상하여 고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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