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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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

중국인들에게 ‘공공성’과 ‘공공재화’ 혹은 commons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역자는 얼마전 칼폴라니 사회경제 연구소의 홍기빈 박사와 그의 페북에서 ‘아주 짧은 댓글 토론’을 한 적이 있다. 그는 한국의 한 건축가가 공유경제 (Sharing economy, 중국에서는 共享經濟라는 표현을 사용한다.)와 commons의 개념을 혼용하는 것에 대해서 따끔한 지적을 했는데, 그의 지적에 공감하면서도, 평소 두 개념을 전혀 다르게 알고 있던 내가 왜 바로 그 문제점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궁금해졌다. 정확한 학술적인 의미로 차이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commons가 그 유래가 된 ‘공유지의 비극’, 즉 전통적인 커뮤니티의 공공자산에서 출발한 개념이라면, 공유경제가 ‘공유’라는 당의정에도 불구하고 실은 플랫폼경제 혹은 보다 부정적으로 scrap economy라고 불리는 자본가들의 게임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고 있었는데 말이다. 즉, 스타트업들이 독창적 아이디어로 대규모 자본투자를 받아, 경쟁자를 구축하고, 빠르게 시장/플랫폼을 독점한 후, 상장을 통해, 막대한 자본 차익을 올리는 그 모델 말이다. 물론, 시장독점의 대가로써의 실제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신기루처럼 사라지기도 하는. 중국에서 공향경제의 대표 스타는 자전거 공유였는데, 결국, 처음 독점적 위치를 구축했던 두 회사중, 하나는 파산했고, 정부에서 중국 경제의 혁신 모델로 선전하던, 그래서 도저히 망하게 할 수 없던 또다른 회사는 결국, 다른 IT 재벌이 인수해서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지금은 투자자중 일부였던 종래의 IT재벌들이 직접 투자 운영하는 3개사가 시장을 분점하고 있는데, 처음 모델이 도입됐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용료가 비싸졌다. 역자는 2017년 한국의 한 수도권 도시에서 후자의 회사의 한국 진출을 검토하면서, 상하이 지사를 방문했을 때, 당 회사와의 미팅을 코디네이트 한 적이 있는데, 회의에 참석했던 상하이의 구청장이 굉장히 자랑스럽게 한국인들에게 말문을 트던 것이 인상 깊게 남아있다. “한국에선 Sharing economy라고 아는지 모르겠네요?” 

