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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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접화(中生接化)

마지막 편지를 앞두고 나니 문득 첫 번째 편지글에 쓴 말이 생각납니다. 후생가외(後生可畏)와 선생가외(先生可畏)! ‘개벽파’를 선언한 이병한 선생님과 ‘개벽대학’을 선포한 박맹수 총장님의 기개를 공자의 언어로 표현해본 말입니다. 그렇다면 선생(先生)과 후생(後生) 사이에서 중생(中生)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합작이나 공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생과 합심하고 후생과 합작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선생과 후생이 합작할 수 있도록 중간에서 공공하는 일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른백년 창립3주년 기념회에서 조성환/이병한의 개벽이야기 토크쇼

합작이 연대라면 공공은 매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김태창 선생님은 공공(公共)이 동사로 쓰인 점에 주목하여 ‘매개하고 연결하다’는 의미로 해석하셨습니다. 최치원이나 최제우가 말한 ‘접’도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학조직의 리더였던 접주(接主)는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커넥터 혹은 공공인”이라고 할 수 있고, 최치원이 풍류도에서 말한 접화(接化)도 “사람들을 접하게 하여 변화시키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지요.

서신 교환도 일종의 ‘접’의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의 생각을 이어주기 때문입니다. 지난 6개월 간의 서신교환은 서로의 생각과 방향을 더듬어 나가는 접촉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개벽에 대한 선생님의 확고한 의지를 확신했고, 개화에 대한 공통된 입장을 확인했습니다. 반면에 관점이나 방식 상의 차이도 발견했습니다. 이 점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앞으로 일을 도모하는데 있어 탄탄한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선인들이 공공이나 합작에 서툴렀던 이유는 관점이나 방법까지도 같아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서로가 공공해야 할 공통의 가치만 분명하다면 이러한 차이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삼일독립운동이 상이한 종교단체들끼리 합작이 가능했던 이유는 자주와 독립이라는 공통의 가치가 분명했기 때문이듯이 말입니다.

 

실천실학자

저는 본디 ‘선언’ 같은 것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이렇게 공개적인 형식의 선언에 동참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의 진지함이 저에게도 용기를 준 것 같습니다. 한국학을 하는 저로서는 한국사회에 이토록 진지하게 접근하는 학자를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구라 기조 교수님의 표현을 빌리면, 대개 팔장을 낀 채 도덕지향적인 언설이나 당위적인 주장을 내놓는 게 대부분입니다. 아니면 연구실에서 자기 전공분야에 몰두하는 게 전부입니다.

개벽학당

그런데 이병한이라는 학자는 과감하게 개벽파를 선언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개벽학당을 열어 개벽세대를 양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후기 식으로 말하면 개혁론만 쓰는 이론실학자가 아니라 실심(實心)으로 실사(實事)하고 실정(實政)하는 실천실학자인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진정한 사(士)의 모습이고 참다운 학(學)의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제2의 이병한, 제3의 이병한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개벽파서원

「개벽파선언」이 뜻 깊은 것은, 편지에서 여러 번 언급하셨듯이, 올해가 「삼일독립선언」 100주년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어느 학술대회에서 모시는사람들의 박길수 대표님은 삼일독립선언문을 ‘기도문’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다시 음미해보니 확실히 독립선언문에는 하늘과 땅을 향해 기원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천인상여(天人相與)의 서원을 담은 선언문이 「독립선언문」인 것입니다.

「개벽파선언」을 마무리할 시점에서 제가 느낀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벽파선언문 역시 하나의 서원문이 아닐까 하는 -. 앞으로 “개벽파로 살아가겠노라”는 바람이나 기원을 선언한 것이 개벽파선언입니다. 윤동주의 시어를 빌리면 “죽는 날까지 개벽파로서 부끄럼 없기를” 바라는 「서시」에 다름 아닙니다. 서원이 빠진 선언은 일시적이기 쉽습니다. 기도가 없는 선언은 오만하기 쉽습니다. 「독립선언」이나 「개벽파선언」이 「공산당선언」과 같은 개화파선언과 다른 점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다른 학파나 정당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는 선언문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향해 심고(心告)를 올리는 선언문입니다.

