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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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렌덤 도구들은 지금까지 정치적, 학문적 토론에서나 역사적으로나 종종 반대와 비판의 표적이 되어 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다음에는 가장 많이 제기된 당혹스러운 주장들을 짧게 소개한다. 그러나 먼저 오늘날 가장 중요한 레퍼렌덤 도구들을 이미 활용하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들을 순전히 대의적인 실제 의회 민주주의 체제와 비교할 것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레퍼렌덤 도구에 반대하는 논점의 유효성을 확인하기 위해, 오늘날 제대로 작동하는 모범, 특히 스위스의 모범과 미국의 몇몇 주의 모범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비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역행임이 드러난다. 복잡한 정치 현안에 투표하기에는 시민들의 전문적 식견이 부족하다는 추정에서 나온, 종종 직접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반대에 대해서는 다음장(무능력한 시민이라는 신화)에서 다루기로 한다.

 

소수자들의 위험?

레퍼렌덤 도구에 대한 또 다른 반대는 투표가 다수파들의 손에서 소수자들의 정당한 이익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 변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이는 직접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를 거스르는 논점이다. 순전히 의회 중심적인 제도도 마찬가지로 소수자들에 대한 의무를 축소시킬 수 있으며, 심지어 일종의 독재로 뒤바뀔 수도 있다. 가장 현저한 예는 1933년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한 경우이다. 1933년 히틀러를 총통으로 선출한 것은 독일 의회였으며, 뒤이어 소위 ‘모든 권력의 위임 법’Ermachtgungsgesetz을 승인한 것도 그 의회였다. 국가사회주의자들은 독일 의회의 다수파가 아니었으나 그런 결과가 나왔다. 당시 이 결정을 기각시키기에는 레퍼렌덤 도구들이 너무나 취약했고 나치의 독재에 길을 열어준 것은 사실상 의회였다.

원칙적으로 직접 민주주의는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오로지 대의적인 체제에서는 바랄 수 없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한다. 모든 레퍼렌덤 사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권자의 과반수를 설득해야 한다. 모든 종류의 사안은 다시 섞여서 새로운 다수를 만들고, 다른 사회적, 정치적 그룹을 소수로 바꿔 놓는다. 유권자는 한 사안에서는 다수가 되었다가 바로 그 다음 사안에서 소수가 될 수 있다. 레퍼렌덤 도구들을 활용하여 사회적 소수자들은 어쨌든 자신들의 이익을 좀 더 잘 대변할 수 있다. 스위스에서는 10만 명의 서명으로 헌법 개정을 제안할 수 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국가의 어떤 법률이나 그 일부의 폐지를 요청하기 위해 유권자 50만 명의 서명이 필요하다. 직접 민주주의는 단순한 하나의 여론 조사 이상으로서, 소수자들이 다수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는 동력을 가동시킨다. 대의적인 체제에서 연립 정부의 구성원들은 대개 의회에서 한결 같이 다수를 이루는 반면 레퍼렌덤에서 다수는 당의 논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로 여러 정당에 분포된 형태로 구성된다.

소수자들에게 직접 물어보면 그들이 직접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 텍사스 주 라스뮈센의 조사에서 흑인 72%와 히스패닉 인들의 86%가 직접 민주주의의 도입에 호의적인 반면, 백인들 중에는 69%만이 호의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1979년과 1997년 캘리포니아 주에서 실시한 유사한 조사에서는 소수 민족 그룹들 사이에서 더 광범위하고 일관된 다수들이 레퍼렌덤 권리에 호의적인 것을 볼 수 있다. 1997년에 76.9%의 아시아계, 56.9%의 흑인, 72.8% 히스패닉계 및 72.6%의 백인들이 캘리포니아의 직접 민주주의를 성공적인 것으로 본 반면, 가장 부정적인 태도는 상대적으로 백인(11.5%)들 사이에서 더 널리 파급되어 있으며, 아시아계는 낮은 수치(1.9%)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험 조사에 따르면, 소수자들의 권리에 대한 레퍼렌덤 투표에서 대개 대다수가 그에 찬성한 결과가 나온 것을 보여준다. 프레이와 괴테Frey and Goette는, 예를 들어, 보편 인권 선언 및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에 대한 국제 조약의 시민권에서부터 시작하여, 1970년부터 1996년까지 취리히 칸톤에서 소수자들의 권리에 대한 모든 스위스 연방 레퍼렌덤 투표를 조사했다. 조사한 사례의 70%에서 결과는 소수자들의 권리에 호의적이었으며, 연방 차원에서는 심지어 80%까지 이르렀다. 더욱이 소수자들의 권리를 제한하기 위한 목적의 발안들은 다른 사안들에 비해 성공률이 적다는 것이 드러났다.