사실, 한국은 훨씬 전부터 공유경제 논의가 ‘사회적 경제’라는 담론안에서 진행됐던 터이지만, 한편으로는 글로벌 자본 형태로 국내시장에 진출하려하던, 우버 등의 서비스에 대한 시장 규제가 엄격해서, 어찌보면 중국만큼 현실화되지 못한 측면도 없지 않았기 때문에, 실소를 머금으면서도, 중국의 sharing economy의 성격을 어떻게 봐야할까 고민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은 공유자전거뿐 아니라, 중국에 진출한 우버를 집어삼킨 ‘디디’라는 중국판 우버가 이미 매우 활성화돼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찌보면, 엄연한 사기업이라도, 이렇게 국가차원의 대표선수가 되는 중국의 기업은, 정부의 노골적인 ‘간섭과 보호’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기업들을 그냥 관치경제하의 민간기업이라고만 보기는 힘들고 앞의 일화를 단순히 고위 관료의 ‘무지한 레토릭만으로 치부하기에도 힘든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이들은 단순한 자본주의 시장의 약탈기제가 아니라, 여전히 국가차원의 공유경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내가 실제 생활에서, 관찰한 중국에는 두가지의 commons가 존재한다. 하나는 전통적인 의미의 공유지, 즉 농촌마을이든, 도시의 동네이든, 토박이들이 실제로 공유개념을 가지고 있는 마을, 커뮤니티의 공유지가 있다. 또 하나는 국가, 증 공산당 정부가 지정한 공공성이 있다. 그래서, 어찌보면, 중국의 간판격 공향경제 기업들은 이와 같이 정부가 지정한 commons의 변종으로 볼 수도 있다. 중국은 당과 국가가 일체이고, 또 한편으로 국가와 사회가 미분화未分化돼서, 당=국가=사회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의미의 커뮤니티 commons를 제외하고는, 당-국가와 분리된, 순수 민간 영역의 사회적 공유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후진타오 시절 언론의 자유가 부분적으로 보장되는 가운데, 국가와 사회의 분화 논의가 있었지만, 시진핑의 집권이후, 모두 수면하로 가라앉은 상태이다. 여하튼, 이 논문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공산주의 권위주의 정권이 지역 말단까지 유기적으로 자원을 통제하던 시절, 즉 인민공사 시기에는, 나름의 거버넌스가 자리잡고, 지역의 집체가 전통적인 씨족을 대리해서 공유지를 관리했기 때문에, 관리의 주체가 바뀌었을뿐, 실은 전통적인 commons가 어느 정도 유지됐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개혁개방이 본격화되고, 실적 경쟁을 벌이는 지방정부의 기업화가 추진된 이후, 그리고 마을 단위, 즉 집체의 권한이 줄어들면서, 관리의 공백이 발생하고, commons의 사유화와 수익의 농단 문제가 심각한 현안으로 등장한 시절이 있었다 (쟈장커賈樟柯 감독의 영화에 자주 묘사된다. 예) 천주정天注定 , 2013)후진타오를 거친, 시진핑 정권하에서 기층민중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이 실행되는 가운데, 한때, 수탈의 기제로도 변질됐던 기층권력이 다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말단 공무원 조직으로 변모하고 있다. 문제는, commons에 대한 관리의 공백을 메우는 방식이, 다시 지역의 풀뿌리 거버넌스에 소유권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모든 것을 소유하고, 또 관리하는 모델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공동체와 개별 농민들의 민주적 자발성을 저하시키고, 결과적으로 매우 고비용의 제도를 구축하는 결과를 낳는데, 경제가 고속 성장하는 기간, 특히 국가 부채를 통해, 생산 과잉을 해결하기 위해서 일정기간 내부 투자를 하는 모델로는 유효성이 있으나, 경제가 어느 정도 성숙한 후에, 지속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당연히 중국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고, 이미 복지 사회를 구축한 서구에서도 성장이 멈춘 후, 환경부담 등이 가중되면서, 경제가 수축하는 상황에서 복지수준의 퇴행이 가져오는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다는 점에서, 이들 국가와 비교할 수 없이, 거대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중국은 미리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현재, 중국 사회에 민간의 풀뿌리 commons에 대한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실 경제 발전의 여러가지 불균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역자가 관찰한 대표적인 사례는 도심부에 있는, 일급도시의 집단주택, 즉 아파트 단지내의 모습이다. 처음부터 중산층 이상을 겨냥해서 디벨로퍼가 주도해 만든,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한 상품방의 경우, 단지가 매우 깨끗하고, 호화롭다. 그중에서도 고급 아파트 단지나 타운하우스 촌은 출입 자체가 엄격히 통제되는 gated community의 성격을 갖는다. 또, 처음부터 物業라는 불리는 관리회사가 매달 관리비를 받고 일정하게 관리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지나도, 사설의 노화가 비교적 천천히 진행된다. 반면, 상품방이 도입되기 이전 지어진, 국가, 즉 국영기업이나 준국영기업, 소위 ‘단위’가 만들어서 직원들에게 배정했던 예전의 아파트단지는, 지금은 모두 상품방으로 바뀌어서 자유로운 매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일급 도시의 경우, 매우 높은 가격에 거래가 된다. 또, 개별 소유 주택 내부는 리노베이션을 통해서 상당히 잘 꾸며져있다. 하지만, 대문밖을 나서면, 공유공간, 즉 복도와 계단, 단지내의 청결도가 매우 떨어져고,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마치 슬럼가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시설의 노화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物業의 관리도 매우 기본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새로운 입주자들이 community를 형성해서 commons에 대한 공동 관리 비용을 부담하는 것에 대한 합의를 이루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또 다른 이유는, 아파트 개발이 매우 활발했던 몇년전까지, 특히, 노화된 주택단지의 부지가 디벨로퍼에게 인수/철거되고, 원주민들은 보상을 받고, 외곽으로 이동하면서, 새롭게 지어진 호화로운 아파트 단지에 이주하고, 원부지에는 새로운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유형의 개발이 반복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도시 지역은 이와 같이 풀뿌리 커뮤니티가 해체되는 가운데, 새로운 커뮤니티가 형성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도시의 커뮤니티로 새롭게 진입하는 이주민들의 경우도, ‘공공성’에 대한 감수성이 훈련된, 극히 일부의 지식인/시민들을 제외하고는, 개방성을 특징으로 하는, 도시문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연고주의/ 가족주의를 뛰어넘어서, 원주민들과 화합하면서, 새로운 커뮤니티 문화를 형성하지 못하는 모습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최근, 일급 도시를 중심으로,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 모델은,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제3자 위탁 형태인데 (중국에서는 정부구매라고 불린다), 지역 커뮤니티 센터, 환경이나 복지 관련 NPO, 대학 등에 부설된 연구소나 사업체 등이 사업주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2015~16년 경부터 상하이나 베이징에서 추진된 도시 정원/ 텃밭 프로젝트가 가장 앞선 사례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대만이나 일본 사례를 많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형편인데, 아직은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보다는, 사업자들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지만, 한편으로는 환경단체나 신향촌건설운동의 참여자들이 관여하고 있으므로, 한국의 시민운동 단체들이 자연스럽게 이런 역할을 떠맡으며 성장해왔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도 보인다. 그럼 여기서 다시, 이러한 소수 엘리트들뿐 아니라 실제 마을 주민들의 commons에 대한 주인의식과 관리에 대한 자발성을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정부가 무한정 자원을 투하하는데는 경제성장의 둔화에 따른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논문은 중국 학자들의 많은 글과 마찬가지로 미괄식인 경우에 해당한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많은 언급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전제가 되는 논리들을 상당히 반복적으로 지루할 정도로 이야기 하다가, 결론 부분에 한두줄 ‘중요한 이야기’를 언급한다. 투표와 선거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을 단위에서 투표를 통해, 마을 간부/지도자를 민주적으로 선출하고 (마을단위이든, 아니면, 마을 공산당 지부의 단위이든), 이후의 의사결과정과 관리도 민주적인 프로세스를 거쳐 실행해야 한다. 아직은 이런 이벤트가 ‘형식적인 요식행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를 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문화와 정치, 경제 모두 관련된 사안이다.


