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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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에 이어 일대일로 얘기를 계속한다. 일대일로(一带一路, The Belt and Road, 영문약자 B&R)는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의 약자이다. 이 ‘일대일로’의 기원은 고대 ‘실크로드’에서 찾아 질 수 있다. 우리에게 ‘비단길’로 잘 알려진 이 통로는 중국에서 시작되어 아시아, 아프리카와 유럽을 연결하는 고대의 육상 무역로였다. 그것은 중국에서 생산된 비단, 도자기 등의 상품을 운반하는 통로 역할을 하였으며, 이후 동양과 서양간의 경제·정치·문화 등의 여러 방면의 교류를 진행하는데 있어 많은 기여를 하였다.

‘실크로드’라는 용어가 정식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사실 근세에 와서의 일이다. 1877년 독일의 지질학자 리히호펜이 자신의 저서 <중국>이란 책에서, “기원전 114년부터 서기 127년까지 중국과 중앙아시아, 중국과 인도 간 실크무역을 매개로 한 이 서역교통로”를 ‘실크로드’라고 명명한 것이 기원이 되었다. 그가 사용한 이 명칭은 곧 학술계와 대중들에 의해 받아들여졌으며 정식 사용되게 되었다. 그 후 독일 역사학자 하얼만이 20세기 초에 출판한 <중국과 시리아 사이의 고대 실크로드>라는 책에서, 새로 발견된 유물과 고고학적 자료에 입각하여 실크로드가 포괄하는 공간을 지중해 서안과 소아시아로 확장시킴으로써 실크로드의 기본적인 함의를 확정지었다. 그것은 이제 중국이 고대에 중앙아시아를 경과해서 남아시아, 서아시아, 유럽, 북아프리카로 향하는 육상 무역교류의 통로라고 인식되기에 이른 것이다.

현대판 실크로드라 할 수 있는 ‘일대일로’(一带一路)는 2013년 9월과 10월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이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국가를 순방하는 동안 각각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를 건설하자는 제안을 연이어 내놓음으로써 공식화 되었다. 이어서 2015년 3월 28일 중국 국무원산하 기관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외교부, 상무부 3개 부처가 합동으로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의 추진과 공통건설의 비전과 행동>(推动共建丝绸之路经济带和21世纪海上丝绸之路的愿景与行动) (이하 <비전과 행동>으로 약칭함)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이후 일대일로에 대한 전체적 구상을 담는 최초의 정부 공식문건으로 간주되었다. 이 문건에는 일대일로 제안의 시대적 배경, 공동건설 원칙, 중점 협력사업, 협력기제(시스템) 등의 내용이 비교적 상세하게 담겨있다. 2017년 3월 일대일로는 유엔의 결의문에 정식으로 등장한다. 제71차 유엔총회 결의는 일대일로 등 경제협력 이니셔티브(창의)를 환영하면서, 각국이 ‘일대일로’ 제안을 통과하도록 촉구하고 국제사회가 일대일로 건설을 위한 안전한 환경을 제공할 것을 권고하였다(联合国大会一致通过决议呼吁各国推进“一带一路”倡议,.外交部官网.2016년11월17일). 이 후 2017년 5월과 2019년 4월 두 차례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一带一路”国际合作高峰论坛)이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다. 이들 회의는 각각 정상회의와 고위직회의를 포함한 각종회의를 통해 참여국 정부 간 원활한 정책소통과 협정 서명이 이루어졌으며, 민간 기업들 차원에서의 다양한 프로젝트 합의가 성사되는 등의 풍부한 성과를 남겼다(第一届“一带一路”国际合作高峰论坛, 第二届“一带一路”国际合作高峰论坛, 中国一带一路网).

무릇 모든 큰 사업에는 대외적으로 천명하는 어떤 구호나 기치가 있기 마련이다. 일대일로를 이해하기 위해선 우리도 그것이 내거는 취지나 정신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대일로는 자신이 고대 ‘실크로드’를 계승하였음을 강조한다. 이로부터 그 정신이라 일컬어지는 ‘3() 정신 즉 ‘함께 건설’(共建), ‘함께 상의’(共商), ‘함께 누림’(共享)을 전면에 내세운다(“一带一路”简明知识手册,知识点必备, 中国一带一路网, 2019년4월22일). 여기에다 중국이 평소 대외관계에서 천명하는 ‘평화공존 5개 원칙’――각국 주권과 영토 완전성에 대한 존중, 상호불가침, 내정불간섭, 평화공존, 평등호혜――과 함께 유엔헌장 취지의 준수를 강조한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일대일로에 참여할 수 있는 국가는 고대 실크로드 경로에 기초는 하되 그것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앞서 일대일로 관련한 세계대회에 매우 많은 국가들이 참여한데서 알 수 있듯, 그 취지에 공감하는 국가 및 단체들은 모두 참여할 수가 있다(推动共建丝绸之路经济带和21世纪海上丝绸之路的愿景与行动, 新华社,2015년6월27일). 심지어는 태평양을 건너 남미 대륙 조차도 참가를 결정하였으며, 장차 북미 대륙까지도 포함시키려 한다. 이는 과거 마셜플랜이 서유럽의 몇몇 미국 동맹국들에 한정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일대일로의 포용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거창한 국제적인 사업이 왜 하필 이 시기에 나오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이에 대해 일대일로의 강령적 문건이라 할 수 있는 위의 <비전과 행동>을 보면, 다음과 같이 중국이 이 사업을 제안하게 된 ‘시대적 배경’에 대해 밝히고 있다.

