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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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정신’, 세조에 의해 단절되고 대체되다

우리 사회에서는 항상 ‘기본’과 ‘원칙’은 무시되고 그 자리는 ‘편의주의’와 ‘이해관계’로 대체된다. 그러면서 ‘결과’와 ‘성과’ 그리고 ‘효율’만 중시된다. 그리하여 “박정희 신화”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강고하다. 국회를 얘기할 때도 우리는 언제나 “그 급한 법안이 왜 빨리 통과되지 않느냐!”라는 ‘결과’에만 집착한다.

과연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사회가 되었을까?

우리 역사를 성찰해볼 때, 조선시대 세종을 계승한 문종의 뒤를 이어 세조가 정변을 일으킨 사건은 우리 역사에서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에 이르기까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 사건이야말로 ‘기본’에 대한 무시 및 ‘원칙’의 상실 그리고 ‘빨리빨리주의’와 ‘결과만능주의’로의 대체라는 전환점의 의미에서 “세종의 흐름”이 세조에 의해 단절되고 대체되는 중요한 분수령으로 작동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세종은 정책 결정과 시행에 매우 신중했다. 한 가지 정책을 결정하는 데 20년이 걸린 적도 있었다. 이를테면 당시 농민에 대한 세금은 ‘손실답험법(損失踏驗法)’에 따라 관리가 해당 지역에 나가 그 해의 곡물 산출량을 조사해 올리면 그 기준에 따라 세금으로 거두어들일 미곡의 양을 결정하였다. 문제는 조사의 정확성과 ‘야합’이었다. 관리가 해당 지역 양반과 친분이 있을 경우 비리의 온상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토지의 비옥도와 지역별 날씨 그리고 산출량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

세종은 중국의 법제를 연구하고 조선의 현실을 고려하여 의정부와 호조 등과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공법(貢法)’을 만들고자 하였다.

세종은 이 문제에 무려 20년에 걸쳐 연구하고 논의를 하였다. 하지만 이 제도를 시행하려 하자 신하들이 시기상조라며 막고 나섰다. 이에 세종은 공법상정소(貢法詳定所)를 설치하여 제도를 계속 보완하도록 하였다. 특히 토지가 척박한 지역의 주민에게 과도한 세금이 매겨지지 않도록 보완하도록 하였다. 세종은 이와 함께 산출량이 많고 신법에 대한 여론의 호응정도가 높았던 전라도와 경상도의 한 고을 씩 두 고을에서 시범적으로 시행 해보라고 명령하였다. 2년 뒤에는 충청도까지 실시하도록 하였다. 세종은 이렇게 전라, 경상, 충청의 3도에 시행하도록 명하면서도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오늘날로 말하면 일종의 ‘주민투표’를 실시하도록 하였다.

“각 고을 수령들과 여러 사람의 뜻을 참작하고, 자기의 의견도 합하고, 각기 경내 인민의 바라는 것과 두 가지 법 가운데에 행해서 폐단 없는 것과 마땅히 행할 수 있는 조건을 다시 생각하고 의논을 더하여 밀봉해서 아뢰라.”

1430년 3월, 세종은 총 17만 2,806명의 신민(臣民)을 대상으로 공법에 대한 찬반 여부를 조사하게 하였고 그 결과 찬성은 9만 8,657명이었고 반대는 7만 4,149명으로 나왔다.

여론조사와 어전회의에서 찬성 의견이 높았지만 세종은 곧바로 신법을 실시하지 않고 보류하면서 척박한 토지에 무거운 세금이 책정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정비하였다. 그러면서 흉년이 들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계속 보완해갔다. 이와 동시에 대신들에 대한 설득 작업도 계속 추진하여 그 동안 반대해오던 황희와 맹사성 등도 공법 시행에 찬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종 26년, 세종은 풍․흉작에 따라 연분(年分) 9등으로 구분하고,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전분(田分) 6등으로 분류하는 방식을 내용으로 하는 수정된 공법을 마침내 정식으로 시행하도록 하였다.

 

박정희 신화의 역사적 기원

필자는 우리 조선 역사에서 세종-문종-단종으로 계승되지 못하고 세조가 정변을 일으켜 왕위를 계승한 이 사건을 우리 민족사의 결정적인 비극의 분수령이라고 감히 판단한다. 필자는 ‘박정희 신화’가 오늘날까지 강고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빨리빨리주의’, 적당주의, 독점, 파당주의 등등의 폐단이 세조의 정변에 의하여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었던 바로 그 사건과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흔히 문종은 문약한 무능한 군주로 묘사된다. 그러나 문종은 사실 가장 세종을 닮았던 군주였다. 세종을 닮아 토론을 좋아하고 신중한 성격이었으며, 박학다식하고 관심사가 다양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세종은 자신을 가장 닮았던 문종을 후사로 정했던 것이었다. 문종은 부친 세종의 정책을 계승하고 정리하는 관리형 국왕을 지향했다. 비록 그 임기가 너무 짧아 치적이 잘 나타나지 못했지만, 예를 들어 군사정책만 살펴보더라도 전쟁사를 모든 『동국병감』을 편찬하고 수양대군에게 진법을 새로 정리시켰으며, 화차를 개발하는 등 병기의 개량에도 힘을 쏟았다. 그는 매사에 성실하고 노력하는 자세로 임했다. 흔히 단종은 그저 비극적인 어린 왕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단종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세종과 아버지 문종으로부터 제왕교육을 받았고, 본래 학문을 좋아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제법 배짱도 있었다.