허쉐펑 교수

 

개요

중국 역사상 마을단위에서의 거버넌스는 국가가 농촌으로부터 자원을 징세하거나 농민의 기본생산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요를 만족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해왔다. 마을 간부의 주요한 기능도 국가의 대리인과 농민이라는 두가지 역할을 겸하는 것이었다 (역자주: 한국 농촌 마을의 이장과 유사한 점이 있다).  국가자원이 농촌마을에 투하되는 현재의 상황하에서 중국의 기층사회에 보편적으로 마을거버넌스 행정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마을 거버넌스의 과도한 행정화는 필연적으로 마을내 공공성의 소실로 이어지는데, 이에 따라서 투하된 자원의 사용 효율이 낮아지거나 아예 무익한 낭비로 귀결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농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동원을 유도하지 못하고, 농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을 강조하다보면, 바꿔 말해서, 농민들을 조직화하지 못하고, 농민들을 일방적으로 지원하기만 하면, 결과적으로 마을단위 거버넌스 조성에 실패할 수 밖에 없다.

키워드: 마을단위의 거버넌스, 농촌세수개혁, 농촌공공서비스, 마을의 공공성

 

농업세를 취소한 (역자주: 농업세는 농업생산에 대해서 부과하는 세금으로, 전통적으로도 수천년간 존재해왔고, 신중국 건립후에도 수십년간 존속해왔다. 식량과 같이 현물로 생산량의 일부를 세율에 맞게 국가에 납부하는데, 개혁개방이후, 공업 등 여타 산업의 비중이 높아져, 농업세의 국가 재정기여도가 낮아지고, 한편 그 관리비용이 증가하며, 농민과 도시민 사이의 경제적 형평성 문제가 커지자, 2006년 전면적으로 폐지되었다.) 후에 국가는 농촌에 갈수록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농촌공공사업건설은 과거 민간위주였지만 지금은 민간과 정부가 협력하는 것으로 변했고, 지금은 거의 전부 국가가 책임을 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마을의 거버넌스를 통해, 국가는 농촌에서 자원을 거둬들였고, 한편으로 농민의 기본생산질서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수요를 만족시켜왔다. 마을간부의 주요한 기능은 국가대리인과 농민으로서의 역할을 겸했다. 국가는 더 이상 농촌에서 자원을 수취하지 않고, 역으로 대량으로 농촌에 투입하고 있다. 농촌공공사업건설자원의 대부분을 국가가 떠맡게 되면서, 자원뿐 아니라 국가의 권력도 농촌기층수준에까지 미치고 있다. 국가의 표준과 규범이 농촌에 내려오는 것이고, 이것은 국가가 농촌 마을단위까지 감독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마을의 거버넌스를 구축하면서, 과거 마을 거버넌스에서의 ‘자치’부분이 국가 행정체계의 말단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마을 간부가 일종의 직업이 되면서, 과거처럼 마을간부의 주요한 업무가 농민들을 조직화하고 동원하여 마을 사업을 자체적으로 꾸려나가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국가자원을 동원해서 마을 인프라를 건설하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코디네이터’ 역할로 변질되고 있다. 마을 단위의 거버넌스 행정화는 필히 마을의 공공성을 축소시킬 염려가 있다. 국가는 불가피하게 모든 농가를 직접 상대해야 한다. 중국 농촌의 방대함을 생각한다면, 모든 농촌 마을의 공공사업건설수요는 각기 다르기 때문에, 국가가 효율적으로 모든 지역과 모든 농가의 다양한 공공재화와 서비스 수요를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마을 거버넌스의 진화는 매우 중요한 토론 과제이다.

 

1. 농촌기층자치의 역사

행정촌行政村(역자주: 중국은 역사적으로 존재해온 자연촌自然村과 구분하여 행정단위로서의 마을을 행정촌이라 칭한다. 보통 복수의 자연촌을 묶어 하나의 행정촌으로 삼는다.)은 매우 흥미있는 존재다. 현재 중국 농촌의 최하부 구조는 행정촌인데 전국에 대략 60만개가 넘는 행정촌이 있다. 행정촌이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국가의 행정력이 농촌의 수천만 가구에 미치게 된다. 동시에 중국은 농촌에서 마을주민 자치를 실행한다. 마을주민의 자치단위는 행정촌 일급인데, 마을 주민들은 선거를 통해서 마을주민위원회를 구성하고 농민대중의 자주교육, 자주관리, 자주 서비스를 통해, 민주적 의사결정과 그 관리를 실현한다. 행정촌은 그러므로 마을위원회라 불리고, 행정촌 상위 기구는 향진鄉鎮의 기층정부가 된다. 기층정부와 마을위원회의 관계는 지도와 피지도 관계이고, 이렇게 이 관계를 장호우안張厚安 교수는 개괄적으로 ‘향정마을거버넌스鄉政村治’ 【1】라고 칭하는데 이 구조하에서 마을 간부는 향진정부의 행정촌내 행정 대리인이자 농민 당사자의 이중 역할을 맡게 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 농촌기층은 늘 자치권력을 누리고 있었다. 국가는 기층의 거버넌스 업무에 개입할 능력이 부족했고, 마을의 공공재화는 절대다수가 마을내부에서 자체 충당되었고, 재난과 질병으로부터 상부상조하는 ‘수왕상조, 질병상부守望相助,疾病相扶’의 전통을 지켜왔다. 이러한 기층자치안에서 향신계급의 권력과 씨족사회의 권력은 모두 중요하다. 인민공사시기에는 모든 생산자원이 인민공사-생산대대-생산대의 구조안에 귀속되었으며 ‘삼급소유, 대위기초 三級所有,隊為基礎’, 따라서 생산대生產隊는 기본생산단위이고 기본이익분배단위이며 동시에 공공복리분배의 단위였다. 농민은 공동으로 노동에 참여하고, 공동으로 생산을 위한 공공사무를 처리했으며, 심지어 교육, 의료문제도 ‘마을교사民辦教師’라든가 ‘마을의사赤腳醫生’ (역자 주:정부에 공무원으로 직접 소속된 교사나 의사가 아니라, 최소한의 정부의 지원과 규정안에서,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공급하는 제도, 주로 농촌에서 이루어짐)가 있었다. 생산대대와 생산대 간부의 급여도 농촌집체의 수입에서 일부를 취하도록 했다. 집체제도를 통해서, 인민공사는 농민을 조직하고, 농업생산조건을 극대화하고 (전형적인 사례로는 농지정리 및 수리개선) 내부의 생산역량을 통해서 농촌교육과 의료수준을 대폭 높였다.