 

개벽어사전

대학에 몸담고 있는 저로서는 개벽파선언이란 “학문의 독립 선언”에 다름 아닙니다. 지금까지 선배학자들이 교화와 개화의 틀로 해석해온 한국사상과 한국근대를 개벽의 관점에서 다시 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래의 관점으로부터 독립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한국 근대를 논하는 학술대회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발표 제목들을 보고 약간 혼란스러웠습니다. “혁명(革命)에서 개벽(開闢)으로”, “사대부(士大夫)에서 지식인(intelligentsia)으로”, “천하(天下)에서 국가(nation-state)로”, “도(道)에서 진리(truth)로”, “강상(綱常)에서 윤리(ethics)로”, “만민(萬民)에서 개인(individual)으로”, “예교(禮敎)에서 종교(religion)로” 등등.

사대부, 천하, 도, 강상, 만민, 예교와 같은 왼쪽 항목은 전형적인 유교적 교화의 개념이고, 지식인, 국가, 진리, 윤리, 개인, 종교와 같은 오른쪽 항목은 대표적인 서구적 개화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이 틀은 유학에서 서학으로, 교화에서 개화로 한국 근대가 진행되었다는 종래의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맨 처음 주제인 “혁명에서 개벽으로”는 이런 틀에 맞지 않습니다. 개벽은 교화와 개화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벽은 영어 표기도 없습니다. 영어의 번역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나머지 주제들에 맞춘다면, “혁명에서 개벽으로”는 “교화에서 개화로” 같은 식으로 바꾸는 게 적절할 것입니다.

이 때 제가 깨달은 것이 개벽파의 개념어를 발굴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유교적 ‘만민’과 서구적 ‘개인’ 사이에 동학의 천인(天人)이나 천도교의 공개인(公個人) 개념을 넣거나, 유교적 ‘천하’와 서구적 ‘국가’ 사이에 원불교에서 애용한 ‘사회’ 개념을 넣는 것입니다. 유교적인 정교일치와 서구적인 정교분리 사이에 천도교의 교정쌍전(敎政雙全)이나 원불교의 정교동심(政敎同心)을 넣는 것입니다. 다행히 이런 문제의식을 공감해 주신 덕분에 내년 봄에 개벽학당에서 ‘개벽파개념’을 강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개화의 개념밖에 몰랐던 청년들에게 개벽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개벽군의 눈물

지난주에 개벽학당 수료식이 있었습니다. 동학 식으로 말하면 4개월간의 개접(開接)을 마치고 잠시 동안의 폐접(閉接)에 들어간 셈입니다. 마지막 시간답게 『개벽파서신』을 읽고 각자의 소감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몇몇 벽청들이 자기가 써온 글을 읽다가 말문을 잇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개강 첫날에 보여줬던 눈물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자발적 고졸’이라는 자괴감에서 북받쳐 오는 설움이 아니라 개벽군(開闢君)으로 거듭났다는 자신감에서 우러나오는 감격이었기 때문입니다. 불과 4개월 만의 변화입니다. 반년도 안 돼서 개벽의 주인으로 우뚝 서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 서신을 쓰면서 이날 벽청들이 써온 변화의 심경들을 다시 한 번 정독해 보았습니다. 『개벽파서신』은 「개벽학당」과 함께 달려온 동지와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거리가 풍부해지고 새로운 통찰이 떠오릅니다. 하나같이 두고두고 읽어볼만한 철학에세이이자 평생동안 간직하고 싶은 보물들입니다. 혼자 보기에는 아깝고 모두와 공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개벽하는 청년들