1891년과 1991년 사이 제출된 연방의 국민발안은 대개 단 10% 정도가 수용되었으나 소수자들의 권리를 제한하려는 국민발안 11건은 모두 기각되었다. 반면, 소수자 단체들이 제기한 발안은 자주 레퍼렌덤에서 성공했다. 스위스에서 선택적 레퍼렌덤들은 50% 정도가 수용되었는데, 소수자들의 권리 증진과 관련된 이런 종류의 11건의 레퍼렌덤은(1866~1996년) 투표자 73%의 찬성으로 수용되었다. 또한 소수자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선택적 레퍼렌덤들도 수용되었다.

소수자들의 차별을 위해 이용된 레퍼렌덤의 고전적인 실례로 종종 스위스에서 여성 투표권이 뒤늦게 도입된 것을 거론한다. 스위스 여성들은 1971년에 이르러서야 남성들만 참여한 레퍼렌덤 투표를 통해 이 권리를 획득하게 된다. 반면 이탈리아 여성들은 1948년 투표권을 얻었다. 그러나 스위스에서 그런 권리의 뒤늦은 승인을 직접 민주주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오히려 스위스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보편적인 윤리-도덕적 보수주의 때문일 것이다.

 

포퓰리스트와 선동가들을 위해 활짝 열린 길?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에서 종종 표명되는 염려 중 하나는 직접 민주주의가 많은 선동가들이나 포퓰리스트들의 터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동가들은 순전히 대의적인 체제에서 기회가 더 많아 소수의 정치인들이 정치적 의제를 정하고 종종 법을 정하는 반면, 시민들은 4, 5년마다 한차례씩 돌아오는 정당 선거 때를 제외하고는 그에 개입할 권한이 전혀 없다.

국민들이 참여할 방도가 없는 것은 불편을 확산시키고, 나중에는 일부 유권자들로 하여금 소위 여당이 일으킨 혼란을 “청소하겠다”고 약속하는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에게 투표하게 만든다. 잘 제도화된 레퍼렌덤 도구들을 갖추고 있는 시민들은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지 않다. 그들 스스로 국민발안과 레퍼렌덤을 통해 자신들의 해결책을 제안하고 그것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 정치인들은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다. 스위스의 민주주의는 더 정치 현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반면 순전히 대의적 체제에서는 더욱 정치인들 개개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스위스 헌법은 위에서 원하는 플레시비트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 정치 세력이나 포퓰리스트로 간주되는 운동들 또한 레퍼렌덤 캠페인의 경우 어쨌든 효과적인 논제를 들고 국민 과반수를 설득해야 한다.

 

금권력: 돈이 레퍼렌덤 캠페인 성공에 결정적인가?

이 주장은 누구든 어떤 정치적인 특정 프로젝트 이끌어가기 위해 엄청난 금액을 투자할 수 있다면, 매스 미디어 캠페인을 시작할 수 있으며, 매스 미디어를 통한 세련된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마케팅 활동으로 정치적 토론을 주도하여 국민들의 표를 얻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레퍼렌덤 캠페인에 막대한 금액이 들어간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1998년 미국에서는 레퍼렌덤 투표와 캠페인에 4억 달러가 지출되었으며, 그중 캘리포니아에서만 2억5천만 달러가 쓰였다. 미국에서는 레퍼렌덤 캠페인을 대개 광고를 많이 쓰는 전문가들이 조직한다.

그러나 재정 능력이 큰 그룹들은 정당이나 대통령 후보 선거인단 캠페인에 막대한 자금을 들이며,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한 로비 활동에도 그렇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스위스의 안드레아스 그로스 의원은 이 점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직접 민주주의에서 금권력은 근본적으로 순전히 대의적인 체제에 비해 늘 덜하다. 대의적 체제에서는 경제적으로 막강한 단체들이 소수의 정치인들을 좌우하는 반면, 잘 발달된 레퍼렌덤 도구를 갖춘 경우 그것을 공개적으로 하여 온 국민 전체에 영향을 주고자 한다.”

결국, 막대한 레퍼렌덤 캠페인 비용 지출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정치분석가 엘리사벳 거버Elisabeth Gerber는 미국 8개 주에서 168개 국민발안과 관련된 자금의 흐름을 분석했다.4몇몇 비판의 목소리가 있는 가운데, 경제력이 막강한 그룹들도 단순히 엄청난 자금을 레퍼렌덤 캠페인에 투자하는 것만으로 그들이 원하는 법률을 얻어낼 수 없다. 게다가 거대 경제그룹들 사이에서 자금을 모아 관련 캠페인에 투자한 기금이 클수록 그러한 발안이 성공할 가능성은 더 낮다.