인민공사가 해체되고, 모든 농가에 개별적으로 토지를 분배한 후, 마을 집체는 더 이상 농업생산을 함께 하지 않게 됐다. 농가 가정은 다시 둑립적인 생산경영단위가 됐지만, 마을집체와 농가간에는 여전히 일종의 농가별 (세금, 준조세 등을 납부하는 상황을 기록하는)‘계좌’가 유지됐는데, 집체로부터 토지를 분배 받은 농가는 반드시 “우선 국가에 납세하고, 집체에도 수확량을 교부하고, 나머지만을 개별 가정이 온전히 취할 수 있었다.” 마을 집체는 농가에서 수취한 자금을 이용해서, 각 농가가 처리할 수 없는 공통생산업무를 수행했다. 동시에, 국가는 농가로부터 수취한 세금을 이용하여 기타 국가의 임무를 수행했다. 세금은 마을단위로 부과되었고, 마을집체에서 다시 개별 농가로 나눠 수령하였다. 마을집체와 행정촌은 일급 자치단위였다.

마을단위에 여전히 자치기능이 살아 있을 때, 이러한 기능은 반드시 이익을 재분배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이러한 이익분배능력은 집체가 토지를 소유하기 때문에 생긴다. 국가가 농민에게 세금을 부과하든지, 아니면 마을집체가 지불하든지, 가장편리한 방법은 비용을 각 농가가 맡은 토지로 나누는 것이다. 문제는 1980~90년대에 국가는 농민에게 조금 과도하게 세금을 부과했는데, 현과 향진급 정부는 농촌에서 자원을 거둬들이면서, 제때 자원을 모을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뒀지, 누가 거둬들일 것인지는 신경쓰지 않았다. 농민의 부담이 무거워서 수납에 어려움이 있을 때는, 악역을 맡은 ‘해결사’들이 나서서 거둬들이고, 현과 향진 정부는 마을간부와 이들이 공모하게 했다. 농업세를 취소하기 전에, 중국 농촌 마을에 보편적으로 향촌이익공동체가 결성됐고, 기층간부가 “가렴주구하는 관료”가 되기 【2】 시작했다. 향촌이익공동체는 농민에게 부담을 가중시켰고, 농민들이 땅을 버리고 마을을 떠나 도시로 가서 일자리를 찾거나 장사를 하게 되는 원인이 됐다.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비록 그렇다해도, 만일 농민이 토지를 받으면 반드시 조세부담이 생기고, 마을에서 생산에 참여하는 농민은 반드시 마을의 공동생산비 등 공공성 지출에 함께 참여해야 했다. 마을은 여전히 공공성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것이 자치의 능력이었다.

농민의 부담이 지나치면 문제가 됐기 때문에, 국가재정은 갈수록 농업세에 의존하지 않게 됐고, 21세기에 들어오고 나서 국가는 농업세와 각종 농민에 대한 준조세를 취소하게 됐다. 그리고 국가는 갈수록 농민들에게 영구불변에 가까운 명확한 토지사용권을 보장해줬고, 마을집체가 농민에게 부과하는 준조세도 폐지했다. 그래서 마을 공동생산에 있어 모든 사안에 있어, 마을 회의에서 토론해서 결정하는 방식 “일사일의一事一議’로 걷는 준조세를 엄격히 한정했고, 전국의 대다수 농촌은 농민에 대한 상기 준조세 수취가 거의 불가능해졌다. 【3】다시 말하면 농업세를 취소한 후에, 농민은 국가에 세금만 납부하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집체에 대한 의무도 사라졌다. 마을집체는 유명무실해지고, 각 농가와의 ‘계좌’ 유지도 불가능해졌다.

이럴 때, 행정촌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가.

 

2. 농업세 취소 이후의 마을 거버넌스 

농업세의 취소와 각종 준조세 폐지 이후, 국가는 토지임대와 관련한 준조세 수취도 금지했다 (삼제오통三提五統 – 역자주, 마을단위에서 공제하는 세가지 항목, 향진단위에서 공제하는 다섯가지 항목의 준조세 ), 심지어 ‘일사일의’경비도 일년에 인당 15위안으로 상한선을 정했다. 행정력을 사용한 강제수취도 금지했고, 이에 따라 전국 대다수 지역의 농촌에서 ‘일사일의’모금이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마을집체와 마을주민들과의 권리의무관계도 소실됐다. 따라서 더이상의 마을-농민간의 계좌도 유지되지 않는다. 인민공사시기에 만들어진 기층자치의 가장 중요한 경제기초가 사라졌다.

