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6
  • 제국이 그들의 배를 불리는 방식 V
  • 문재인 정부, 촛불정부 ‘이다, 아니다’ 그 어디쯤
  • 제2장 푸틴과 러시아(5)
  • 국방수권법(NDAA)개정을 통한 미군 해외군사기지 철수운동
  • [5] 후현대화와 두 번째 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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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백년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향해

그저 장인인 내가 이런 큰 자리에서 견해를 표방하는 것이 부끄럽다. 문제는 나 같은 장인에게도 말을 청하는 시민사회단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다른백년’은 미래 세상을 경세지표로 다르게 세우려는 단체 같은데 나의 말이 여기 보탬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한국에서 예술은 자본과 권력의 장식품으로 전락해왔기에 예술가에게 무슨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신화의 나라1> 900x120cm 캔파스에 아크릴릭, 김봉준 작

 “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목표로 하는 제3 섹타 영역을 제1 섹타인 공공의 영역과 제2 섹타인 시장 영역의 원심적 영향력에서 분리시켜 스스로 강화하고 확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조치와 환경을 조성하되, 도요히꼬의 발상을 역으로 적용하여 그 동안 축적된 사회과학적 성과와 정책시행을 통하여 얻은 경험을 온전한 기능적 도구로 재구성하고 재결합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제3 섹타의 영역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인간의 개별적 탐욕(욕구)을 모두를 위한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는 시스템의 구성 요소로 실행적 규범과 제도적 규칙, 혁신적 기제, 협업적 환경, 공유적 조건, 순환과 확산의 되먹임 구조, 자연환경과 지속조건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심도있는 연구와 논의가 절실하다. ”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 2018-09-03.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미 이래경 이사장님이 하셨다. 내게 청하여 들으려는 말도 제3 섹터 영역에서 ‘인간 해방과 자유’를 목표로 하는 견해일 터인데, 글쎄 내가 더 할 말이 있을까? 지극히 저어된다. 나 역시 다른 백년의 비전처럼 인류의 형제애적 관계를 회복하고 욕망의 승화를 통해서 인간해방과 자유를 목표로 나아가자는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의 사유도 별로 다르지 않은데도 입을 열라 하신다면 ‘인간해방과 자유’를 향한 우리 문화운동의 현재를 살피며 내 나름의 실천을 소개하는 정도일 것 같다. 아직 입은 있어도 날이 갈수록 어눌하고 과묵해지게 되는데 이 정도로 약속을 하고 말을 시작해 본다.

한국사회는 아직도 자기 섹터를 일정한 범주로 정해 놓고 그 범주 안에서 활동한다. 이런 섹티즘은 인간의 삶을 하나의 세계로 보려는 노력을 가로막는다. 萬物一如니, 天地萬物莫非侍天主也. 이런 말을 아무리 강조해도 경제는 경제고 정치는 정치고 종교는 종교고 예술은 예술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고와 행동양식이 지속되는 한 배반의 시대는 계속될 것이다. ‘개별적 욕망이 모두를 위한 에너지로 승화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모두를 위한 에너지가 각종 규제와 방벽에 막혀 있다. 젊은 시대 뜨거운 맹세도 물거품 되고, 모두의 가치와 개별화되는 행동의 이율배반이 계속된다. 한 땅 한 하늘 아래 동시대에 살지만 공동선으로 인식하려고 하지 않는다. 제3 섹터는 확연하게 모두의 에너지로 쉽게 들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한국사회는 진정한 문화가 실종된 사회같다. 문화운동은 제3 섹터를 형성시키는 사회운동이다. 동학혁명기, 1919년 3,1혁명시대, 1980년대에도 문화운동은 있었다. 자발성과 물적 조직 내부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 문화인데 지금은 너무나 커진 물질사회로 자기 멋대로 정보화시대를 자기 이익에 이용할 뿐 진정한 문화의 전제인 형제애니, 友道니 하는 가치가 사라지고 있다. 우정은 점점 없어지고 싸구려 사랑타령이 난무하고, 우정의 접촉이 아니라 정보의 접속으로 사람을 대한다.

 

시민운동은 모두 문화운동이다.