재정 능력은 직접 민주주의 기관들의 수행력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는 것은 확실하다. 대의민주주의에서도 마찬가지로 영향력이 그만큼 크지는 않더라도 결정적이고 두드러지며, 때로 레퍼렌덤 캠페인 예산의 균형을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으로 충당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캘리포니아의 진보주의자들 또한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을 완전히 거부하며, 대신 레퍼렌덤 기간 동안 “거대 자금원”의 역할을 통제하기 위해 더욱 강력한 조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자연히 재력이 있는 단체들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큰 기금이 마련된 정당은 가난하고 조직이 되지 않은 작은 단체들에 비해 늘 발안을 착수하고 정치적 선전 활동을 펼기에 유리하다. 대중의 견제와 자금원의 제한을 통해 정치 분야에 존재하는 모든 단체의 균형을 잡고자 하는 것은 비현실적일 것이다. 언제나 정치에 기댈 수 있는 개인의 능력과 단체의 능력은 다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이런 차이점이 존재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어떤 규칙과 어떤 제도로 경제적으로 더 강한 그룹들의 지나친 정치적 영향력 행사를 막을 수 있느냐이다. 합법적인 로비 활동은 항상 그 체제가 덜 민주적일수록 더 활발해진다. 독재 체제와 선거가 없는 체제에서 이익 단체들은 매우 강력한 권한을 행사한다. 유럽연합의 기관에서 압력 단체들(다국적 기업, 금융 단체, 기업가 협회 등)은 종종 각 회원국에서보다 더 중요해지는데, 유럽연합의 구조가 덜 투명하고 덜 민주적이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는 정치적 엘리트들와 경제적 이익 단체가 결탁해도 그런 동맹이 서로의 제안과 요구들을 받아들이게 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각 레퍼렌덤 투표와 캠페인에는 그 특유의 내적 역학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보 부문을 독과점한 홍보 캠페인을 통한 부정조작의 문제는 직접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의 문제이다.

사실, 거기에는 자금원의 문제, 곧 직접 민주주의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민주적인 경제적 기반의 문제가 있다. 때로 직접 민주주의에도 대의민주주의에서처럼 돈이 침투하거나 위협할 수 있다. 직접 민주주의가 포퓰리스트의 단순화에 맞서 완전히 그 효과를 발휘하려면 공적인 자금원이 필요하다. 직접 민주주의는 포퓰리스트적 담론에 맞서고 정치적 지식 파급을 강화하며, 구체적인 현안에 대한 대중의 참여를 촉진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앞선 제도적 시스템이다.

 

레퍼렌덤 권한은 대의민주주의와 대립한다?

몇몇 이론에 따르면, 레퍼렌덤은 국회의 권위 기반을 약화시키고 정치적 대의원과 유권자들 사이의 균형을 위협할 수 있다고 한다. 민주주의와 대의 민주주주의는 동일한 것으로 간주할 수 없으며, 대의원 또한 민주주의의 정수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유권자와 의회를 각각 대립적인 관계로 간주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생각이 아닌듯하다. 순전히 대의적인 체제는 실제로 단 한 가지 조건에서만이 민주적 체제를 올바르게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곧 시민들이 그들 뜻을 완전히 존중 받았다고 느끼는 경우이다.

수십 년 전부터 여러 국가에서 조사 결과 되풀이 나타나는 현실은, 시민들 대다수가 직접적인 참여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가끔 필요성이 느껴질 때마다 개입함으로써 국민 주권을 표현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의회의 권위가 사라질 것이라는 논거는 설득력이 없다. 의회는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민주주의 기능을 하기 위해 선출된 조직이다. 그러므로 시민 참여를 위해서 의회에 대한 존중심을 지키는 선에서 민주주의가 제한되어야 한다고 요청할 수는 없다. 그보다 순전히 대의적인 시스템에서 국민들은 의회의 행위에 맞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레퍼렌덤 도구를 통해 개입할 수 없는 것이 더 문제이다. 대의제에서 유권자들은 단지 선거날 다시 판을 짤 수 있는 자유만을 누리며, 선거날 외에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 있더라고 전혀 개입할 수 없다. 이런 양상은 레퍼렌덤 권리(국민발안과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의 전적인 도입으로 완전히 바뀔 수 있다. 레퍼렌덤 발안을 통해 의회는 언제든 평가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국민 대다수의 동의를 얻어 법률을 제정하게 된다. 레페렌덤 도구들 자체는, 만일 그것을 제대로 운용한다면, 실제로 의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어떤 발안의 주창자들이 추진한 현안에 대해 의회는 반대 제안을 투표에 부칠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몇몇 레퍼렌덤 반대자들은 그러나 레퍼렌덤으로 정치의 안정권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비판한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는 곧 “의회”나 “정부”와 같다는 암묵적인 전제가 깔려 있다. 만일 대신 정치를 “공적인 행위”로 간주하고 또 모든 시민들이 어느 정도 그에 참여할 수 있다면, 직접 민주주의는 정치의 중요성을 축소시키지 않고 반대로 주권자인 시민들에게서 나오는 지속적인 자극을 줌으로써 정치를 강력히 쇄신시킨다.

게다가 현대 민주주의 현실에서 레퍼렌덤 권한의 구체적인 활용이 과소평가 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미국에서 레퍼렌덤 투표가 최고치에 달했던 1996년, 미 연방 모든 주에서 시민들이 요청한 투표가 총 102차례 실시되는 동안, 같은 해 모든 주에서 선출 의원들은1만 7천 건 이상의 법안과 입법 명령을 승인했다Verhulst-Nijeboer, 2007. 미 연방 주들 가운데 절반 가량이 어느 정도 수준 높은 레퍼렌덤 권한을 갖추고 있어서 시민들은 정기적으로 이를 활용하며, 그런 주에서도 법률의 99.9%가 여전히 선출된 정치인들에 의해 작성되고 승인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본다면 의회 민주 제도의 붕괴를 운운하는 것은 완전히 어불성설이다.