농업세를 취소하고, 국가는 농민에게 다시는 자원을 요구하지 않는다. 또 마을 간부가 세비를 징수할 의무도 사라졌다. 마을간부는 당연히 이런 세금징수업무를 통해, 다른 준조세를 수취할 수도 없어졌다. 마을간부가 할 일이 없어졌다. 국가와 농촌의 관계도 매우 느슨해졌다. 결과적으로 기층정부의 권력은 농촌마을위에 ‘붕뜨게’됐다.

‘일사일의’모금과 공동체를 위한 자발적 집단노동의 문제는 가장 전형적으로 마을 집체의 곤경을 반영한다.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마을대표회의결정을 통해 ‘일사일의’모금을 결정하더라도, 마을 주민들이 돈을 내고 싶어하지 않으면, 마을 간부가 강제집행할 수 없다. 그래서 더 많은 마을주민들이 원하지 않게 된다. 결과적으로 ‘일사일의’의 진행은 불가능해졌다.

농업세취소이후 상당 기간, 마을집체는 마을주민들을 조직해서 각 농가가 독자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공동생산업무를 함께 처리할 수 없게 됐고, 국가도 마을간부에게 특수한 강제성 임무를 수행하도록 요구할 수 없게 됐다. 마을간부의 급여는 매우 낮았다. 따라서, 대개는 마을에서 자기 일이 있고, 나이도 좀 있는, 사람 좋은 이들이 맡게 된다. 자기 집안의 할 일이 있으므로, 대부분의 시간은 그 일에 사용하게 되고, 마을 일은 겹업으로 한다. 이런 마을 간부야 말로 진짜 겸직 간부가 되고, 약간의 수당을 받는 것인데, 마을 간부가 할 일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니, 많은 수당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누가 마을 간부가 되어도 좋고, 마을에서 간부를 선출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이렇게 보면, 농업세를 취소한 후 상당 기간, 마을거버넌스는 실제로는 사라져버린 셈이다. 마을안에 이때문에 여러가지 문제가 생겼다. 전형적인 문제는 농지의 인프라건설이 장기적으로 소홀해지는 것이다. 농지의 수리체계가 와해됐고, 농민들이 아예 농사를 지을 수 없거나, 농사짓는 사람들이 없어지는 상황이,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같은 식으로 보편화됐다【4】.

 

3. 국가자원의 농촌투하 

농업세를 취소하고나서 국가와 농민의 관계가 약화 됐다. 마을 공공사무에 대해서 아무도 나서지 않으니, 처리를 할 방법이 없고, 자원도 없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국가는 농촌에 재원을 투입했다. 직접 국가가 농민을 위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했고, 농민의 생산생활에 편의를 가져왔다.

구체적으로 두가지 지점이 있다: 첫째, 국가가 매년 농촌에 투입하는 재정을 늘려왔다. 둘째, 국가가 갈수록 서비스제공형 기층조직건설을 강조했다. 가장 전형적인 것이 마을에 당커뮤니티 서비스 센터 黨群服務中心를 만든 것이다. 이것은 두가지 측면에서, 철저히 당초 국가와 농민의 관계를 변화시켰다. 행정촌의 모델이 바뀌어 갔다.

농업세를 폐지한 이래, 국가는 농우대혜택 자금을 늘려왔다. 현재 매년 총액기준으로 2조위안에 달하는 거액이다. 이러한 자금이 마을에 떨어졌다. 두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조조전정條條專政’, 국가의 각 부처로부터 위에서 아래로, 사안별 프로젝트 자금이 내려온다. 인프라건설프로젝트라고 하자, 이를테면 자연자원부는 국토정리프로젝트를, 재정부는 소규모 농촌수리 프로젝트, 교통부는 향촌도로건설 프로젝트 등. 이런 자금은 위쪽에서 자원을 장악하고 아래쪽에서 (성,시,현,향촌) 자금 신청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우는 놈 떡하나 더주는 격”이다. 또 다른 유형은 직접 마을이나 농가에 지원되는 자금이다. 이런 자금 액수는 일반적으로 소액이다. 하지만, 효과가 더 크다. 이를테면 마을에 부여되는 사무경비, 행정촌별로 몇만위안에 불과하지만, 행정촌의 실제 운영에는 매우 중요한 자금이다. 예를 들어, 청뚜成都시는 매년 모든 행정촌마다 30-50만위안의 공공서비스 자금을 내려 보낸다. 행정촌에서, 민주적 결정과 민주적 관리를 통해 사용한다. 농가에 직접 지불되는 자금은 이를테면 ‘은행통장’에 들어간다. 직접 농민들에게 농업종합지원금, 농촌기본노령연금을 지불한다. 이 두가지 자금유형이외에도, 중간쯤 되는 성격의 자금이 있다. 이를테면, 노화주택개조, 저소득층 생활보장, 빈곤구제 등의 자금이다. 비록 각 부처가 책임을 지지만, 마을에서 그 수요를 결정한다. 그래서 마을이 그나마 주도할 수 있는 주요한 자금들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중국의 모든 마을은 대규모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농우대혜택 자금의 수혜를 누리고 있다. 대량의 농우대혜택자금이 살포되면 필연적으로 두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첫째, 프로젝트의 실효성, 즉 실행시의 이익이 어떻게 분배되는가, 토지점유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 결정하는가를 포함한다. 둘째,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때 어떻게 사용하는가, 어떻게 자금 사용의 안전성을 보장하는가? 이 두가지 측면의 보장을 위해, 공통적으로 마을간부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그 작동 메커니즘은 다르다.