제1 섹타, 제2 섹타가 내부로부터 변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공교육이 입시지옥에서 헤매고 한살림같은 신협조직도 문예운동을 포기하는 데 무슨 제3 섹터가 형성되겠는가. 조직의 자기보존 논리가 얼음장같이 단단하여 문화운동이 자생할 공간이 없다. 그렇다고 종교와 예술이 문화운동을 펼치고 있는가? 시민운동은 문화운동을 아는가? 회의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문화운동이 인간의 욕망과 선한 에너지를 승화시키는 사회운동이라면 한국의 시민운동은 모두 문화운동이다.

어떻게 욕망을 승화시킨다는 것인가? 가난과 고난 속에 이미 답이 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지극한 우정과 선한 연대와 드높은 초월정신이 가난과 고난의 밭으로부터 싹튼다. 인간이 고통과 가난을 겪지 않고는 건강과 행복의 고귀함을 잘 모른다. 그걸 안다고 해도 고상함과 비움의 경지를 모른다. 삶의 비루함을 위대하게 하는 힘이 문화에 있다. 비루함을 격조 있는 문화로 만들 때 욕망은 승화된다. 욕망의 승화, 비루함의 존귀, 가난의 초월이다. 진리는 이중모순이다. 자기 자리에서 진리는 이중모순을 하나로 통합하며 성취하는 것이다. 극단적 위대함이나 신성지대는 따로 없다. 누구나 욕망으로 생존하며 욕망의 승화를 갈구한다. 진리는 이원론이 아니다.

영성적 인간이란 고난의 초월자를 말한다. 2000여년전 새로운 종교운동이 일어나면서 ‘남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동체대비’의 초대 종교정신이 새로운 초월적 인간형을 이야기 신화로 제시하였다면 오늘날은 예도가 초월적 인간형을 선도할 수밖에 없는 시대다. 종교는 자기 조직 보존을 위해 신화를 도그마로 이용한다. 교육은 국가 통제하에서 법질서를 말할 뿐 인류 보편적 가치와 초월적 인간형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치지 않는다. 유럽의 전후세대가 국가와 종교와 교육에 반기를 들며 1960년대 뉴에이지 문화운동을 펼치게 된 것도 체제의 도그마를 탈피한 제3의 길이었다. 그 후 지금은 다원주의를 표방하지만 제3세계 식민지 침략과 수탈의 역사로 말미암아 제3세계로부터 그 후과를 겪고 있다. 지구촌은 자기 나라만 잘 살면 행복한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서구사회도 또다시 자기를 부정하고 성찰하는 문화운동이 다시 필요해졌다. 뉴에지운동은 세기말적 저항과 대안 문화운동이었지 새로운 세기의 비젼이기에는 너무 세속적이고 개인적이다.

 

藝道, 영적 인간형을 창조하는 문화운동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도 이 지긋지긋한 물질만능 사회를 고난으로 살아가는 필부다. 이 고난 속에서 초월을 꿈꾼다. 내가 붙들고 있는 방법론은 藝道이다. 엄밀히 말하면 예술이 아니다. 미적 기술이면서 삶을 궁극적(藝를 궁극이라 해석도 한다. 궁극은 일에 끝을 보다란 뜻도 있다.)으로 삶을 구원하는 도가 예도이다. 흔히 인간의 문화적 속성을 이성과 감성과 영성으로 나눈다면 예도는 인간의 감성을 중시하며 궁극으로는 영성적 인간에 다다르려는 삶의 구도이다. 신화학자 조셉 캠밸은 미래를 새로운 신화시대 도래(영성의 시대, 미래학자들의 견해가 대체로 일치한다.)로 보면서 이를 추동하는 주동 세력을 예술가로 보았다. 종교인도 아니고 교육자도 아니고 왜 예술인으로 보았는가. 종교와 교육은 자기 도그마와 국가주의로 인하여 한계가 명백하다. 여기서 예도인은 자유롭게 영성적 인간형을 창조하는 문화운동자로 보았다.