개벽학당

벽청들의 크리틱 중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개벽을 동사로 쓰고 있는 글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느린의 「개벽할래?」, 자리따의 「개벽하러 가는 길」, 비움의 「개벽을 살자」, 하이의 “개벽을 하고 싶다”와 같이, 실제로 개벽을 살고자 하는 진지한 모습들이 물씬 풍겨납니다. 마치 조선후기에 “참다운 학문을 하자”고 외쳤던 홍대용이나 정제두와 같은 실심실학자들을 연상시킵니다. 그들이야말로 “실학하자!” “실학할래?”라고 제안했던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아울러 벽청들이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마치 1910년에 『천도교회월보』에서 ‘하늘한다’는 말을 발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하늘한다’는 아주 오래 전에 한반도인들이 실제로 쓰고 있었던 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중국철학의 수용으로 잊혀지고 있다가, 자신을 진지하게 되돌아볼 계기가 주어지자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개벽파가 썼던 ‘개벽한다’는 말 역시 잊혀졌던 옛말을 되찾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해방 이후로 다시 망각되었다가, 지난 4개월간의 개벽학당의 훈련을 통해서 벽청들의 언어로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개벽하러 가는 길

벽청들의 마지막 크리틱 중에서 저에게 가장 감동적이었던 글은 자리따의 「개벽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울고 싶습니다. … 100년 전에 눈을 질끈 감아버린 척사파도 답답하고 깜빡 눈이 멀어버린 개화파도 밉살스럽습니다. 그 길이 가시밭길이라도 눈을 부릅뜨고 직시하는 개벽파가 될 수 밖예요. … 『개벽파선언』에는 ‘회통’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동과 서가 회통하고, 유학과 서학이 회통하고, 천주교와 천도교가, 수학과 철학이, 정신과 물질이, 도학과 과학이 회통해야 한다고 합니다. … 그러고 보니 최치원부터 최제우까지 한국사상사 강의 때 공부한 인물들은 죄다 회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에만 전념하지 않고 이것과 저것 모두 흡수하고 통달하여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 배제하지 않고 모든 것을 아울러 보듬는 것, 그것이 제가 첫 번째로 이해한 개벽입니다. 회통하지 않으면 작금의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가 없으니 지금 바로 개벽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 그러기 위해서 일던 저는 ‘달통’부터 하고 봐야겠습니다. … 저실 저는 유학도 서학도, 철학도 과학도 모릅니다. … 회통/포함/하늘하기 위해서는 정진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꽤 빡센 공부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제가 울고 싶었던 겁니다.”

듣고 있는 저까지도 울컥할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개벽을 살고자 하는 청춘의 고뇌가 묻어납니다. 이병한 당장님의 세상에 대한 진지함에 벽청들이 화답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저도 “매일같이 울고 있다”고 답변해 주었습니다. 나이 50이 다 되어서야 개벽에 “눈을 떴기” 때문입니다. 공자식으로 말하면 지천명(知天命)에 지개벽(知開闢)을 한 셈이고, 플라톤 식으로 말하면 25년 만에 동굴 밖을 나온 셈입니다. 그 시간이 너무도 길어서 선배학자들을 원망해 보기도 했습니다. 왜 지난 25년 동안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것도 의존하는 마음의 발로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선학과 해원(解冤)하고 후학과 상생(相生)하기로 하였습니다. 자리따 같은 개벽청년들 덕분입니다.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 않음을 확신했습니다.

 

