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8
  • 트럼프가 ‘팍스-아메리카나’를 죽였다
  • 얇은 평화인가, 두터운 평화인가
  • 트럼프의 남은 임기는 세상을 망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 누가 대통령을 거짓말하게 하는가?
  • 미국대선은 끝났지만 이제 이념적 투쟁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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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양국체제 시도의 실패는 양국체제의 첫 문을 냉전대결 세력의 한 분파가 열었다는 역사적 아이러니, 태생적 한계에서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분석 수준을 한 단계 심화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그 한계를 짚어보는 데 그치지 않고, 이 ‘한계’를 뒤집어 이렇듯 진행된 실패 과정 이면(裏面)의 가능성까지를 분석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뒤집어 읽기, 심화된 분석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만일 노태우 정부가 아닌 87년 민주항쟁의 힘을 온전히 받은 민주정부가 양국체제의 첫 문을 열었더라면 사태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이는 물론 87년 말의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 분열이 없었다면 가능했던 일이다. 이러한 가정은 단순한 역사적 흥밋거리가 아니라 양국체제로 전환하는 성패의 조건을 보다 정확하고 깊게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이다.

역사적 가정의 방법론적 유효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왜 꼭 “만일 노태우 정부가 아닌 87년 민주항쟁의 힘을 온전히 받은 민주정부가 양국체제의 첫 문을 열었더라면”이라는 가정인가? 예를 들어 ‘서울 올림픽이 소련, 중국, 동구권 등이 참가하지 않아 실패했더라면?’ 또는 ‘소련·동구권 붕괴가 없었더라면?’ 또는 ‘1988년 미국 대선에서 H.W. 부시 후보가 아닌 경쟁 상대인 민주당의 급진파 듀카키스 후보가 당선되었다면?’이라는 식의 다른 가정이 의문으로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뒤의 가정들은 앞의 가정보다 분석대상인 양국체제의 성패의 조건을 파악하는 데 그 유효성이 크게 떨어진다. 이유는 두 가지, 가정의 직결성과 범위 때문이다. 먼저 앞의 가정은 양국체제와 직결돼 있지만, 뒤의 가정은 양국체제와 직접 연관된 문제가 아니다. 둘째, 앞의 가정은 87년 한국이라는 시공간적으로 제한된 상황에서 비롯되어서 가정에 따른 추정(counterfactual reasoning)의 설정이 통제범위 내에서 가능하지만, 뒤의 가정들은 가정의 시간과 공간의 범위가 너무 커서 추정을 통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제 “만일 노태우 정부가 아닌 87년 민주항쟁의 힘을 온전히 받은 민주정부가 양국체제의 첫 문을 열었더라면 사태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라는 가정의 추론적 분석을 시작해보자. 먼저 87년 민주항쟁 이후 대선을 앞두고 야권과 민주화 진영은 분열하지 않고 힘을 모아 대선에 임한다. 그 결과 대선은 민주진영의 압승으로 끝나고 새로 들어선 민주정부의 정통성과 지지는 전례 없이 높았을 것이다. 압도적 지지 위에 선 새 정부는 과감한 남북화해정책을 펴고, 북은 바로 호응하여 나왔을 것이다. 그 결과 최소한 서울 올림픽에 북이 참가하거나 혹은 남북 공동개최까지도 가능할 수 있었고, 태극기와 인공기는 이때부터 남과 북에 동시에 게양되었을 것이다. 그 성과 위에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 88년 내에 성사되었을 수 있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기초인 두 국가 정통성의 상호 인정이 이 과정을 통해 단단하게 다져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한 상태에서라면 89년 9월 이후의 동구권 붕괴의 여파가 북한붕괴론의 확산이 아니라 오히려 남북 화해의 가속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때 한국 정부는 소련, 중국과의 수교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북미, 북일 수교를 적극적으로 중재하는 입장에 섰을 것이다. 애초에 북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미국의 H.W. 부시 정부 시기(1989~1993년)에 북미 수교가 이뤄지기는 어려웠겠지만, 한국의 적극적 중재 노력은 남북 간 이미 형성된 양국체제의 기초를 흔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 나아가 미국이 별 근거 없이 제기한 북핵 의혹과 북한붕괴론 – 흡수통일론은 강력한 민주정부 시기의 한국에서 (노태우 정부 때처럼) 냉전유지를 바라는 세력의 과장된 반응을 일으키기 어려웠으리라. 그 결과 민주정부 버전의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은 훨씬 단단한 상호 신뢰의 기반 위에 이뤄졌을 것이다. 끝으로 87년 민주화의 단합된 성과인 민주정부의 성과를 이어받은 민주 세력은 다음 대선에서도 승리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민주정부 1기의 남북화해정책은 민주정부 2기에 의해 충실히 그리고 발전적으로 계승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노태우 정부의 양국체제 초기 버전이 임기 말년에 급속히 약화되고 곧이어 발생한 전쟁 위기로 양국체제의 동력이 급격히 고갈되어버린 사태가 발생할 이유가 없게 된다. 민주정부 1, 2기를 통해 남북관계는 상당히 안정된 양국체제 상태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러한 상태에서라면 한국의 민주정부와 친화적이었을 미국 클린턴 정부 시기(1993~2001년) 초기부터 북미 관계가 대화 기조로 진입하여 클린턴 재임 중 북미 수교가 성사될 기회도 생겼을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에서는 ‘북핵문제’도 ‘1993~1994년의 전쟁 위기’도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2018년 6월의 북미 간 싱가포르 회담으로 분명해진 사실이지만, ‘북핵문제’가 발생했던 근원은 냉전 해체 이후에도 미국이 줄곧 북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북은 체제 보장과 대미협상력 강화를 위해 결국 핵 개발에 올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87년 한국에 강한 정통성을 가진 민주정부가 출범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면 이후 북이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받는 체제 위협 요인이 현저히 감소함에 따라 북이 핵 개발에 필사적으로 올인해야 할 이유 자체가 사라진다.