<마당> 목판화 1998년 김봉준 작

나의 실천을 소개하는 것으로 말을 마치련다. 최근 몇 년, 정확히는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다시 초월을 꿈 꾼다. 그전에 나는 반동기에 좌절하면서 깊은 산골로 내려갔었다. 미래의 사상도 미학도 척박한 도시에서 찾을 길이 없었다. 새로운 사상과 미학은 보이지 않았다. 창작 예술을 하는 나로선 남이 만든 사상이나 밖에서 들어온 미학에 의존해서 나의 창작의 길잡이 삼을 수 없었다. 새로운 사상과 미학이 움틀 나의 거처를 찾아야 했다. 다 비우고 다시 시작하는 거다. 산 중턱에 올라가 숲에 집을 짓고 다시 시작하는 삶에서 찾아야 했다. 여기서 생태주의를 찾고, 전통마을공동체를 찾고, 공동체를 세우려 했다. 그러나 이것도 다 실패했다. 명백히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몸은 큰 병을 얻었고 자기 몸부터 치료해야 했다. 병원을 나와 죽음에서 살아오면서 숲으로 다시 들어와 새로운 느낌에 충실하였다. 이것이 영성이다.

 

우리의 일상과 현재는 신성하다.

가난의 초월, 고난의 승화의 길이며 죽음과 삶의 경계가 허물어진 생사지경에 영성이었다. 원형질에 빠져들어 흙을 파서 수비하고 바람에 물을 말리며 가마에 불을 당겨서 만드는 흙조각을 불에서 꺼냈다. 영성예술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화적 상징이다. 그리고 9가지 테마를 잡고 신화상징을 배치했다. 신화상징이란 무엇인가, 창세신화, 마을신화, 토템신화, 어버이 대지신화, 저승길신화, 도깨비신화, 여신신화, 건국신화(환웅과 웅녀, 주몽과 유화부인, 서라벌 박혁거세)를 테마로 한 신화미술관을 세웠다. 신화미술관을 세운 것은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함이었고 신성한 힘의 문화를 찾고자 함이었다. 신화는 내 안에 있었고 우리의 일상과 현재는 신성했다. 민중의 힘과 저항에 기대려 했던 부천시대 문화운동은 노동조합의 이기적 조합주의에 막혔고, 2017년 촛불혁명의 정치적 현실주의 답변도 시원한 답변이 못 되었다. 예도는 스스로 찾아야 하는 몫이 있었다. ‘인간해방과 자유’의 결핍시대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건 내 길이 아니다.

<대지의 어버이> 테라코타 2001년 김봉준 작

가장 최근의 실천 한나 만 더 소개한다. 한달 전 일이다. 5.18 39주년을 맞이하여 광주의 시민 대안문화공간에서 김봉준 미술-<오월의 붓굿 전>을 초대 했다. 어느덧 나의 미술창작이 판화로 보아도 4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래서 <판화 40년 연대기> 말 그대로 40년간 판화운동을 년대기로 전시한 판화전시, <시민과의 동행과 합류> 시민운동 문화운동 차원으로 함께 해온 인쇄물-포스타, 팜플렛, 엽서, 책, 도록, 배너 등, <신화의 나라> 5.18 광주민주항쟁에서 촛불혁명까지 고난과 승화의 영적 그림전을 전시하였다. 20평남짓한 각각 3개의 홀에서 펼친 이 전시가 나로선 일생 가장 큰 전시가 되었다. 시립미술관이나 국립미술관은 물론 상업화랑에서조차 제대로 전시한 바 없이 지역과 시민사회 전 시장을 이용해야 했던 전시는 이번 광주 전시가 제일 큰 전시가 되었다. 그런데 기대한 것 이상으로 뜻밖에 큰 성과를 낸 것은 무엇 때문인가. 아직도 의문이다. 그곳 시민들은 영성예술에 목말라 하고 있었고 식상한 5,18 국가 기념일 행사들에 마음을 돌리고 있었다. 40년 판화들은 완판이 되었고 특히 서울에선 한물간 판화로 취급하던 80년대 문화운동기 판화들 <말뚝이> <어머니와 두아이> <맞춤> 등과 90년대 노동현장과 민주화운동기 판화들 <조국은 하나다> <유월항쟁> <동트는 그날까지>, 90년대 후반기 생태주의 판화들 <마당> <샘> <쟁기질> <봄날>, 2010년대의 <촛불혁명> 판화들과 3.1백년 판화. 5.18 오월의 통곡 등의 판화가 모두 다 나갔다. 나의 40년 판화는 한 물 간 것이 아니었다. 고난 속 초월의 힘을 예술로 확인하고 있었다.