“세계는 복잡하게 변하고 있고,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는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세계경제의 완만한 회복과 분화, 국제투자무역 구도와 다자간 투자무역 규칙의 조정이 진행되고 있어서 각국이 직면한 경제성장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일대일로는 세계다극화, 경제세계화, 문화다양화, 사회정보화의 흐름에 발맞추어 개방적인 지역협력 정신을 가지고 글로벌 자유무역체제와 개방형 세계경제의 유지에 힘쓴다. 경제요소의 자유로운 이동, 자원의 효율적 배치, 시장의 깊은 통합을 촉진하고 각국의 경제정책을 조율하며, 보다 넓은 범위와 수준 그리고 보다 깊은 지역적 경제협력을 전개함으로써, 개방·포용·균형·보편적 혜택의 지역경제의 협력 틀을 함께 만들어 가기 위하여 일대일로 건설을 추진하게 되었다.”

여기서 일대일로가 출현하게 된 배경에는 세계경제 위기가 있으며, 그 해결책으로 제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를 계기로 찾아온 세기적인 경제위기로부터 세계경제는 아직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다 최근 들어 점차 속도를 더해가는 4차 산업혁명의 영향이 겹치면서 자본주의 주도하의 세계경제는 점점 더 위기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일대일로는 이 같은 세계경제 및 국제정세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글로벌 자유무역체제와 개방형 세계경제의 건설을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같은 세계화 전략이긴 해도 지구화 초기단계를 주도한 ‘신자유주의’와 일대일로는 같지 않다. 일대일로는 특별히 ‘지역협력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데, 위 인용문에서 “세계다극화, 경제세계화, 문화다양화, 사회정보화의 흐름에 발맞추어, 개방적인 지역협력 정신”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일대일로의 출현 배경과 관련하여 위의 <비전과 행동>이 제시하는 ‘시대적 배경’ 외에도 ‘중국적 배경’이 하나 더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약간 길지만 아래 인용문을 보도록 하자.

“30여 년 동안 중국의 개혁개방 사업은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최종적인 설계의 부재와 부분만 도모하고 전체 형세를 보지 못하는(谋子不谋势) 문제, 국제적인 발전 환경의 개선에 신경 쓰지 않는 등의 문제로 인해 각 방면의 개혁개방 조치들을 강화할 수 있는 시스템 통합이 절실해졌다. (대외적)‘개방’을 이용한 (국내적)‘개혁’의 촉진은 중국 개혁개방의 기본적인 교훈이며, 그 성공 비결은 세계시장에의 자율적인 통합을 통해 기업경영과 정부 관리에 대한 외부적 감독을 도입함으로써 효율성을 제고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30여 년 동안 거시와 미시 차원에서 개혁이 만들어낸 외부 감독은 진정한 외부 감독이 아니며, 그 감독주체는 어느 정도 통치권자의 화신일 뿐 통치체제 외부로부터의 주체가 아니었다. 이 때문에 비효율성 문제가 여전히 근본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으며, 이를 위한 전면적인 개혁의 심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일대일로 전략은 향후 중국 대외개방의 총 강령이자 전면적 개혁 심화의 총 열쇠가 되어야 한다. 국제적 질서에의 융합과 국유기업의 국제적 재산권 상의 협력전개를 통해…(중략)…중국경제의 관리, 국가관리, 사회관리를 위한 진일보한 외부의 감독주체를 끌어 들여 강력하고 더욱 효과적인 외부적 감독을 창조함으로써, 관리의 효율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게 될 것이다. 현재 중국경제의 새로운 상태(新常态)로의 진입과 개혁이 ‘공전’되는 상황 속에서, 일대일로 전략을 앞세워 개방형 경제의 신체제 구축을 강화하고, 국내 각 분야의 개혁 발전 특히 공급 측면의 개혁을 전면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一带一路”应加强基础理论研究, 中国干部学习网, 2016년12월1일) (고딕체는 인용자 강조)