이상의 역사적 가정에 따른 분석은 코리아 양국체제의 안정적 성립요건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가장 밑바탕에는 남북, 북미 간 적대적 긴장의 해소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남북 모두 고도의 적대에 기반한 ‘비상국가체제’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남북 두 ‘비상국가체제’의 극한적 대치는 바로 ‘분단체제’ 작동의 핵심 동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남북의 ‘비상국가체제’를 작동 정지시킬 만큼의 강력한 변화가 발생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변화는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

체제의 성격과 체제를 둘러싼 환경의 성격상 그렇듯 강력한 새로운 동력은 북이 아닌 남에서 발생할 개연성이 크고, 실제 역사가 그러했다. 1960년 4·19가 첫 번째 분출이었다. 4·19는 이승만 독재체제 즉 ‘비상국가체제’를 일시 작동 정지시켰다. 그러나 4·19는 세계 냉전체제가 강고했던 상황에서의 분출이었기에 양국체제로 이어질 계기를 찾을 수 없었다. 4·19의 남북 화해 움직임은 불과 1년 만에 ‘반공을 국시로’ 내건 군사정부에 의해 압살되고 말았다. 두 번째 대분출이 87년의 민주대항쟁이었다. 이 힘은 박정희 –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비상국가체제’의 오랜 철벽통치를 크게 흔들어놓았을 뿐 아니라, 미소 냉전의 해체라는 세계사적 대전환과 맞물리면서 분단체제가 양국체제로 전환될 가능성을 최초로 열어주는 동력이 되었다. 앞서 보았듯 분출한 이 힘이 분열되거나 손상되지 않고 온전히 한국의 민주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면, 남북 간 적대는 노태우 정부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폭으로 해소되고, 북미 적대도 마찬가지로 크게 완화되어, ‘북핵문제’ 자체가 발생할 소지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양국체제는 안정 궤도로 접어들 수 있었을 것이다.

양국체제의 요점은 한국(ROK)과 조선(DPRK)이 서로를 주권국가로서 인정하는 데 있다. 상대 체제에 대한 인정은 우선 자기 체제의 정당성에 대한 자신이 있어야 가능하다. 내부의 강한 지지가 있으므로 상대에 대한 인정을 자신 있게 밀고 갈 수 있다. 87년의 힘을 온전히 실은 민주정부였다면 그것이 가능했다. 노태우 정부는 요행히 그 길을 열기는 했으나 난관을 뚫고 밀고 나갈 힘은 없었다. ‘북한붕괴론’과 ‘서울불바다론’이 오가고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를 겪으면서 남북, 북미 간 불신과 적대의 골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깊어졌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이렇듯 형성된 불신과 적대로 균형을 잃은 여론 지형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이렇듯 이미 기운 여론 지형을 바꿀 수 없었다. 민주화운동의 대의를 이은 민주정부임은 분명했지만 이미 87년의 지지와 열기의 절반이 빠진 후였다. 두 정부에서 두 번의 정상회담이 있었으나 북의 핵 개발과 핵실험은 그와 무관하게 진행되었고 이미 확산된 ‘북한붕괴론’은 ‘핵위협 – 퍼주기론’과 결합하여 오히려 더욱 기승을 부렸다. 결국 두 정부의 대북사업 성과를 몽땅 원점으로 되돌리고 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등장을 막을 수 없었다. 상황은 이제 87년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촛불혁명이 없었다면 반드시 다시 한번 유신체제의 등장을 맞아야 했을 것이다.