왼쪽부터 <어머니 돌아왔어요>, <사면초가>, <어머니와 두 아이> 모두 1981년 목판화, 김봉준 작

어느 관람자의 촌평이다 “너무 감동했습니다. 눈물이 흐릅니다. 하나도 덧없이 사라지지 않음을 그림으로 봅니다.” 홍희윤(소설가)

어쩌다 보니 내 자랑처럼 글이 흐르고 있음을 경계한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요지는 왜 광주 시민이 나의 미술을 지극히 환영하고 감동하였는가? 이것을 곰곰이 문화운동 차원에서 따져보고자 함이다. 광주시민은 그 어느 지역보다 민주시민의식이 높았고 공동체 정신도 좋고 전통문화를 생활로 계승하는 부분도 많았다. 대화법이 다르고 여성들이 진지하다. 광주시민은 학생과 시민들이 목전에서 피흘리며 죽어간 모습을 본 분들이다. 국가폭력에 항전했고 피투성이 시신을 닦고 피묻은 속옷을 벗기고 염해서 관에 담았던 체험을 공유한 시민들이다. 20세기 들어와서 국가를 상대로 시민무장투쟁을 경험한 유일한 도시다. 광주는 시민군의 최후 항쟁으로 한국 ‘최고의 민주주의 영광’을 품고 있는 도시다. 그럼에도 아직도 모욕을 당하는 변방의 빨갱이 도시 취급당하는, 즉 분단체제의 모순을 집단적 체험으로 그대로 품고 있는 시민이다. ‘오월에서 통일로’가 시민의 구호가 된 도시다. 우리 서울은 거기에 비하면 어떤 곳인가. 분단체제의 희생보다 이득을 취하는 권부들의 세력이 아직도 물적 토대를, 제도와 인맥을 장악한 도시다. 장악당한 시민사회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으며 뜻이 있어도 접촉은 못하고 접속하며 정보만 공유하고 투표행위로나마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는 지극히 수동적인 시민의 도시다. 그런 서울에서 촛불혁명은 기적이다.

오늘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고 노무현님은 ‘시민의 조직되 힘’을 말했으나 지금 여기선 힘의 생성과 성숙의 과정과 질을 말하려는 것이다. 시민운동은 문화운동이다. 문화운동은 일상의 신성한 힘을 지닌 ‘인간해방과 자유’의 문화로 창조하여 시민창조문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왼쪽) <삼대> 목판화 1990년 김봉준 작 // (오른쪽) <오월의 통곡> 목판화 2019년 김봉준 작

“김봉준 선생님 작품이 그런 환경(영성예술)을 만들어 주셨네요, 모두 하나되어 신화 속으로 빠져 들수 있도록 했어요.” 주라영 조각가.

우리는 <신화의 나라> 홀에서 여러차례 의례를 했었다. 이것은 단지 기성 종교의례도 아니고 요가같은 개인만을 위한 의례도 아니다. 나라를 걱정하고 국가폭력에 희생된 민중을 위무하며 내안에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아주 실용적인 초월의식이었다. 그렇다. 실용적 초월, 말도 안되는 개념의 조합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인간해방과 자유를 향한, 우리의 일상의 억압과 폭력을 직시하며 기어서 넘어가는 고난의 초월이라면 그것은 실용적일 수밖에 없다. 치유와 위안의 영적 시공간을 종교나 학교에 맡기지 말자. 우리 일상의 억압과 폭력을 직시하지 않으면 고난을 회피하고 환각에 빠진다. 지배자본권력이 깔아 논 억압과 환락의 기제가 감각을 마비 시키고 감정을 빼앗아간다. 야생을 잃어버린 소시민은 노예적 삶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것은 영성 이전에 야성이며 야성 없는 영성은 기성의 종교적 영성에 의존하는 노예적 영혼이다. 이럴 때는 칼 맑스의 비판 “종교는 아편이다”는 과격하지만 일견 맞다. 그러나 유물론은 과학적 역사관이란 이름 하에 본성을 외면했고 야성을 버렸고 초월을 무시했다. 이제 세속화된 종교도 넘고 맑시즘도 극복할 때가 되었다.

