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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소련과 러시아

1) 소련 붕괴 25주년

1989년 12월, 미국과 소련은 정상 회담을 통해 “냉전이 끝났다.”고 선언하였다. 미국은 소련에 대한 봉쇄 정책을 종결짓겠다고 했고 소련은 핵무기 감축에 동의했다. 개혁과 개방이라는 소련의 새로운 대외 정책이 가져온 결과였다. 소련의 지도자 고르바초프는 앞으로 동유럽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였고, 소련 내에서도 공산당 이외의 정당을 허용하고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겠다고 약속하였다.

1989년 헝가리를 시작으로 동유럽 모든 국가에서 민중들이 봉기하였다. 공산당 정권은 무너졌고,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는 형태로 독일이 통일되었다. 1991년에는 소련이 러시아를 비롯한 14개 공화국으로 분리되면서 세계 최초 사회주의 혁명(1917년)을 통해 형성된 소련이 70여 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91년 12월 25일. 소련연방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사임 연설이다.

“독립국가연합이 창설됐기 때문에 저는 소련 연방 대통령으로서의 활동을 마칩니다.“

단 한 장의 간단한 성명서와 함께 소련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고르바초프

1991년 말,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과 우크라이나 대통령 레오니드 크라브추크, 벨라루스 대통령 스타니슬라우 슈슈케비치가 한자리에 모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더 이상 존속하지 않는다는 데에 합의하였다. 그해 8월 모스크바에서 쿠데타 시도가 일어난 뒤 소련 공산당은 급격히 위축되었으며, 그 권력과 특권도 붕괴되었다.

옐친에게 소련과 소련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불편한 존재로 남아 있었다. 전자를 없애면 후자도 자연히 따라서 사라지게 되며, 러시아 연방 내에서 옐친의 권력을 확고하게 해줄 것이었다. 그는 독립국가연합(CIS)이 소비에트 연방을 대체하고 세계에서 소련이 차지해왔던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소비에트 연방 소속이었던 공화국 대다수, 특히 우크라이나는 CIS가 러시아에의 종속을 끝낼 수 있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다. 심지어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은 아예 CIS 가입을 거부하였다.

많은 러시아인들은 소련이 소유했던 힘의 상실을 아쉬워했고, 우크라이나가 영구적으로 떨어져나갔다는 사실을 수용하지 못했다. 러시아와 전 소비에트 연방 회원국들과의 관계는 항상 불편했으며, 이들 중 다수는 러시아가 자국의 내정에 간섭한다고 분노하였다. 이들 나라에 거주하는 2,500만 러시아인들은 하루아침에 외국인이 되어버렸으며, 종종 심각한 차별 대우를 받았다.

러시아 연방 내에 존속한 민족 가운데 일부도 독립 투쟁에 나섰다. 1994년 체첸이 독립을 선언하자 야만적인 전쟁이 발발하였다. 러시아 내부에서는 극단적인 민족주의 세력이 등장하여 인종 차별적인 폭력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지금도 전 소련 회원국들은 많은 러시아인이 잃어버린 제국을 되찾기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모스크바 거리2016년 12월 25일. 소련 붕괴 25주년을 맞아 필자는 모스크바 시민들을 만나 25년간의 변화와 소련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다. 상당수 러시아 사람들 특히 노년층은 옛소련에 대해 강한 향수를 느끼고 있었다.

71살 루드밀라 쥬라블료바씨는 전직 회계사로 지금은 연금생활자이다.

그녀는 ”소련시절에는 모두가 평등했으나 지금은 부자와 가난한 자가 생겼다. 나는 즐거움과 미소, 행복함으로 소련시절을 회상한다. 우리는 빈곤하게 살았지만 서로에게 모두 친절했다. 그 친절함, 다정함이 그립다. 지금은 나쁜 일을 저지르는 사악한 인간들이 너무 많다“라고 말했다.

역시 연금생활자로 일자리를 찾고 있는 50대의 이리나씨는 ”나도 긍정적인 측면 때문에 소련시절을 때때로 그리워한다. 그 시절에는 국가가 우리를 필요로 하고, 우리가 국가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 느낌은, 국가가 일부 사람들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이다.“라고 심경을 털어 놓았다.