국가는 자금이 마을에서 사용될 때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자금 사용의 프로세스와 규범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테면 마을단위에서 광범위하게 이야기되는 ‘사의양공개四議兩公開’(역자주 – 마을에서 주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마을 당지부와 마을의 네개의 회의체를 통한 결정이 필요하고, 결의내용과 결의사항실천 후 결과에 대한 공개가 필요하다는 내용) 등 복잡한 제도가 있다. 반드시, 자금 사용의 효율과 진행에 대한 평가가 따라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자원이 마을에 더 많이 할당될수록, 국가의 마을에 대한 감독 관리는 전면적이어야 하고, 엄격해야 한다. 국가자원이 농촌으로 들어오는 과정은 동시에 국가권력이 마을로 들어 오는 것을 의미한다. 더 많은 국가자원이 마을로 들어옴에 따라서, 마을 간부의 주요한 업무와 이에 사용되는 에너지가 국가자원의 마을 투입에 사용이 되고, 마을 간부의 업무 규범은 상부기관의 결정에 의지하게 된다. 과거에 마을단위에서 거버넌스의 주요 업무는 국가에서 농촌 마을에 요구하는 임무를 실천하는 것이었다. 상위 기관에서는 마을간부가 어떻게 임무를 완수할 것인가 그 과정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상급행정기관의 마을 간부에 대한 평가는 임무의 실제 결과에 따랐다. 현재, 국가 자원이 마을로 내려오는 배경하에서, 마을간부의 주요한 업무는 상급 부서에 협조하여, 마을에서의 프로젝트 실행에 협력하고, 자원이 안전하고 정확하게 집행되는 것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간부에 대한 평가기준이 얼마나 프로세스와 규범을 잘 따르고, 마을주민들의 만족도가 어느 정도인지(최소한 중앙이나 상급지방정부에 소원수리를 하지 않는 수준)로 판단하게 됐다.

이것은 또, 국가자원이 마을로 내려옴에 따라서, 국가권력이 갈수록 마을 거버넌스의 매 단계, 구체적 과정에 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을간부들의 자주적 결정권은 점점 줄어들고, 거버넌스를 실행하는 실질 권력도 축소된다. 더 많은 상급기관의 규범과 프로세스에 따라, 형식적인 거버넌스를 진행한다.

21세기에 진입하고 이미 20여년이 지난 지금, 특히, 최근 몇년사이에 국가는 갈수록 서비스를 위한 기층관리를 강조한다. 서비스형 기층조직의 건설을 강조하고, 이와 관련한 전국의 농촌기층에 보편적으로 당커뮤니티 서비스센터를 만든다. 마을 주민들에게 신속하고 편리한 ‘현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당커뮤니티 서비스센터는 농민들의 행정처리를 돕고, 각종 공공서비스를 대리함으로써, 농민들이 마을을 벗어나지 않고도, 대부분의 행정서비스를 처리하게 하고, ‘인민대중 제일주의群眾路線’ 안에서 ‘모든 것은 인민을 위해서‘라는 공산당의 최종목적을 실현하게 한다. 이에 걸맞게, 전국 농촌의 기층에 보편적으로 마을위원회를 당커뮤니티서비스센터로 개조하고, 당커뮤니티서비스 홀을 설치할 뿐 아니라, 마을간부가 교대로 홀에 상시대기하여, 마을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게 한다. 이에 상응하는 서비스 규모를 위해, 반드시 표준에 맞는 센터를 건립하고, 많은 성시省市단위에서 표준에 맞는 마을 부서를 건설하도록 요구한다. 예를들면, 후베이湖北성은 마을센터의 면적이 600평방미터 이상이 되도록 규정했고, 특히 당커뮤니티 홀의 설치를 필수요건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기준에 맞는 서비스센터를 만들기 위해서, 후베이성의 수많은 현/시 정부는 행정촌을 통합했고, 예를들면 후베이성 졘리현監利縣에 600여개 있던 행정촌을 300여개로 통합했다. 그렇게 행정촌의 평균인구는 5천여명이 됐고, 샨둥山東 옌타이煙台시는 시범구를 만들어서 농민에게 더 편리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기층거버넌스가 관리에서 서비스로 전환된 것은, 과거 국가 임무를 완수하던 것에서 일상적인 서비스로 변화한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마을간부는 임무를 완성하기만 하면 스스로 자기 집안의 생산을 할 수 있었다. 마을단위의 일은 대개 특정 계절에 한정되고, 중요한 일은 특정한 시간대에만 처리하면 되기 때문에, 마을간부의 일은 겸직이 가능했다. 지금은 관리를 서비스로 바꾸고, 서비스가 일상적인 업무가 되고, 특히, 당커뮤니티서비스홀을 만들어서, 농촌기층업무가 사무실작업이 됐다. 일단 사무실 업무가 되면, 시간에 맞춰 출퇴근이 이루어져야 하고, 마을 간부가 겸직이 아닌, 풀타임 정규직이 돼야 한다.