<울음통> 아크릴릭, 150호. 김봉준작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 교수로 있는 정현경교수가 광주에 왔다. 4층 홀 <신화의 나라-역사의 울음통> 전시장에서 의례를 주도하였다. 7명의 광주 여인예술인들과 함께한 의례다. 향으로 사방을 정화하고 리반 음악감독의 음악이 흘러나오며 전시장을 감돌았다. 여인들은 여기서 민주주의 영령들을 불러내고 모시고 감사하는 의례를 했다. 흡사 한 송이 꽃처럼 꽃들이 흩어졌다가 모이기를 반복하며 빙빙 돌았다. 국가폭력에 희생되온 민중의 슬픈 현대사를 자기 안으로 모시는 듯했다. 여인들의 의례는 부드럽고 깊고 신성했다. 마지막에는 전시 작가인 나를 불러내서 둘레 안으로 모시고 위로 했다. “괜찮아요, 수고 많았어요, 참 좋아요. 대단해요….” 손으로 쓰다듬고 두드려 준다. 나는 속으로 울고 있었다. 내 65년 맺힌 한과 트라우마가 치유되는 듯하였고, 전시 준비하며 고생한 시름마저 말끔히 씻기는 체험을 했다. 광주에서 시민운동으로 영성예술이 성취되고 있었다.

 

엄마가 평화다

그렇다! 저 여인들의 신화의례가 평화다. 저 고대 신화시대에 사냥 나갔다가 크게 다쳐서 돌아온 청년을 부족공동체의 여인들이 위로해주는 신화의례를 내가 지금 체험하는 듯했다. 평화신화의례는 역시 여인이 하는 것이다. 엄마가 평화다. 어머니 마음처럼 가족들이 오순도순 사랑을 나누던 인류의 고대 체험이 평화문화이다. 평화는 지금처럼 국가 전유물도 아니고 관념주의도 아니다. 2000년 남근주의 철기문명이 5000년도 넘는 신석기 모계중심사회를 배반하고 세운 지금의 평화론은 가짜다. 트럼프의 입 한마디에 전쟁과 평화가 들락날락하다니 얼마나 뻔뻔한 전쟁 놀음이냐. 철기문명의 종언을 말하는 오늘날 우리는 다시 그 때 여신문명으로 돌아갈 순 없지만, 여성성의 평화주의를 회복하고 부드럽고 깊고 끈질기고 신성하고 일상을 승화시키는 영성문화는 반드시 도래할 것이다. 이런 시민의 평화문화운동이 제도를 세우고 토대를 세우고 국가를 개조한다면 평화문명은 온다. 이 문명전환기에 지금 우리는 자기의 일상을 개벽하는 영성평화문명의 주춧돌을 각자 하나씩 만들어 놓자.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다. 개별적 욕망을 극복하고 집단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고난의 자기 승화가 있어야 그것이 모여서 더 집단적 에너지의 승화가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각자가 평화문명의 주춧돌이 되자.

<엄마가 평화다> ‘역사의 울음통’ 신화의례, 광주 메이홀에서

엄마가 평화다.

이건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엄마가 평화다.
무기 팔며 평화라고 위선 부리지마라.
평화 팔며 울리지 마라.
평화라며 죽이지마라.
거짓 평화는 가라.

어머니 마음이 평화다.
아주 오랜 인류문명이 만든 이야기다.
여신문명을 다시 부르나니.
남근주의 철기문명은 꺼져버려.
돈폭력 국가폭력은 꺼져버려.
오손도손 살가운 평화문명아 오라.
모든 폭력전쟁은 꺼져버려.
이제는 평화문명이다.

어머니가 지금도 말씀하신다.
화목하게 살아라.
이건 아주 오래된 미래 이야기다.
신성한 어머니 말씀이다.
오손도손 살아라.

김봉준

신화미술관장. 사)오랜미래문화연구회 이사장. 40년 미술 업의 삶. 그러나 미술을 위한 미술이 아니라 삶을 위한 삶에의한 살림의 예술을 추구함. 원래 서울태생이고 홍익대학 미술대 조소과를 졸업하였으나 서울을 떠나 39세에 강원도 산골로 들어와 지금것 23년 화실에서 살며 회화 조각 판화를 하며 신화미술관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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