위 인용문에서 일대일로의 ‘중국적 배경’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첫째, 일대일로가 ‘외부적 감독의 도입’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위 인용문은 그간 30여년의 중국 개혁과정을 총괄하면서 ‘개혁주체 문제’를 지적한다. 다시 말해서, 사회주의 체제는 원래 다원화된 주체간의 상호 경쟁보다는 통일성이 강한 고유의 약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내부적 동력만 가지고서는 개혁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외부적 동력을 끌어들여야 하며, 이를 위해 일대일로와 같은 전면적이고 심화된 개방전략이 필요하다는 논리이다. 둘째, 일대일로 전략을 향후 “중국 대외개방의 총 강령이자 전면적 개혁 심화의 총 열쇠”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일대일로 전략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간 중국 개혁개방이 경과해온 일련의 역사적 과정과 내적인 연관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1980년대 “돌을 더듬으며 강을 건넌다”(摸着石头过河)는 초기단계와, 1990년대에 들어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완성”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한 단계에서는 그 방점은 아직 국내적 문제의 처리에 두어졌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밖으로 나가기”(走出去) 라는 초보적인 세계화 전략이 시작되었으며, 특히 2008년부터 세계 금융위기를 맞이한 후로는 이제 전 지구적 문제의 해법과 중국 개방을 함께 연관시켜 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 같은 요구를 감안해서 나온 ‘종합적인 청사진’이 바로 ‘일대일로’라는 것이다.

이상으로 어느 정도 일대일로의 배경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아직도 무언가 미흡한 감이 든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더 ‘중국적 배경’에 눈을 돌릴 때 비로소 그것은 완전한 자기 논리를 갖게 된다. 즉 일대일로는 일종의 중국의 ‘생존전략’의 색체를 강하게 갖는다는 점이다. 여기서 ‘생존’은 앞서 경제발전을 지속하기 위한 ‘발전’의 측면만이 아니라, 미국과 서구진영의 포위 속에서 나날이 옭죄어 오는 ‘전략적 봉쇄’로부터 벗어나려는 중국의 ‘자구책’을 뜻한다. 이는 필자의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바이두(Baidu)와 같은 중국의 가장 큰 검색 사이트에 실린 일대일로의 추진 배경에 대한 다음 4가지 이유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1. 생산능력 과잉, 외화자산 과잉.

2. 중국의 가스 자원·광산 자원은 국외 의존도가 높다.

3. 중국의 공업과 인프라가 연해에 집중되어 있어, 외부의 타격을 만나면 핵심 시설을 잃기 쉽다.

4. 중국 접경지역 전체 상황이 사상 최고로 좋은 시기에 도달한 가운데, 이웃 국가들과 중국의 협력 강화 의지가 높아지고 있다(一带一路(国家级顶层合作倡议), baidu, 百度百科).

위 4가지 중 1과 4는 중국이 지금 일대일로 전략을 추진하기에 유리한 조건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2와 4는 분명 중국의 생존권 문제 즉 국가안보를 가르키는 것이다. 직접적으로는 미국이 2012년 오바마정권 이후 아시아 회귀전략을 노골화하면서 대중국 봉쇄망을 좁혀오고, 특히 남중국해에서 해군력과 동맹체제를 재정비하고 강화하는 등으로 중국의 상품무역과 에너지 수송로인 말라카해협이 잠재적 봉쇄위협에 직면하게 된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라 보여 진다. 중국정부가 이에 대한 대책으로 해상 수송로 외에 육로개척을 하다 보니 지금의 현대판 실크로드 전략이 나온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원유공급지인 중동과 해외 주요 판로인 유럽으로 가는 보다 안전한 통로를 개척하다 보니,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중동)를 거쳐 동유럽에 이르는 육로의 개척이 이루어지고, 이와 함께 말라카해협을 통하지 않고 직접 페르시아만에 닿을 수 있는 파키스탄과의 협력이 한층 부각되었으며, 이 양자가 ‘일대일로’ 전략의 시발점과 기본 축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다 2000년 초기부터 이미 존재한 ‘서부대개발’(西部大开发) 전략, “밖으로 나가기”(走出去)라는 기업 중심의 글로벌화 전략,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과잉 생산력에 대한 구조조정과 산업고도화 전략 등이 맞물리면서 지금의 ‘일대일로’라는 종합전략이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는 애초 침략적이거나 패권적인 의도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것이 지금 시기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 일각에서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일대일로는 우선 자체 개혁개방의 심화 발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또한 ‘방위적’ 목적의 국내적 동기가 많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김정호

2001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 사회를 연구할 목적으로 16년간 중국 유학생활을 보냈다. 중국인민대학과 상해재경대학에서 각각 금융(학사)과 재정(석사)을 전공했고 최종적으로 북경대에서 레닌의 정치신문사상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7년 8월 귀국하여 울산에 정착해 현재 울산 평등사회노동교육원에서 교육강사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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