하지만 세조는 그렇지 못했다. 문종은 세종의 고민과 정책을 잘 이해했지만, 세조는 달랐다. 특히 세조는 복잡한 것을 매우 싫어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것 아니면 저것”,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이었다. 복잡한 논쟁이 발생한 배경과 근본적인 문제를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세조는 의정부의 정책결정권을 폐지하고 재상의 권한을 축소했으며 6조의 직계제를 부활시켜 독점적 왕권을 강화했다. 그러면서 철저하게 자신을 옹립한 소수의 공신집단을 중심으로 권력을 운영하였고, 그들에게 온갖 특혜를 베풀고 비리를 묵인하였다.

기본과 절차의 무시, 독점, 유착, 특혜와 비리……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과 완벽하게 오버랩된다.

 

기준원칙이 있는 사회를 위하여

사회란 다양한 개인과 집단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사회가 원활하게 그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의사소통의 체계가 정립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사회든 그 구성원들은 일정한 규범에 의하여 제정된 언어를 수용하여 강제적으로 따르게 되는데, 이 의사소통의 매개인 언어를 바로 규약의 체계, 즉 코드(code)라고 한다. 개인은 이 사회적 규약에 토대를 둔 언어에 근거하여 언어생활을 영위하게 되며, 이러한 언어의 국가 사회적 규범을 지배하는 것이 바로 ‘표준(標準)’이다.

우리 사회에서 ‘기본’과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경시되고 무시되고 있다는 점은 오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갖가지 문제를 야기시키는 근본적인 요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준(基準)’이나 ‘표준(標準)’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영어 ‘standard’는 원래 ‘군기(軍旗)’라는 뜻으로서 중세시대 전쟁에서 병사들이 전투를 벌이는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꼿꼿하게 박아놓고 병사들로 하여금 결전을 치르도록 하는 의미가 있었다. 이 군기가 쓰러지면 병사들은 더 이상 전진을 하지 못하고 패퇴해야만 했다. 따라서 ‘standard’라는 단어는 전쟁터의 용사들이 적의 어떠한 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꼿꼿이 버티는 자세에 적용되어, ‘최후의 저항, 반항, 확고한 입장’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결국 ‘기준’, 혹은 ‘표준’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standard’는 사회의 최후의 버팀목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기준’이 무너지게 되면 전체 사회가 붕괴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기준’과 ‘원칙’을 나타내는 ‘principle’의 어원은 라틴어 ‘principium’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그 의미는 ‘시작’, 또는 ‘근원’이다. 사실 ‘법’을 뜻하는 ‘law’의 어원도 ‘origin’으로서 ‘근원’이다. ‘규칙’을 말하는 ‘rule’의 어원은 “똑바로 가다”에서 비롯되었다. ‘시작’ 또는 ‘근원’이 없으면,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다. 이렇듯 ‘기준’이나 ‘원칙’은 ‘근원’ 혹은 ‘똑바로 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실로 사회의 ‘원칙’과 ‘기준’이 무너지면 그 사회는 결코 존립할 수 없게 되며, 스스로 근저로부터 붕괴되는 것이다.

지켜야 할 진정한 ‘가치’와 ‘권위’를 결여하고 무엇을 ‘보수’해야 할지도 모르는 보수, 그리고 지향해야 할 진정한 ‘가치’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진보 모두 먼저 스스로 뼈아픈 반성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일하지 않는 국회의 핵심은 국회의원들이 법안검토를 방기하는 것

이제 그만 변해야 한다. ‘기본’과 ‘원칙’으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국회 문제 해결의 핵심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본래의 그 존재 목적에 부합하는 기본과 원칙에 의거해 운용되어야 하는 것이 근본적이며 핵심적인 해결책이다.

지금 모두가 입을 모아 “일하는 국회”를 부르짖지만, 정작 “일하는 국회”의 핵심이 입법의 핵심인 ‘법안검토’를 공무원 등 다른 사람이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국회의원 본인들이 수행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명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변죽만 울리고 알맹이는 모두 빠져버린 ‘인식의 부재’이고, 소리만 요란하되 성과는 너무도 미미한 태산명동에 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며, 신발을 신고서 발바닥을 긁는 격화소양(隔靴搔癢)의 어리석은 책임 회피다.

국민들이 국회의원에게 부여한 ‘법안검토’라는 의무를 공무원이 대리하고 있는 것, 이것이야말로 국회의원 본인들이 일하지 않은 가장 명백한 증거이며, “일하지 않는 국회”의 핵심이 아닌가!

세계 의회사상 일찍이 출현한 적도 없는, 공무원들이 대신하면서 국회의원들은 방기하고 직무유기 중인 “법안 검토”를 국회의원 스스로 수행하는 일부터 복원시키는 것, 이것이 “일하는 국회”냐 “일하지 않는 국회”냐를 결정하는 유일한 판단 기준이다.

소 준섭

국회도서관 조사관, 국제관계학 박사. 저서로는 , , , , ,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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