하는 님들

벽청들의 글 속에 나오는 ‘평화하다’나 ‘자유하다’와 같은 말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의 청년들은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 님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이 『개벽파서신』에 나오는 ‘공공하다’나 ‘하늘하다’ 또는 개벽학당에서 말하는 ‘개벽하다’에 공감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런 ‘하는 님’들에게 기성세대들은 시험공부와 취업공부만 하라고 강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되면, 윤노빈 선생의 말대로, ‘하는 놈’이 되기 십상입니다. 상대는 물론 자신까지도 하느님으로 모실만한 영혼의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조개(박상희)는 『개벽파서신』을 읽으면서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마 제가 『장자』를 읽거나 방탄소년단의 ‘에어플레인 파트 투’를 들을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자유하고’ 싶은 저로서는 대단히 반가운 소감이자 영광스런 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개벽’이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삼일독립운동이 끝난 직후에 『개벽』이라는 이름의 잡지가 나온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축구하는 여성 하야티의 글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운동장에서 버티는 동안 축구를 잘 하는 사람이 되지는 못 했지만 그냥 ‘축구를 하는’ 사람은 되었던 것처럼 … 저도 모르게 ‘개벽하는’ 사람이 되어 있겠지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그냥 하는’ 청년들보다는 ‘잘 하는’ 청년들을 선호했고, ‘즐겨하는’ 학생보다는 ‘경쟁하는’ 학생을 길러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벽청들이 유독 ‘개벽하다’나 ‘평화하다’, ‘자유하다’를 선호한 이유도 이런 말들에는 경쟁이나 우열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험어, 경쟁어, 우열어보다는 개벽어, 평화어, 자유어가 본능적으로 편한 것이겠지요. 어쩌면 방탄소년단의 성공요인도 젊은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음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마당과 환경을 만들어 준데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벽청들이 공부했던 ‘하자센터’도 그런 취지에서 만들었을 것 같고요.

 

반년의 성과

『개벽파서신』과 「개벽학당」에 대한 벽청들의 전체적인 소감은 “잃어버린 개념들을 되찾고 자기가 서 있는 위치를 파악했으며,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았고 세계를 새롭게 인식했다, 앞으로 개벽의 삶을 살고 개벽파의 길을 가겠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 외로도, “개벽이 종교언어가 아니라 포함하고 회통하고 화합하자는 말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는 고백과 “개벽학을 하려면 앞으로 한자 공부에 정진해야겠다”(망창)는 다짐도 있었습니다. “개벽학당에 발을 들이기 전에는 『개벽파서신』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종강을 앞두고 다시 들춰보자 지난날과는 달리 술술 읽혔다. 그래서 공부를 잘 했구나 싶었다.”(하이)는 내용도 반가웠고요. 불과 4개월 동안에 이 정도의 반응이라면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합니다. 이런 내공과 다짐이라면 벽청들도 더 이상 방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가고 싶은 길

지난주에 하자센터에서 ‘다른백년’ 3주년 기념행사가 있었습니다. 다섯 분이 TED 발표를 해 주셨는데, 광주(김봉준), 북한(김화순), 생태(김유익), 경제(이래경) 등등 하나같이 개벽학이 고민해야 할 중요한 주제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숲 속의 도서관’에 대해 강연해 주신 박연식 선생님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이야기가 개벽학당의 모습을 연상시켰습니다.

엘리스가 숲 속에 이르자 여러 길이 나 있었다. 마침 나무 위에 고양이가 있어서 물어 보았다

엘리스: “어느 길로 가야하지?”

고양이: “어느 길로 가고 싶은데?”

엘리스: “모르겠어.”

고양이: “그럼 상관 없잖아.”

개벽은 ‘가야할 길’이 아니라 ‘가고 싶은 길’입니다. 당연지도(當然之道)가 아니라 자유지도(自由之道)입니다. 제가 가고 싶은 길은 청년들이 가고 싶어 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개벽의 길입니다. 지난 6개월간의 『개벽파서신』과 4개월간의 「개벽학당」은 그런 점에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저에게 개벽할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해 주신 『개벽파서신』의 기획자이자 개벽학당의 창시자이신 선생님을 비롯해서 다른백년의 이래경 이사장님, 그리고 개벽학당의 김현아 선생님과 벽청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지난 반년 동안 바쁜 일정 속에서도 꼬박꼬박 서신을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가고 싶은 길’을 마음껏 가시기 바랍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합작하고 공공하겠습니다.

조성환

『한국 근대의 탄생』을 썼고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번역하였다. 지금은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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