 

코리아 양국체제로의 전환은 돌이킬 수 없는 추세가 되었다

이 글 서두에서 “코리아 양국체제란 대한민국(ROK)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DPRK) 두 나라가 주권국가로서 서로 인정하여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평화롭게 공존, 교류, 협력하는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 공존체제이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지난 70여 년 남북 간에 쌓이고 쌓인 적대와 불신을 완화하고 해소함으로써 평화적 통일로 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경로다”라고 했다. 지금껏 이 언명이 현실화될 수 있는 조건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 결론적으로 이상의 논의를 기초로 코리아 양국체제의 의미를 종합해보기로 한다.

분단 – 전쟁 – 정전 상태의 지난 70년, 남북은 시종 적대적 대결관계를 해소하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양측은 줄곧 통일을 주장해왔으나 그런 상태로 통일이 이루어질 리 없었다. 우선 상대를 인정할 수 있어야 했다. 진정 하나가 되자 하면 먼저 서로 인정하는 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전쟁까지 하면서 적대해왔던 상대를 인정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자신이, 그리고 서로가, 안팎으로 온전하고 정당하며 안정되게 서야 한다. 이 조건이 무르익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7~2018년 촛불혁명과 북핵 완성,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라는, 각각이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세 요소가 한 시점에 합류하면서 그 조건이 무르익었다.

한국(ROK)의 촛불혁명은 4·19와 87년 민주항쟁이 미처 이루지 못했던 나라의 민주적 정통성의 필요충분조건을 비로소 충족시켰다. 4·19 직후 장면 정부와 87년 이후 노태우 정부는 필요조건은 갖췄으나 충분조건은 갖추지 못했다. 4·19는 세계 냉전의 한가운데서 발생하였으나 냉전의 흐름에 맞서는 민주 분출이었다. 그럼에도 민족화해의 봄으로 이어지기에는 시대의 제약이 너무나 컸다. 반면 87년 민주항쟁은 89년 이후 냉전 해체와 중첩되어 있었기에 그 가능성이 실재했다. 그리하여 분단 이후 처음으로 양국체제로의 첫 문이 잠시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87년 민주화 동력의 분열로 그 가능성은 충분히 현실화될 수 없었다. 이제 촛불혁명은 남북 대결과 적대의 경사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그 힘이 온전히 민주정부로 이어졌다. 반쪽국가가 아닌 온전한 한 국가로서 안정된 정당성과 자신감을 갖춘 것이다. 그렇기에 2017년 북미 간 전쟁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남북 화해, 북미 화해의 길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 결실이 2018년부터 맺히기 시작했다.

소련·동구권 붕괴 이후 미소 냉전이 해소되었지만 곤경에 빠진 조선(DPRK)을 미국은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붕괴를 위한 제재와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그 결과 ‘북핵문제’가 본격화했다. 북핵 개발과 제재 압박의 벼랑 끝 줄다리기는 1990년 초부터 시작되어 2017년까지 계속됐다. 이 30년 위기와 긴장 속에 북미 간만이 아니라 남북 간의 적대와 대결의식도 고조되어왔다. 이 적대와 대결의 고조를 한국의 촛불혁명이 먼저 끊었다. 그리고 조선의 ‘핵 완성’ 선언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북핵문제의 해결은 북핵 완성을 통해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또 그 역설은 미국 정치의 국외자인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과 만나 해결의 단초를 열었다. 2018년 벽두부터 남북이 화해의 물꼬를 텄다. 핵 완성을 통한 조선의 자신감과 촛불혁명을 통한 한국의 자신감이 당당하게 만날 수 있었다. 이어 한국이 북미 협상을 통한 북핵문제 협상을 성공적으로 중재함으로써 영영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남북미 간 화해의 협주가 가능해졌다. 이제 남북미는 종전과 평화협정, 그리고 북미 수교와 한반도 비핵화를 일정에 올려두고 있다.