유럽부흥개발은행과 세계은행이 공동조사해 2016년 12월 14일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을 보면 옛소련시절 보다 현재의 삶이 더 나아졌다고 느끼는 러시아 사람은 전체의 15%에 불과했다. 현재의 시장경제 체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대학의 엘레나 포노마료바 교수는 ”소련이 붕괴된 후 사람들은 엄청난 부자들(super-rich)과 최빈층(super-poor), 극단적 사회 양분화는 물론 이른바 ‘신빈곤층(new-poor)’의 등장을 목도하며 고통스러워(괴로워)하고 있다. 신빈곤층이란 잘 교육받은 엔지니어, 의사, 선생님들이 돈을 많이 벌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 낙오자가 돼가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러시아 문명은 결코 돈 만으로 평가받지 않았고 세계관이나 도덕성, 사회 정의 등으로 평가받았다.“라고 역설했다.

포노마료바 교수는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제국 경영, 세계 경영 국가의 기억이 남아있다. 그런데 이제 그 힘의 상실감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젊은 세대와 구세대 모두 러시아가 피터 대제가 이룩한 러시아 제국과 같지 않다는 점을 가슴 아파하고 있다. 국제적 위상도 예전같지 않다는 점이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련을 회고하고 그때의 장점을 취하고 부정적인 측면은 바꾸기를 원하고 있다. 러시아 사람들이 푸틴 시대 들어 ‘강한 러시아’를 추구하는 정부 방침을 지지하는 것도 이같은 배경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냉전시절 세계의 절반에 영향력을 미치던 소련은 15개 나라로 조각났지만 최근에는 러시아를 중심으로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 등 독립국가연합(CIS) 내 5개국이 ‘유라시아 경제연합(EAEU)’을 결성하는 등 경제적 통합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또 ‘위대한 러시아 재건’을 부르짖는 푸틴 대통령이 등장한 이후에는 우크라이나 사태,크림반도 병합, 시리아 내전 개입 등 국제무대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양상이다. 여기에 푸틴이 최근 전략 핵무기 강화를 연설한데 대해 트럼프도 핵 능력 확장을 언급하고 나서 미-러간 핵 경쟁이 부활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2) 사회주의 혁명 100주년

2017년 11월. 사회주의 혁명 100주년을 맞은 해에 필자는 러시아 땅에 특파원으로 있었다. 100년이란 숫자가 던지는 무게감, 사회주의 및 혁명이란 단어가 한국사회에서 갖는 복잡성 등을 안고 필자는 혁명의 도시로 향했다.

2017년 11월 4일.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100주년(7일)을 사흘 앞두고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화려한 ‘빛의 축제’가 펼쳐졌다. 1917년 10월 혁명 때 상트페테르부르크(당시 이름은 페트로그라드)는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다.

에르미타주 광장

‘빛의 축제’는 황제가 살던 겨울궁전, 즉 예르미타시(에르미타주) 박물관과 구 참모본부 건물로 둘러싸인 ‘궁전 광장’에서 펼쳐졌다. 건물과 구 참모본부 건물이 대형 스크린으로 변한 것이다. 특히 구 참모본부 건물의 외벽은 6,700m²로 축구장 면적에 해당한다.

‘빛의 축제’란 건물 외벽에 직접 영상을 투영하는 이른바 ‘비디오 매핑’(video mapping)을 말한다. ‘비디오 매핑’이란 건물이나 조형물 등을 3D로 스캔한 뒤 표면의 굴곡에 따라 영상물을 제작해 해당 외벽에 직접 영상을 투영해 미디어 기능을 구현하는 것이다.

빛축제 4월테제

구 참모본부 건물 외벽에는 1917년 혁명의 한 해가 13분 영상물로 압축돼 투영됐다. ‘우리에게 빵을 달라’는 굶주린 백성과 2월 혁명,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퇴위, 스위스 망명에서 돌아온 레닌의 혁명전술 4월 테제, 그리고 10월 혁명까지… 격동의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순양함 오로라호예르미타시에서 볼 때 네바강 건너편에 전시돼 있는 순양함 오로라호에서도 현란한 3D 비디오 매핑이 시연됐다. 오로라호는 10월 혁명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오로라호에서 발사된 대포 한 발은 10월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오로라호에서는 1917년부터 지금까지 100년간의 역사가 압축적으로 소개됐다.