마을간부의 정규직화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자원의 이전이 만든 마을단위 거버넌스의 규범화와 형식주의가 현재 농촌기층에 보편적으로 확산됐다. 마을간부는 이제 월급쟁이가 됐기 때문에, 기본임금뿐 아니라, 윗선의 평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성과급도 가지게 됐다. 심지어, 마을간부도 국가간부가 누리는 주택공적금住房公積金 (역자주: 일종의 사회보험성격의 기금으로 직원급여 공제와 고용업체의 적립으로 주택 구매, 수리 및 임대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을 직원 개인별로 마련한다)의 수혜도 입을 수 있게 됐다.  이를테면, 쟝수江蘇성 단양丹陽시는 적극적으로 마을 간부의 수입구조를 조정하여, 각종 사회보험과 복지를 누리게 하는 동시에, 2008년 1월부로 모든 마을의 마을위원회와 당지부위원회의 간부들이 주택공적금 혜택을 누리도록 확대시행하게 됐다.  후베이의 은실恩施은 2018년부터, 져장浙江성의 쟈산嘉善현도 이 제도를 실행하게 됐다.

 

4. 마을간부 직업화의 결과 

마을간부의 정규직화와 직업화의 필연적인 전제는 집안의 농사 등 원래 생업과의 겸업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마을 간부는 그래서 예전에 받던 약간의 보상성격의 수당에 비해서 훨씬 많은 ‘급여’를 받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마을 간부 역할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후베이성의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보자. 규정상 급여수준이 마을 당서기 (마을위원회 주임과 보통 겸직함)와 향진의 부간부와 동등하다. 대개 매년 마을 서기가 일년에 3만5천위안 정도를 받게 되는데, 과거 매년 만위안 조금 넘는 수당을 받던 것에 비해 몇배 증가한 금액이다. 하지만, 재정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후베이성은 마을서기의 급여만 인상하고, 다른 간부들의 보수는 올려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예전에는 마을 간부들의 급여차이가 거의 없었고, 마을 일은 마을서기가 리더쉽이 돼, 다른 간부들과 함께 했는데, 지금은 격차가 크다보니, 마을 서기 혼자 도맡아서 일을 처리하고, 다른 이들은 방관자가 됐다. 그래서, 각지에서 두가지 방법을 취하는데, 첫째, 마을을 합병해서, 한명이 두 마을의 간부 역할을 겸직하게 함으로써, 전체 일자리 수를 줄이는 것, 둘째, 점차로 모든 마을 간부의 급여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일단 마을간부가 급여를 받는 정규직이 되고부터, 마을 간부는 정말로 탑다운 행정체계의 구성원이 됐고, 국가권력의 기층대리인이 됐으며, 국가는 마을간부를 통해서, 모든 농가의 농민을 직접 일대일로 상대하게 됐다. 국가에서 급여를 지급하므로, 업무현황이나 평가도 반드시 진행해야 한다. 여기에 따라서 상벌이 따르게 된다. 마을주민들에 대한 서비스 만족도도 이러한 평가의 범위에 들게 된다. 마을간부는 따라서, 어떠한 임무도 반드시 완성시켜야 한다. 역으로 평가대상이 되지 않는 업무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거버넌스안에서, 마을간부는 상부의 지휘에 절대복종하게 되고, 상부의 지시와 실제 농민의 서비스 수요에 큰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실제적인 마을주민들의 필요를 보지 않고, 형식주의적으로 상부의 지시에만 응하게 된다.

마을간부가 국가체계 구성원의 일부가 되면서부터, 과거 국가는 농민의 대리인, 농민은 자신의 가정을 대변하는 각자의 역할분담이 무너졌다. 이는 국가가 예전처럼 기층사회 공동체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간부를 통해서 개별 농가와 개별 농민을 상대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농민들은 무슨 일이든지, 예전 같았으면 기층 공동체내에서 해결하려던 일들까지, 마을 간부를 통해, 국가를 상대로 직접 해결을 요구하게 되고, 마을이라는 국가과 개별 농민간의 완충지대가 사라지게 됐다.

 

5. 마을공공성의 문제

마을간부의 주요한 업무가 상급정부가 부여한 일을 코디네이트하는 일인데, 이것이 ‘모든 것이 인민대중을 위하는’것으로 변모하면서, 마을 주민을 동원하거나, 그들의 노동력과 자원에 의존할 수 없게 되고,  마을의 공공성도 사라지게 됐다. 마을간부는 농민을 조직화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됐다. 또, 농민들의 공동 이익도 대변할 수 없게 됐다. 공공의 집체와 마을간부가 마을여론에 영향을 끼치는 영향력도 상실하게 되고, 마을의 공공성 자체가 사라졌다.

공공성이 사라지면, 공동이익에 근거하여 만들어지는 강력한 여론도 사라지고,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앞장서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연대정신이 상실되고, 마을주민회의가 주도적으로 공동체의 이익을 보호할 수 없게 된다. 옳지만, 싫은 소리를 하고, 악역을 맡을 사람이 사라진다. 당연히 농가별 계좌가 사라졌기 때문에, 권리와 의무 관계도 만들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고, 공공 프로젝트건설이나 서비스도 제공도 모두 부담해야 한다. 공공건설을 할 때도, 개발지역에 위치한 집/토지 등의 사용권을 징발徵收 할 때, 상대적으로 고가의 보상이 필요하다. 마을 공동체의 일이라면 사익을 추구할 수 없던 농민들이, 정부나 기업 주도 프로젝트에는 고액의 배상을 추구하는 경향이 생겨나고, 이웃들도 상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그런 사례가 생기면, 다른 마을주민들도 같은 요구를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국가가 농민에게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할 수록, 농민의 요구수준이 더 높아지고, 전체 비용도 증가하게 된다.