이러한 현실의 진행은 그 자체가 양국체제를 열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평화협정과 북미 수교를 전후하여 한국과 조선은 정식 수교관계를 맺을 것이다. 두 나라의 정식 수교란 외국과 외국과의 수교가 아닌 ‘한 민족 두 국가 사이의 특별한 수교’다. 이 특별한 수교를 통해 한국과 조선은 서로 대표부를 교환하게 된다. 서울과 평양에 상주할 조선과 한국의 대표는 어느 외국의 대사보다 높은 지위의 장관급 공직자로 선임된다. 양국의 관계는 ‘한 민족 두 국가 간의 특수한 관계’, 즉 ‘어느 외국과의 관계보다 중요하고 높은 두 나라 사이의 관계’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이를 시작으로 점차 서울과 평양을 비롯한 한국과 조선의 여러 주요 도시에 양국의 공직자와 언론인, 기업인, 연구자와 학생들이 상주하게 된다. 또 많은 일반인들이 관광과 친지 방문을 위해 서로 오가게 된다. 이렇듯 한국에 상주하고 방문할 조선 사람과 조선에 상주하고 방문할 한국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도 아닌 그저 한민족(조선민족)의 사람이 아니라, 분명 한 민족이지만 동시에 한국 사람이거나 또는 조선 사람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한국 사람과 조선 사람이 한국과 조선 어느 곳에서든, 해외의 어느 곳에서든, 한 민족으로서 자연스럽게 만나 어울려 지내게 된다. 과거 전쟁으로 인한 상처와 오랜 시간 교류하지 못하여 생긴 차이 때문에 여러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평화와 번영의 상호 필요, 언어·문화·역사·전통의 공통 근거에 힘입어 그 어려움을 점차 극복해낼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국과 조선,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 공존체제는 점차 정착될 것이다.

코리아 양국체제가 이렇듯 정착되는 시간이 예상보다 빠르거나 느릴 수는 있겠지만, 그 변화 방향과 추세가 지난 1992년 전후와 같이 역방향으로 흘러 빠른 시간에 소멸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국제사회에서 북핵문제는 이미 오름세가 아닌 내림세의 문제가 되었다. 미국 내정에서 어떤 변화가 생기더라도 과거 조시 부시 대통령 때와 같은 초강경 반북정책이 나오기 어렵다. 조지 부시의 이라크 전쟁 실패로 미국 일극주의는 이미 종말을 고했다. 세계사의 추세가 거역할 수 없는 다극 공존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 민주당과 주류 언론은 현재 트럼프 대통령과 정쟁 중이기 때문에 북미 교섭의 성과까지도 깎아내리고 있지만, 90년대 이후 민주당의 대(對)한반도 정책을 볼 때 만일 민주당이 차기 집권하게 된다 하더라도 트럼프가 열어놓은 북미 관계 정상화의 길을 계승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의 북핵 협상이 지연된다 해도 이미 형성된 남북 화해 흐름이 중단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남북 양국의 체제 내적 정당성과 안정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대북 적대·대결 세력이 정부든 국회든 장악할 가능성도 당분간 없다. 촛불혁명이 소멸시킨 ‘남북 적대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급속하게 다시 형성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세력들은 장기적으로 볼 때 양국체제 지향으로의 노선 전환을 통해서만 이후 정치적 생존을 보장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이 세력은 양국체제 전환의 속도, 수준, 방법을 높고 적극적 전환파와 경쟁할 수도 있다. 1970년대 초 서독 사민당이 토대를 마련한 ‘동서독 양국체제’를 이후 기민당도 수용한 것과 같은 논리다.

촛불 이후 지금까지의 진행을 볼 때, 양국체제로의 전환의 흐름은 때론 빠르고 때론 느렸지만 꾸준히 지속되어왔다. 이제 코리아가 상호 주권과 영토를 인정하는 한국과 조선 양국의 평화체제·공존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추세가 되었다. 이러한 전환을 이미 잘 준비된 상태에서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머지않아 이루어질 정상 간 합의와 협정을 정치적으로 뒷받침하고 되돌릴 수 없게 공고히 할 방안, 법적·제도적 전환의 구체적 방안들, 새로운 국제관계 장기전략을 수립하는 일, 다양한 차원의 남북 교류를 지금 이 시점부터 준비해가는 것 등 할 일이 아주 많다. 지금 각계각층에서 과연 이러한 준비가 얼마나 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때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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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 인류 역사를 보편적으로 관통하는 민주적 뿌리와 그것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중. 「맹자의 땀, 성왕의 피」(2016), 「미지의 민주주의」(2011) 등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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