이번 빛의 축제를 총감독한 예카테리나 갈라노바는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를 재평가하고, 미래엔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빛축제 혁명

빛의 축제를 본 시민들은 대체로 혁명의 불가피성은 인정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선 그다지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반응이었다. 모스크바 시민인 시스템 분석가 아나스타샤는 “나는 혁명에 대해 부정적이다. 당시 모든 것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표출됐지만, 실상은 거짓이었다”라고 말했다. 연금 생활자인 루드밀라는 “이제 시대는 달라졌고 관점은 바뀌는 법이다. 혁명의 진행에 대한 많은 부분이 아직 논쟁 중이다”라고 말했다. 대학생 비카는 “최근에 황제 일가의 최후에 대해 읽었다. 혁명이 일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황제 일가에게 벌어진 일들은 끔찍하다”라고 밝혔다. 다수의 시민들은 더 이상 혁명이나 혼란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빛축제 황제 니콜라이

어쩌면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야 말로 러시아인들이 겪는 혼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니콜라이 2세와 그의 일가는 1917년 혁명에서 총살됐지만, 소련 붕괴 후 2000년에 러시아정교회는 니콜라이 2세 일가를 성인으로 시성했다.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정치탄압의 희생양이 됐다는 이유에서다.

100주년 기념 공산당 행사

혁명 100주년을 맞은 11월 7일 오후 러시아 공산당은 모스크바 중심가 거리를 행진했다. 레닌과 스탈린,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의 사진을 든 공산당원들이 푸시킨광장에서부터 마르크스동상이 있는 혁명광장까지 행진하며 혁명 100주년을 기념했다. 행진에는 이탈리아·스페인 등 80개 나라 공산당·좌파 정당 대표들도 함께했다.

혁명광장에서 열린 기념집회에서 쥬가노프 러시아 공산당 당수는 “레닌과 스탈린의 20년 근대화는 우리나라의 능력을 70배 향상시켰다. 10월 혁명으로 탄생한 소비에트 국가는 전 세계 생산의 1/5을 생산했다. 나는 사회주의 깃발이 러시아와 전 세계에 휘날릴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연설했다. 쥬가노프는 7일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대선에 다시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이 5번째 도전이다.

볼셰비키의 맥을 이은 러시아 공산당은 현재 전체 450개 의석인 러시아 하원에서 42석을 차지해 집권당인 ‘통합 러시아당’(343석)에 이어 두 번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공산당 행진

공산당 소속 레베데프 하원의원은 혁명이 추구했던 사회주의 이념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공산당은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레베데프 의원은 “공산당은 미래를 확신한다.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입당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오늘날 일자리를 얻기 힘들고 소비에트 시절 주어졌던 각종 특혜들을 이젠 아무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반대중의 30%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혁명에 대한 평가를 질문하자 레베데프 의원은 “혁명 이후 적군과 백군 간 내전이 벌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다. 또 스탈린 독재 기간에 과도한 행동들이 있었다. 그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어마어마한 진보가 있었다. 우주개발에 나섰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대규모 건설로 국민의 85%가 무상으로 집을 받았다. 이것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붉은광장 퍼레이드

11월 7일 오전. 모스크바의 심장부 크렘린궁 앞 붉은광장에서는 5,000명의 군인들이 참가한 군사퍼레이드가 성대하게 펼쳐졌다. 그런데 이 퍼레이드는 혁명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의 군사퍼레이드를 재현하는 ‘1941년 대독일 출정식 76주년 기념’ 열병식이었다.

모스크바로 진격해오는 독일 나치군과 전쟁 중이던 1941년 11월 7일, 소련은 군인들과 국민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붉은광장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벌였었다. 전제 권력을 무너뜨린 민중 혁명 대신, 나치 독일에 맞선 소련 국민과 군인들의 영웅적 애국정신을 기념한 것이다.

혁명 100주년을 맞았지만 러시아 정부 차원에선 이렇다 할 행사나 공식 성명조차 없다. 옛 소련시절에는 11월 7일을 휴일로 지정하고 붉은광장에서 대대적인 퍼레이드 행사로 혁명을 기념했다. 하지만 지난 2005년 러시아 당국은 11월 7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하고 대신 16세기말 폴란드의 간섭으로부터 국가를 지킨 것으로 기념하는 11월 4일을 ‘국민통합의 날’이라는 기념일로 지정했다. 그래서 올해는 11월 4일(토)부터 6일(월)까지 3일 연휴이건만 정작 11월 7일은 평일이다.