 

레퍼렌덤보다 더 나은 도구들?

더 큰 레퍼렌덤 권한을 지닌 시민들의 요청 앞에서 정치인들이 보이는 첫 반응은 못 본 척하려는 것이다. 오직 청원권, 제안적 레퍼렌덤, 국민발안 등을 통해 낮은 곳에서 출발하여 점차 가중되는 압박만이 대다수 정치인들이 진지하게 그 현안에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만들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위험성이 덜해 보이는 레퍼렌덤 권리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방안들 또한 제안하며, 그러한 도구들은 “레퍼렌덤보다 더 나은 도구들”로 제시된다Verhulst-Nijeboer, 2007, 89. 그런 시민 참여 도구의 한 예는 대화형 민주주의로서, 현재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등 몇몇 지방에서 시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비아레죠에서는 정치인들이 선택한 500명의 시민들이 소집되어 “시민 패널”이라고 하는 시민 포럼에서 기초자치단체를 위한 정치적 프로젝트를 논의했다. 볼자노에서는 공항 확장 문제에 대해 2007년 상반기 한 전문가의 중재로 정기적 “갈등 중재” 절차를 시작했다.

“대화형 민주주의”는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직접 민주주의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대화형 민주주의”의 자리에서 시민들은 정보를 얻고, 전문성을 갖춘 중재자들과 토론하며, 정보 전달과 토론 과정을 바탕으로 하나의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 이 방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오직 이런 맥락에서 여론이 형성될 수 있으며, 레퍼렌덤은 더 많은 정보 전달이나 근거가 충분한 여론 형성 보다는 포퓰리즘으로 이끈다고 생각한다.

대화와 정보 자체의 유용성은 반대하지 않더라도, “대화형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시민 주권을 희생하지는 않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게다가 레퍼렌덤 절차에 진지한 공공 여론 형성 절차가 따르지 않는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시민들이 사회적으로 법적 구속력을 지닌 레퍼렌덤을 대면할 때 공공 토론은 오히려 훨씬 더 진지하고 시급해진다. 시민들은 최종 결정이 자신들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 때 훨씬 더 동기부여가 된다. 레퍼렌덤 투표는 여론 형성 없이 시행될 수 없다. 레퍼렌덤은 선택된 시민 “패널”만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공적인 행사이다. 게다가 이 패널에 허용되는 시민 선택의 기준 문제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그들을 선택하는가?

이런 자문 형태와 심의가능을 지닌 직접 민주주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기관에서 주도하는 시민들 사이의 정보 조사와 중재 절차들은 당국의 발안으로 시행되는 반면, 레퍼렌덤 도구들은 시민들의 자치권 영역에 속한다.

앞의 두 방법에는 레퍼렌덤 투표의 경우보다 더 적은 숫자의 시민들이 참여하리라는 것은 틀림없다. 그 두 방법에서 정치인들과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 전문가들의 역할이 늘 지배적인 반면, 레퍼렌덤 절차의 경우에는 그럴 수 없다. 마지막으로, 각자가 참여할 수 있는 레퍼렌덤 도구들은 모든 시민권을 강화시키는 반면, 대화형 민주주의에 혁신적이고 유효한 방법이 있더라도 무엇보다 그에 더 큰 정당성을 제공하려하는 것은 정치 계급이다.

그리고 진정한 책임의식이 결여된 시민 표본 집단에 대한 구속력 없는 조사와, 심의기능을 지니고 법적 구속력이 있는 시민권의 행사 간의 근본적인 차이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서명을 모으는 기간이나 레퍼렌덤 캠페인 기간 동안에도 시민들은 정보를 입수하고 의견을 형성하기 위해 훨씬 더 긴 시간을 갖는다. 이런 이유로 레퍼렌덤 투표는 더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고 책임감을 갖게 하는 민주적인 절차이다.

 

개선된 직접 민주주의로 모든 것에 투표해야 하지 않을까?

많은 시민들은 레퍼렌덤 권리를 강화한 이후에 적절하지 않는 사안이더라도 그 모든 논제에 투표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 많은 보수를 받는 정치인들을 선출해야 하는 것인가?

여러 단계의 정부 차원에서 시민들이 더 큰 레퍼렌덤 권리를 지닌다 하더라도 레퍼렌덤 요청 사태가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오직 더욱 적절하고 갈등의 여지가 있는 사안들에 대해서만 투표를 허용하기 위해 다양한 필터를 작동하는 절차 자체가 그런 일을 막을 것이다. 모든 레퍼렌덤 발안 위원회는 어쨌든 어떤 문제에 대해 참으로 사람들이 느끼는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최소 인원수의 서명을 모아야 할 의무가 있다. 요청 서명 인원수는 대개 유권자의 2~5%선인데, 이 숫자가 기준점을 이룬다. 이 필터를 통과하고, 적격성을 입증한 후, 국회와의 협상을 거쳐 연간 최대 3차례 일요일, 매년 의회와 지방의회에서 정한 날짜에 투표하게 된다.

