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는 알고 있을까?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 30년 신문기자 외길. 그의 칼럼은 정파를 가리지 않는 균형잡힌 비판과 한국 정치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 그의 칼럼을 읽기 위해 경향신문을 본다는 팬덤 보유. 팟캐스트 ‘이대근의 단언컨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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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경향신문(2016.4.20)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새누리당은 총선 패배로 정신을 못 차리고, 더불어민주당은 뜻밖의 승리에 어리둥절하는 사이 국민의당이 연일 선수를 치고 있다. 마치 총선 결과를 다 예견하고 대비한 것 같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세월호 특별법 개정, 임시국회 제안 등 의제를 선점하며 정국을 주도할 기세로 내달린다. 제1당, 제2당의 고삐를 한 손에 틀어쥔 듯한 위세다.

드디어 안철수의 시대가 온 것일까? 대선 주자 지지율이 고공행진할 때, 거대 야당의 대표로 있을 때 안철수는 이러지 않았다. 자신에게 쏠린 시선을 부담스러워했고 자신이 속한 조직의 크기와 무게에 주눅 든 아이 같았다.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그가 당 안팎의 거센 야권 연대·단일화 압박을 돌파하더니 스스로 제시한 목표를 기어코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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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당 2개월 만의 반전은 안철수가 과거 거듭된 실패를 일거에 만회했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그는 문재인의 코앞에 거대한 장벽을 세워 놓았다. 두 번째 정계 은퇴 약속을 지키지 못한 문재인이 호남이란 벽을 넘는 데 시간과 정력을 쏟을 동안 안철수는 앞으로 달려갈 수 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확장성도 확인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부산에서 새 지지기반을 구축하기보다 서울에 안주한 채 호남으로 파고들며 기존 지지층을 나눠 갖는 제로섬 게임을 한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그래서 도전할 줄 모르는 정치인, 위험회피를 우선하는 약은 CEO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 민주세력의 심장 호남을 얻고 덤으로 전국에서 고르게 보수층을 흡수했다. 안철수의 경쟁력이 되살아난 것이다.

하나 더 있다. 38석, 더민주를 앞선다는 정당 지지율 26.7%와 같은 숫자보다 그에게 더 가치 있는 것, 바로 중간 혹은 중도라는 자기 역할 공간의 확보다. 몸에 잘 맞는 옷처럼 그에게 딱 맞는 자리, 그가 잘할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한 것이다. 이제 남의 마당에서 놀지 않아도 된다. 그는 준비되는 대로 제1당과 제2당을 중재할 수 있다. 진보 보수를 다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양날의 칼이다. 우선 새누리와 더민주 간 등거리 노선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국민의당이 더민주 편에 서면 제3당으로서의 존재감을 약화시킨다. 새누리 편으로 기울면 박근혜 정권 2중대라는 공세를 각오해야 한다. 두 당이 그럭저럭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도 제3당의 입지는 줄어든다. 설사 두 당이 대립한다 해도 국민의당 설 자리가 저절로 생기는 건 아니다. 양당이 자신의 운명을 섣불리 제3당에 맡기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민주가 하면 로맨스가 될 여당과의 타협도 국민의당이 하면 불륜이 될 수 있다. 정체성이 불분명한 당의 한계다.

3당 체제를 주도할지, 두 당 사이에서 끌려다닐지는 두 당의 조건뿐 아니라, 안철수가 추구하는 정치의 방향에도 좌우된다. 안철수의 정치 슬로건은 일관성이 있다. 독자노선, 3당 체제, 중도, 대화, 새정치는 일맥상통한다. 문제는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정국을 주도하고 싶다면 확고한 자기중심이 있어야 한다. 그것 없이 쟁점마다 변하는 제1·2당의 중간점을 따라다니면 길을 잃을 수 있다.

국민의당 구성은 그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호남, 중도, 보수라는 이질적 요소들의 느슨한 결합물이다. 호남은 더민주와 겹쳐진다. 중도층은 의제 따라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이다. 안철수와 보수층의 유대가 얼마나 깊은지는 알 수 없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해 길모퉁이 처마 밑에 모여든 사람끼리 뭔가 도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목격한 것은 이처럼 모호한 중간, 텅 빈 중도다.

이게 바로 국민의당이 무엇을 하려는지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이유의 하나다. 그 무엇은 안철수가 정치를 시작한 이래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를 대변한다면 ‘국민을 위하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당명도 국민의당이다. 안철수의 주장, 국민의당에는 ‘국민’으로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다 들어 있다. 모든 것을 말하지만 어느 것도 말해주지 않는 불친절한 국민이라는 개념을 안철수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가 왜 대통령이 되려 하는지 모르는 게 우리의 잘못은 아니다.

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그는 대통령 되는 방법, 결선투표제를 먼저 꺼냈다. 이로써 그가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할지 여전히 모르지만 반드시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총선은 다음 정권을 야당에 맡길 수도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시민들은 야당의 승리가 무엇에 쓰이는 것인지 모르고 있다. 안철수는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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