당커뮤니티 서비스 센터가 농민에게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공공서비스 대리업무도 하게 됐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역시 농민들의 기대수준이 높아지면서, 서비스가 많아질수록 농민들이 국가에 더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마을은 개인의 이익이 가장 민감하게 나타나는 곳인데 (특히, 모종의 재난이나 부조리한 사건때문에 곤경에 처한 이들), 이러한 마을이 정부에 의존하는 집단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가는 마을간부를 통해서 농촌사회의 약자편에 서야 하는데, 보상문제이든, 불만을 가진 약자들이든, 장기적으로 국가와 약자 그룹사이에 지나친 긴장감이 고조되면, 농촌 마을 업무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리게 된다.

공공성을 가진 마을입장에서, 혹은 마을공동체 입장에서, 마을은 공동이익을 가지고 있으며, 마을공동체 이익을 보호하는 것은, 개별 마을주민들에게 이익이 되고, 마을안에 공동체의 역량을 유지하게 되고, 이러한 역량은 공동체 그룹(적극적인 주도 및 참가세력)를 유지하게 만든다. 또 공동체의 규범 (전통과 습속과도 연관이 있는)을 보호하게 한다. 또 공동체 제도를 (예를들어, 신중국수립 이전의 마을씨족 자산, 인민공사시기의 집체경제와 같은) 유지하고, 강제적으로 공공재화의 원가에 대한 규범도 정하게 한다. 이는 개인의 구조적 역량보다 훨씬 큰 힘을 갖는다. 마을 공동체는 각각의 농가가 하기 어려운 공동사업을 수행할 뿐 아니라, 공공질서를 저비용으로 구축한다. 마을의 공공성이 사라지면, 마을은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마을의 모든 일이 직접 국가를 상대하게 되고, 작은 일도 마을을 벗어나야 하고, 조금 규모가 커지면, 현이나 향을 벗어나야 한다. 국가가 필수적으로 농촌의 매 가정을 상대하게 된다.

현재 중국의 서로 다른 지역의 농촌 차이가 극대화하는 상황에서, 국가는 농민에게 도시와 동등한 수준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일단 기본공공서비스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렇다고 모두 동일해서도 안된다. 지역별 차이를 반영해야 하고, 지방의 자주적 결정권도 인정해야 한다. 당연히 표준화가 불가능하고, 지역의 실천은 반드시 실제 현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지역이 주체성을 상실하면, 농가가 정부에 의존하게 될 때, 그 실천의 결과가 필연적으로, 중앙 정부의 노력여하에 상관없이, 지역에서는 형식주의에 빠지게 된다. 사고만 터지지 않기를 바라게 되고, 결과적으로 일은 처리되지 않게 된다. 국가는 천차만별인 각지의 상황에 맞는 표준화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한손바닥으로 보쌈말아버리듯 하는 상황이라면 모든 농가를 만족시키는 것은 자연히 ‘미션 임파서블’이 된다.

 

6. 결론

만일 기층거버넌스안에서, 모든 마을사람들이 잠재적인 보상요구가구 된다면 모두 국가 정책에 의존하게 되고 스스로 조직화된 자발적 행동에 의한 삶의 질 향상은 불가능해진다. 이런 기층의 거버넌스는 반드시 실패한다. 마을 사람들이 주체성을 발휘해야 하고, 그들이 참여하는 집체사업에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필수적으로 마을 집체가 하나의 집체가 돼야 하고, 마을이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마을 간부의 주요한 임무느 기계적으로 마을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상급 정부가 부여한 임무를 형식적으로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을 조직화해서 자발적인 동원을 이끌어 내고, 마을의 공동 협력을 통해, 스스로 삶의 질을 개선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기층 거버넌스의 관건은 농민을 조직화하는 것이다. 농민을 조직화하기 위한 전제는 마을집체가 하나의 이익공동체가 되는 것이며, 농민이 선거를 통해 농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마을간부를 선출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의 설계를 통해서, 농민이 마을 간부를 직접 선출하기 위한 공간과 제도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참고문헌

[1]张厚安.乡政村治——中国特色的农村政治模式[J].政策,1996(8):26-28.

[2]贺雪峰.试论20世纪中国乡村治理的逻辑[J].中国乡村研究,2007(00):157-173.

[3]田孟.发挥民主的民生绩效——村级公共品供给的制度选择[J].中国农村经济,2019(7):109-124.

[4]王海娟.农地细碎化的公共治理之道:沙洋县按户连片耕种模式调查[M].武汉:华中科技大学出版社,2017

 

이 논문은 <<화중농업대학학보(사회과학판)>>2019년 제6기에 개제된 것임. 

허쉐펑

후베이湖北 징먼荊門 출신, 우한대학교 중국향촌치리治理연구센터 주임. 삼농문제 전문가, 국내에 농민공에 대한 연구서 ‘탈향과 귀향사이에서在脫鄕與歸鄕之間‘ (돌베개, 2017)가 번역출간돼 있음.

김유익

和&同 青春草堂대표. 부지런히 쏘다니며 주로 다른 언어, 문화,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을 짝지어주는 중매쟁이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 아저씨. 중국 광저우의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오래된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함께 공부, 노동, 놀이를 통해서 어울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한다. 여생의 모토는 “시시한일을 즐겁게 오래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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