 

투표자가 너무 적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선거와 레퍼렌덤 투표의 높은 참여율은 민주주의에 늘 긍정적이다. 높은 투표율은 하나의 정치적 현안에 대해 국민 대다수가 실제로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선거와 레퍼렌덤 투표 사이의 분명한 차이점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5년 간의 의회 회기동안 선출된 정치적 대의원들은 수많은 결정을 내리는데, 어떤 시민도 결코 그 모두를 알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지방의회나 국회의원들은 실행 위원회/행정부executive 또한 선출한다. 레퍼렌덤 투표에서는 모든 시민들이 같은 정도로 중요시 하지는 않는 한 가지 특정하고 구체적인 현안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개 레퍼렌덤 투표 참여율은 선거에 비해 다소 낮다. 중요한 것은 누구든 관심이 있는 이라면 투표할 권리와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투표하는 이가 결정하고, 투표하지 않는 이는 다른 이들에게 결정을 맡긴다”라는 원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한 시민이 그가 지닌 이 권리를 활용하는가의 여부는 온전히 그의 개인적인 선택에 달렸다. 그러므로 “저조한 참여”라는 문제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필요한 최소 참여 인원수, 곧 정족수 확보를 위해 어떤 법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 이탈리아에서는 헌법을 근거로 50% 이상의 참여 정족수가 규정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주와 기초자치단체에서도 투표의 유효성이 인정되려면 같은 정족수를 요구한다. 직접 민주주의의 전통이 더 오래된 나라들에는 그러한 참여 정족수가 없다. 정족수가 시민들의 정치 참여에 피해를 줄 것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국민발안의 주창자들은 토론을 이끌어 내고 메시지를 전달하며 시민들을 투표하게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반대자들은 정족수로 쉬운 게임을 하며, “아무런 생각 말고 집에 있으시오! 투표를 거부하시오”라고 한다. 투표 거부로 참여율은 50% 이하로 급격히 떨어지는 가운데, 정족수는 일종의 참여 방해 공작이 된다.

참여 정족수를 통해 완전히 다른 두 부류가 하나가 된다. 어떤 사안이나 레퍼렌덤 제안에 대한 반대자들과 비투표자들(기권자 혹은 방해받은 사람들)이 그들이다. 반대 투표는 기권이나 다른 이유로 참여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실제로 투표 유권자들의 30~35%에 이르는 이들의 투표 참여를 방해하는 수많은 숨겨진 이유들이 있다. 그들의 표를 반대표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정족수가 존재하지 않는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투표하지 않은 이들의 몫인 많은 의석을 그대로 비워 두지 않는다. 다만 정당과 후보자들에게 유효한 표들만을 헤아린다.

참여 정족수 없는 토론과 경쟁은 사실상 활짝 열려 있는 구조이다. 한 사안의 발안자이건 반대자들이건 질의를 직면하고 시민들을 설득하도록 해야 한다. 공개 토론은 찬반 양쪽에 자극을 주며, 시민 참여와 정치적 소통을 강화한다. 정족수와 투표 거부 캠페인은 정반대의 효과를 내어 공개적인 민주적 대면 또한 거부하게 한다.

직접 민주주의에서는 주민 총회는 물론 어떤 지방의회나 의회의 회합에 필요한 법정 인원이 없다. 의회에는 유권자들의 위임을 받고 납세자들로부터 엄청난 보수를 받는 대리인들이 모인다. 참여하고 일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며, 더욱 중요한 투표에 법정 인원을 요청하는 데는 그만큼 충분한 이유가 있다. 만일 결정하는 것이 국민의 몫이라면, 곧 주권자들이 전체적으로 함께 결정해야 한다면, 법정 인원이 필요하지 않다. 참여하느냐 아니냐는 시민 각자의 공적인 책임 영역에 들어간다.

정작 시민들은 레퍼렌덤 투표의 참여 정족수를 주장하지 않는다. 스위스에서도, 캘리포니아나 오레곤 등 미국에서 직접 민주주의 전통이 가장 오래된 주에서도 정족수 도입이 요청된 적은 없다. 그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정족수를 마련하여 직접 민주주의의 활발한 기능을 방해하거나 가로막으려 하는 것은 거의 틀림없이 직접 민주주의에 대해 회의적인 정당 엘리트들이다. 이탈리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이상하게도 더 중요한 레퍼렌덤 투표, 곧 헌법 개정의 경우(제138조)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의 정족수가 없다. 이로 미루어, 의회가 어떤 결정에 이르는 것에 관심이 있는 분야에서는 정족수를 거부하는 것이 드러난다. 레퍼렌덤 도구 자체를 불신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분야에서는 정족수를 고집한다. 1997년부터 2011년까지의 기간 동안 이탈리아에서 모든 법폐지 레퍼렌덤은 정족수로 인해 실패했다.