붉은 광장 행진

혁명 기념일인 11월 7일은 옐친 대통령 시절인 1995년에 ‘모스크바 자유의 날’(국민통합의 날)로 이름이 바뀌는 등 수난을 겪다가 결국 2005년에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소련 붕괴 후 90년대를 집권했던 옐친 대통령은 러시아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뿌리 내리면서, 여러 분야에 걸쳐서 러시아 혁명과 ‘소련 지우기’에 나섰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소련 붕괴 이후에도 당시 최대 야당으로 정치적으로 옐친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었던 러시아 공산당을 견제하기 위한 측면이 컸다는 분석도 나온다.

푸틴 대통령이 혁명 기념일에 침묵하는 이유에 대해선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하다. 우선 본인이 2000년 이후 17년째 장기집권 중이기 때문에 ‘혁명’이란 단어 자체가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2014년 이후 계속되는 대러 서방 제재와 국제 유가 하락 등으로 악화된 경제난에 불만을 품은 반정부 민심이 혁명기념 분위기를 타고 반정부 시위 등으로 표출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 3월 26일 야권 운동가 나발니가 주도해 전국 80개 이상의 주요 도시에서 반부패·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는데, 그 이후에도 모스크바 등 대도시에서 간헐적으로 반정부 시위가 지속되면서 푸틴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푸틴 대통령의 65번째 생일이었던 지난 10월 7일에는 그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3,000여 명의 시민들이 푸틴의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푸틴은 또 2000년대 말부터 소련을 초강대국으로 이끌었던 스탈린의 지도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스탈린 재평가 작업’에 열을 올렸다. 푸틴은 스탈린을 앞세워 옛 소련시절의 영광을 기억하는 러시아인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미국과 유럽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스탈린과 같은 권위주의적 통치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내년 3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아직 공식 출마 선언은 안 했지만)해 집권 4기를 준비하고 있는 푸틴으로서는 이래저래 생각이 많을 것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혁명 100주년을 바라보는 러시아 사람들의 입장이 모호하다는 점도 이 같은 사회적 현상과 무관치 않다.

‘전 러시아 공론 연구센터’가 지난 10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0월 혁명에 대한 긍정적·부정적 견해가 각각 46%로 나타났다. 즉 “누구의 관심 속에 혁명이 발발했느냐?”는 질문에 46%는 대중의 관심 속에 혁명이 일어났다고 확신한 반면, 다른 46%는 “소수 혹은 몇몇 크지 않은 단체에 의해 발발했다”고 응답한 것이다. 또 응답자의 92%는 “오늘날 러시아에 혁명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레바다 여론조사 기관의 구드코프 대표는 “대다수는 혁명이 불가피했다고 인식하지만 혁명의 결과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평가하고 있다”며 “혁명의 이중성 때문에 여전히 러시아인들이 혼란스러워한다”고 말했다. 구두코프 대표는 “혁명은 소비에트 체제와 스탈린식 근대화, 급속한 산업화를 만들어냈다. 단기간의 변혁으로 소련을 핵무장한 슈퍼파워로 만들었고, 우주개발도 성공시켰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새로운 특권층, 관료주의가 득세하면서 결국 스탈린 독재로 이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다”고 말했다.

공산당 행진 속 중국인들

러시아 내부 상황이 이런데 이 와중에 혁명 100주년을 맞아 러시아를 찾는 중국인들 이른바 ‘홍색 관광’(Red tourism)이 2016년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러시아 혁명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고, 중국의 운명도 바꿔 놓았으니 중국인들에게는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레닌묘를 찾는 것 자체가 관광 이상의 의미, 즉 성지순례 같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러시아 관광 당국은 모스크바로부터 동쪽으로 약 720km 떨어진 볼가 강변의 소도시로 레닌의 출생지인 울리야놉스크에도 2017년 당시 6,000명의 중국 관광객들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했다.

사회주의 혁명 100주년. 20세기 최대의 체제 실험은 좌절된 것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사회적 불평등과 분배의 형평성 문제 등을 제기하면서 ‘자본주의의 방부제’ 역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준수

KBS에 입사하여 사회부. 정치부. 국제부. 외교안보팀. 탐사보도부 등을 두루 거쳤다. 15년 넘게 외교안보 분야 특히 한반도 문제를 집중 취재했고, 2015년 7월 1일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부임하여 2018년 6월 30일까지 근무했다. 귀국 후 현재는 KBS 보도본부 시사제작2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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