직접 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여 잘 발달된 모든 정치 시스템에서는 정족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단 한 가지 원칙은 이렇다. “투표하는 이가 결정해야 하며, 투표하지 않는 이는 다른 이들에게 결정을 맡기는 것이다.” 정족수를 극복하는 것은 그러므로 직접 참여권의 자유로운 행사와 관련하여 시민들의 동의를 얻기 위한 첫 발걸음이다. 정족수 없이, 쓸수 있는 모든 직접 레퍼렌덤 권리들과 공정하고 올바른 법규 적용을 통해 직접 민주주의는 사실상 민주주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정족수를 폐지하는 것은 없어서는 안될 발걸음이다.

 

시민들이 복잡한 정치 문제들을 이해할 수 있는가?

많은 정치적 현안들은 복잡하고 어려우며, 이를 깊이 이해하려면 특별한 지식이 필요하다. 실제로 시민들은 그러한 문제들을 대면하면서 자신들이 너무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껴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싶어 한다. 정치 현안에 대한 레퍼렌덤 투표는 국민투표가 있는 일요일에는 시행되지 않고, 수 년이 지나야 시행할 수도 있다. 발안자들, 공공 기관, 언론에서도 그것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 설명하는 데 모든 시간을 쏟는다. 주제는 공개 토론을 통해 모두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스위스에서는 모든 레퍼렌덤 투표 이전에 유권자들은 찬반 양론의 정보를 담고 있는 공식 정보 소책자를 집으로 전달받는다. 자신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여 어떻게 투표해야 할지 모르는 이는 그가 신뢰하는 사람의 견해를 따를 수 있는데, 이는 후보자와 정당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정치인들은 그들이 대의 기구에서 토론하고 승인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으리라는 가정은 잘못된 것이다. 그들 또한 전문가나 동료 당원들, 당의 수뇌부로부터 받은 지향과 지침에 따라 방향을 정한다. 결국 선거 또한 상당히 복잡한 선택이다. 결국 의식 있는 선택을 위해서는 모든 유권자들은 모든 공약과 그가 입후보한 정당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직접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정치인들은 종종 거의 대부분의 정치적 현안에 대해 유권자들은 이해조차 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같은 논점이 100년 전 모든 시민들에게 보통 선거권을 주는 것을 거부하는 데 이용되었으며, 또 이후에는 여성 투표권을 거부하는 데 이용되었다. 시민들이 매우 중요한 정치적 현안에 대해 평가하고 결정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어째서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을 선출할 권한을 얻어내었을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특정 현안을 모든 레퍼렌덤에서 제외시킬 필요는?

이탈리아에서 “면책과 사면”, “세금과 과세”, “국제 조약과 협약” 등은 모든 레퍼렌덤 권한에서 배제되어 있다. 다시 말해, 레퍼렌덤에 부칠수 없다. 그러한 논제에 대한 국민투표는 국가적으로 본질적인 양상을 위협할 수 있다. 나아가 더 이상 그들의 국제적 의무를 존중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미국의 많은 연방 주들과 스위스의 칸톤 시민들은 실제로 세금이나 공공 지출에 대해서도 투표할 수 있다. 결국 그들 자신도 납세자로서 공공 지출을 부담하지만, 정치인들은 그렇지 않다. 스위스의 직접 민주주의에는 국제 정치도 모두 포함한다. 스위스와 미국의 경험에서 알수 있는 것은 이렇다. 몇몇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세금 감면을 제안하는 이는 그것이 세금을 더 많이 내는 다른 납세자들의 지출로 발생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레퍼렌덤 투표에서 이기려면 그래야 하는 이유를 잘 설득해야 할 것이다. 스위스에서 시민들은 종종 더 엄격하고 조심스럽게 정치 자금에 대한 결정을 내리며, 그 때문에 스위스의 공공 부채는 매우 잘 규제되어 있다.

대체적으로 민주주의의 주권자들인 시민들의 공동체는 그들이 의원으로 선출한 정치 대의원들에 비해 정치적 사안을 배제시킨 제한적 투표권을 지녀서는 안될 것이다. 기본권과 인권 같은 헌법의 몇몇 부분은 레퍼렌덤 투표에서 배제될 뿐만 아니라 의회의 개정에서도 배제된다. 만일 중요한 많은 정치적 사안들을 레퍼렌덤에 부칠 수 있는 내용에서 배제시킨다면 그것은 간접적으로 시민들이 무능하고 그러한 결정을 내릴 능력이 없음을 선언하는 것과도 같다. 민주주의에서 법규는 정치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민들을 위해 만들어야 한다.

 

많은 정치 현안은 한 번의 단순한 찬반으로 결정되기에 너무 복잡하지 않은가?

찬반의 선택은 다른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국회나 지방의회에서도 결국 정치인들은 네, 아니오로 투표를 한다(혹은 기권한다). 모든 결정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사안은 몇 가지 구체적인 안으로 요약되어야 하며 다수의 동의를 얻은 안이 이긴다. 득과 실, 잠재적 효력은 신중히 숙고해야 하고, 될 수 있는 한, 한 가지 문제에 대해 모든 해 결안들을 최대한 고려에 넣어야 한다. 레퍼렌덤 투표의 경우에도 그런 토론회를 여는데, 의회 의사당이 아닌 그 토론장은 여론의 장이다. 레퍼렌덤 투표에서 시민들은 모두가 민주적인 방식으로 논의를 거친 문제를 찬반으로 평가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수의 투표로 끝나지는 않지만, 많은 경우 다수가 원하는 해결책이 인정되는 규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레퍼렌덤 투표에서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이 있는가?

어떤 새로운 법률에 착수하려 하는 의원들은 어쩔 수 없이 동맹 파트너들이나 반대자들과 대화를 나누어 타협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레퍼렌덤 투표의 경우, 시민들은 사안을 고칠 수 없으며 기각하거나 찬성표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직접 민주주의에서도 발안자와 대의 기구들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을 방법이 하나 있다. 발안 위원회가 의회나 지방의회에 법 제안을 제출을 할 때마다, 의회나 지방의회는 이를 검토하고 그대로 승인하거나 몇 가지 수정을 할 수 있으며 발안자들과 정치인들 사이의 협상으로 타협안을 찾을 수 있다. 만일 직접 민주주의의 잘 마련된 법규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의회나 지방의회는 자신들의 반대 제안 하나를 승인하여, 레퍼렌덤 투표에 부칠수 있다. 이 경우 시민들은 두 가지 다른 제안들과 현상 유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시민들의 견해는 지나친 부정조작에 노출되었다?

전국 및 지방 선거를 위한 선거 캠페인에서 우려스러운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즉 강한 정당과 막강한 조직들의 홍보가 온 나라에 넘치고, 엄청난 자료들이 돌아다니며 라디오와 TV 채널들을 선전 광고로 가득 메운다. 그러므로 정보력을 덜 갖추고 비판력이 부족한 시민들은 서로 상반된 메시지들의 영향을 받고 혼란을 겪을 위험도 커진다. 선거 캠페인에서도 정치, 미디어 및 재정적 수단의 분할에 불균형 현상이 있다.

이런한 자금 및 미디어 상의 힘의 불균형은 민주주의 자체의 문제이며 동등한 조건을 보장하기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그것은 직접 민주주의에도 해당된다. 가령 법률 제안을 레퍼렌덤 투표로 가져간 발안 위원회에 대한 최소 액수의 기부를 규정할 수 있다.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발안자들은 국민 의지의 형성에 기여하며, 서명을 모으고 레퍼렌덤 캠페인을 위해 들인 모든 노력에 대해 그들은 일종의 보수와 지출금 보전을 받을 권리가 있다.

게다가 모든 유권자들은 투표 3주 전에 공공 감독 기관으로부터 정보를 담은 소책자를 받아야 한다. 이 소책자는 현안과 관련 설명, 찬반론을 간단히 싣고, 투표에 필요한 다른 정보들도 담는다. 또한 법적으로 공익 언론은 공정성의 원칙을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 그러므로 레퍼렌덤 캠페인에서 체계적인 여론 조작을 삼가거나 적어도 자제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들이 있다.

대체적으로 부정조작의 위험은 선거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평가해야 한다. 곧 성숙한 시민은 자신의 견해를 지니고 자신의 확신에 따라 투표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만일 모든 선거에서 그런 원칙이 유효하다면, 레퍼렌덤 투표에서도 유효할 수 없는 이유가 있을까?

 

레퍼렌덤 투표는 모든 대형 프로젝트를 가로막거나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는 전력 발전소, 도로, 소각장 및 온갖 종류의 사회 기간시설 등. 지속적으로 새로운 대형 프로젝트에 직면하고 있다. 종종 그러한 프로젝트들은 환경이나 삶의 질과 경제 생활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프로젝트 현장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일반 국민이나 국민들은 이 프로젝트들을 그리 반기지 않는다. 만일 그것이 프로젝트 선정지 바로 앞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면, 지방의회의 반대나 광장에서의 데모, 법적 투쟁 등을 통해서 프로젝트들에 제동을 걸거나 완전히 가로막을 수도 있다. 직접 민주주의는 기초자치단체나 지방, 국가의 국민 다수가 받아들이지 않는 대형 프로젝트를 제지하거나 가로막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도구이다. 효과적인 레퍼렌덤 도구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정부가 종종 강력한 경제적 로비의 압박으로 결정되는 대형 프로젝트 쪽으로 몰아가는 것을 제지할 수 있다. 만일 정치인들이 레퍼렌덤 권한으로 표명된 국민의 저항을 고려해야 한다면, 그들은 문제의 프로젝트를 좀 더 검토할 것이며, 준비 단계에서 합의 절차에 더욱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로 입법 기구 전체를 가로막을 위험은 없다. 그렇지 않다면, 스위스는 벌써 오래 전에 마비되었을 것이다. 그보다 정치인들은 공익성이 의심스럽거나 심지어 위험스러운 어떤 법령이나 대형 프로젝트을 도입 하기 전에 모든 관심 사항을 고려하고 더욱 조심스럽게 합의를 구할 수 밖에 없다.

 

레퍼렌덤 투표는 경제 발전에 역행하는 경향이 있다?

레퍼렌덤이 사실상 한 지역 혹은 나라 전체의 경제적 발전을 제지하거나 가로막은 사례가 있었나? 정말 레퍼렌덤 투표로 기업들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방해했는가? 기초자치단체 및 지방차원에서 레퍼렌덤이 거의 없는 이탈리아에서는 특정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탓으로 투자가 막히는 상황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욱 발전한 직접 민주주의를 갖춘 나라들의 경험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레퍼렌덤 투표는 경제와 기업들의 “적”이 아니다. 레퍼렌덤 도구를 더 자주 활용하는 스위스와 미국(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공공 서비스와 사업은 낮은 비용으로 창출되고, 더 적은 세금으로 공공지출이 이루어지며, 공공 부채는 더욱 억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스위스는 (극소국가들을 제외하고) 유럽에서 가장 번영한 국가이다. 정당과 정치인들의 지나친 권력을 통제하고, 특정 이익 단체들과 정치적 족벌주의에 맞서는 직접 민주주의의 역량은 경제에 해롭지 않으며, 오히려 그 반대이다. 시민들의 직접 참여 권리는 기업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확장에 목적이 있다. 게다가 기업가들도 시민이며 민주주의 체제의 일원이다. 결국 경제의 마지막 수혜자는 사회이며, 사회가 경제
의 마지막 수혜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익 단체와 경제 집단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거스르는 결정들이 내려질 수 없게 만들었다. 이익의 충돌과 공공 자금낭비, 부패는 이탈리아에 훨씬 더 만연해 있다. 직접 민주주의는 이런 민주주의나 사회 자체를 위협하는 현상들을 통제할 수 있다. 경제 논리나 국가의 개입을 떠나서 민주주의는 공익에 따라 진전하며 분쟁이나 이익의 충돌도 모두 만천하에서 공개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직접 민주주의는 특히 극좌파나 급진적인 소수파들이 주장하는 거의 혁신적인 개념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무엇보다 급진정당il Partito Radicale, 환경주의자, 노동운동가들이 그나마 쓸 수 있는 소수의 레퍼렌덤 도구들(국민발안의 법률제안, 법폐지를 위한 레퍼렌덤)을 활용해왔다. 직접 민주주의는 좌익이나 우익의 프로젝트로 분류할 수 없으며,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의 체질을 개선한다. 스위스와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에서 발안과 레퍼렌덤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매우 다양하고 다양한 이념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의 제안이나 주장의 종류 또한 마찬가지였다. 레퍼렌덤 절차는 한 사회와 그 사회가 지닌 관심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시민들과 사회적 그룹들의 관심은 종종 정당이나 이념 전선 전반에 걸쳐 분포되어 있는데, 레퍼렌덤에서는 늘, 특히 구체적인 한 가지 현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직접 민주주의는 다양한 정당에서 변화 무쌍한 지지를 받는다. 전통적이고 더욱 엘리트적인 정당들은 큰 지지를 얻지 못하고, 참여 의지에 더 큰 관심을 쏟는 정당들이 더 큰 관심을 받는다. 경험에 따르면 더 큰 레퍼렌덤 권한과 각각의 사안에 대한 헌신은 쉽게 카테고리를 나눌 수 없다. 직접 민주주의가 잘 법제화 되어 있는 나라들의 경우를 보면 모든 정치적 성향을 지닌 그룹들이 레퍼렌덤을 활용했다.

 

레퍼렌덤 투표는 납세자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지 않는가?

시민 직접 참여의 원칙에 따라 뭔가 비용이 들 수도 있지만, 대의민주주의도 마찬가지로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이탈리아에서는 무엇보다 대의 기구들이 “정치적 계급화”에 따라 지나치게 공금을 지출한다. 적은 수의 레퍼렌덤 투표는 그렇지 않다.

레퍼렌덤 투표 빈도를 적정한 수준으로 높이는 데 필요한 잠정적 비용을 정치인들이 원하는 대형 프로젝트나 그 밖의 무익한 공공 투자비용과 비교해 보면, 직접 민주주의는 지나친 비용이 들지 않는다. 모든 시민들이 토론과 정치적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치가 아니라 현대적 민주주의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게다가 국민은 선택권을 통해 비용이 덜 들고 규모 면에서 지나치지 않은 해결책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위스에서 실시한 한 연구에 따르면, 직접민주주의와 소위 “재정적 레퍼렌덤”이라는 도구 덕분에 공공 지출을 크게 절약할 수 있었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다른백년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 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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